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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태일 목사
올바르고 참되고 즐거운 인생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4가지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것을 말씀을 하심니다. 근심걱정 불안속에 화내지 말고 기쁘게 즐겁게 살라 말씀합니다. 비록 죄악이 관영하고 죽을 일이 쌓여있는 고해같은 세상이지만 즐겁게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지난 주일 드린 말씀처럼 먹은 일도 즐거움으로 즐겁게 먹고 마셔야 합니다. 고기를 놓고 싸우며 불목하는 것보다 야채를 먹으면서라도 화목하는 것이 더 낫다 말씀합니다.
잠17:22절을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여기서 양약이란, 치유, 구제의 뜻입니다. 즐거운 마음은 좋은 치료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현대인의 질병은 거의 정신적으로 긴장하고 고민할 때 생깁니다. 암울한 마음과 근심걱정은 병의 원인입니다. 질병의 치료를 가로 막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옵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면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교회를 나와도 설교를 들어도 찬송을 해도 기도를 해도 무슨 섬김을 드려도 기쁘고 즐겁게 행하시기 바람니다.
일본 오사카 대학원 신경 기능학 팀의 공동연구 에 따르면 웃음은 백혈구의 일종으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혈액중의 내츄럴 킬러(NK) 세포의 움직임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소위 말하는 엔돌핀이 생김으로 암세포를 막아내고 이기게 한다는 말입니다. 18세에서 26세 사이의 남성 21명을 상대로 코미디 프로와 교양 프로를 볼 경우 NK 세포 활성화 비율을 비교한 결과 코미디 프로를 봤을 때 NK 활성화 율이 시청 전의 26.5에서 29.4 로 높아진 반면 교양 프로를 시청했을 때는 27.1에서 24.8로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음악 지휘자'로 조사되었습니다.
미국 미네소타 의과대학교 데일 앤더슨 박사는 지휘봉을 흔드는 것이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유연성을 길러주며 엔돌핀을 증가시킨다고 밝혔습니다. 지휘봉을 흔드는 것이 스트레스와 통증을 해소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볼펜과 젓가락을 흔드는 것도 동일한 효과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최근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열광적으로 지휘를 하는 '지휘 체조법' 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반영하듯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평균 수명은 일반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음주벽이 심했던 베르디(Gouseppe Verdi 1813-1901) 88세를 살았고,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1882-1971) 89세를 살았고,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Leopold Stokowski 1882-1977) 95세를 살았고,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Arturo Toscanini 1867-1957) 90세를 살았고,
카라얀은 (Karajan 1908-1989) 81세를 살았고,
아드리언 볼트는(Adrian Cedric Boult 1889-1983) 94세를 누렸습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장수합니다. 즉 즐거운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최고의 보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을 즐겁고 기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7절하반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받으십니까? 우리가 기쁘게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시고 좋은 결과를 주심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축복은 행함으로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인해 복 받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받을 좋은 일을 하고 나면,
첫째는, 내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편안해집니다.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을 돕고 나면 그렇게 즐겁고 기분이 좋을 수 없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름니다. 내 시간 내 물질 내 은사를 다해 돕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즐겁고 뿌듯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남을 괴롭히고 악한 일을 꾀하면 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그렇게 힘들고 불편합니다.
둘째는 좋은 일을 하면 내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평안해질뿐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어찌 하나님께서 의인을, 성도들을 이 땅에서 그냥 두시겠습니까? 의인의 자식이 걸식하는 법을 보았느냐 말씀하심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고나면 하나님 기뻐하시고 복을 주심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심니다. 만복의 근원이심니다. 그 복을 인하여 감사하고 또 기뻐하며 새 힘을 얻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주받은 사람은 웃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불안해합니다. 먹어도 마셔도 어디를 가도 평안치 못합니다.
그러나 복 받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싱글벙글 웃으며 삽니다. 하박국선지처럼 노래합니다. 기뻐합니다. ♬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할 인생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첫째로는, 내 처지와 형편을 따라 주신 양식을 감사와 기쁨으로 대하시기 바람니다. 즐겁고 기쁘게 자족하며 먹고 힘을 내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나만이 기쁘고 즐겁게 먹고 마심이 아니고 가정이나 교회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기쁘고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하는, 속이거나 탈루하거나 못먹을 것을 먹게 하거나 건강에 치명적인 음식을 만들거나 유통시켜서는 안되고 늘 깨끗하게 위생적으로도 잘 배려해야함을 말씀하심니다. 먹을 것이 없고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 요즘 국내외적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안심하고 기쁘게, 맛있게 먹도록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두번째로, 기쁨과 즐거움을 증명하는 삶은 자기 관리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8절을 보면 “네 의복을 항상 희게하며 네 머리에 향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삶의 즐거움을 위하여 먹는 문제, 다음으로 입는 문제 언급합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입는 문제, 다시 말하면 자기 모습에 대한 책임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은 사람의 외모를 말할 때 의복에 대한 깨끗함과 머리에 향기로움을 이야기합니다. 성도의 단정한 모습은 절제된 모습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자기 관리의 첫째가 무엇입니까?
1) 자기 관리의 첫째는, 의복을 희게 하라.
