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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와 우리들
1972.04.23 (일), 일본 동경 동경교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일반 사람은 메시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자가 거의 없다. 종교생활을 하는 자에 한해 그것을 알게 되어 있다.
인간은 구원의 길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 있어서 우리 인간으로서는 미완성인 것이다. 어느 완성된 인간의 가치를 구하고, 혹은 이상적인 인격의 기준을 구하고 있지만 그 구하는 자는 이 타락권내에 있다.
하나님을 잃은 인간
현세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지 모르지만, 타락한 현세의 인간 자체가 아무리 요구할지라도 완성기준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완성을 원하는 인간이 되었다고 하는 것. 이것은 결국 타락의 결과이다. 타락이 문제이다.
인간이 본래의 이상적 가치를 지닌 자로 서지 않고 그 가치의 기준을 잃고 떨어져 버렸다. 그러므로 떨어진 곳에서 다시 그것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인류이다. 우리들은 어떠한 수고의 길을 넘어도 그 목적기준을 찾아서 그 기준에 서지 않는 이상은 이상이나 혹은 인격 완성, 최고의 인간으로서 구하고 있는 최대의 가치기준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은 인간 자체의 바람이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 자신도 그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무지의 인간들을 하나님은 배후에서 인간 최고의 가치기준까지 끌어올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최초의 창조목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배후에서 원하시고, 타락한 인간들은 미래를 목표로 하고 그것을 원하고 있다. 그 기준에 일치하는 때가 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상은 물론이고 인간으로서 원하고 있는 최고의 완성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확실히 알고 있지 않다. 이것이 문제이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안다면 여기에는 설명도, 무엇도 필요 없다. 가르칠 필요도 없다. 어느 방향이나 목적관념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 자체, 개인 개인 나름대로 하나님에게 속하고 싶은 그 일념을 향해 생활해 가면 하나님의 바라시는 목적기준에 도달하는 것은 물론이다. 고로 요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개인에 관한 문제, 혹은 가정에 관한 문제, 또는 종족, 민족, 국가에 있어서는 세계가 문제로 되어 있는데, 그 세계의 모든 문제까지도 해결된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만약 확실히 알았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이끄는 이 지상에서 인간이 새로이 무엇을 구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하여 서로 사랑하고, 동반되어 함께 생활하면서 이끌려 가면 자연히 그 목적세계, 개인의 목적세계는 물론 전체 목적세계에 도달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에 있다.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완전하고 혹은 최고의 가치라고 하는 것도 자연히 잃어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결과에 이르고 말았다. 이것이 타락이다.
아담 해와나 우리 선조가 타락한 일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타락한 결과의 세계에 태어났다. 그러기에 우리들 인류가 살고 있는 현세라고 하는 것,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타락권내에 처해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이 타락권내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극복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극복해 가는 데는 개인으로서 어떻게 극복해 가느냐가 문제이다. 개인으로 극복한 이상은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또 어떻게 극복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가정에 한하는 것이 아니다.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그 최고 기준을 극복할 때까지 가야 한다. 여기에는 타락권이 전부를 점령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바로 잡을까 하는 문제가 우리들 타락한 인간으로서 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이고,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이것을 완수하는 데는 현세의 모든 것을 투입하여도 가능하지 않다. 나라의 힘으로도 되지 않으며 세계의 힘으로도 할 수 없다. 그 자체가 타락권내에 포위되어 있고 구속되어 있는 이상은 그 자체를 중심으로 하고는 해방이나 혹은 여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메시아의 필요성
그러므로 여기에 있어서 우리 인류는 이제부터 제3자의 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서 종교의 필요성이 생겨난다.
절대적인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모든 환경을 바로잡고 싶은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한 인류의 요구였다. 이런 면의 요구와 함께,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면 인간을 그런 입장에 두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래의 이상은 아니다. 이것은 부득이한 결과가 되어 버렸기에 하나님 자신도 이것을 본래의 기준까지 끌어 올려 놓지 않으면 절대적인 하나님으로서의 권위를 세울 수가 없다.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서도 자신 나름대로 계획한 것은 어떠한 환경의 가혹함이 있어도 노력하고 이루려 한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으로서의 욕구이다. 본래 절대적인 하나님이 볼 때는 자신의 이상을 세워 그것을 이루지 않고 그대로 둔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위신의 문제 이며, 권위의 문제에도 걸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서도 이 타락한 인간을 그대로 두어 둘 수 없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을 구해 주지 않으면 안되겠기에 여기에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 문제가 생겨난다.
인간은 구원받고 싶어한다. 하나님은 구해 주고 싶어한다. 이 양자(兩者)가 일치한다. 양자가 한 점에 있어서 일치한 그 기준을 어떻게 단번에 충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 한 점이라는 것은 개인의 환경으로 끌려들어가는 것과 같은 한 점은 아니다. 혹은, 우리가 가정 기준을 중심으로 해서 끌려가는 그러한 한 점이 아니다. 국가를 중심으로 하여서도 세계를 중심으로 하여서도 이 일치한 한 점으로 모두가 끌려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한 점을 하나님은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도 그 한 점을 원하고 있는데 그 기준이 언제 지상에 이루어질까? 이것이 문제이다. 그 한 점이 맺어질 경우 물론 개인완성이 이루어진다. 물론 가정기준이 이루어진다. 혹은 국가. 세계라는 문제도 이 기준으로부터 해방의 한 점을 채울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이 되는 것이다.
이 한 점의 기준을 누가 책임질까? 인간이 책임지고 이것을 완수할 수가 있을까? 절대로 안 된다. 하나님 자체가 이것을 책임지고 수행하실 수가 있을까? 그것이 될 수 있다고 하면 지금까지 6천년이나 수천년의 역사과정을 지나지 않았어도 바로 이것은 완수되는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거기에서 관여하고 해결해 주는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있어서 그 문제는 타락한 인간도 완수할 수 없다면 하나님도 이것은 이룰 수 없다. 자, 누가 이것을 이룰 것인가가 문제이다.
여기에 있어서 메시아라는 존재가 필요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세계 정세를 바라볼 경우, 종교계는 그만 두고라도 일반사회에 있어서, 혹은 세계 각국에 있어서 과연 인간이 바라고 나온 이상사회가 실현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다.
종교로서 지금까지 찾아나온 이상세계, 혹은 극락세계가 우리들 인간의 세계에 실현될 것인가? 이것을 새삼 묻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의문되어지는 입장을 넘어서려 해도 넘어설 수가 없다. 그 고민의 도탄 속을 뚫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들 인생인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종교계에 새로운 지도적 방침을 받고 싶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인류는 새로운 시대적 지도자를 보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전인류의 간절한 염원이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있어서도 성인이나 의인의 모든 사상을 인간은 실현하려고 여러 방면에서 노력해 보았다. 그 노력의 결과에 있어서 성공되고 희망의 기준이 충족된 일은 없다. 그것을 통하여 낙담한 것과 같은 결과에 우리는 도달했다. 이 기준에 있어서 여하한 인간의 힘이나 사상을 가지고서도 인간이 요구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실험필(實驗畢)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도 기뻐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인간, 그 한 사람을 찾아 그를 따라가야 한다. 하나님도 그를 세워 가시는 길에 대해 기뻐하면서 그것을 돕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중심적 존재였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기쁨인 동시에 인류의 기쁨이 될 것은 물론일 것이다.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메시아이다.
인간은 타락한 존재라는 관념에 철저하라
타락했기 때문에 메시아가 필요하게 되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메시아도 필요하지 않다.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잃어버렸다.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 본연의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인간 본연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태어남과 동시에 가지게 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다시 하나님의 작용은 필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자체에 이미 채워진 입장인 것이다. 더 채워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가 되었다면 모르는 것이 없다. 우리들에게 있어 이러한 근본 문제에 대한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필요 없다.
인간에 대한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 먹는 것이다. 그 다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살고서 최후에는 사랑의 문제까지 가게 된다.
여러분들은 태어나서 먹는 것을 배운 적이 있는가? 어머니 뱃속으로부터 태어나게 되면 자연현상으로 먹게 되어 있다. 혹은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교육은 필요하지 않다. 그 상대물이 있어서 그것에 입을 대면 자연히 먹게 된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적으로 먹는다든가 산다든가 사랑한다든가 하는 이상을 찾는다. 우리에게는 이 자연현상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 작은 곤충도 번식 작용은 자연히 알고 있다. 더 예를 들면,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된다. 자연현상적으로 알게 되어 있다. 자연의 요구에 따르면 목적과정을 통과해 입체적인 감각의 세계, 입체적인 가치관의 세계에 접하게 되는 것이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존재이다.
이것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꾸로 되었다. 거꾸로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을 낳을 때에, 머리는 밑을 향하고 엉덩이는 거꾸로 되어 있지만 이것을 다시 반대로 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모양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입장에 서 있다. 타락했기 때문에 이런 운명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관념에 투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본래의 상태로 돌리려면 먼저 무엇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가. 메시아를 원하는 것보다 타락관념을 어떻게 확실히 체휼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감옥에 감금된 자가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고 해방이나 석방을 원한다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선 우리 인간은 무언가 찾고 있다. 해방을 바라고 있다. 그런 자신이 틀림없다고 하면 이것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타락의 결과다.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락관념에 투철(透徹)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락관념에 투철하면 투철한 만큼 그 바라는 힘이 강하게 되어진다.
만약 구해 주는 이, 즉 구원자가 온다고 하는 것을 알았다면 그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백 퍼센트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만약 방법과 수단을 다해서 준비를 해 가지고 만날 길이 열리도록 가르쳐 주고 싶다고 하는 마음을 가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종교의 사명은 무엇일까. 타락관념을, 타락한 인간, 죄인이라고 하는 관념을 여하히 어떻게 해서든지 강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것이 종교의 사명인 것이다.
이 통일교회 식구라고 주장하는 젊은이들에게 있어서도 자신이 타락한 자인가를 모르는 젊은이가 많이 있다. 특히 처음으로 통일교회에 들어온 이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타락이 무엇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자기의 선조의 선조, 최초의 선조가 타락했더라도 몇억 년이나 된 옛날 얘기 같이 생각하고 있다. 그 타락과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가슴속에 와 닿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타락했는가 하는 것 등 타락관념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다.
타락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 구세주를 찾으라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구세주를 찾게 된다. 눈을 감으라고 해도 눈을 뜬다. 얼굴을 저쪽으로 향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향하고 있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인류는 그러한 관념에 투철하지 않았다.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해왔다. 개인의 해방권을 이룬 후에는 가정의 해방을, 가정의 해방을 이룬 후에는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의 해방을 이루고, 최후에는 하나님까지 해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뭐, 하나님까지 해방한다는 이런 이상한 말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자녀들이 만약 감옥에 갇혔을 경우, 자녀는 육신적으로 감옥에 갇혔지만 부모는 심정적으로 갇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자식은 아무것도 모르고 배가 고파 가외로 도시락 하나를 더 먹었다고 하면서, 밤에도 쿨쿨 잘 잔다. 그러나 부모는 그렇지 않다. 석방될 때까지 그 자식 이상 심정적으로 구속당하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를 위해 존재해
이렇게 생각해 볼 때. 틀림없이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갖고 있다. 그 하나님,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는데 그 하나님에 대해서 보통의 인간은 모른다. 하나님과 인간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나님은 사랑의 어버이인 것이다. 사랑의 중심자가 하나님이라 하면 우리 인간과 어떠한 입장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여기 여자들과 남자들이 꽤 많이 보이는데 여자들에게 묻겠다. 여자 자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만약 남자가 없다면'이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태어났을 것인가? 태어나겠어요?「태어나지 않습니다」몇억, 몇십억, 몇천억 여자만 있다고 하면 그것은 1세기 이내에 완전히 정리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큰일일 것이다. 그걸 볼 때, 여자들이여, 자랑하지 말라. 안심 기준을 갖고 자기 나름대로 자랑하는 것은 남자가 앞에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이지 남자가 없는 경우는 어떻게 되겠나? 한 사람의 남자만 있다고 한다면 여자들의 전쟁은 몇십 년도 계속된다. 그걸 생각해 보라. 만약 그렇다면 큰일인 것이다.
여자 자체가 태어날 때 남자가 있을지 없을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자 자체가 태어날 때에 여자를 위해 태어났을까? 이것을 생각해 보라. 여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은 여자를 위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런가. 그 결론을 짓지 않으면 안 된다.
남자를 위해서이다. 남자가 없으면 여자는 가치가 없다. 한푼의 가치도 없다. 여자의 가치관의 회복이라는 것은 무엇에 의해 회복되어지느냐 하면 여자 자체에 의해서는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 남자가 있고서 여자의 가치는 정해진다. 그러기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면 가치도 생기지 않는다.
또, 훌륭한 체격을 지닌 남자가 있다고 하자. '일본에서 이와 같은 미남자는 내가 처음이다' 이렇게 뽐내는 남자가 있다고 해도 그 남자다운 체격을 갖추게 된 것은 누군가를 위해서다. 자신의 것이 아니예요. 남자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자가 뽐내는 그 모습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젊은이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자가 없다. 애당초 태어나게 된 자체부터 분석해 본다면 남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났다. 불쌍하지만 할 수 없다. 싫어도 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혼자서 살아 보라. 그런 사람들은 세계로부터 갈라내어 하나의 섬에 모아 살도록 하면, 1세기도 안 가서 다 깨끗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결국은 남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남자가 아무리 훌륭한 타입을 하고 있어도. 아무리 힘이 강하고 주관력을 갖고 세계를 자신의 발판으로 짓밟아 버릴 수 있는 그러한 결의를 가진 남자가 있다 해도 그 남자는 여자를 위하여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가치는 굉장하다.
