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숙소는 청두의 서쪽지역으로 구 시가지에 속한다.
청두도 서울처럼 남쪽지역이 신시가지라고 한다. 전철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주거지이지만 이면 도로의 안쪽은 거의 모두 오래된 5~6층 아파트들이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조밀하게 붙어있어 거의 해빛이 들지 않아 낮에도 어두컴컴하다.
더욱이 가로수가 거리를 거의 덮고 있어 2차선 도로 건너편 건물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이곳에 생뚱맞게 유스호스텔이라는 이름의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가격이 저렴하고 후기가 좋아 젊은 아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일찍 일어나 로비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니 어두운 계단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떠나는 사람들이 나온다.
자신이 사용한 침대와 이불 카버를 반납하고 떠난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택시를 부른 모양이다.
앞 선 4명이 떠나고 나니 바로 택시가 문 앞에 선다.
어제 저녁에 도착한 당찬 말레이시아 아가씨는 내일 캉딩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 했다고 한다.
배낭을 우리처럼 앞 뒤로 매고 혼자서 숙소 입구를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남자로 착각했었던 아가씨다.
아침6시에 출발하면 저녁 해가 진 후에 도착하는 해발고도가 4천이 넘은 고지대이다.
스촨 지방에서는 태벳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붉은 지붕의 도시라고 한다.
새로운 도시에 왔으니 성지순례하듯이 시장을 찾아 나섰다.
큰길을 건너 조금 가니 아파트 사이에 큰 시장이 있다. 있을 곳 같지 않은 건물 사이에 제법 큰 시장이다.
중국은 외식하는 사람이 많아 주택가에 시장과 음식점이 정말 많다
큰 규모의 음식점보다는 테이블이 4ㅡ5개 정도있는 작은 분식점 규모의 식당이 많다.
매뉴도 다양하다. 만두집 국수집 야체볶음집 고기집등 다양한 음식점이 대문만 나서면 있다.
아침은 대부분 걸어가면서 먹거나 길거리 작은 테이블에 앉아 해결한다.
녹두, 옥수수, 부추를 갈아 작은 전으로 만들어 파는 가게에서 다양한 종류로 3개씩 구입해서 돌아오는 길가 밴치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점심에 간식꺼리로 오이, 복숭아, 자두와 포도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10시에 숙소를 나섰다.
처음 가지고 온 7천 위안을 다썼다.
36일간 총 경비가 우리돈으로 130만원이다.
만원으로 오래 버티기 극기 혼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절약한 여행이었다. 숙비, 하루 세끼 식비, 교통비 와 입장료 모두 합해서 하루 평균 4만원이 안되는 돈이다.
은행으로 갔다. 아직 비자카드를 외국에서 사용해 본적이 없다. 은행직원에게 달라 환전을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정복를 한 아저씨 핸드폰으로 환률(6.1위안)을 보여주면서 620달라를 자신의 카드로 위안화를 빼주고 달라는 자신이 갖는다.
말인 즉, 은행창구에서 하면 수수료를 물어야하니 우리가 그 만큼 손해라고 하면서 환률대로 계산해 주고 달라는 자신이 갖겠다고 한다.
우리야 나뿔 것이 없지만 은행 안에서 그 것도 제복을 입고 있는 경호원이 환전을 해 주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경험을 과태말라에서도 했다.
이 곳이 중국이다.
카드로 3000위안을 더 찾았다.
처음 가지고 온 돈 많큼이 더 생긴 꼴이다.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창양서원으로 갔다.
공원과 붙어 있다. 오늘 우리가 걸어다닌 거리에만 공원이 2개나 있다. 청두에는 공원이 도시 곳곳에 있다.
먼저 공원에 들어가 보았다. 숲 사이에 벤치, 아이들 놀이 시설 , 음식점 그리고 작은 낚시터에는 노인 몇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고
그 옆 테이블에는 노인들이 마작을 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그늘 곳곳에서 마작을 한다.
공원을 나와 청양서원으로 향했다. 입장료를 내야한다. 10원이다.생각보다 저렴하다. 우리는 60세 이상 반값할인.
청양서원은 도교 사원이다. 그냥 명목만 남아있는 종교로 알고있었던 도교가 생활 속 깊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랬다.
규모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 듯이 헌금하고 절을 하고 향을 피우고 있다.
도가사상이 종교가 될 수 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노자가 원하던 모습이 아닌 형태로 숭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일 마지막 사당은 당 태조 이연 부부와 이세민을 모시는 사당이다. 중국 사람들 죽은 사람을 신격화해서 섬긴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앉았던 밴치에서 만난 가족은 후난성에서 7일간 휴가를 왔다고 한다. 초등 6학년 과 올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 1남1녀인 가족이다. 부모들이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다.
청양사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박물관이 있다. 당연히 입장료을 받아야 할 이 곳은 무료 입장이다.
방학 중이라 아이들을 대리고 온 부모가 많다. 스촨성은 삼국지의 촉나라 유비의 나라지만 소수 민족이 살던 곳이다. 이족이 가장 많이 살고 묘족 그리고 티벳인 장족이 살던 곳이다. 기원 전 2000년 상 은 주 시대 청동기 유물과 티벳종교에 대한 전시가 다양하게 되어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다시 걸어 10분 가면 두보초당이다. 도로 불록에도 매 난 국 죽 과 두보의 시가 세겨져 있다. 이 곳 사람들이 두보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겠다. 두보는 고향 이 스촨이 아니다. 단지 왕성한 시작을 하던 시기에 이 곳이 살았다고 한다. 입장료 60원.
버스를 기다리는 젊은이에게 돌아오는 길을 물어 노트에 기록했다. 좌로 우로 몇 번을 돌아 골목을 순례하듯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저녁 이공이 버스를 갈아 타고 오는 것보다 걸어 오는 길이 가깝다고 해서 시도해 보았다.
더위 때문에 완전 탈진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