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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감동하시면
성경본문 : 에스라 1:1-11
고레스는 BC 539년에 천하의 대 제국인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샤의 대왕입니다. 그는 천하를 통일하자마자 옛날 바벨론이 예루살렘에서 잡아 온 이스라엘 포로들은 자기나라로 돌아가라고 해방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기 훨씬 전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이스라엘이 범죄 했기 때문에 바벨론에포로가 되어 끌려갈 것을 예언하게 하셨고, 그 바벨론도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70년 뒤에 다른 나라에 정복될 것이라고 예언하게 하셨습니다(렘25:11,12, 29:10).
이사야 선지자를 시켜서 예언하신 내용은 더욱 구체적이었습니다.
이사야는 BC700년경에 예언한 사람인데, 사44:28, 45:1-3에 보면, 이스라엘을 잡아간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돌려보낼 사람은 고레스라고 이름까지 말씀하시면서 그 사람을 ‘나의 종’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150년 뒤에나 있을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한 사람의 이름까지 밝히면서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의 주관자이십니다. 오늘은 말씀은 여섯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1. 감동을 받은 고레스 왕 (1- 4, 7-11)
고레스는 어느 날, 내가 어떻게 이 거대한 제국의 황제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이 분명하고 거기에는 분명한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옛날 바벨론 왕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성전을 헐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레스는 명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고 거기서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나와 나의 왕자들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깨닫게 하시자 그 감동에 순종하여 행동하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감동이란 마음에 부딛쳐 오는 깨달음이나 가슴을 두드리는 신령한 권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마음이라는 것을 주셨고, 그 마음을 하나님이 움직여 당신의 뜻을 행하십니다.
사람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마음을 자기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하는 노래도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저질러 죄를 지으며 후회스런 길을 가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거나 선한 생각을 넣어 주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십니다. 그때 우리가 순종하여 따라가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즉시 순종합니까?
미적미적 하다가 받은 감동을 사라지게 합니까?
감동을 받지 않은 것처럼, 못들은 척, 못 느낀 척 합니까?
감동에 순종하는 사람은 생각지 않은 복을 누리고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지만, 감동을 무시하고 소멸하는 사람은 힘든 삶을 살게 되고 멸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며 선한 길을 제시하시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레스 왕은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였습니다.
2. 감동을 받은 이스라엘의 행동 (5 이하)
하나님은 고레스 왕의 마음만 감동하신 것이 아니라 포로 되어 바벨론에 끌려가서 70년을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도 감동하셨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고레스의 명령을 들은 바사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기쁨에 가득차서 열심으로 떠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고국을 떠나온 지 70년이 넘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포로로 끌려왔지만 그때까지 노예나 포로로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폭넓은 정치인이어서, 포로로 끌려왔다가 총리가 된 다니엘에게서 보듯이 포로출신도 능력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6.25때 북에서 피난 온 분들 중에는 믿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남한에 와서 자리를 잡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유대인은 율법 지키려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과는 달리 대부분 성공하였을 것이고, 이미 기반을 다 닦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닦아놓은 기반을 다 버리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고생을 각오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들은 주시는 감동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선교의 명령은 누구나 다 받은 명령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은 열두 제자에게만 하신 명령이 아닙니다.
주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은 모든 신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명령을 자기에게 하신 명령으로 알고 전도에 생명을 바칩니다. 오지에 선교사로 나가서 자기 평생을 터도 안 나는 일에 바칩니다. 그러나 누구는 평생을 가도 전도 한사람도 안하고 선교를 위해서 선교헌금 한 번도 힘써 하지 않고, 하는 체 하기만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느끼는 사람과 감동을 받고도 받지 않은 체 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선교사가 된 사람들은 우리와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니라 단지 반응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는 감동을 받고도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모른 체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저요,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가서 그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라고 나섰습니다.
그들이라고 그 일이 어려운 줄 모르겠습니까?
아무 연고도 없는 그 땅에 가서 사는 일이 어찌 부담스럽지 않고 두렵지 않겠으며 어찌 노후가 염려되지 않겠습니까?