여기에 서 있는 선생님도 그렇다. 선생님은 방대한 얘기를 한다,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번에는 미국에서 10명 정도의 상원의원을 만나 선전포고(宣戰布告)를 하였다. 이런 일을 미국에서 한다. 2억 가까운 미국인이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니까 나 혼자서 미국을 구하려고 한다. 이런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러니 문제가 되어 있다. 미국도 색안경을 끼고 미스터 문이란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하고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아무리 크게 활동해도 거기에 상대자가 없으면 불쌍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어머님의 가치는 올라간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우리들 자신은 어디에 속해 있느냐? 나는 도대체 어떠한 자인가? 이것은 심각한 일이예요. 자신의 가야 할 길은 어딘가? 남자의 가야 할 길은 남자끼리 가는 것이 아니다. 싫어도 이렇게 지그재그로라도 여자와 같이 간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 가게 되어 있다. 남자는 길을 여자와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자신을 중심으로 한 실체권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함께 연결해서 서로를 구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애초에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존재기대로서 지녀야 하는 가치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모든 현상계에 있어서도 상대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상대성 자체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존재기준을 이루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얽힌, 상대와 일치한 곳에서 가치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이 가치가 있다고 하려면….일본이 주권자와 국민이 하나가 되는 것보다 강한 목적관념을 가진다면 일본은 망하지 않는다. 그런데 국가 주권은 이런 방향으로 가고 국민은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이것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기울어진다. 작용하면 할수록 그것은 약해져 간다. 이것은 원칙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 볼 때에 우리 인간 자체, 34억 인류를 통합해 그것을 결론지으면 남자와 여자, 즉 두 사람인 것이다. 크게 나누면 둘로 나눌 수 있다. 여자와 남자이다.
그것은 여기에도 서양 식구들이 와 있지만, 그들이 파란 눈과 노랑머리를 하고 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사람은 같다. 슬픈 일이 있으면 눈물을 흘린다. 기쁜 일이 있으면 입을 벌리지 말라고 해도 벌린다. 아무리 이가 볼상사나울지라도 입을 벌리고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어 있다.
이렇게 나누어 볼 때 남녀로 구분된다. 남녀, 이 두 사람부터 서로 기쁘게 해야 한다. 그 두 사람이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소리치는 것과 같은 그러한 길에 서 있다면 거기는 불행의 길이 아니다. 인간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도깨비 놀음 같이 날아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동지간에 있어서 서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한 이상도 없다.
그렇게 볼 때 아무리 인간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남녀에 한정된다. 과거도 그러했다. 현재도 그렇다. 미래도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절대로 그렇게 된다. 이 절대적인 남녀 가치기준을 어떻게 분산시킬까? 여기에서 두 사람이 함께 손을 마주잡고 좋은 가치기준에 의하여 어떻게 자신의 현실을 극복해 가며 기쁨을 충족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다.
국가가 어떻게 되는 것보다도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국가라는 것은 생기지 않는다. 이상세계라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생겨 나지 않는다.
자기 한 사람이 문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문제는 간단하게 된다. 결국 세계가 문제가 아니다. 혹은 씨족이라든가 가족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문제인 것이다. 자기가 문제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 세계에 대해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러한 마음을 영원히 가진다고 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여자들이 영원히 미워하거나 영원히 싫어하듯이 뒷끝을 마무리하지 않는 입장에 선다면, 그들은 하나님편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세계는 악의 세계다.
결론지으면 결국은 우리 개인 자체가 문제이다. 개인이 문제예요. 그러면 자신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역사는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다. 이 기준에 있어서 자신은 현재에 있다.
현재는 과거의 결실체이다. 과거는 현재의 출발 기점으로 되어 있다. 현세의 중심점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현세는 미래의 출발점이다. 미래보다도 만약 마이너스의 입장에 서면 가치라고 하는 것은 충족되지 않는다. 오늘이 중심이다. 세상이 아무리 곤란에 처하더라도 자신에게 움직일 힘이 있는가, 없는가? 자신이 동기가 되어 수행해야 할 그 작용은, 적용할 힘은 있지만 작용할 그러한 입장은 아닌 것이다. 그러한 중심적인 자신의 가치관이 문제다.
미래가 있다고 하여도 나를 중심삼고 미래는 출발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남자를 좋게 여기실까? 이상만 추구하는 사람을 좋아하실까? 과거가 없는 현재가 있을까?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까? 그것은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상만을 가지고 가치관을 구하는 것은, 완전 혹은 완성된 사람이 있다면, 점수로 말하면 3분의 1점이다. 그것을 백점 준다면 백점을 준 자가 무가치한 자이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만 한다. 현실이 문제다. 현실에 있어서 '역사여! 나를 따르라. 현재여! 나를 따르라. 미래여! 나를 기준으로 해서 출발의 기준을 삼아라' 할 수 있는 그러한 분, 그러한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역사에 대해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갖는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역사적 승리자다. 역사를 더듬어 그에게 물을 때 역사의 모든 중대한 사건이 그에 의해 해결되는 그러한 역사성을 갖는 사람이 현세에서 나를 중심으로 하여 그렇게 되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한 입장이다. 그러한 것이 문제이다.
인간을 구속하는 사탄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인간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관계를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러한 하나님이 되지 못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과거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교통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악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현세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중심 기준에 접하여 만민과 함께 생활하고 싶어하신다. 그런데 어째서 할 수 없느냐? 본래에 있어서도 그렇게 되고 싶었는데 왜 되지 않았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그 타락은 인간으로서는 원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면 타락시킨 자는 대체 누구냐? 하나님이냐 인간이냐?
인간이 원해서 타락한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청년 여러분이 태어날 때부터 '나쁜 아이가 되겠다. 불량 청년이 되겠다. 깡패가 되겠다'고 하는 입장에 섰던 것이 아니다. 나면서부터 그렇게 원하고 나온 자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언가의 동기에 의해 그렇게 됐다.
그러나 인간의 본심은 악을 바라지 않는다. 가르치고 관리하여 주는 자가 있다면 나쁘게 되려 해도 될 수 없다. 나쁘게 되려는 것은 그 악의 동기가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부모들이 말하는 것은 '좋은 친구와 교제해야 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이다. 그러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 인간. 타락하기 전의 인간에게 악을 좋아한다고 하는 관념이 있을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잘못된 것이다. 악이 된 결과에서 볼 때, 악은 인간이 동기가 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찾아 이룬 것이 아니다. 무언가의 원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이루게 된 자체는 무엇인가? 그러한 것을 우리 종교계에서는 악마나 사탄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탄이라는 것이 있다.
여러 가지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나쁜 일을 하는가' 하고 물으면 '본심은 그것을 원치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기분이 되어서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여러분은 감옥에 들어가 고생한 경험이 없으니까 그런 것을 모를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런 면에 전문가다. 누구에게든지 물어 보아도 감옥에 들어와 있는 자신이 나빠서 그런 일을 했다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왜 그런 일을 했느냐고 하면, 우선 사회가 나쁘다고 한다. 사회가 나쁘다면 그대는 어째서 그렇게 나쁘게 되었는가고 물으면 자신도 모르게 했다는 자가 많이 있다. 그것은 그러한 결과를 초래케 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탄, 즉 악의 힘의 원인자이다. 그래서 대단히 후회하고 분하게 생각한다. 이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나를 희생하더라도 어떻게든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놓여 있다. 여기에 타락시킨 자가 없으면 실로 좋은데, 타락시킨 자가 있을 경우 큰일이다. 이것은 벌써 탈출하려고 하는 곳에서 언제나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단히 힘센 감독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우선 자신이 포로가 되어 있는 그 곳을 무너뜨리고 싶으면 싸워야 한다. 싸우는 그 상대가 얼마나 능란한 자인가 하면, 그것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아주 능란하다. 수천년 동안 하나님까지도, 인류까지도 참소하고 자기 마음대로 악을 휘두른 그러한 대장인 것이다.
그러한 경우를 예를 들면, 그 사탄과 사람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씨름꾼이 있다면 그 씨름꾼과 유치원 어린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자기가 갇혀 있는 곳을 무너뜨리고 탈출했다고 하여도 저 씨름꾼이 있는 이상은 곧장 또 갇히고 만다. 그것으로 끝장이다. 그가 없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만약 감독하는 자가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람끼리 아무리 동맹을 맺더라도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도, 인간에게도 곤란한 놈이 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해방이 문제가 아니다. 해방은 한순간에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 현세, 미래까지 철저한 조직망을 갖고 하나님에게 정면적으로 충돌한다. 하나님께도 참소했을 때 그 참소를 부인할 수 없다면 그것을 놓고 상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와 같은 내용도 가지고 참소한다 하게 됐을 경우에는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사탄이 주관하는 비원리 세계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때 사탄이라는 자가 문제인 것이다. 사탄은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을까. 하나님은 이러한 원칙에 의해서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것을 주관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을 사탄이 장악했다고 하면 언제든지 참소할 수가 있다. 그 원칙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참소할 수가 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원리를 중심으로 해서 비원리라고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타락의 세계이다. 그것을 원리의 하나님은 바라셨던가? 바라시지 않았다, 그런데 비원리적인 중심자가 나타나서 원리 궤도에 의해서 참소해 온다. 이러한 문제가 만약 세상에서 일어났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할까? 비원리를 부정할 때까지는 원리의 권한이라고 하는 것은 생기지 않는다. 그것을 부정할 때까지…, 부정은 누가 할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가 없다. 그러니 비원리적으로 되어 끌려다니고 있는 인간이 부정할 수 있는 요건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비원리의 것은 하나님을 따라야 할 자는 아니다. 하나님의 간섭권에 서 있는 자는 아니다. 그러나 원리의 모양을 해 가지고 가므로 하나님의 원리의 기준에는 서 있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간섭할 수는 없다. 그러한 문제가 일어났다고 하면 이것은 하나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다. 비원리의 상대기준에 서 있는 인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의 해결 요점은 없다. 이와 같은 기준에 걸려들게 되면 하나님이라도 어떻게 하실 수 없다. 이것이 역사의 한(恨)이다.
그것이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 여러분들이 타락론을 배웠지만 타락원리라고 하는 것은 원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타락원리라는 것이 있느냐 말이다. 그것은 비원리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그 길을 더듬어 가면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사랑 이외의 문제에서 타락했다면 타락원리라고 하는 문제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복귀된다. 만약 손이 잘라져 버렸다면 이것은 하나도 없어도 된다. 다리가 없어도 좋다. 근본 문제가 걸려 버렸다. 그것이 사랑의 문제이다.
정말은 공주님으로 있어야 할 그 귀한 분이 그 나라에서 강도의 괴수에게 끌려가 사랑의 관계를 맺고 말았다면, 그런 경우 어떻게 할까? 왕은 이 나쁜 두 놈의 목을 베어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목을 베어 버리면 영원히 자식이 태어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런 결과가 되어 버렸다.
정상적으로는 절대 그러한 방법을 취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어 버렸다면 어떡하지? 공주님이 상대자로 아무도 정하지 않은 입장이라면 더더욱 용서할 방법이 없다. 약혼한 남자가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용서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잘라 버리면 그것으로 마지막이다. 그러면 씨가 없어져 버린다. 인간의 씨족이 없어져 버린다. 없어져 버리는 것은 원리가 아니다. 인간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잘라 버리는 것은 안 된다. 그런 입장에 선 그 임금님은 얼마나 처참한가. 그렇게 되었다면 죽여 버리면 간단하다. 일본 국민에게 그런 문제가 있다면 국법으로 처리하여 버리면 된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오직 그 자뿐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큰일인 것이다.
그러한 문제 이외의 것으로 인간이 타락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6천년까지도 필요없다. 6천년, 6일까지도 필요 없다. 그러한 문제에 걸렸기 때문에…. 죄를 범한 그 남자놈은 틀림없는 죄인이다. 여자도 틀림없는 죄인이다. 그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하게 되는 것은 원칙이다. 우주의 원칙이다. 그 벌받음에 있어 반항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왕은 다시 생각할 것이다. 그런 상대자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벌받아도 당연하다. 맞아도 감사하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길 이외에 용서 받을 길은 있을 수 없다. 불평을 하고 반항을 하는 그런 입장에 섰다면, 그것을 용서한다고 하는 길은 막혀 버린다.
사탄은 비원리의 신
성서에 보면 사탄이 하나님과 의논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원리의 하나님이시며 사탄은 비원리의 신인 것이다. 실로 이상하게 되어 버렸다. 비원리의 신이 원리의 하나님을 간섭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할 수 없다. 비원리의 신이 선의 하나님의 주관권을 간섭할 수가 있을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이 비원리의 악의 신, 사탄의 편에 복종하면 틀림없이 하나님은 '수속을 하라. 가지고 나오라' 하고 원리의 하나님편으로 가려고 하면 악의 신인 사탄은 '가지고 돌아가라'고 한다. 이러한 일을 하게 되니까 싫을지라도 매일 함께 만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등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도 이등분한 입장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등분하는 데 있어 어느 쪽이 내적이고, 어느 쪽이 외적인가. 그것이 문제가 된다. 사탄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보면 외적이고, 하나님은 내적이다. 그래서 인간 자체를 중심으로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가게 되어 있다.
양심과 육심의 싸움
우리 인간 자체도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양심과 육심을 갖고 있다. 이 세상에서 양심을 갖지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양심 없다고 하는 사람 있나요?「없습니다」모두 자신을 갖고 있다. 양심을 봤나요? 누구 한 사람 본 자는 없다. 그러나 알고 있다. 육신이라고 하는 것을 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양심을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육신이 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보면서 절대적으로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비례적으로 볼 경우, 있다고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알면서 본 적이 없는 것과, 있다고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알면서 절대적으로 본적이 있다고 하는 것은 어느 쪽이 강한가? 육심(肉心)편이 앞서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여러분도 그렇죠. 먹고 싶다, 배가 고프다, 이런 경우 배가 고프기 때문에 양심이 알아차릴까. 육심이 배가 고프니까 양심이 배가 고프다고 알아차릴까. 육심, 누구나 육심이 앞선다. 바라는 것은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살고 싶은 것이다. 이런 것은 무엇이 중심이라고 할까. 접하는 촉각의 부분은 내적이 아니고 외적이다. 그러나 느낀 바 그것을 결의하고 그것이 결실되는 본거지는 육심이 아니고 양심이다.