"기쁨과 즐거움의 표시로 "네 의복을 희게 하라"라는 말씀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흰 옷으로 표현되었습니다(계3:4 사데교회안에는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흰옷 입은 사람들이 주님과 함께 다닐 것을 말씀합니다) 즉 의복을 희게하라는 말씀은 깨끗한, 성결한, 구별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8을 보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주시는데, 그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사람이 있건 없건, 보는 사람이 있건 없건, 듣는 사람이 있건 없건 행동과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입혀주신 의의 옷을 희게 해야, 생활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특별히 성도는 육신의 옷만이 아닌 그리스도의 보혈의 깨끗한 의의 세마포를 입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 찬송가 407장, 3절
큰 권세있는 주 예수 늘 가까이 하면서
그 의의 옷을 입으면 온전케 되겠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깨끗한 삶일까요? 죄를 안짓고 사는 그런 삶일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죄를 적게 지으려는 노력일까요? 물론 죄를 적게 짓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적게 짓는 것을 보고 "성결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때로 우리 인간은 죄를 실행하지 않아도 생각으로 죄를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성결하다는 것이 생각으로 짓는 죄를 멀리하는 것을 말할까요? 물론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바른 삶의 모습은 그런 차원 이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하고 구별된 생활은 바로 믿음의 깨끗한 생활입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성결한 사람입니다. 교회안에서는 믿는 것 같은데 교회밖에서는 믿지 않는 것 같은 모습, 이것은 바른 신앙생활이 아님니다. 어떤 때는 믿는 것 같은데, 어떤 때는 믿는 것 같지 않은 모습이 있습니다. 신앙인 가운데 불신앙이 더 잘못된 것입니다. 집을 나간 아들만이 탕자가 아니라 집안에 있는 큰 아들도 무시못할 탕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감정이나 인간의 의지나 형편보다 하나님의 말씀, 약속을 끝까지 더 크게 여기시기 바람니다.
롬4:18절 이하를 보면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으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말씀합니다.
자기의 나이 100세되어 그 몸이 죽은 것 같았고 아내 사라 역시 나이가 많아 여자로서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즉 태의 죽은 것과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견고하여져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 말씀하심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드러내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서1:6-8절 말씀을 보면 흔들리는 신앙, 그런 모습을 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우리의 믿음이 바람에 밀려 요동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 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바른 성도의 생활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이런 요동하지 않는 믿음이 없으면 무엇이든지 얻을 생각을 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결국 우리 성도의 시험은 대개 우리가 가진 믿음이 있는가, 믿음위에 견고하게 서있는가를 시험하는 시험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가게에 불이 났소!" 그때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립니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들의 가족의 생계가 달린 가계에 불이 났다니, 어떻게 해서 준비하고 시작한 가계인데 생각하면 마음을 못잡고 앞으로 살아나갈 것을 생각하면 앞이 막막합니다.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억울하고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은 그런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을 가라앉히고 믿는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주를 버리고 떠나간다 해도, 하나님이 안계시고 죽은 것같이 느껴지고 사람들이 떠들고 회의와 불신와 죽음 앞에서도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나갈 때 신실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엄청난 사랑과 계획을 가지신 그 하나님을 끝까지 확실히 믿는 믿음을 보여줄 때 하나님은 최종적인 선을 반드시 보장해주십니다.
우리는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삶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큰 시험이 와서 우리를 흔들어도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세상의 화려한 불빛에도 결코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그러한 성결한 마음에 비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고이게 될 것입니다.
♬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귀를 기울이시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2) 다음은 기쁨의 표시로서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하라.
즉 향기름을 바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베다니 마리아의 집에서 이 향유의 즐거움을 허용하셨습니다(마26:7), 다윗은 시23:5에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아낌없는 선물중 이 향유의 아름다움을 중히 여김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관능의 즐거움에 행복을 두고 그것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절제와 현명이란 한계 안에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않고, 가능한 한 안락하게 이용하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머리에 바르라. 머리는 뇌가 들어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뇌는 생각하고, 기억하고, 명령하는 신체의 최고 사령부입니다. 학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마음은 머리속에 있다는 사람도 있고, 가슴속에 마음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리로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고 인생이 결정되고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큰 도시에 가보면 대부분 동물원이 있는데 그곳에 당뇨병 걸린 곰이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무심코 던져준 빵, 비스킷, 사탕 따위들을 받아먹거나 주워 먹은 곰들은 당뇨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먹이를 던져 줘도 먹지 않는 곰은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자기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관광객들이 온갖 것을 던져준다해도 안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던져준 사람들이나 환경을 원망하지 말고 내가 안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나의 나쁜 생각 버리고 좋은 생각을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면서 나를 통제하시고 조정하시고 인도하심니다.
신앙생활에 있아서 문제는 항상 남이 아니고 내 자신입니다. 내 자아가 못되고 무지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죄를 용납해서 그런 것이지 남이 문제, 환경이 문제 아님니다. 내게 시시 때때로 도전하고 밀려오는 죄악을 유혹을 이기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좀 힘들고 괴로웠지만 다 이기고 지나간 후에는 그렇게 기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면 그 날부터 죄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고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 동안에는 주신 것들 누리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으로 모든 일들을 감당하시기 바람니다. 기쁨으로 식물을 섭취하며, 마시며, 특별한 날에 기쁨을 상징하는 흰 예복을 입고, 향유를 뿌리듯이 우리의 날들을 슬픔과 탄식중에 근심중에 보내지말고 항상 특별한 날처럼 기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진동시키시는 귀한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