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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
부활절의 역사
이택환 목사
1. 부활절에 대한 의문 : 부활절은 왜 매년 바뀌는가?
올해는 부활절이 3월 31일로 예년에 비해 매우 빠른 편이다. 대개는 4월 중순경에 부활절이 오는데, 계산상 가장 빠른 부활절은 3월 22일(서기 2285년), 가장 늦은 부활절은 4월 25(서기 2038년)이다. 그런데 성탄절과 달리 부활절은 왜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가? 그것은 부활절이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우리의 설날이나 추석이 매년 날짜가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음력을 사용하는 유대인의 유월절 직후에 일어났는데, 유월절은 우리의 정월 대보름보다 대략 한 달이 늦다.1)
2. 교회는 언제부터 어떻게 부활절을 지켜왔는가?
바울은 고린도전서 5:7-8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를 언급하면서, 사람들에게 이 명절을 지키라고 권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명절이 바로 부활절(Pascha)2)
고전 5:7 - 8) 7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8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부활절에 대한 바울의 이와 같은 언급을 통해 우리는 신약시대의 교회가 이미 부활절을 지키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교회가 연중행사로서 부활절 절기를 확실하게 지켰다고 보기에는 사실, 증거들이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2-3세기에 이르면, 교회는 이미 세례와 안수, 성찬 등의 행위를 통하여 새로운 기독교인을 만드는 예배를 부활절 절기에 시행하고 있다는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부활절에 행하는 세례와 관련하여 고대의 교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례를 거행하기 위해 부활절보다 더 좋은 날은 없다. 세례는 우리 안에 부활의 씨를 심는다. 부활절에는 부활의 은혜를 받도록 하자”
- 성 바질
“부활절은 특히 세례를 베푸는 데 의미 있는 날이다. 이때 주의 수난 안에서 완성된다” - 터툴리안
“세례를 받을 사람들은 금요일과 토요일에 금식하고 토요일 저녁에는 철야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닭이 울 무렵, 부활절 아침 예수님이 부활하는 시간에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일어난 것처럼 몸을 물에 담갔다가 일으킴으로써 세례를 받았다” -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
이처럼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받음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날이다. 새로워진 생명 속에서의 죄와 죽음이 패배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부활절의 메시지이다. 부활절에 교회는 사순절 기간의 금식과 철야를 끝내면서,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풍성한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식탁에 참여함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부활의 기쁨으로 승화되었음을 선포했다.
3. 부활절 논쟁 : 부활절 날짜의 문제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부활주일은 춘분(3.21로 거의 일정함) 다음에 오는 만월 후의 첫 주일이며, 만월이 주일일 경우, 그 다음 주일이 부활주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초대교회가 부활주일을 이렇게 정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 3세기 동안에는 해마다 부활절을 지켜야 할 날짜에 대해서 날카로운 의견의 대립이 있었다. 이는 고대교회가 소아시아 중심의 교회와 로마 중심의 교회 간에 유월절의 시기와 그것에 관련된 금식일을 정하는 문제로 관습에 큰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로 인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1)부활절 날짜에 관한 쟁점
소아시아 교회 (에베소, 서머나 등 소아시아 중심) | 로 마 교 회 (로마 중심) | 비 고 | |
부활절 날짜 | 부활절이 반드시 주일일 필요는 없다. (부활절이 주일이라는 사실보다 유월절 직후에 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부활절은 반드시 주일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주간의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에 부활하셨다 )) | |
그리스도십자가의 죽음 | -유월절 예비일(니산월 13일) : 요한복음 ①예수는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양이다.2) ②흠 없는 어린양은 유월절 예비일에 다리 뼈가 꺾이지 않고 죽어야 한다(출 12:46) ③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셨다3) | -유월절 당일(니산월 14일) : 공관복음 ①최후의 만찬 : 유월절이 시작되는 저녁 제자들과 함께 한 유월절 식사. ②빌라도의 재판 : 다음날 아침에 십자가 형 선고(여전히 유월절). ③십자가 죽음 : 유월절 오후 3시 | -니산월 : 양력 3-4월에 해당하는 유대력.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 해진 후에 시작된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기록이 다른 까닭 ①달력이 다르다는 설 : 유대력, 아람력 등 ②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식사가 아니라는 설 ③예비일은 안식일의 예비일이라는 설 |
금식 관행 | -유월절(니산월 14일) 저녁에 금식을 그치고 성찬 또는 애찬식을 거행 : ‘십사일파’로 불리게 됨 | -부활절(주일) 아침까지 계속 금식하고 부활절 아침에 성찬식을 거행 : 부활절 전에 금식을 중단하고 성찬을 거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 |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중요한 축제의 날짜에 대해서도 합의를 보지 못하는 사실을 비웃음. |
신학 | -고난의 신학 :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 : 그리스도의 부활보다 그리스도께서 참되신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심 에 초점. -구약의 유월절 신학을 계승 | -영광의 신학 :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 :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으심보다 영광의 메시야로서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조 -새로운 유월절로 부활주일이 탄생 |
2)부활절 날짜 논쟁
①폴리캅(서머나 감독) VS 아니케투스(로마 감독) : 150-155년 경
부활절 시기의 문제로 소아시아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이 로마 감독 아니케투스를 방문했으나, 그 자리에서 해결을 보지 못했다. 아니케투스는 사도요한으로부터 지켜온 폴리캅의 관습을 폐기하라고 설득하지 못했다. 폴리캅도 이전의 감독들로부터 지켜온 관습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니케투스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럴지라도 두 사람은 서로 평안을 빌며 헤어졌다. 아니케투스는 고귀한 폴리캅에게 자신의 교회에서 성찬식을 집례해주도록 부탁했다.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은 통일된 의식과 관습이 아니어도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킬 줄을 알았다.