이것은 지금 철학적인 문제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이 인간과 접하는 장소와 사탄이 인간과 접하는 장소의 그 경계선은 어딜까. 경계선이 어디냐면 자신이다. 여러분도 세계적인 전쟁을 두려워 말라. 자기를 중심으로 이대(二大)의 진영이 매일 싸우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도 할 수 없다. 아침으로 밤으로 하루에 수십 회, 수백 회도 한다. 한마디의 말을 잘못 했을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그때 비난할 수 있는 것, 책망할 수 있는 것은 육심인가, 양심인가? 책망하는 존재는 무엇이냐? 양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싸움인 것이다. 양심이 약해져서 육심이 '아─ 이놈 양심아. 양심아. 너 뭘하고 있는 거야' 하는 싸움을 한 적이 있는가. 이 반대인 것이다. 양심이 육심에 대해서 공격한다. '그것 하면 안 되요' 하고. 그러면 이 세상에는 양심적인 사람이 비례적으로 많은가? 아니면 비양심적인 사람이 비례적으로 많은가?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양심적인 사람이 비례적으로 많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엉뚱한 일을 다 해버린다. 그 싸움을 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라든가 교양이라든가 하는 교육의 기준을 어디에서 구하고 있는가? 양심의 힘이다. 그것이 교육이나 종교의 작용인 것이다. 그리고 뭘하는가. 육심의 발판을 점령한다. 목적은 거기인 것이다.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의 경계가 생긴다. 그것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악의 중심은 자신
자신은 뭐냐? 악이다. 그럼 악은 뭐냐. 선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이 자신의 주관권으로서 다스려야 할 경지와 사탄이 다스려야 할 경지, 무엇을 경계로 해서 이것을 나눌 것이냐? 이것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자신인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침에 밥을 먹어도, 그 밥을 먹고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 먹은 밥이 악의 밥이 되기도 하고, 선의 밥이 되기도 한다. 밤에 쉰다. 그 쉬는 것이 쉬고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악의 휴식이 되기도 하고 선의 휴식이 되기도 한다. 한 순간이 둘에 연결되어 있다.
선악의 중심자는 세계가 아니다. 선악의 중심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사탄이 악의 중심자이다. 그보다도 둘을 겸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볼 때에 인간은 하나님보다 훌륭하고 사탄보다도 훌륭하다. 선악의 중심자는 자신인 것이다. 그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보다도 무서운 것이 인간인 것이다. 사탄보다도 무서운 것이 인간인 것이다. 인간의 행동 여하에 의해서 그 나라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그 국민의 3분의 1이 선인이라 해도, 단번에 그 선인들을 멸해 버릴 수 있다.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무서운 자가 누구라고? 자기인 것이다. 이 무서운 자들끼리 하나로 합칠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합동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싸움의 기점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 온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므로 외적인 사람들끼리의 결합체는 자연히 생긴다. 내적인 사람들끼리의 결합체도 자연히 생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2 대 주류의 사상이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는 선을 부인하고, 하나는 악을 부인하는 그러한 사상이 반드시 지상에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가 말세이고, 그 말세가 현세(現世)이다.
유물사관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계실까. 한쪽 끝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수권에서 하는 행위다. 악랄하면 악랄할수록 그 힘이 강하다. 선 쪽은 그렇지 않다. 그것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결로 되어 있다. 그러한 결과가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된다.
육심과 사탄을 점령하라
그것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자신으로부터 연결된다. 자신들을 중심으로 해서 보았을 때, 이것은 자신이 선두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세계적 선두에 서고 싶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세계적, 역사적, 현세적, 미래적으로 죄악을 타파하는 제일의 선두 주자라고 하는 확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자신이 산다고 하면 과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현세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미래의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이것을 어떻게 분별해서 해결하느냐? 거기에는 미래의 문제가 있다. 현실에서 육심을 점령하는 것과 보이지 않는 사탄을 점령하는 것,2대 문제가 있다. 알겠어요. 이것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제일의 싸움은 무엇인가? 육심이다. 제 2 는 사탄이다. 사탄과 육심이 우리를 포로로 하고 있다. 그 육심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의 명령에 끌리고 만다.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 사탄의 명령에 끌려가면 영원히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종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세계를 점령하기 전에 자신을 어떻게 점령하는가에 종교의 목적이 있다.
선생님은 이 길을 출발할 때의 제일의 목표가 그것이었다. '천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이것이 문제였다. 거기에서 첫째는 육심을 어떻게 주관할까 하는 것이다. 육심은 '먹고 싶다. 살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생활의 주된 욕망인 것이다.
그러면 이 육심을 중심으로 하여 먹고 싶은 것은 어떻게 되나? 인간은 태어나면서 악의 권세 서 있는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을 놓고 볼 때 육심이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을 들어 준다면 어떻게 될까? 악편에 가까와진다. 육을 중심으로 하여 살고 싶은 거기에 보조를 맞추면 악에 기울어 버리고 만다. 그것은 원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육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고 싶어하는 그와 같은 길로 가면 육의 편에 완전히 기울고 말게 되어 아주 가라앉게 된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소용돌이는 올라가는 법은 없다. 가라앉아 버린다.
그러므로 먹을 것이 있으면, 자신이 먹는 것을 억제하고 그 반면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을 자기보다도 더 불쌍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에게 주면 선의 번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전법이다. 그러한 결과가 된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 좋은 사람에게 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쁜 자에게 주라는 것이다. 그것을 보다 가치 있는 입장에 세울 곳에 양보해 주는 것이다. 현실을 부인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제일 선의 악의 발판을 극복할 길은 없는 것이다. 만약에 포로가 된 자가 혹 자기에게 줄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이 올라가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구해 주면 그 사람은 또 나를 구해 주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육심의 욕망을 넘어서 지금 자신에게 요구되는 가치의 것을 남에게 주면 그것이 결국 자신을 구하게 된다.
그것을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과거의 의인, 성인들은 선인이 되라고 했다. 선인이 되는 데는 자기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바쳐야 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선인이다. 그것이 뭐냐 하면, 포로가 되어 있는 자신이 요새(要塞) 혹은 감옥을 탈출하게 하기 위한 작전인 것이다. 그걸 위해 가르쳤다고 하는 것은 몰랐었다.
그렇게 사방팔방으로 선을 펼치도록 하라. 전국민에게 그런 식으로 해 주어라. 그렇게 했을 때 끌어올려 원조해 준 사람은 전부 다 같은 입장이다. 하나님은 그런 섭리를 하신다. 한 사람의 선인을 찾아 희생하게 하고 모두에게 나눠 주게 해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그 가치 이하의 기준에서는 사탄이 간섭하지만,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다. 그러한 작전을 해 오시고 있다.
그러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느냐? 육심이 원하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육심이 구하는 길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한 양심의 명령에 따라 가는 곳에 선이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육심권(肉心圈)은 자연히 포위되어 버린다. 어떠한 종교라도 이런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가 그러한 작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전부 목적과 방법은 일치하고 있다. 주관하는 주인의 목적은 일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 종교가 있지만 그 본줄기로부터 이 원칙에서 벗어나게 되면 종교가 아닌 것이다. 선의 판도가 넘어지면 아무리 악한 사탄일지라도 사탄의 것, 사탄의 상대자가 없어지면 그 사탄 자체도 약해진다. 이렇게 되어 있다.
선을 넓혀 가는 생활
여러분은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라는 것이 문제다, 자기. 문제 있는 자기가 선악의, 그 주식회사의 대주주(大株主)인 것이다. 자기에게 있어서 악한 자가 둘이 싸우고 있다. 악한 자 둘만이 아니고 많은 악한 사람들이 공격하고 있다. 그것들을 굴복시키는 데는 그런 선의 작전을 넓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전도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국가적 전도권(傳道圈)을 만드는 것이다. 국가적 전도기준을 만든다면 국가적인 해방권이 만들어진다. 세계적 전도권을 만든다면 세계적 해방권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지상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전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편에 서 있는 선의 길에 선 자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죽어도 간다. 죽어도 간다. 어느 쪽이 강한가. 선이 강하다. 어느 쪽이 오래 가나. 선이 오래 간다. 어느 쪽이 승리할까? 선이 승리한다. 이것은 원칙이다.
그러니까 오래 가니까 선편에 무릎을 꿇는다면 그것에 배가(倍加)해 강하게 되어진다. 그럴 경우에 하나님은 원조하신다. 그러한 책임을 가지고 선다면 하나님이 원조하신다. 그것에 부딪친 사람이 있다면 부딪친 사람이 깨어지고 부딪침을 받은 그 사람은 깨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선악의 싸움의 비결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악은 뭔가? 자신을 중심삼고, 육을 중심삼고 사적인 감정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악이다.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을 점령하려는 것이 악이다.
선은 무엇인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선이다. 그런데 현재 선악의 기준이 희미해지고 있다.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공산당이 하는 식이다. 거기에는 수단 방법을 생각지 않는다. 이것은 일시왕성(一時旺盛)은 가능하다. 원리의 가치를 나타내는 데는, 최후의 승리의 기점을 붙이는 데는 양자가 있으므로, 두 가지가 있으므로 한번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번 부딪쳐서 승리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천하를 가르는 싸움이 있어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국가적인 싸움을 해 왔던 것이다. 그것이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사상전의 시대이다. 사실은 종교전쟁시대인 것이다. 공산주의는 사탄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종교 비슷하게 되어 있다. 공산종교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사상을 극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에게로 갈 길을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의 사상과 이상은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이다. 역사를 총합적으로 생각하여 보면 그것을 하기 위해 싸워 나온 역사였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싸워 왔느냐 하면 몸을 상징하는 만물을 중심으로 해서 싸워 왔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무엇을 위해 싸워 왔던가? 양쪽 다같이 그 세력을 넓히기 위하여 싸워 나왔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서 계속하고 있는 싸움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옛날에는 영주(領主)가 아무것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빼앗는 것이었다. 그것은 토지를 중심으로 하는 싸움이었다. 지금은 사상시대에 있어서 사람을 빼앗는 싸움인 것이다. 발전해 가고 있다. 선거도 그렇지요. 사람 빼앗기 싸움에 있어서 승리하면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어진다. 사람 빼앗기 싸움인 것이다. 그것이 사상시대인 것이다.
그 다음에 무엇을 빼앗는 싸움이 오는가 하면, 하나님을 빼앗는 싸움이 오는 것이다. 이것이 최후의 종교전쟁이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정치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하고, 그렇게 되어 있으면 세계는 자기 것이 되는 것같이 생각한다. 그런 어리석은 자가 있다. 독재자라든가,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는 우주의 대표자라고 하며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현재에 사람을 모으는 것은 하나님의 작전의 일부분이고, 또 그런 입장에서 그것이 허락된 것이고, 시대가 지나가면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고 하면 사상전인 것이다.
영계로부터의 공격
최후에 만약 종교끼리 서로 싸운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기 쉬운 시대에 있다. 그런 시대를 방비하기 위해서 통일교회가 생겨났다. 통일교회는 그것을 하기 위한 방비재(防備材)이다. 그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종교전쟁시대에는 영육 함께 방비한다. 영계는 지상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영계에는 영인이 몇천억쯤 있을 것이다. 일본의 1억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발아래 먼지 만큼도 되지 않는다. 수천억 수만억의 영인들이 지상을 점령하기 위한 공략을 해온다. 노이로제 현상이 그 하나인 것이다. 조금 더 가면 80년대 더 나아가 2천년대를 넘으면 그때는 다 영적으로 통할지도 모른다. 악영에 통하든가 선영에 통하든가. 전쟁을 하지 말라고 할지라도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것을 방비해야 할 것이 통일원리의 사명인 것이다. 높은 안테나에는 삐익삐익 소리가 나온다. 그것이 노이로제 현상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이냐 하면, 악영만 동원하여 지상공략을 해오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 어떻게 될 것인가가 문제이다. 아무리 사람이 전지구상에 가득찼다고 할지라도 악영에 공략되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기까지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선영들을 중심으로 하여 영계의 기대를 넓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권의 사람들을 계속 모아서…. 오늘날 인류의 반수인 17억 가까운 수가 모두 종교권에 들어 있는 것이다. 20억 가까운 사람들이 종교권에 속해 있다. 그러니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종교통일을 생각하고, 그리고 그것을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역사의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도 그를 바라시고, 인간도 양심의 최고의 기준으로서 그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의 4대성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모두 종교의 교조로 되어 있다.
예수님도 그러하고, 석가도 그러하고, 공자도 그러하며, 마호메트도 그렇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잘 아시고 계시는 것이다. 특히 현세에 있어서는 종교는 약한 자가 믿는 것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왜 4대성인의 사상이 이 문화권의 중심 주류가 되고,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국가의 교육이라든가, 국가의 헌법, 국가 조직의 형태가 이루어져 나오며, 또 그 문화세계를 형성해 오고 있는가. 그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발전해 간다. 지금은 말세가 되었으므로 양심과 육심의 싸움은 마지막 극한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시대에 만물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공산주의 자체로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고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고 있다.
중공과 소련은 이미 분열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일본에도 공산당의 여러 분파가 있다. 그들끼리도 싸운다. 그것은 이상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혹은 양심과 육심을, 그리고 가인과 아벨을, 그리고 이 시대에 있어서 갈라진 두 개를 모두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목적을 위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완전히 나누어 가지고 처분하여 필요없는 것은 다 털어내야 한다.
옥수수의 그루터기를 뽑으면 흙이 잔뜩 붙어 달려 나온다. 그 흙을 다 털어 버리기 위해서는 그 흙이 묻은 두 개의 그루터기를 맞부딪치는 것이다. 그것을 주먹으로 쳐서 터는 자는 없다. 그것을 양손에 들고 맞부딪친다. 부딪치면 흙은 떨어지고 포기만 남는다. 부딪치는 시대가 지금이다. 그러면 양손을 누가 가졌느냐. 하나님이 갖고 계신다. 그러면 인간은 망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해 볼 경우 하나님께서는 둘로 갈라진 종교계와 사상계를 맞부딪치게 하여 최후에 남는 그 하나를 취하신다. 우리들은 모두 그것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 포기의 한 쪽은 하나님이 잡고 계시고, 다른 한 쪽은 사탄이 잡고 있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가인 아벨이 있는 것이다. 아벨은 누가 취하나. 하나님이 취하신다.
가인은 사탄이다. 공산주의도 전부 나쁘지 않다. 거기에도 가인 아벨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공산주의에도 역사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둘이 함께 싸운다고 할 때는 하나는 아벨 입장이고 하나는 가인의 입장이다.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잡은 그 끝은 사탄도 잡게 마련이다. 사탄을 누가 쫓아 버리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탄을 내쫓는 메시아
이 사명을 완수해야 할 존재가 메시아이다. 메시아, 메시아, 메시아. 그러므로 하나님도 절대 메시아가 필요하다. 타락한 인간에게도 절대로 메시아가 필요하다. 이 타락의 환경을 벗어나는 데는 메시아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 메시아는 어떤 분일까? 영계의 완성과 지상의 완성을 책임져야만 한다. 영계와 지상의 완성의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목적의 기준이 통일사상으로 말하면, 통일교회의 말을 빌리면, 천주 완전복귀라는 것이다. 이 메시아가 지상에 오시는 데는 영계를 통일하고 오셔야 한다. 그러지 않고 오셔서는 지상을 통일할 수 없다.
