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쉼)의 찬미
내 인생에 있어 학교 공부는 그런대로 잘 한 편이지만,
2번의 실패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는데
돌아보니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쉼은
초등학교 1학년을 2번 다녔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낙제를 했다는 것이다.
생일도 늦은 12월이고 7살에 학교에 들어갔으니
6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셈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학년을 두 번 다닌 학생이
나 외에도 4~5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50살이 다 되어 동창회에서 알게 되었다.
당시 농사를 짓느라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학교에 돌봄으로 일찍 맡긴 모양이다.
처음 1학년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고
통지표에 기록된 키도 1미터 밖에 안 되었는데,
두 번째 1학년 때에는 ‘수’와 ‘우’가 대부분으로
두각을 내기 시작했고 달리기도 잘 해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었다.
칭찬을 받으니 더 잘하고 싶은 의욕이 생겨
줄 곧 6년 내내 선두권을 유지하게 되었고,
고학년 때에는 라이벌이 생겨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1년을 쉰 것(낙제한 것)이
같이 입학한 아이들보다는 1년이 늦었지만
공부에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쉼은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 상을 치르면서 재수 아닌 재수를 할 때다.
서울에 살고 있던 2째 매형이 처남은 공부를 잘하니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시험을 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배재 중학교에 원서를 넣었으나 실패했고,
2차는 대광 중학교에 넣었지만 역시 실패를 했다.
고향에 있는 태성 중학교에는 김광수 선생님의 추천으로
무시험으로 받아 준다고 했지만 거절하고
홀로 계신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짓기로 결정했다.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 1년 상을 치르고 나면
서울로 이사를 갈 생각이라 하셨기에
낮에는 농사일 하고, 밤에는 마을 회관에서 가르치는
한문 공부를 하는 일명 주경야독을 하면서 1년을 보냈다.
당시 배운 것은 등하불명, 마이동풍, 우이독경 등의 사자성어,
간단한 명심보감, 채근담 등에서 뽑은 문구들이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새벽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낭랑한 성우의 목소리로 들었던 '마음의 샘터' 내용들이 많아
흥미를 갖고 실제 한문을 읽고 쓰면서 문장을 외웠다.
10월 경 서울로 이사를 하고 2달 정도
사설 학원에서 입시공부를 하고 중학교 시험을 쳤지만
1차 용산 중학교를 낙방하고,
2차로 덕수 중학교 2부(야간)에 합격했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는 한자와 한글 공용이었는데
다른 학생들에 비해 나의 한자 실력은 월등했고
도덕시간에 가르쳐주시는 내용이 이미 내가 재수할 때
야학으로 배운 내용이 많아 항상 좋은 점수를 받았다.
쉬는 시간에도 외운 한문구절을 빈 종이에 끄적 이면
친구들이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더욱 한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국어 고문에서 항상 월등한 성적을 받았다.
대학입시에서 국어과목은 1문제를 틀리고 다 맞추어
입학에 일등공신이 되기도 하였다.
나에게 있어서 학창시절 2번의 실패 경험은
다른 학생보다 2년 뒤처진 것이라기 보다는
나의 미래를 좋게 반전시켰던 기회라 생각하며
은총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쉼[영업교육팀(99.1~04.12)]은
직장생활 19년 만에 찾아왔다.
IMF로 회사가 조인트 벤처가 된 후
경영권을 벨기에 인터브루에서 갖게 되었고, 그들은
제일 먼저 재무의 주거래은행과 마케팅을 정비했다.
회사실적이 나쁜 이유는 은행이율이 높은 은행을 계속
주거래 은행으로 하고 있고, 판매실적이 좋지않은 것은
마케팅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마케팅 직원을 퇴직시켰고 그 와중에 나는 다른 업무를 할 것을
인터브루 앤디 부사장이 권유하여 영업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직원도 없이 혼자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인원계획을 수립하여 보고하는 것이다.
그것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영어로 브리핑해야한다.
영어실력도 짧고, 파워포인트를 만들줄도 몰랐다.
지금까지는 부하직원들이 만들어 오면
검토하고 결재하고 중요사항은 중역회의에 브리핑하면 되었다.
그런데 영업교육팀에는 팀원도 없이 나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해야만 했다.
외롭기도 하고 업무를 누구와 상의할 사람도 없어
일할 의욕도 없었다.
특히 인원문제에 대해 상사에게 요청하면 아무도 동조하지 않고
지금 교육팀에 줄 인원이 어디에 있느냐는 식이었다.
마치 소주개발 할 때처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같이 일하는 직원이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나 혼자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점점 업무 하기가 싫고
내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존심 등으로
서서히 몸과 마음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때마침 집에도 우환이 겹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거의 죽음까지 맛보고 나서야 주님을 찾게 되었고
회사를 퇴사할 입장이 안 되었기에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절박감이 일자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서서히 구렁에서 빠져 나오게 된 것이다.
빠져 나오고 보니 상황은 그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데
마음은 평화로웠다.
가만히 되돌아보니 나의 가치관 인생관이 달라진 것이다.
즉 나의 존재가 무엇인가?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 종전에 그토록 추구했던 삶
즉 부귀, 명예, 존경, 건강, 자존심 등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관점으로 바뀌고
제일 중요한 것이 내 구원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부터는 인생을 주위를 둘러보면서
서로 나누고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그 이후에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내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불평 없이 지고가면서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다 보니 내 마음은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1년 동안의 육체적,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던 시기가
나에게 인생관을 돌려놓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또한 교육을 담당하면서 퇴직하기 전까지 5년 동안
그 동안 타인들이 나를 볼 때나,
내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였던
‘교육자가 되든지” 와 “목사나 수도자가 되는 것”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도 교육을 하고 성당에서도 교육을 하면서
교사의 역할을 수행했고, 한편으로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고 신앙공부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토록 하기 싫었던 교육팀이
지나고 보니 다 은총이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 잘되도록 돌보아 주시는데
이를 싫다고 외면하는 것은 우리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다.
99년 1년 간을 방황하면서 영육간 고통의 시간에
이를 잘 견디며 성찰한 결과 이후 5년간을
나의 인생관이 나의 구원으로 바뀌었고
뒤늦게나마 주님을 알고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내 인생에서 3번의 쉼, 방황의 시절을 겪으면서
한층 성숙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 보면
실패를 해서 남에게 뒤쳐진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때를 더 발전할 수 있는
발판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바쁘게 앞만 보며 살다 보면
자신이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생각해 볼 시간도 없이 세월이 흘러간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잠시 짬을 내어 멈추어
나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실패의 기간은 어쩌면
나의 삶을 돌아보고 도약할 기회로 삼으라고
주어진 선물인지도 모른다.
좌절하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좋은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 기회를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그래도 잘 사셨어요~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굿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요즈음 허리가 고장나 일주일 째 꼼짝못하고 집에만 있습니다.
미사참례도 못하고...
가끔씩(1~2년 주기) 찾아오는 지병?
쉬면서 생각해 보니, 너무 체중이 불어서 빼라는 신호같기도 하고
글만 올리는 output에만 열중하고 input에 소홀해 보강하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허리가 고장나는 것도 은총이란 생각도 듭니다^^
건강 주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