네 번째 만남
아쉽게 헤어진 지 열흘도 안 되어서 전화가 왔다. 미스최는 아리랑 제3권은 산지 일주일 만에 다 읽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 아리랑 책 참 재미있지?”
“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과거로 돌아가다니?”
“제가 여고 시절에는 연애 소설 같은 것을 밤새워 읽었거든요.”
“요즘에는 밤에 일하니까 낮에 읽겠네.”
“그래요, 오빠. 일주일 동안 다른 일은 모두 미루었어요. 조정래라는 사람 대단한 작가에요. 저희 고향사람이라니 자랑스러워요.”
김교수는 미스최가 말을 꺼내기 전에 선수를 쳤다.
“어쨋든, 또 아리랑을 읽었으니, 약속대로 한 번 만나야지?”
“예, 오빠. 만나고 싶어요!”
“그런데 이러다가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게 되겠다.”
“그럼 어때요? 저도 오빠가 보고 싶은데. 보스로 한번 오세요.”
“내가 무슨 재벌 아들이냐? 보스에 한 번 가려면 한 달 동안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면서 돈을 모아야지. 거기는 너무 고급이라서 나처럼 가난한 교수에게는 부담된다.”
“그렇기는 해요. 그러면 오빠, 잠실에서 만나요.”
그날은 마침 교회에서 무슨 행사가 있어서 저녁 8시까지 아내와 함께 가야만 되었다. 김교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교회에 가고 자기는 8시까지 맞추어 직접 가겠다고 말했다. 미스최와는 저녁 5시에 뉴스타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지난 번에 늦었기 때문에 그날은 조금 일찍 나갔다. 늦지 않고 5시 조금 전에 도착하였다. 이미 12월이었기 때문에 저녁 5시면 어두운 시간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원래 지루한 법이다. 기다리는 상대가 젊은 아가씨이니 시간이 더욱 느리게 갔다. 김교수는 제목은 이제 잊었지만 다음과 같은 시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간다.
슬픈 시간은 느리게 간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보면 시간은 일정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에 따라서 시간은 빠르게도 느리게도 흘러간다. 이 시의 맛은 마지막 구절에 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을 때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결혼한 사람으로서 아내와 대화를 할 때에, 또는 사랑을 나눌 때에 그러한 느낌을 맛본 사람이라면 일단 그 결혼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교수도 결혼 전에는 그러한 느낌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소설이나 신문기사에서 남녀가 정사(情死)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리석은 행동’으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남녀 간의 정사가 어리석다기보다는 아름답게 보인다. 요즘같이 모든 것을 따지고 계산하는 풍토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고 싶다는 것은 사랑의 감정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뜻인데, 이것은 매우 순수하고 아름다운 욕망의 치명적이지만 강력한 표현이 아닐까?
5시 15분이 되었는데도 미스최는 나타나지 않았다. 걸어 온다고 했는데, 왜 이리 늦을까? 혹시 내가 바람맞는 것은 아닌가? 아니야 여자들이 외출하려면 화장하느라고 대개는 늦지.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김교수가 엉뚱하게도 미스최와 정사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는데, 미스최가 빠른 걸음으로 나타났다.
“오빠,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 나도 방금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