타락은 무엇인가? 영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그 싸움의 시작이 타락이다. 원래 영계에서는 하나의 방법으로 다스리게 되어 있다. 그 절대적 주관권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메시아이다. 그런 입장에서 오신다면, 영계를 통합해 얻은 그 내용을 갖고 오신다면…. 하나님의 비밀, 사탄의 비밀을 모두 알고 지상에 오시는 분이 메시아이다. 그런데 지상에 오셔서 단번에 지상을 점령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아이가 태어날 때는 쌍동이도 있지만, 그것은 비원리에 가까운 것이다. (웃음) 쌍동이로 태어나는 것, 예를 들어 에서와 야곱 식으로 태어나는 것은 역사적 중대 사건을 복귀하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도 좋다. 그러나 원래 사람은 한 사람씩 태어나는 것이다. 어머니도 한 사람, 아버지도 한 사람, 이렇게 한 사람씩 태어나게 마련이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한 사람을 중심으로…. 그러므로 한 남자가 메시아라면, 그 한 사람을 누구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남자는 여자를 위하여 태어났다. 그러므로 이 메시아라고 하는 분, 이러한 천주의 중심 핵으로 오시는 분이 남자로 오느냐, 여자로 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남자에게 물어보면 '예, 남자로 와요' 하고 말할 것이다. 여자에게 물으면 '예, 여자로 와요'라고 할 것이다. 왜냐? 아이룰 기르는 데 있어서 남자는 실제로 하는 것이 없다. 몸으로 서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 여자는 몸으로 젖을 준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먹이지만 남자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 뭐가 있지? 그런 입장에서 볼 때는 남자보다 여자가 낫지. 남자 메시아가 오는 게 좋은가, 여자 메시아가 오는 게 좋은가? 여자 메시아가 오면 좋겠는가?
일본의 경우 천조대신(天照大神)은 여자냐, 남자냐? 일본인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여자다. 일본인으로 말하면 여자가 오면 좋지 않겠는가. 이것은 재미있다. 세계 가운데 그런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런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일본인은 여자라고 하면 인기가 있다. 남자가 오면 좋은가? 여자가 오면 좋은가? 남자는 욕심장이, 최고의 욕심장이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두 혼자서 취해 버린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여자로 오신다면 남자가 좋을지도 모른다. (웃음)
하나님은 원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는 데는 원리에 따라 보낼 수밖에 없다. 그 메시아 되는 분은 원리를 중심으로 하고 완성한 분이다. 원리를 중심으로 하고 전문적인 분이다. 그런 분이 아니면 안 된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원리에 따라 창조된 한 사람이므로 원리를 중심으로 한 사상을 갖고 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원리적으로 볼 경우 남자가 처음인가, 여자가 처음인가?「남자요」어째서인가? 여자로부터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째서 남자인가. 성서에 쓰여 있으니까 성서를 믿고서?「하나님이 남자이니까요」하나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보았나? (웃음) 그런지 어쩐지 모른다. 실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남자인가, 여자인가? 인간은 누가 주체인가? 이번에 미국과 유럽에 가서 질문받은 것이 그것이었다. 어째서 남자가 주체인가?「아버님이 메시아이므로…」아버님이 메시아인지 어쩐지 모르는 거예요.「원리가 풀었습니다」원리가 잘못되어 있는지도 몰라요. 그렇게 말하면 한이 없다. 실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실험해 보기까지는 그런 말 하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거예요. 인간은 여자이거나 남자로 태어난다. 남자가 먼저인지 여자가 먼저인지. 도대체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태어나는가. 그것은 남자로부터 태어나게 되어 있다. 인간의 아이의 씨는 여자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남자에게서 태어나도록 되어 있다. 알았어요?
원인의 출발점이 남자로부터 출발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보아도 남자를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원인의 주체성을 세울 수 없다. 남자를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끝장이 난다. 남자 메시아가 오지 않으면 안 된다. 여자는 무엇인가? 밭이다. 여자가 주체로 되어서는 안 된다. 남자가 주체이다. 먼저 있었다. 인간이 태어나는 그 씨는 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자가 먼저 있었다. 그러므로 원리적으로 봤을 때 남자가 주체자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교육을 잘 받아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남자에게 절대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 아주 잘 따르게 되어 있다. 미국은 반대이다. 여자가 동양에서는 한 단계 아래에 있고, 서양에서는 한 단계 위에 있다. 반대가 없으면 수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생님은 놀랬다. 서양에 가면 모두 왼손을 전문적으로 사용한다. 동양에서는 왼손을 사용하면 병신처럼 생각하지만 서양은 왼손잡이가 더 많다. 자는 것도 동양인은 위로 향해 잔다. 서양은 아래로 향해 잔다. 부르는 것도 이런 식으로 부른다. 동양과 반대다. 중심에서 봤을 때는 반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서양 식구들도 와 있지만, 그들도 선생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할 수 없이 메시아는 남자를 보내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고, 사람도 남자를 바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남자가 온다. 그러면 그 오시는 남자의 메시아가 무엇을 찾아오시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무엇을 찾아오실까? 여자를 찾아오신다.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여자를 찾아오시는 것이다. 여자라고 해서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래서 메시아는 이 지상에 오실 때 당당한 남자로 오신다. 천하 어디에 가도 거기에 거역하지 않는, 하나님도 반한 남자이다. 역사적 성인에게도 그는 희망의 대상이다. 그는 만민, 현세계 34억의 인간이 한번 만나고 싶고, 한번 얘기하고 싶고, 함께 행동하고 싶다고 하는 희망의 대상인 것이다. 거기가 미래의 새로운 가치의 척도가 시작되는 출발의 기점인 것이다. 그가 있어 모든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그 기준이 있어 모두가 그 중심을 잡게 된다. 그가 나타남에 따라 승리가 결정된다.
그러나 훌륭한 분이라 해도 그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눈도 두 개, 입도 코도 여러분과 똑같다. 여러분이 메시아를 닮은 것이 아니라 메시아가 여러분을 닳았다. 메시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사람은 사람이지만 그 내용이 다르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는 입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르다. 타락한 사람은 타락권의 평면적 내용만 가지고 있지만 메시아는 입체적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심정에 있어서도 입체적인 것이 다르다. 여러분은 평면이 좋은가, 입체가 좋은가? 입체적이 아니면 영원히 돌 수가 없다. 그렇게 되어 있다.
메시아의 사명
메시아가 지상에 오셔 가지고 이루어야 할 사명은 무엇이냐?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을 굴복시켜 악의 주관권을 타파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점령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메시아가 오셔서 해야 할 제일의 책임이다.
오시는 메시아의 사명은 무엇이냐? 우리는 악주관권에 포위되어 있다. 겨냥되고 있다. 이 철조망을 어떻게 해서 끊어 버리느냐. 여러분은 끊을 길이 없다. 거기에는 또 파수꾼이 서 있다. 그 파수꾼과 싸워서 이길 힘은 이 세상에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오신다. 그러므로 그분이 포로인 우리를 가두고 있는 방벽을 단번에 뒤집어 엎고, 파수꾼을 처리해 버리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 그러기에 감옥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최후에는 무엇이냐. 파수꾼이 문제다. 그를 쫓아내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 그러기에 메시아는 사탄을 추방하기 위해 이 지상에 오시는 것이다. 사탄의 주관권, 악의 주관권을 탈환하고 선의 주관권을 설립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 것이다.
메시아는 남자로 오시는데, 지상에서 제일의 목적은 여자를 찾는 것이다.
일본 수상은 일본 국민이면 선거로 아무라도 될 수 있다. 수상이 되려고 뛰어 보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선거에 가담하는 자들 중에 장래 자신도 수상이 되고 싶다 하는 욕망을 가지고 선거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겠지? 그와 같이 만약 메시아가 여성 때문에 오신다면, 세계의 여성은 한번 후보자가 되어 보고 싶겠지? 되지 않으니까 그렇지 후보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여자로서는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메시아가 지상에 오시는 데는 여자를 위하여 오신다, 여자를 위하여.
새로운 혈통을 세워야 한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 때문에 여자를 맞이하는가. 새로운 혈통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장 중대한 일이다. 원리적으로 보아도 그것은 핵심을 찌른 대답이다.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
시험 답안, 그것은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메시아가 오시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사탄세계의 주관권을 잘라 버리고 선의 혈통권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그 선의 혈통권을 세우려 하여도 반대하는 나라가 있을 경우에는, 그 나라 안에서는 혈통권을 세우더라도 침해당한다. 사탄이 주관하는 그 국가권에 있어서는 선의 혈통권을 세운다고 하여도 사탄은 목을 자를 수가 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왕자가 적국의 한 가운데에 가서 부부로서 생활한다고 하면 그들은 적국의 포획물이 된다. 그것은 틀림없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선 무엇을 해야만 하느냐. 선의 주관권을 획득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성서의 요한복음 12장 31절에 사탄은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성서를 읽는 기독교인들이 조금만 생각해도 바로 알 수 있다. 어째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상계(萬象界) 모두가 사탄의 지휘 아래 들어가 버렸을까. 사탄과 하나님이 언제 싸워 하나님이 지신 것일까. 성서를 아무리 읽어도 하나님이 지셨다는 성구(聖句)는 없는데. 그것이 문제가 된다. 싸운 적이 없으나 결과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
만물은 아담 해와의 것이다. 아담 해와를 위해 창조하신 것이다. 창조주의 주관권내에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사탄이 점령해 버렸다. 점령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가장 최고의 이상(理想)의 기점인 사랑을 노렸다. 그것이 문제이다. 사랑의 문제가 아니면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러므로 사탄은 어떤 것일까? 무엇인가? 성서를 읽으면 예수님도 이런 것을 말씀하고 있다. '죄를 범한 경우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죄를 용서해 줘라'고…. 그만한 포용과 그만한 자비심을 가지고 있다면 실로 사랑의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그렇게 귀중한 자녀인 것이다. 그 자녀의 친아버지는 하나님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마음을 지닌 하나님이 시라면 어째서 사탄을 원수시하실까. 사탄이 범한 죄를 용서해 주시면 곧바로 좋아지지 않겠나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사탄을 하나님은 지금까지도 영원히 원수시한다. 무슨 죄를 범했기에? 그 죄를 범한 것을 인간은 지금까지 몰랐지만 그것을 용서하시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죄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신 것은 사탄권내에 있는 사람을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해방하는 그러한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고 사탄을 용서할 수는 없다. 무슨 죄를 범했는가? 사탄은 사람이 죄를 범한 경우 하나님 앞에 참소해 자신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간다. 사탄도 죄를 범했다면 그것을 사람이 하나님에게 참소할 경우에는 절대적으로 공적 심판관인 하나님은 사탄 자체를 심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입장에 설 것인가, 서지 않을 것인가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당연히 심판의 자리에 공식적으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이 어떠한 죄를 범했는가 하는 것을 참소할 수 있는 그런 자가 지금까지 역사상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그것이 문제였다.
지금 살인을 하고, 그 죄가 공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이상은 그 죄를 범한 자는 보통 사람과 같은 생활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죄를 범한 그 현장을 보고 참소하는 소년 소녀 앞에서도 머리를 숙인다. 경찰에 고발 하려고 한다면 생명을 걸고 그에게 사죄할 것이다. 굴복할 것이다.
인간은 지금까지 사탄이 어째서 사탄이 되었나를 확실히 물랐다. 그것을 우리는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내용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는 곳이 통일교회이다.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일반 사람은 악의 세계, 사탄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부터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이원론이 된다. 이원론이 될 경우 원인이 둘이므로 목적도 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적인 결과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탄이 본래부터 있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이상세계를 꿈꾼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인 것이다. 그것은 사탄이 수천년간 하나님을 참소하며 수많은 인류를 자신의 발판으로 짓밟아 나왔다. 이런 권력 있는 사탄이 본래부터 하나님과 같이 존재했다면 인간이 완성한다는 목적관념을 가질 수 없다. 영계에 가도 타락하지 않는다고 하는 기준을 절대적으로 지닐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절대자가 아니다. 상대자가 된다. 상대적 존재이다.
사탄은 무엇인가
어디가 먼저인가? 악이 선이 되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같이 주장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는 망해 왔다는 것이 역사의 전통이다. 그러므로 악은 선에 지배받는다고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선악의 결과의 기준에서 그것을 검토해 보더라도 악의 주체는 선에 복종하는 그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거로 하여 보일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본래부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탄이란 것은 어떠한 것일까? 하나님이 계시고 아담 해와가 있었을 때, 하나님과 아담 해와 사이의 관계를 가장 잘 안 자는 누구였던가? 그는 천사장. 천사장밖에 없다. 그것은 이론적으로도 그렇게 되어 있다. 천사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자로서 천사밖에는 없으므로 천사장을 의심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 자체는 타락의 동기가 될 수 없다. 아담 자체도 해와 자체도 타락의 동기가 될 수 없다. 그 동기가 되는 것은 제삼자의 입장인 천사밖에 없다.
천사라는 것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천사는, 성서를 보면 분명히 사람을 만들기 전부터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경고를 했던 것도 천사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경고를 했던 것이고, 만약 천사장이 없었다면 아담에 대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따먹지 말라는 말이 필요치 않았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그러므로 사탄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타락했기 때문에, 즉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탄이 되었다. 타락 때문에 사탄도 태어났다. 인간과 사탄이 죄를 범한 일에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인간이 따로따로 타락한 것이 아니다. 사탄에 의해 유혹되어 타락했기 때문에 함께 타락의 동기에 연결될 수가 있다. 사탄에 의해 해와가 유혹되었다. 그 사탄이 해와를 유혹하여 타락시켰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면 함께 사탄도 타락한 결과가 된다. 그렇게 됐을 경우 그 타락은 무엇인가?
