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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누가복음 22:41-42, 4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한일서 5:14)
1. 램프의 요정 신학의 파산 : 기도는 내 욕망의 관철이 아니다
강단에서 기도를 가르칠 때 가장 먼저 척결해야 할 이단적 사상은, 하나님을 내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Genie)'이나 심부름꾼으로 전락시키는 구역질 나는 인본주의입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끊임없이 기도를 통해 세상의 얄팍한 자원을 '분배(Distribution)'받아 내 육신의 안락함을 구축하려 듭니다.
"내가 금식하고 철야하며 이렇게 정성을 바쳤으니, 하나님은 마땅히 내 사업을 번창하게 하시고 내 자녀의 앞길을 열어주셔야 한다!"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방 종교의 무당들이 신을 달래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악한 주술(Magic)에 불과합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내 뜻을 하늘 보좌에 밀어붙여 관철시키는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기도는 도리어, 하늘 보좌의 영광스러운 뜻이 내 타락한 자아를 산산조각 내고 내 삶의 한복판에 벼락같이 임하도록 내 영혼의 문을 부수어 여는 맹렬한 항복 선언입니다!
2. 프로세우케 (Proseuche) : 내 뜻을 제단에 묶는 절대적 항복
신약 성경에서 '기도'를 뜻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헬라어 원어가 바로 **‘프로세우케(Proseuche)’**입니다. 이 단어의 구조를 해부해 보면 기도의 본질이 얼마나 맹렬한 자기 부인(Self-denial)을 요구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 단어는 '~을 향하여, ~앞에 철저히 직면하여(Pros)'라는 전치사와, '소원, 서원, 제물로 바치다(Euche)'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즉, 프로세우케는 내 소원을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가장 깊은 소원과 의지를,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얼굴(Pros) 앞에 정면으로 가져가, 그분의 거룩한 뜻이라는 제단 위에 내 뜻을 통째로 묶어 제물로 바쳐버리는(Euche) 우주적인 항복"**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처음에는 내 고통과 내 소원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그러나 진짜 프로세우케의 심연으로 들어가게 되면, 내 뜻을 이루어 달라는 얄팍한 아우성은 하나님의 맹렬한 임재 앞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립니다. 오직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그분의 완벽한 뜻만이 내 영혼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공급과 충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는 내 뜻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도륙하는 거룩한 사형장입니다!
3. 겟세마네의 피땀 : 자아를 도륙하고 아버지의 뜻을 주조하다
이 프로세우케(절대적 항복의 기도)가 인류 역사상 가장 피 튀기게, 가장 처절하게 폭발한 현장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조차 육신을 입으셨기에, 진노의 쓴 잔(십자가의 저주) 앞에서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며 고뇌하셨습니다. 이것은 죄가 아니라, 심판을 앞둔 참인간의 극렬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는 결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한마디의 선포를 위해, 예수님은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며 모세혈관이 파열되어 땀이 핏방울처럼 쏟아지는 맹렬한 영적 육탄전을 치러내셨습니다. 무엇과 싸우신 것입니까?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육신의 남은 의지를 완벽하게 도륙(진멸)하시고, 기어이 아버지의 뜻을 자신의 영혼에 주조(鑄造)해 내시는 피 비린내 나는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이 겟세마네의 기도가 없었다면 골고다의 십자가는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못 박히실 때 완성된 것이 아니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 앞에 완벽하게 쳐 복종시켰을 때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궁극적 응답은 찌그러진 내 자아가 박살 나고, 내 영혼에 하나님의 뜻이 강권적으로 찍혀 나오는 것(모포오)입니다!
4. 아더 핑크의 통찰 : 기도는 하나님의 저항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개혁주의 신학자 아더 핑크(A.W. Pink)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타락한 성도들의 지성을 향해 이렇게 냉철하고도 뼈아픈 일갈을 쏟아냈습니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마치 '하나님의 저항(Reluctance)을 극복하고 내 뜻을 쟁취하는 수단'으로 착각합니다. 이 얼마나 신성모독적인 발상입니까!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데 있지 않습니다. 기도는 창조주의 완벽하고 선하신 뜻에 내 썩어질 의지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얄팍한 지혜보다 수억 배 더 완전한 지혜로 당신의 인생을 설계하셨습니다. 따라서 참된 기도는 내 뜻명세서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백지수표에 내 서명을 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손에 쥐여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내 삶을 향한 당신의 주권적인 뜻만이 이 땅에 벼락같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것이 십자가를 통과한 자의 유일한 기도입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은 선포합니다.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하늘의 보좌는 내 탐욕을 향해서는 철저히 닫혀 있으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자를 향해서는 그 무한한 자원과 능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영원한 화약고입니다.
결론
강단은 얄팍한 기복주의의 숨통을 단숨에 베어버려야 합니다! 기도는 내 소원을 쟁취하는 자판기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내 고집과 내 뜻을 관철시키려 떼를 쓰는 그 타락한 자아를 겟세마네의 피 묻은 제단 위에 올려놓고 무자비하게 도륙하십시오!
내 뜻이 완벽하게 죽고 파산한 그 텅 빈 공간에, 오직 하늘 보좌의 절대적인 뜻과 그 무한한 공급과 충만만이 벼락같이 쏟아져 내리도록 맹렬하게 엎드리십시오. 기어이 내 영혼에 아버지의 뜻을 주조해 내는 것, 그것만이 세상을 이기는 십자가 기도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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