어찌 자식 교육 망칠까 염려 되지 않겠습니까?
서울에 살면서도 남들 다 보내는 학원 한 두 개만 덜 보내도 자기 자식 망치는 것 같아서 강남으로 이사를 가려고 그렇게 머리를 싸매서 강남 집값 올려놓는데, 선교사라고 자기 자식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오지로 눈물 짜는 자식들 앞세우고 간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모른 체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지는 대개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테러가 빈번합니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위험한 일에 누가 망설임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이 그 마음에 감동을 주어 명하신 일이기에 순종하지 않으면 자기 생명의 주인 앞에서 도리가 아니기에 순종하여 나간 것입니다. 그게 성령의 감동에 반응하는 바른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선교지에 나가지 못하면, 나대신 나간 사람들 돕도록 선교헌금이나 좀 하자는 데도, 목사가 권면을 하고 성령이 마음에 감동을 주셔도 왜 우리는 좀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주머니가 열리지 않습니까?
마음이 강퍅해서 그렇습니다.
성령이 감동을 주셔도 마음에 굳은살이 박혀서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말씀하려면 하시오, 나는 내 맘대로 살렵니다.’
이렇게 고집 부립니다.
자기만 안하면 그래도 다행입니다.
누가 남보다 선교헌금 좀 많이 작정 하는 것 같으면 은근히 비웃으면서, “김 집사는 요즘 돈 좀 버나보지? 내년에 집 산다는 소문 있대?” 하면서 비웃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목사가 지난해보다 좀 더 낫게 하자, 작정서의 한 칸 더 올라가자고 하면, “목사님, 돈 얘기 작작하세요.”
“지금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 줄이나 아세요? 목사님 돈 벌어 봤어요?” 라고 속으로 대꾸나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발로 차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바사에서 겨우 터전을 잡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터전 다 털어버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떠나려고 감동에 순종하여 일어섰습니다.
감동을 주시면 일어서야 합니다. 감동을 받을 줄 아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감동을 받은 바사의 사람들 (6)
하나님이 일찍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되돌려 보내는데 쓰시려고 준비시킨 당신의 종 고레스 왕도 아니요, 당신이 선택하시고 번성케 하시고 훈련시킨 당신의 백성도 아닌 바사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다는 말씀이 6절에 나옵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러 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금 은 패물과 짐승들을 아낌없이 지원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을 움직여 지진이 발생하게도 하시고, 바다가 움직여 파도가 일어나게도 하시며, 바람이 움직여 태풍이 불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만드신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야 마음과 귀가 없는 땅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쉽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알고 섬긴다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줄 모르고 감동을 받을 줄 모른다면 죽은 영혼이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 사람들이 그동안 자기의 종처럼 부려먹다가 자기들에게서 해방되어 떠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은금패물과 의복과 요구하는 것을 다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때도 이미 하나님이 그렇게 하리라고 예고하셨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이 아닌데도,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러 간다니 그 선한 일에 나도 좀 보태야지 하는 마음에서 아마 귀한 보물들을 주었을 것입니다.
저도 시골에서 목회하면서 믿지 않는 이웃들이 교회의 일에 보태라고 돕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감동시키시면 불신자도 움직입니다.
지금도 불신자들도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면 순종합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열심히 출석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게 과연 하나님의 백성일까요?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실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감동을 주실 때 마음과 행동이 움직여야 합니다.
4. 우리는 어떻게 감동에 반응해야 합니까?
우리교회가 1982년도에 개척을 시작해서 오늘까지 매월 책임져 돕고 있는 도대리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 93년도에 파송 받아 사역하던 김 명배 목사님이 70세가 되어서 금년으로 은퇴를 하게 되어서 후임자를 찾던 중에 지난 월요일에 김 목사님과 함께 지원자를 면접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너무 반가운 사람을 만났습니다.(김성옥)
행13:22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셨다는 말씀이 내 입에서 터져 나올 만큼, 그렇게 내 마음에 쏙 드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도대리 교회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분이 왜 그렇게 제 마음에 쏙 들었느냐, 그분이 저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형제와 함께 보일러장사를 하면서 교회를 섬기는데 장사가 잘 되어서 돈을 좀 벌고 있었답니다. 그때 교회에서 봉고차 운전 봉사를 하는데, 어느 날 목사님이 대형면허를 따놓아라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왜 그러시냐 하니까 나중에 교회가 대형 버스를 살지 모르니까 미리 따두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하라시니까 자기 돈을 들여서 대형면허를 땄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봉고차 함께 타고 가겠다고 나서더니 어젯밤에 내가 예수님 만났는데 예수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너는 나중에 커서 목사가 되라고 하셨다고 말하더랍니다.