성서를 찾아보면, 그 사탄은 어떠한 죄를 범하였는가. 음행을 행했다. 간음을 한 그 천사가 끝날의 심판을 받는 날까지 기다린다는 내용의 성서의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사탄은 간음에 의해 타락했다. 인간의 타락과 통한다. 해와는 타락한 결과 어떻게 되었나. 보고, 따고, 먹은 후에, 눈을 가리고 입을 막은 것이 아니다. 손을 가린 것이 아니다.
어머니가 좋은 것이 있어 손님이 올 때에 그것을 드리려고 아이들에게 손을 대면 안 된다고 명령을 했는데, 아이들이 그것이 맛있는 것이라고 알고 어머니의 경고를 듣지 않고 먹으려는 순간 어머니가 들어왔다면 입을 막는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어째서 손을 가리지 않고,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下體)를 가렸던가가 문제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예를 들 경우,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불신한 자들에 대해 사탄, 악마의 자손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적중하고 있다. 사탄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루어진 음행을 하나님도 용서할 수 없다. 음행관계에 의해서 혈통이 더럽혀졌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선조가 타락하여 결국 혈통을 더렵혀 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타락한 인간은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하여도 양자밖에 안 된다. 양자라는 것은 혈통이 다르다. 로마서를 읽으면,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들도 그 양자가 되는 것을 바란다고 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 타락한 인간, 기독교인 모두 적자(嫡子)는 아니다. 양자(養子)로 되어 있다. 그 양자는 어떠한 자인가 하면, 예를 들어 떫은 감과 같은 것이다. 타락은 무엇인가 하면 단감이 될 수 있는 것이 떫은 감이 된 것이다. 그 떫은 감의 밭은 하나님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관리한다. 사탄이 관리하는 떫은 감이 되어 버렸다. 인간 조상이 혈통을 더렵혔기 때문에 더렵혀진 혈통을 계승하여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사탄의 후손이 되었다. 한 사람 낳고, 두 사람 낳고, 수백 천만이 됨에 따라서, 모두 사탄을 선조로 한 후손으로 태어났으므로 결국 사탄은 가만히 있더라도 임금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그 후손의 입장에 서 있으므로 사탄은 자연히 이 인간 세계를 중심으로 하여 임금이 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기에 사탄권내에서의 모든 피조만물세계는 사탄에게 주관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싸우지 않고 이대로 그러한 주관권에 만물은 들어와 버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므로 혈통적인 타락 이외에는 하나님이 주관해야 할 자를 사탄이 빼앗아 갈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혈통이 더렵혀져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이 주관하는 떫은 감의 밭을 그대로 놓고는, 그것은 사탄의 주관을 받는 것이므로 그 밭을 그대로 놔 두고는 섭리하여 어떤 무엇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을 사탄세계로부터 분립시켜 나온다. 빼앗아 버린다. 분립 작용을 행하는 기관이 무엇이냐면 종교다.
종교는 현세의 모든 것에 속하는 권력의 모든 것과 외적인 모든 것을 부인하고 우회하는 작전을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부인한다. 그래서 완전한 종교는 공인을 받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부인함으로써 출발한다.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와 같이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반대이다. 공인을 받는 기준에서는 참종교가 나오지 않는다. 이 기준에서 볼 때 일본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참된 종교는 어디에 있는가? 분별의 기준을 알았지요?
종교의 사명
성인들은 그 시대에 그 나라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박해받은 정도가 아니다. 생명을 빼앗긴 자들이 선민이 되었다. 예수님 자체도 그렇다. 공자도 그렇다. 이웃 개처럼 취급당했다. 석가도 그랬다. 그 시대의 발길에 밟히고 그 환경에 버림받은 자들이 모두 역사를 움직이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방향을 제시한 중심인물이 되었다는 것은….
그들은 그 시대를 포용하고 환영하는 입장에 선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어떻게 부인하고 선의 관념을 세계적으로 가지고 갔는가? 그 기준에서 성인은 분별되어 왔다. 그러므로 모두 세계주의자인 것이다. 한 나라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나라를 넘어서 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소원을 충족시킬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세계를 원하신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 국경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던가. 국경은 없었던 것이다. 너의 나라, 나의 나라가 있었던가. 이러한 문제는 타락의 결과이다. 나비가 국경을 넘을 때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는가? 그들은 국경을 모른다. 몇 개의 나라를 지나도 인사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왜 인간세계만이 이렇게 되었는가. 타락의 업보인 것이다. 일본 나라, 한국 나라, 이러한 국경이 생겨난 것은 타락의 결과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문제에서 본다면,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국경이라든가 문화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도 많을 리 없다. 서양문명이라든가 동양문명의 종류가 많이 있을 턱이 없다.
분별과 반발의 환경을 통해 싸움의 기반을 넓혀서 상대를 구하기 위해 문화가 여러 가지로 갈라져 간다. 말도 모두 시세에 따라 변해 갔다. 그러므로 언어도 하나밖에 없던 것이 타락 이후에 많은 말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한 것은 이제부터는 안 된다. 우리들의 말은 둘이어서는 안 된다. 나라도 둘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언어 모두 그것을 원하지요?
일본에도 무사도라는 것이 있는데 그 복수심, 이런 것을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사람, 한 집이 멸망해도 그 일가의 측근 중 한 명이 남는다면 생애를 걸쳐 원수를 갚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일시에 어떤 방향을 향해 국경을 철폐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한 사상 운동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일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어떤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이 멸망하면 좋다고 하는 일본 국민이 있는가, 없는가?「없습니다」미국이 멸망하면 좋다고 하는 미국 국민이 있는가?「없습니다」
각국이 모두 그렇다. 이것을 여하히 해서 국경을 넘을 인간이 있는가. 그것은 관념적인 문제이다. 자신의 나라는 일본이라고 하는 관념, 이것이 일본 국민의 전통적인 사상관념이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역사적 문화의 배후의 전통에 의해서 그것은 모두 못박혀져 있다. 그 사상을 어떻게 해서라도 무리없이 그 이상의 사상과 바꾼다면 그 이상의 나라를 구하게 된다.
국경을 넘는 사상
그러므로 지금은 사상의 때이다. 사상전 시대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이 있을 때에는 일본인이라도, 한국인이라도, 서양인이라도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으면 지금의 것을 버리고 보다 가치 있는 그것과 바꾸게 된다. 인간은 비교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손해되는 입장과 바꾸지는 않는다, 일본인은 백년의 역사를 통해 서양문화를 도입해서 빨리빨리 바꾸어 왔다. 그러므로 지금의 현재 문화세계에 있어서는 일본이 모방주의 챔피언이 되었다. 그런 국민성을 갖고 있다. 그러한 식으로 생각하면 선생님은 기분 나쁜 것이 있다. 통일사상에 있어서도 챔피언이 될까?
물론, 챔피언이 되어도 좋다. 그러나 근본을 뒤집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해 보았을 때는 일본인 자체, 또는 미국인 자체는 그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나라에 세계를 짊어지게 한다면 국경을 아무리 넓혀도 좋다고 한다. 지금의 하와이는 미국에 들어가 있다. 하와이 국민도 기뻐하니까, 바라니까, 미국이 큰 나라니까 그것을 떡 짊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이 함께 세계의 국민이 될 수 있다. 사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필요성을 일본 민족이 국민성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요구하게 된다면, 이것은 자연히 싸우지 않고서 변화해 갈 것이다. 그러한 운동을 하나님도 생각하시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타락하지 않은 때의 가치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가치는 만상(萬象)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가? 인간의 가치는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다.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시계라도 자신의 것보다 더 이상의 좋은 것이 있으면 바꾸려고 한다. 바꾸겠지? 입는 것도 그럴 것이다. 좋은 것을 주면서 벗으라고 하면 자연히 벗는 것이다. 나쁜 것을 주면서 벗으라고 하면 싸움을 한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일 이세상을 통일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체도 반하는 것, 만민 모두가 자기보다 좋은 것이라고 인정하는 그것을 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미련없이 버릴 수 있다. 그것은 검거나 희거나 모두 같다는 것이다. 서양인도 선생님이 오라고 하면 온다. 본 일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라고 하면, 모든 것을 버리고 움직이게 되어 있다. 비교 대조하는 능력으로 비교해 보고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 무엇이 있으니까 그들은 오게 되는 것이다.
통일교회, 재미있다. 몇 년 전까지도 여러 가지 소문이 났었다. 문선명이라고 하면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기분 나쁜 이름으로 되어 있다. 여기 새로 들어온 사람 많이 있지? 무엇 때문에 들어 왔나? 선생님은 환영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환영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그 내용을 알았을 때는 선생님의 발길 가까운 곳에 세워 주었으면 좋겠다고 자연히 바라게 된다. 학생으로 말한다면 동경대학(東京大學)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 죽어도 들어가고 싶다 할 때는 죽인다고 하더라도 동경대학(東京大學)에서 죽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생각할 수 있다. 같은 것이다. 요는 아무것도 빼앗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좋은 것을 가르치고 좋은 것을 얻을 장소를 가르치면 자연히 세계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인 것이다.
지상에 오시는 메시아
그러므로 하나님도 이 지상에서 그러한 작전을 하시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메시아가 지상에 오신다. 그 오시는 메시아가 국가관념을 가지고 오실 것인가. 국가관념을 가지고 오시지 않는다. 그것은 낙제인 것이다. 적어도 세계적 인물의 목표를 충족시킬 내용을 가지고 오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민족주의자는 아니다. 세계주의자인 것이다.
통일사상으로 말한다면 우리들은 공자보다, 예수님보다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우리들은 그 이상의 목적관념으로 세계를 통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천주통일, 그것은 멋있는 사상인 것이다. 이 지상에 없었던 사상이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멋있는 내용임에 틀림이 없다. 만일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도 침을 흘리면서 눈이 둥그래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싶다고 바랄 수 있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인간이 그것을 가졌다고 한다면 하나님도 그것을 좋게 여기신다. 이러한 인간으로 한번 만들어 보자고 하는 것이 통일사상인 것이다.
선생님은 겉으로 보아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러한 사상을 주장하는 선두자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문제가 된다.
메시아는 세계주의 이상의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무릇 성인은 민족주의자 중에는 없다. 일본에는 애국자가 많이 있다. 일본의 애국자는 누구인가? 일본의 애국자는 한국에서는 적이다. 한 나라의 애국자는 국경을 넘는 힘은 가지고 있지 않다. 선생님은 역사의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해야 할 사명을 가진 사람은 세계적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인간사회를 중심으로 해서, 인간의 의지를 무시하는 주의가 아니라 인간도 존귀하게 생각함과 동시에 하나님도 귀하게 생각하는 내용을 가진 것이 아니면 하나님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이면 멸망하지 않는다. 종교의 교조(敎祖)가 왜 성인이 되어 있는가? 이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그것을 여러분들 젊은이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문화는 그들의 사상의 총합적 결과로 되어 있다.
일본 국가도 그 기준을 본떠서 사회조직이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예수님도 국가주의가 아니고 세계주의인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의 목적을 위해 죽었다. 우리가 태어나 사는 것도 한 개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만민을 위해 살고 있다. 우리 모두 그러한 관념을 가지고, 거기에 투철한 생활관념을 가지고 생애의 길을 간다. 거기에 반항하는 자가 있다면 부딪쳐서 죽을지라도 그 결의. 그 강한 뜻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십자가를 극복하고도 남는 남자로서 가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계실진대 그 사상이 없어진다면 부활시켜서라도 그 사상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입장이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초월해서 세계주의로 가야 한다. 그러한 세계를 향해 하나님은 이 인류를 밀어붙인다.
그런데 지금 공교롭게도 공산주의 사상권에 걸려들어 있다. 그래서 세계는 평화롭지 못하다. 물질은 그러한 가치관을 부르짖는 사람에게, 물질은 그런 인간에게 지배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활 방편으로서 그것은 소모되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물질을 절대시해 나가면 한 사람의 인간은 무가치한 것으로 돌아간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소련의 스탈린을 보면 3천만 이상의 인간을 학살하였다.
모택동은 5천만 이상을 죽였던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의 측근도 반대 의견을 나타내면 제거해 버린다. 그것은 선이 아니다. 악이란 무엇인가 하면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것이 악인 것이다. 그것을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열 명의 친구가 있을 경우 그 열 명의 친구에게 매일, 매년, 한평생 자신을 위하라고 할 때 그 친구가 움직이겠는가. 그런 사람에게 지배되는 연수(年數)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그 내심에는 '이 녀석 때가 오면 일거에 정리해 버리자' 하는 속마음이 커진다. 그렇게 되어서는 평화가 오지 않는다, 공산주의 하는 방법으로는 평화는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장하던 그 생활은 실로 어리석은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위대한 전법인 것이다. 열 명의 친구가 있어서 그 열 명의 친구에게 매일 봉사할 때, 그 친구들은 아홉 명이 모두 모였지만, 충심으로 자신들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활동했던 그 친구가 빠졌을 경우에는 아홉 명 모두가 '왜 그가 오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슨 일도 그 사람을 보고 나서 하려고 하지 않고 기다린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하려고 한다. 남을 위해 진력한다면 그 사람 자신은 스스로 소모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오래 되면 오래될수록 점점 중심점을 점령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법과 사탄의 전법은 다르다.
하나님의 전법과 사탄의 전법
사탄의 전법은 때리고 멸망하는 전법인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킨다. 그래서 성공하려고 하는 전법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길게 가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을 희생시키고 자신이 맞고 승리하려는 전법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사탄의 전법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사탄의 전법은 어떤가? 악인의 전법은 어떤가? 악인은 자신을 위해 남을 발로 짓밟고서 성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선인은 봉사해서 모두를 잘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모두를 잘되게 하려고 하면…. 결국은 잘하는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끌어당겨 중심인물로 세우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싸우지 않고 모두를 점령하는 길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마 빨리 잘해 준다는 전법으로 나가시므로 진 일이 없다. 과거의 성인들은 먼저 맞았는데 역사가 지나감에 따라 점점점점 그 반대로 되었다. 때린 나라의 후손이 모두 맞은 자의 종이 되고 말았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사실이다. 원칙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이 전법을 취한다. 모두 오해한다. 승공연합의 배후에는 통일교회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승공연합을 앞에 세워서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모두 생각해도 좋다. 우리들이 목적하는 것은 공산당을 어떻게 방비하는가 하는 것이며, 통일교회는 아무래도 좋다. 통일교회가 멸망해도 그것을 이루면 된다.