②폴리크라테스(에베소 주교) VS 빅토르(로마 주교) : 190-194년 경
로마 주교 빅토르는 황제와 같은 어조로 소아시아의 교회가 십사일파의 관습을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에베소 주교 폴리크라테스는 “우리는 원래의 날을 지킬 것이며. 그날에서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동방교회는 에베소의 사도요한과 서머나의 폴리캅, 라오디게아의 순교자 사가리스 등과 같은 위대한 스승과 함께 지켜온 전통을 따라갈 것을 다짐했다. 이 말을 들은 빅토르는 아시아의 그리스도인을 이단으로 단죄했으며, 그들을 파문으로 위협했다.
그러나 서머나 주교 이레니우스의 진지한 항의로 교회의 분열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사도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골 2:16)고 당부했다. 그런데 이런 전쟁들이 어찌된 일인가? 이런 분열들이 어찌된 일인가? 우리가 절기들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찢을 것인가? 우리는 외형적인 것을 준수하는 대신에 더 나은 신앙과 자비는 버리고 있다. 그러한 절기들과 금식들을 주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선지자들에게 배워서 알고 있다.” 이 말에는 사도 요한의 가르침과 서로 사랑하라는 그의 마지막 말을 생각하게 하는 참다운 복음의 정신이 담겨 있다.
3)니케아 공의회(325)의 결정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는 양자의 입장을 절충하여 부활절 날짜를 다음과 같이 확정했다.
“부활절은 봄의 첫날(춘분)인 3월 21일 후에 오는 만월 후 첫 주일, 또는 그 만월이 주일인 경우에는 그 다음 주일로 한다.”
①동방교회적 요소
춘분 후에 오는 첫 만월(음력)을 기준으로 세움으로써 부활절이 유월절에 온다는 동방교회의 주장을 반영.
②서방교회적 요소
부활절은 반드시 주일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반영.
그 결과 해마다 부활절은 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오게 되었다. 그 뒤로 십사일파는 이단으로 간주되었고 이단으로 처벌받았다. 몬타누스파와 노바티아누스파도 십사일파의 관습을 지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십사일파의 흔적은 6세기에 자취를 감추었다.
4)오늘날의 부활절
: 오늘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부활절 날짜는 서로 다르다. 1583년 이후 서방교회가 그레고리우스력을 사용한 반면, 동방교회는 그레고리우스력보다 열흘이 늦은 율리우스력을 계속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우리에게 주는 교훈
1)새술은 새 부대에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은 우리의 죄를 위해 희생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나 유월절 어린양과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유월절 어린양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에 불과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왕과 메시야이시기 때문이다(요 18:37, 19:19).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를 확증했다. 또한 그분의 부활은 그분 혼자만의 부활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다(고전 15:20). 우리는 그의 부활의 증인으로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절이라고 하는 새롭게 창조된 기독교 최대의 경축일을 구약의 전통이라는 명분아래 ‘기독교 유월절’이라고 하는 유월절의 아류 정도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절보다 어린양 예수의 유월절에 더욱 집착했던 소위 ‘십사일파’는 비판 받아야 한다. 율법이 복음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막 2:22). 유월절 어린 양과 같은 구약의 상징은 신약의 그리스도 부활의 빛 아래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구약의 안식일이 주일로 새롭게 재해석된 것처럼 유월절 전통은 부활절이라는 새로운 틀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2)부활 신앙, 기쁨의 신앙
고난을 회피하는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 자체를 묵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부활의 빛에 비추어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라면, 그것은 진실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신앙으로만 가능하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한국 교회는 십자가의 신학은 있는데 부활신학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속에서 크게 울부짖음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부활의 참 소망을 바라보며, 내면화된 기쁨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사도들이 어떻게 자신의 고난을 철저하게 부활 신앙으로 재해석했는가를 배워야 한다. 부활 신앙은 그들을 진정한 기쁨의 사도로 바꾸어 놓았다.
요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살전 5:16 - 18)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
이라
3)하나 되는 교회
교회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은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할 때, 교회는 이방인들이 비웃음을 받고, 전도의 길이 막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엡 4:2 - 6)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그러므로 교회가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①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과 로마 감독 아니케투스가 보여준 상호존중과 관용의 정신, 이레니우스의 화해를 위한 중재의 노력.
②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통합의 정신이 필요하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 나타난 양보와 절충의 지혜.
③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우리가 ‘힘써’ 지키지 않으면 결코 하나 됨이 유지되지 않는다.
-1583년에 서방교회가 그레고리우스력을 채택할 때에, 동서교회간에 1000년이 넘도록 하나를 유지해 온 부활절의 정신이 다시 깨어지고 말았다. 한 때 교회의 모든 분파가 부활절 날로서 4월 8일을 받아들이자는 운동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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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년도 정월 대보름은 2월 23일이며 유월절은 그 30일 뒤인 3월 24일이다.
2) 파스카(Pascha) : 헬라어, 라틴어에서 종종 부활절을 의미. 히브리어 페사흐(pesach, 유월절)에서 유래됨. 부활절을 의미하는 영어 Easter는 원래 고대 색슨족 축제 및 봄과 자손을 상징하는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부활절 시기와 비슷한 이스터 축제기간에 수많은 개종자들을 얻었다.
3) 마 28:1, 막 16:2, 눅 24:1, 요 20:1
4) 요 1:29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5) 요 19:31-33) 31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