하도 신기해서 목사님에게 가서 이야기하니까, “나는 그 애 태어날 때부터 그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니 그 아이는 목사님으로 키우세요.” 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키우려고 마음먹고 기르는데, 어느 날은 목사님이 또 말씀하기를 “집사님도 신학교에 가야겠어요, 신학교에 가세요.” 하셔서 더 묻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한지 14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시골 교회에서 부목사로 유치, 유초등, 중고등, 청년, 어른 심방까지 모든 파트를 다 담당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보일러 기술이 있어서 이웃집 보일러 고쳐주는 것은 문제가 없답니다. 이분을 만나는 순간 ‘아 이분이다’ 했습니다. 이분이 왜 그렇게 제 맘에 들었을까가 궁금하지요?
이분이 훌륭한 점은 하나님의 종이 하라는 대로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재산 얼마를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 선교헌금 얼마씩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생을 어떻게 살라는데도 생각할 것 없이, 서슴없이 순종했다는 그 점이 대단하다고 나는 보았습니다.
이 목사님의 경우 자기 교회 목사님이 시키는 일을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라고 의심 없이 믿고 순종했다는 점이 내생각과 너무 같았습니다. 나는 과거나 지금이나 그렇게 믿는 사람입니다.
평신도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머리 싸매면서 고민 안 해도 쉽게 알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목사님께 물어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고 설교를 듣다가 말씀에 따른 깨달음과 감동이 오는 대로 순종하고, 어떤 것은 직접 묻거나 가르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거기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밤새 머리 싸매고 고민 안 해도 하나님이 준비하고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한번 살아볼 생각 없으십니까? 그게 잘 사는 것입니다.
5. 성령의 감동은 기회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어느 날 모세가 선 맞은편의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서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떨기나무란 물기하나 없는 마른 가시덤풀 뭉치입니다. 불만 닿으면 순간적으로 호르르 타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덤불에 불이 붙었으니 금새 불이 사그라지고 말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불이 한참 동안이나 탔는데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희안했습니다. 모세가 보니 하도 희안해서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라.” 하나님이 그를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40년 전에 네가 뭐랬지?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나는 여기 왕궁에서 호강할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야 하는 사람이야, 나는 고난을 받더라도 저들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야’ 그랬었지?
그런데 그때 너는 나를 의지하고 그 일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배운 학문과 무술과 왕궁에서 얻은 지위와 권력으로 해보려고 했었지, 그러다가 한번 실패하고는 포기하고 도망쳤지. 그리고 곧장 여기로 와서 지난 40년을 숨어 산거지, 그런데 그 40년이 평안 하더냐? 보람이 있었냐?”
하나님은 모세가 미디안에서 허송한 지난 40년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애굽으로 가서 40년 전에 하려던 그 일을 마무리 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나는 못합니다. 이미 실패한 것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역부족입니다. 나 말고 다른 적임자를 찾아서 보내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모세를 설득하며 감동을 주십니다. “너는 지난 40년처럼 계속 이렇게 살겠다는 거냐? 양심의 괴로움을 계속 놔두고 살겠다는 거냐? 계속해서 네 사명을 외면하고 이렇게 살겠다는 말이냐? 네가 할 일이 무엇인지 40년 전에 다 깨닫고도 40년 세월을 허송하고도 계속 이대로 살겠다는 것이냐? 어서 일어나서 네가 할 일을 해라” 이런 말씀입니다.
모세는 결국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고, 결국 이스라엘을 해방시켰습니다.