하루에 세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통일원리는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종교가 멸망해 가고 있는데. 그것을 방비하자는 것이다. 2대 목표를 내걸고 일하고 있는 것이 통일교회인 것이다. 통일사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전법은 무엇인가. 공산당처럼 때리고 점령하자는 것이 아니다. 선의 입장에서 맞을 경우에는 멸망하지 않는다.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비유를 들겠다. 두 명의 형제가 있다. 만 20세의 형과 10세의 동생이 있다. 그런 경우 부모는 나이든 형과 매일 의논을 한다. 그러나 그런 형이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은 동생을 때린다면. 아무런 나쁜 일도 하지 않았는데 손을 댄다면, 그 즉시 부모가 형에게 희망을 걸고 있던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동생 쪽을 돕게 된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왜 동생을 괴롭히는가? 무엇이 나쁜가? 거기에 반발했을 때는 영원히 잘라 버린다.
그러므로 선악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먼저 피해를 입힌 쪽이 악이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피해를 입힌 경우에는 악으로 끝난다. 이것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 그 나라가 공격을 받았을 때는 공격한 나라가 공격받은 나라에게 지배당한다. 그 원칙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교회의 식구 가운데도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있다. 가인, 아벨이 있다. 피해의 동기가 되는 사람은 가인인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천사장은 아담 해와에게 피해를 주었다. 피해를 먼저 끼친 사람이 악인 것이다. 피해를 입힌 것이 선인가 악인가?
사람을 보는 데도, 미소를 지으면, 기분 좋은 모습을 하는 그런 모습은 모두 바라본다. 기분 나쁜 인상을 하면 악이다. 그러므로 마주칠 때는 반드시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숙여야 한다. 이것이 무서운 전법인 것이다. 이것이 선악의 분기점이다. 얘기를 할 때도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이 다르다. 한 사람은 봄과 같은 분위기에서 기분 좋게 지저귀는 작은 새처럼 머리를 숙이며 얘기한다. 그런데 상대는 교만한 모습으로 투덜투덜 말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다. 인간은 웃는 얼굴로 언제나 얘기하고 싶어한다. 입을 열면 노래 부르는, 그런 기분을 가진 사람 중에는 악인이 없다. 피해를 입히는 사람은 악인인 것이다. 피해를 입는 사람은 선인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악의 피해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묵묵히 참으며 그대로의 길을 계속해 가게 되면, 악을 범한 모든 것을 싸우게 해서 상속케 하는 멋있는 길이 있다. 이것을 예수님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알아보니 그렇게 되어 있다.
지금부터 2천년 전에 그러한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나 예수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선악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의 사상
종교인은 봉사를 하면서 모두를 기쁘게 한다. 그런 것이 선의 길인 것이다. 예수님은 무서운 사상을 가졌다. 로마의 병사에 대해서, 자기에게 창을 겨누어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기도드린 그때가 천지의 모든 존재가 눈물을 흘리면서 내심으로부터 영원의 승리를 칭송할 수 있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굉장한 분이었다.
서른 살이 된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 이 정도의 젊은 나이의 예수님, 자식도 없고 결혼한 일도 없는, 단지 도망 다니는 남자였다. 초라한 사람이었다. 어떤 부락을 방문해도 조반을 차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성서에도 있다.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으려고 했으나 열매가 없었다. 저주받아 말라 버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가엾은 생활을 한 사람이 예수님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에게도 둥지가 있는데,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처럼, 슬픈 정도가 아닌, 비참한 남자였던 것이다. 친구도 없을 뿐더러 어머니도 있을 까닭이 없다. 아무것도 없다. 공허하다. 하야시 시혜이(林子平)의 하이꾸(俳句)가 있지, 죽고 싶지도 않지만 살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하야시 시혜이가 좋은가 하면 어처구니 없는 사나이다. 어딘가 다른 것이 있다.
예수님도 그렇게 죽어 갔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나라도 인정하지 않았다. 제자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한 남자라면 어떻게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권을 만든 중심적인 창시자가 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그렇게 했겠는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절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은 후세에 역사적으로 칭송받을 수 있는 길을 지켜 나온다. 만민을 포용해서 세계권을 넓혀 온 것이 역사의 사실인 것이다.
4대문화권의 그 사상이, 종교가 현재의 문화권의 배후가 되어 있다. 민족이나 국가주의를 넘어서라. 일본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세계인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통일사상은 여러분에게 가르친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가르친다. 통일교회보다 세계를 사랑하라. 통일교회의 문선생보다 세계를 사랑하라. 이것이 선생님의 가르침인 것이다.
하나님을 해방하는 날까지 가자
선생님도 세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 선생님의 관심은 세계이다.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선생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선생님과 다르다. 선생님은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관심의 표적은 세계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세계는 아무래도 좋다'고 하며 선생님에게 관심을 가진다. 이렇게 되어 있다. 이것은 틀린 것이다. 그것도 한편으로는 타당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선생님이 망할 경우에는 세계의 갈 길은 막혀 버리고 만다. 그래서 선생님과 같은 사상을 여러분들은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분이 세계로 나아갈 지름길을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열어 준다. 여러분이 세계로 빨리 가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그것이 선생님의 목적인 것이다. 선생님이 도움받기 위하여 여러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위해 우리들은 태어났으며, 세계를 위해 우리들은 통일교회를 만들었으며, 세계를 위해 우리들은 일본을 무대로 해서 훈련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하고 일본에서 죽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훈련하고 세계에서 죽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통일사상이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한 발 더 나아가 공산주의보다 높은 사상인 천주주의는 무엇인가? 이것은 만민 해방을 목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까지 해방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심정의 세계가 아니면 안 된다. 심정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부모이므로, 자식이 해방되지 않는 이상 부모는 해방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심정의 역사를 만들자. 심정의 전통을 세우자. 심정의 세계를 만들자. 그러므로 내용이 달라야 한다.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자.
우리들은 역사적 하나님의 심정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현세적인 소원을 이루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심정, 그것만을 우리들은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심정을 알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가 보다 더 원해 온 가치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 얻은 것을 하나님에게 아무 대가 없이 돌려드려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도 훌륭한 아들딸이라 하면서 품어 줄 것이다.
축복은 싫다고 하며 도망을 가도, 발길을 멈추게 하여 돌보아 준다. 그러한 심정의 세계를 우리들이 지니고 있다면, 역사적인 하나님은 어떤가. 하나님은 현세에서 이 기준을 해결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생애를 바쳐서라도 하나님의 슬픔이 될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생명을 내던지고 하라! 이렇게 세계의 주장이 혼란한 때에 두손을 들고, 휘말릴 것 같은 탁류의 한가운데 서서 새롭게 하나님이 소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 드린다면, 역사적 심정을 가지고 그렇게 해 드린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그것을 우리들은 원하고 있다.
세계로 가는 통일교회
미국 사람을 일거(一擧)에 아프리카 사람의 생활권에, 세계의 여러곳에 떨어뜨려 버리면 그 재력으로 세계는 즉시 천국이 된다. 세계의 재원의 60퍼센트는 미국이 가지고 있다. 일본은 비교도 안 된다. 역시 미국은 큰 나라이다. 하나의 주(州)라도 일본의 10배 이상 되는 것이 있다. 이것을 볼 때 작은 섬나라에서 태어났지만 큰 미국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적인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통일사상인 것이다.
지금부터 일본 사람을 미국에 데리고 가서 멋있는 일을 시키려고 한다. 매일 의원들과 만나는 활동도 시키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다.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기분 좋을지 모르겠으나 부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오늘 공항에 내려서 다시 왔다. 일본에, 일본에서 문선명이라고 하면 기분 나쁘게 생각할 사람이 많이 있는데, 소수의 통일교인만이 선생님을 필요로 한다고 하는 기분 나쁜 생각을 하면서 공항에 내려서 여기까지 왔다. 올 때도 길이 막혔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고 브레이크를 거는 것을 가만히 보면서 '예, 예' 하고 와서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못하다. 여러분들은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일본을 위해 죽고 싶은가, 세계를 위해 죽고 싶은가?「세계를 위해….」정말인가?「예」죽을 때는 어떤 식으로 죽고 싶은가? 화려하게, 세계를 구하기 위한 전장(戰場)의 한가운데서 시원스럽게 잘 죽고 싶은가? 탄약이나 운반하면서 유탄(流彈) 속에서 죽고 싶은가?
영어 할 수 있어? 일본은 말이 형편없어. 우선 영어공부를 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 영어를 공부하려면 누구보다도 입을 많이 움직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것을 준비해 왔다. 입을 많이 움직이는 운동을 한다면 빨리 말을 익히게 된다. 그렇지? 하루에 한마디밖에 말하지 않는다고 하면 10년 걸려도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그러나 싫어도 하루에 백만 번 좔좔 말한다면 수개월이면 상당히 익숙해진다.
언어를 습득하는 데는 1년이나 2년은 반드시 필요하다. 2년간 무엇을 시킬까? 학교에 가서 공부한다고 해봤자 별수 없다. 교육을 받아서, 연습을 해서 습득하는 것이 보통의 방법이지만, 우리들은 실천을 통해 훈련하면서 배운다. 3년 걸리는 것을 1년에 하라. 2년이면 미국에 6년 동안 가 있는 것 이상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해 가지고 동경대학(東京大學)에 보내서 교수단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인 것이다. 여자들도 교수가 되면 시집가기 힘들다. 그래도 괜찮아?「예」무슨 '예' 야? 설마 그런 선생님은 아닐 텐데…. (웃음) 일본에서 준비하게 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지금부터 하고 싶은 것은 빠른 시일 내에 가라데(空手)보다도 우수한 정도술(正道術)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다. 정도술의 이름을, 정도(正道)는 통일교회이므로 통일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겠다. 이번에 돌아가면 계획하여 일본에 누구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래서 훈련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여자에게도 가르쳐 준다. 여자도 사탄세계의 남자 세 사람쯤을…. (웃음)
세계적인 인물이 되라
일본에 태어나서 일본에서 죽는다면 일본적인 인간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에 태어나서 세계에서 죽는다면 세계적 인물이 되는 것이다. 통일사상을 가진 여성들은 배짱이 크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분은 작은 여자지만 거물들이라도 당당히 만날 배짱을 가지고 있지? 이러한 여성들은 일본적인 남자는 싫고, 세계적인 남자가 아니면 상대를 안 한다.
그래서 어떠한 남자도 다 그러한 훌륭한 남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여자는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남편을 맞이한다면, 남편에 비례한 성공의 기준은, 결혼하기 일주일 전과 일주일 후가 전혀 다르다. 여자는 그리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여자로서의 눈매를 갖추면 된다. 여자가 가두에 나가서 캠페인 하면서 '여러분 부탁합니다' 하는 것, 그것이 좋은가 나쁜가? 좋으니까 하는 것인가,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인가? 어느 쪽이야. 「좋아서 합니다」좋아서 한다면 일생 동안 하라고. (웃음) 하는 수 없어서 하는 건가? (웃음)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 대답의 방법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다. 자기는 좋으니까 하는가. 나쁘니까 하는가? 어느 쪽인가? 남자가 꽃다발을 안고 '여러분 부탁합니다' 정말로 꼴사납다. (웃음) 그것을 좋아할 사람 있어?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하는 수 없어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해보면, 거기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는 수 없어서 하지만 실로 그 세계에도 멋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
할 수 없으니까 못한다고 하는 입장에 서는 것보다도 할 수 없으면서도 한다고 할 때, 거기에는 얼마든지 성공의 길이 있으며, 얼마든지 선의 길도 있고 세계적인 길도 열린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한계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가치관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에 의해 우리들은 빼빼 말랐던 사람이 굵직한 사람이 된다. 앞밖에 모르던 사람이 뒤를 볼 수 있게 된다. 전술에 있어서 사방을 여하히 관할하는 능력을 갖추는가에 따라 승패는 결정된다.
왜 그러한 일을 하는가. 일본에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인재를 양성 하기 위해 이런 일을 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여자에게 있어서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 눈물을 줄줄 흘리는 어린아이 세 명, 열 명이 있어도 울지 않을 수 있는 여자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결혼해서 어린아이 셋, 혹은 다섯 가진 때도 남자가 필요하면 동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를 보낸 입장에 서서 혼자서 다섯 명, 열 명의 아이가 있어도 생활문제는 걱정 안 한다고 하는 여자를 만든다.
그렇게 하면 그 남자는 무엇을 하는가. 일본, 혹은 세계를 위해 일하는 남자를 보다 많이 만들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다.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빨리 세계를 복귀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니까 하는 수 없다. 이것에 반대하는 사람 있으면 보따리 싸 가지고 돌아가라. 대답은 간단하다. 하나의 아이가 울어도 어쩌지 못하는 연약한 여자가 되고 싶은가, 남자가 없어도 열 명의 어린아이룰 대학 졸업시키는 것은 문제없다는 자신을 가진 여자가 되고 싶은가? 그러니까 알몸으로서도 결심 여하에 따라서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런 훈련을 하고 있다. 선생님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지금 어디에 갈지라도 누구의 원조없이도 개척해 갈 수 있다.
일본 유학시절의 경험
무엇이든지 했던 적이 있다. 일본에 와서도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했다. 학생시절에 학생복을 노동복으로 갈아입고 하루동안 전신주를 끌면서 긴자(銀座) 거리를 지나던 그때의 일을 지금도 생각할 때가 있다. 주위에는 늠름한 사나이들과 날씬한 여자가 왕래하고, 향기를 풍기며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실로 한평생 잊지 못할 인상을 가지고 있다. 땀을 흘리면서 십자로에 왔을 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스톱' 신호였다. 그것이 가장 원수였다. 그런 기분…. 십자로를 통과할 때까지는 절대로 청색신호가 꺼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스톱' 신호가 떨어지면 큰일인 것이다. 그런 때는 신호대를 단번에 때려부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거기에 서서 그러한 것을 생각하면 안 된다. 무엇인가 쓸데없는 것을 생각해서는안 된다. 그런 '스톱' 신호가 나면 선생님은 배를 내밀고 중앙에 왕래하는 사람들을 땀을 흘리면서 바라본다. 그러면 그들은 싫은 표정을 하고 지나간다. 그것은 재미있는 인간의 전람회인 것이다. 그것이 선생님에게 있어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해보고 싶다. 선생님은 시나가와(品川)의 빈민가를 휩쓸은 적이 있다. 그런 경우, 선생님이 그런 일을 했다고 해서, 여러분들도 그런 일을 한다면 큰 문제가 된다. 히피(hippie)의 임금님이 태어날 수도 있다. (웃음) 일본의 전 경찰이 동원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일이 선생님에게는 비상한 가치관이 되어 왔다. 여러 가지 일을 해보았다. 인간의 쓰레기와 같은 제일 밑에서부터 인간의 최고 영광의 입장까지 모두 연구해 보았다. 어디에 가도 친구가 생긴다. 선생님은 한 끼쯤 먹지 않아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생각도 되지 않는다. 그런 관념이 강하다. 그런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역시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환경에 부딪쳐 그것을 뚫고 나가 목적점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때는 노동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또는 어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며, 부두에 나가서 무거운 물건을 메는 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레도 끌지 않으면 안 되며, 리어커도 끌지 않으면 안 된다. 자전거도 타지 않으면 안 된다. 자동차도 타지 않으면 안 된다. 또는 걷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때로는 선생님은 이러한 일을 한다. 선생님이 다까다 바바(高田馬場)에 있었다. 선생님은 시나가와(品川)에는 상당히 관계가 있으므로 자주 왕래했는데, 비가 내리는 날 같은 때는…. 이건 뭐 아가씨들이 새침떼기 같이 해 가지고 쑥 빼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옷이 젖었을 때에는 일부러 아가씨의 옆으로 간다.
기분 나쁜 눈짓을 한다. 그것은 나쁜 마음을 해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저 여자는 틀림없이 이렇게 할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두번 째는 이렇게, 세번째는 이렇게, 몇 퍼센트 들어맞는지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다. 어떤 때는 발을…. 그러면 틀림없이 이렇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얼굴 모습을 보고 저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 했는데, 틀림없이 그렇게 나왔을 때는 기분이 좋다. (웃음) 그렇게 연구하는 것이다. 계획대로 되어 가는가 하는 것을…. 그렇게 되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다. 내가 진 것이다. 그런 것을 많이 연구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면 곧 캐치(catch)한다. 여러분들을 보기만 해도 바로 안다. 보는 즉시 '아! 저 사람은 어디가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얼굴에서부터 전체를 쭉 훑어 보면 이 사람은 어디가 모자란다. 코가 이렇게 되어 있구나, 어깨가 이렇게 되어 있구나, 귀가 이렇게 되어 있구나, 즉시 캐치한다. 그런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약혼시키는 데도 3백여 쌍을 열 시간 이내에 짝지어 버렸다. 그러므로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 녀석. 혹은 이 여자는 교육이 안 되어 있구만. 만일 내가 그의 형이나 오빠라면 어떻게 할까?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학비를 벌어 대는 그의 형님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스스로 반문해 보는 것이다. 또는 '아버지이면 어떻게 할 것이고, 남동생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그런 입장에서 그 사람을 보고 싶었는데 그것에 낙제다' 하면 기분이 나쁜 것이다.
자신이 비에 젖어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고 할 경우에는, 자신을 위하여 누군가가 그렇게 되었을 경우에는, 자기 가정에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때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처신을 생각지 않고 그 사람을 돕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심정세계의 의리가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많이 행하고 체험한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여자들에게도 어림도 없는 일을 시킨다. 사실은 믿을 수 없는 것은 남자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기분이 나쁘다면 보따리 싸서 돌아가도 좋다. 머리를 숙이고 쩔쩔 매는 그러한 지도자의 방법으로서는 교육을 할 수 없다. 당당한 것을 갖지 않고서는 교육할 수 없다. 돌아가고 싶어 여기에 왔는가,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여기에 왔는가?
이번에 선생님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선생님은 나이가 오십 몇 살쯤 되었으니까, 수염도 기르고 있을 것이며, 몸짓도 느릿느릿하고, 얘기도 이러이러하게 점잖게 할 것이고…. 이런 것은 기분 나쁜 것이다. 지금의 때는 스피드시대이다, 선생님은 옛날에는 말이 빠르지 않았었다. 말을 느리게 했다. 일본에 와서부터 일본말을 배우면서 일본인과 1분간에 누가 더 많이 말할 수 있는지 경쟁을 했었다. 지면 선생님은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를 시작해 가지고 일본말을 사용했다. 지금도 이렇게 말하는 데는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짜 가지고 말하지 않으면 사실 안 되는 것이다. 이젠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야기하더라도 이렇게 빠른 템포의 말을 하게 된 것이다. 훈련이 필요하다. 한국말도 그렇다. 매우 느렸다. 30분 가량 얘기를 하는 데 있어서 더디게 하면 천 마디밖에 못하던 것을 어떤 때에는 배 이상 빨리하여 2천 마디 이상이나 이야기하였다. 그러므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은 창백한 남자가 아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때때로는 남의 일을 가로맡아 싸움도 했다. 나쁜 놈이 좋은 사람을 괴롭힐 때는 선생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자진해서 '이 자식 뭐야? 그랬다. 청년시대에는 그런 기질도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만들고 싶다. 사방팔방으로 적응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톱 가지면 무엇이든지 다 만든다.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디에 가든지 양복만 벗어 버리면, 옷을 갈아 입으면 무엇이든지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연구한다. 그것을 일주일 동안 계속한다면, 그 환경에서 자연히 친분 관계가 맺어진다. 그것을 보면, 이것은 전체로 보았을 때 어디가 잘못되었는가 즉시 안다. 그러한 상호관계를 가지고 훈련을 해 간다면…. 원리는 어디에나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도, 일본어를 말하면서도, '덴쮸'라고 하면 천주(天宙) 하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전신주(電柱)도 있다. 하늘의 주사도 천주(天注)이다. 그것도 생각한다. '메시아'라고 하면 메시아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에 관련된 그런 말을 생각하면서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응용적인 인격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방면에 선생님은 굉장히 발전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 발전적인 무엇이 원래 그렇게 되어 있는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훈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삼각관계, 사각관계 그것은 어떻게 되는가? 평균적으로 되어 있는 것인가? 그러한 방향에 있어서, 과거의 분야에 있어서, 선생님은 발전성의 소질을 가지고 있다. 방안에 들어가면 장식이 어떤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 곧 알아 버린다. 그러나 언제나 평균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물건을 보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 보지 않는 척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남의 말을 분별하면서, 분별하지 못하는 척하는 것이다, 분별하지 못하는 척하는 거기에 무엇인가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만나 주지 못하겠으니 그냥 가라고 하기도 한다. 죽어 가는 사람이 있을 때는 죽지 않는 사람은 제쳐 놓고 죽어 가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정상적인 길이다.
일본 땅에 태어났으니 일본만을 위해 죽으라고 하는 가르침을 받은 일본인이 전부라면 일본은 망하게 된다.
영원한 통일교회
통일교회의 가르침이 통일교회를 위해 살고 죽으라고 하는 가르침이라면 통일교회는 멸망한다.
통일교회는 태어날 때부터 세계를 위해 천주를 위해 태어났으며, 천주를 위해 죽는다고 하는 각오를 가지고 있으므로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 이것은 선생님의 철칙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어떠한 중심이 서 있는가, 거기에 어떤 부족한 것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면서 나아간다면 그 길은 반드시 세계에 남을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목적을 가지고 나아간다. 꽃다발을 안았다. 여러분이 한 남자, 한 여자로서 아무리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초라한 모습이 역사를 움직인다. 심정의 눈물을 흘리는 동기가 될 것이다. 그 한 장면은 그 역사의 영화가 될 것이다. 그 역사의 표제(標題)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서 그것을 다시 실증시키려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동의해서, 다시 그것을 흉내내는 수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개개인은 실천의 대응자(對應者)라고 하는 것이다. 패배자와는 다르다. 실천의 대응자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러하다. 미국의 링컨 센터의 단상에 서는 것, 그것은 역사적으로 서는 것이다. 일언일구(一言一口),모든 것은 역사의 파동을 타고 넘어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선을 긋고 새로운 원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참석한 사람은 역사적인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각해진다.
주역(主役)이 심각하게 되지 않으면 청중도 심각하게 되지 않는다. 같은 것이다. 강한 자가 나왔을 때는 강한 그것에 상대적으로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일본에 파동을 일으키고 여러 가지 어려운 활동의 선두에 서서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은 세계를 돌고 다시 올 때에 반드시 세계의 운세를 모두 끌어당겨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하였었다. 선생님이 이제 모두 끌어당겨 가지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일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을 모두 짊어지게 하고 채찍을 쳐 달리게 할 것이다. 세계의 운세를 모아다가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의 운세를 모아 무엇을 할 것인가? 앉아서 바라볼 것인가? 그것은 좋은 일 같지만 참으로 하늘땅을 위하여 나쁜 일인 것이다. 세계의 운세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이 그 운세를 대표적으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노력에 십배 백 배를 가해 일을 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일본인들이 세계 운세고 뭐고 나는 모른다고 한다면 선생님에게만 승리의 운세가 같이 할 것이다.
이제는 미국에 갈 때보다 더 큰, 그 이상의 힘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면 일본에서 일등한다. 일본에서 일등하여 세계적이 된다면, 일본에 반대하는 나라가 있을 경우 그것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되겠군.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일만 한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기뻐하신다. 그것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저 평범하기만 해 가지고는 있으나 싶으나 마찬가지이다. 여러분들 달콤한 것 마시고 싶은가? 달지도 쓰지도 않은 것을 마시고 싶은가? 단 것이 없으면 쓴 것을 마시는 것이 인간의 자극적 체험으로 보아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자극이 필요하다. 자극이 없으면 발전하지 않는다. 10년간에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 10년 안에 자극이 끊어졌을 때는 그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생님이 어떻게 일본인에게 자극제를 주사하느냐? 이것이 자극된 경우에는, 부풀어 날아가는 경우에는 얼토당토 않은 곳으로 날아간다. 다만 기분 나쁜 때가 있다. 선생님이 선동의 어버이라는 것이다. 사회에서 본다면 선동분자일 것이다.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선동분자라 해도, 무슨 분자라 해도 좋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 좋다. 그것이 선생님의 목적인 것이다.
열심히 활동하게 된 미국식구들
그러므로 이번에 돌아올 때 선생님은 내심으로 크게 굳게 다짐한 바가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통일교회가 해왔던 것 이상으로 낫트를 조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 나사를 깎을 때는 기합을 넣어서 하지 않으면 무딘 나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쓸모없는 나사가 되어 버려요. 그러므로 때는 가까와 왔으므로 기합을 넣어서 조이지 않으면 안 된다.
메시아와 우리들이라고 하는 제목과는 다른 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문제의 중심은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해도 최후에는 정리하여 그것에 대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번에 여러분들은 미국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이야기하려면 3개월 이상 걸릴 것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몇십년 걸린다. 그러니까 조금만 말하면, 선생님이 무엇을 하였는가 하면 미국에다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르고 왔다. 최초에는 미국인 책임자들도 선생님이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하면 멍청하니 있었다. 공적인 집회에서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하니까 책임자들은 아무런 감동도 없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래도 꿈쩍하지 않았다. 미국식으로 해야지 동양식으로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차를 준비해 가지고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날아가 링컨 센터를 직접 계약하고 왔다. 돌아오니까 어떤 사람은 반대하며 선생님의 방식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하였다. 절대 안 되는 것을 절대 되게 하는 것이 선생님의 즐거움의 하나였다. '하라'고 한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사람을 모아 수련회를 했다. 수련생을 돼지우리와 같은 곳에 모아 수련회를 했다.
잔소리 말라는 것이다. 그 반면 선생님은 여러 가지 얘기를 해준 것이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의 일을 말해 주었다. 어린 사람들이 참으로 훌륭하였다. 알게 되면 고개를 끄덕인다. 잘 모르니까 수근거릴 수밖에. 최초의 한달 동안은 거기에 뽑히면 가장 싫은 모습을 했다. 자기가 불리우면 곤란하다고 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장면이다. '이 운동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정연하게 뽑아내 수련회에 참석시킨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올 때는 모두 부풀어서 왔지만 듣고 보니 그렇지 않게 되었다. 다들 정신차려 가지고 매일 선생님과 함께 얘기하고 훈련한즉 당장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리고 선생님이 가르치는 식은 한국식이 아니다. 동양으로부터 온 선생님이니까 동양의 습관, 관념이 들어 있는 선생님이니까, 한국으로부터 왔으므로 무엇이 어떻다든가 하는 말은 기분 나쁘다. 선생님은 한국 사람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으로부터 지금까지 박해를 받아온 사람이다. 선생님은 한국 역사에 없는 주의를 제창하고 있다. 풍습, 풍속, 모두 한국식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문선생이 자기 나라를 침략한 과거의 적,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새로운 사상으로 청년들을 가르쳐 일본 사상을 흐지부지해 버리려고 한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소문을 듣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다. 설명해서 납득한다면 그들은 움직이게끔 되어 있다. 기동대를 만든다면. 일본사람들은 곧 경찰을 생각해 낼 것이나 그 경찰은 일시적인 기동대지만 우리들은 영원한 기동대인 것이다. 기동대를 편성해서 뉴욕을 한바탕 휩쓸어 버렸다. 선생님은 상당히 유명해졌다. 이렇게 해서 쭉 한바퀴 돌고 선생님이 돌아올 때에는 그들이 눈물을 흘리고 여러 가지 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 하라'고 하면 뛰어 다니고 있다. 미국은 금년에 그렇게 하면서 내년에는 4백 명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후년에는 2천명 동원이다. 이렇게 선언하고 왔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다른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그것을 할 테니까 힘을 다하라.
'여러분들이 하지 못하면 아시아가 원조한다. 아시아가 하지 못하면 유럽이 원조한다. 그러므로 3년 계획을 1년으로 단축하자'고 했다. 그리고 유럽을 돌면서 각국에 다들 배치하고 왔다. 만일 50명 있으면 분배한다. 이렇게해서 8백 명을 내년 1년 안에 미국에 원조하기로 결정했다. 그래, 일본은 몇백 명 가량 할 것인가.
독일에 지지 말라
독일에 지겠는가? 독일은 독일만으로 기동대를 만들었다. 캐러반대(Caravan 隊)를 만들어 멋있는 새 버스를 사서 활동하도록 해서, 지금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다.