성령이 감동하시는 때는 내가 다시 일어설 때가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는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시는 사명이 무엇입니까?
여건이 안 되어서, 준비가 안 되어서, 하려고 하다가 그만 둔 일, 가슴 속에만 묻어 두고 지내온 그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괴로우면서도 그냥 덮어두고 살아온 사명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감동하는 순간은 우리에게 다시 그것을 감당할 기회가 왔다는 뜻입니다. 감동주실 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6.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지 않으면 사단의 속삭임에 넘어갑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에 충만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주님이시라고 설교하자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가정과 직장과 사회로부터 쫓겨났습니다.
교회에는 갈 데 올 데 없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이것을 본 성도들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각자 물건들을 가져와서 서로 나누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바나바라는 사람의 마음에 성령이 감동이 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자기는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아마 자기는 가족 전체가 예수를 믿게 되어서, 누구에게 쫓겨나거나 핍박을 받을 일이 없었나 봅니다. 그것만도 감사했습니다.
게다가 남들은 그동안 물질적으로 가난하게도 살고, 건강문제로 고생하는 가정도 많고, 자식문제로 고생 많이 하는 가정들도 너무 많은데 자기 가정은 그동안 너무 복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많은 복을 누렸구나,”
게다가 지금도 그에게는 적지 않은 재산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별것 아니지만 지금 당장 교회로 들어온 사람들은 식사를 당장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누군가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야 저들이 목숨을 이어가고 옷을 갈아입지 않겠는가?
나에게 지금 이렇게 넉넉한 재산을 주신 것은 바로 이런 때에 저들을 도와주라고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닐까?”
이런 감사한 생각이 바나바의 마음에 가득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딴 생각이 들기 전에 얼른 밭을 팔아서 교회에 바쳤습니다.
바나바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을 때, 즉시 실천했습니다. 이 바나바는 나중에 바울사도를 예루살렘 교회로 인도하여 소개한 사람이고, 안디옥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교회를 개척했고, 바울과 함께 최초로 세계선교사로 기독교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바나바가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여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에 헌금하는 모습을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보았습니다.
그들도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들도 교회로 몰려드는 부양해야 하는 경제력이 없는 새 식구들의 형편을 알고 있었고 그들도 자기들이 뭔가 도와야 한다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상의를 했습니다. “여보, 우리도 밭을 팔아서 바나바처럼 신입교인들 부양하는데 쓰도록 교회에 바칩시다.”
이들 부부에게도 성령의 감동이 있었고, 성령의 감동을 받고 일단 순종하여 행동에 돌입했습니다.
그런데 밭을 팔아 손에 돈을 쥐고 나니까 마음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단이 주는 생각이었습니다.
“야, 너 그거 다 헌금하면 너희 장래 대책은 있어? 남들 생각만 하지 네 자식 생각은 안 해? 네가 그렇게 부자야?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자선 사업가였어? 분수에 맞게 살아, 바나바는 본래가 부자고 너는 그게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그냥 한꺼번에 다 헌금을 해?”
그렇게 생각하니 일리가 있었습니다.
“하긴 그래, 맞아 우리 장래 생각도 해야지, 우리 애들 몫도 조금 남겨 놓아야지, 남 도우려다 나중에 내가 남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
그런 생각이 마음에 꽉 차버렸습니다.
그래서 밭을 판돈의 반절을 나누어서 얼른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추어 놓고 반만 가지고 사도들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단번에 알아보고 하나님의 성령을 속였다고 책망 하였고 그 책망을 받는 순간 아나니아 삽비라는 즉사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경고가 되었다는 기록이 사도행전 5장에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감동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감동이 오는 순간에 악령의 속삭임도 동시에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이 아무리 강하게 나를 일깨운다 할지라도 즉시 순종하지 않으면 사단의 속삭임에 넘어갈 기회만 주는 것입니다.
히 4:2에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하는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고 하였고,
약 4:7-8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즉시 순종해야 하고, 사단의 속삭임은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인도받으며 행복한 오늘을 살고 위대한 족적을 남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