독일의 책임자인 폴(Paul)은 히틀러 시대에 훈련 책임자를 한 그런 남자다. 그는 일방의 기준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정(情)도 무엇도 아무것도 없다. 그런 히틀러의 부하였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활동하는 독일에게 오야마다(小山田)를 중심으로 해서 하는 일본이 져 버려도 하는 수 없다. 그러나 생각만은 지고 싶지 않겠지. 지고 싶은가, 지고 싶지 않은가?「지고 싶지 않습니다」지게끔 되어 있다. 우선 체격으로 하더라도, 달리더라도 틀림없이 진다. 힘으로 하더라도 지게 되어 있다. 그래도 지지 않겠어?「예」어떻게 해서 지지 않지? 독일의 책임자는 하루에 평균 한 끼밖에 먹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 단식하면서도 선두에 서서 나팔을 불며 활동하는 것이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것은 힘들고 힘들어서 할 수가 없는 것인데도 책임자가 그렇게 하니까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일본도 그렇게 되어 있는가? 일본의 책임자들은 그렇게 되어 있나? 그것을 보면, 아직도 정상 궤도에 올라 있지 않다. 독일에게 지고 싶은가, 이기고 싶은가?「이기고 싶습니다」
지금은 서양문명권을 동양문명권이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이다. 그런 운세가 와 있다. 그것이 통일사상이다. 그런데 통일사상이 서양사상에 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고 싶은가, 지고 싶지 않은가?「지고 싶지 않습니다」 질 것인가. 지지 않을 것인가?「지지 않습니다 대답은 훌륭하다. (웃음)
미국으로 가자
그러면 미국 원조는 일본에서 몇 명 하는가? 「8백 명입니다」8백 명으로는 일본의 수자로 본다면 지는 것이 된다. 독일에 가면 독일 식구는 150명이다. 그 150명에서 3백 명이 분담되어 있다. 독일은 마치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한 사람에게 전도의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자신이 있느냐, 없느냐고 말하면 '자신 있습니다'라고 하게끔 되었다. 이기는 방법을 선생님은 가르쳐 주고 싶은데 일본 사람에게만은 가르쳐 주고 싶지 않다. (웃음)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마음이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기겠어?「예」
일본에서는 3천 명, 5천 명, 1만 명을 미국에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되면 일본 외무성이 뒤집어질 걸. 그리고 미국의 법무국에서도 다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직행을 하지 않고 유럽으로 돌아서 들어간다.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면 모두 문제가 된다. 동서남북으로 갈라져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 모른다. 만일 선생님이 미국의 각 주에 1천명의 용사를 배치하자면 5만 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5만 명만 배치하게 되면 미국의 상원의원은 선생님의 작전대로 선출된다. 여러분도 가겠나? 어디로? 미국, 미국의 어디로? 만일 1천 명씩 배치했을 때에는 굉장할거라. 그것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1977년에서 1978년에 걸쳐서 이것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섭리는 큰 손해를 보므로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일본 작전, 아시아 작전보다도 미국 작전을 서두르고 있다. 그래서 여러분을 미국에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선생님의 생각인 것이다. 일본 사람은 몇명쯤 보낼까? 일본 사람 몇 명쯤? 그것을 준비하라.
기동대의 사명
그리고 일본의 기동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졌겠지? 반 가량 되나? 반가량이면 이제 동경에 있는 통일용사를 반 가량 동원한다면 4백 명 될까? 지금 선생님이 돌아갈 때까지 4백 명 이상 동원해야 한다. 4백 80명은 동원해야 한다. 마이크로 버스 두 대씩. 그래서 한 사람의 순회사에게 40명씩 붙여서 일본의 50현(縣)을.
일본은 작다. 그러기에 한다면 공산당보다 멋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지 빠르게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경우 문제가 되겠지? 지금까지는 순회사 한 사람이 어정어정해 왔지? 이제는 그렇지 않다.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교육을 받고 들어온 사람을 놓쳐 버리고 있다. 그러면 안 된다. 들어오는 사람들 모두 기동대로 보내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젊은이로서는 그것이 쾌청한 가을에 느끼는 기분과 같이 기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을 한다면 참으로 멋질 것이다. 이것을 하면, 40명을 데리고 다니면 교회가 없어도 언제나 150명은 집회가 성립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인재 복귀는 배로 증가해 간다. 그래서 무엇을 하는가? 6개월간에 걸쳐 원리를 마스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지 훈련이다. 가두에서 매일 노방전도한다. 가정방문을 시킨다. 모든 분야에서 훈련시킨다. 산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6개월이 지나면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험을 친다. 2개월에 한 항목씩. 원리를 3등분해서 1항목을 가지고 1반, 2반, 3반 순으로 교육한다.
평균 70점 이상이 되지 않으면 1반에서 2반으로, 3반으로 옮겨가지 못한다. 통일교회는 누구나 좋다고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걸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교회의 이 코스를 통과하지 않으면 장래에 중심적인 책임자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간부들. 오야마다(火山田)군에게도 구보끼(久保木)회장에게도 시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정한 공식을 체험한 주류의 전통이 서지 않는다. 그것은 선생님의 생각인 것이다. 그러므로 6개월간은 죽더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섭외 관계, 전도관계, 재정관계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돈은 한푼도 없다.
돈은 언제나 보급해 주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장사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가지 일을 시킨다. 이것은 살아 있는 수련소인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멋지게 된다. 그래서 우수한 사람은 현(縣)에 지부를 만들 때, 그 사람을 거기에 배치해서 세 사람을 전도했으면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반드시 끌어내어 계속해서 훈련을 시킨다. 이렇게 하면 인재를 복귀함과 동시에 요원을 양성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면 훌륭하다. 지금부터 통일교회는 입체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우리의 사업 조직이 일본에서 10년 이내에 경제복귀를 완전히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지금은 초라한 모습이지만. 여러분들 10년 후를 보라. 세계는 그렇게 보고 있다. 미국도 지금부터 10년 후를 보라. 지금부터 1977년, 1978년까지는 5년밖에 남지 않았다. 5년 동안에 선생님은 미국을 움직여 갈 자신이 있다. 미국이면 미국에 달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금년 가을에 또 미국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는 한국이나 일본에서 기반을 닦았다. 그러므로 미국으로 활동의 거점을 이동하면서 세계권으로 연장시키려고 기동대를 편성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동대를 편성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적인 부흥단을 만든다. 유명한 교수와 유명한 부흥사를 함께 묶어서 각국에 기동대를 만든다. 3백 명 이상의 기동대를 가진다면 각국에서 언제라도 순회하면서 부흥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판을 중심으로 해서 부흥단을 보내서 이름만 붙여 준다면 어디를 가도 회장(會場)을 초만원으로 만들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유명한 세계적 학자를 데리고 온다면 유명한 신학자, 교육자, 또 다른 여러 학자들은 그 사람을 맞이해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므로 모두 관심을 가지고 부탁하려는 사람도 많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을 만들어 가면서 세계적인 신학교를 만들 것이다.
모두 미국에 가고 싶어한다. 그러니 미국에 다 데리고 가서 통일사상을 연구하게 하고, 우리들은 경제적으로 얼마든지 원조하겠다는 자세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멤버를 어디에서 낼 것인가? 일본에서 내려고 한다, 일본에서. 동양문화를 중심으로 해서 서양문화와 가장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이 가장 가깝다. 서양에서 가장 가깝다. 미국에서 보아도 그렇다. 문화기준에서도 가깝고, 사회관계에서도 가깝다. 그래서 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을 선두에 세워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것이 선생님의 마음이다.
일본 사람은 다이아몬드 덩어리
그렇게 하는 데는 일본적인 훈련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미국 사람과 유럽 사람에게 선생님은 결의를 시켰다. 그들이 일본 사람에게 질 것인가? 그들이 일본 사람에게 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일본 사람은 서양 사람에게 질 것인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어?「예」
그러나 어떠한지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지. (웃음) 승패는 부딪쳐 봐야 알겠지만 강한 자가 이기게 되어 있다. 강한 자가 이긴다. 일본 사람은 왜 작은가? 양은 같지만 질로 따진다면 야무지니까 작지. 서로 부딪쳤을 매는 양이 많아 크더라도 작게 뭉쳐진 것에게 깨지고 만다.
다이아몬드의 덩어리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그렇게 될까? 될 수 있다면 자신을 가져라. 선두에 세워 줄께. 이렇게 선생님은 각국에서 약속을 했다. 미국에서는 미국을 선두에 세운다. 영국에서는 영국을 선두에 세운다. 독일에서는 독일을 선두에 세운다. 일본에 오면 일본 사람을 선두에 세운다. 그러나 해보는 것이다.
시험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함께 발전하게 한다. 발전하게 해서 다 선두에 서게 해 준다. 그렇지만 일본이 진다고 하게 되면 끝장이다. 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 태평양에 뛰어들 것인가? 그런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쪽을 그런 결의까지 하게 선생님이 시켰으므로 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어떻게 할래? 대답을 못 하잖아!「하겠습니다」한다는 것은 저쪽도 한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여러 가지 방면으로 보아 지게끔 되어 있다. 여러분들은 말도 통하지 않지? 실천장은 어딘가 하면 미국이다. 미국을 무대로 해서 한다. 저쪽은 말이 통한다. 여러분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지게끔 되어 있지 않은가? 그래도 지지 않겠는가?「예」
일본 식구들이 선두에 서라
그러므로 이 세상에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기적을 일으켜 이겼을 경우에는 미국 사람은 피할 구멍이 없다. 어떤 일이라도 하게 한다. 이런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 복귀의 길이 막힌다. 미국에 일본 식구들을 보내 선두에 세워 볼 것이다. 그래서 금년 동안 120명을 동원할 것을 약속하고 왔다. 일본식구가 120명이면 1만 2천 명이 될 것을 생각한다. 일거에 사람이 필요하면 대표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에 가고 싶겠지? 그러나 보내는 데는 선생님의 체면이 있다. 보내서 부끄러운 일이 있으면 큰일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골라 뽑지 않으면 안 된다.
구보끼(久保木)회장이라든가, 오야마다(小山田)라든가는 선생님이 식구를 미국에 보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의논했겠지? 사람이 모자라는 데 끌어가려는 선생님은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고 얘기하지 않았는가? 했겠지?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겠지? 우선 솔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생각한 적이 없다면 정말로 식구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시집을 보내는 딸을 가진 부모는 딸을 보낼 때에 자기 이상으로 사랑해 주는 곳으로 가게 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보내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간부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해서 절대로 마이너스는 되지 않는다. 만일 일본 통일교회가 4백 명 이상을 해마다 미국에 보내고도 남는 입장에 선다면, 그 4백 명의 배후의 부모들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해 보아도 마이너스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형제 자매, 사촌간까지라 해도 백 명, 2백 명, 수백 명의 가족들도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가면 어떠한 가정에서도 3,4명씩은 불러 갈 수 있다. 미국에서 '통일교회가 좋으니 당신들도 통일교회에 들어오라. 내가 말하는 것처럼 하면 올 수 있게 되니 빨리빨리 들어오라'고 편지를 쓰면 그 형제 자매들은 즉시 오게 된다. 그렇게 해서, 그런 인연의 기반이 있는 사람을 다시 보내면 틀림이 없다. 그런 작전을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먼저 간 4백 명의 사람들에게 너희들의 친척, 사촌형이라든가 형제들을 아홉 명 끌어 모으라고 하면 어려운가, 어렵지 않은가? 미국에 보내 준다고 하면 모두 그렇게 한다. 그렇지?
일본 청년은 미국에 가 일해 보고 싶어 한다. 그곳에서 살아 보고 싶은 것이 소망이 되어 있다. 이것은 매우 좋다. 그렇게 하는 데는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공식적인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원리를 공부해서 70점 이상의 점수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생님이 옹호하고 통일교회가 보살펴 주게 될 경우에는 얼마든지 들어온다. 그러므로 절대 일본의 교회에는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간부들은 멀지 않아 모두 미국에 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도 현명하신 분이므로 사람을 만들기 전에 먼저 만물을 만들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현명하기에 사람을 보내기 전에 돈을 벌게 했다. (웃음) 돈을 벌어서 유복한 기반을 만들어 맞이하게 된다면 춤을 추며 가게 될 것이다. 세계를 일주하면서 이런 활동을 한다면 일본도 빨리 복귀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살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세계를 상대로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독일에게 지면 안 된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훈련이다.
개미처럼 일하자
일본에 '월월화수목금금' 이라고 하는 노래가 있었다. 그 이상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에 선생님이 돌아갈 때 어떠한 명령을 해도 불평하지 않고 따른다고 해야 한다. 불평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 솔직이 손을 들라. 그럼 불평하지 않을 사람은 손을 들라.「예」고마워? 아리가도오? '아리가도오'라는 말은 개미가 열 마리라고 하는 뜻이다. 그 말은 감사의 말이지만 실제로는 좋지 않다. 개미처럼 일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일본인은 근면한 사람들인 것이다. 일본인은 열심히 활동한다. 개미가 열마리라는 인사말을 하니까, 허리가 개미처럼 될 때까지 일하라는 것이다. 탕감복귀노정을 걸고 있는 통일교회이기에 그렇게 열심히 일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다. 나중에 구체적으로 그것을 얘기해 주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말을 들으면 모두 가슴이 부풀어 잠도 오지 않게 될 것이다. 우선 우리는 한다고 하는 결의를 해야 한다.
원수 사탄
원 말씀으로 돌아가자. 사탄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사탄은 메시아의 원수이며, 예수님의 원수이며, 하나님의 원수이다. 사탄을 없앨 경우에는 복귀섭리는 즉시 이루어진다. 사탄을 쫓아내려면, 사탄이 어떠한 죄를 범했는가를 알아서 하나님 앞에 직접 참소할 수 있는 권위있는 한 사람이 지상에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그와 친하든가 사이좋게 된 사람이어야 사탄을 이길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역사적으로 굴복하지 않았던 그 내용을 가르쳐 주고, 현실에서 굴복시키지 못했던 그 내용을 가르쳐 준다. 미래에 있어서는 사탄이 따라올 수 없는 것을 심판기준으로 세운다. 그리하여 사탄을 무저갱(無底坑)의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지상은 평안한 세계가 된다. 양심을 중심으로 한, 육심(肉心)과 싸울 필요가 없는 때가 올 것이다. 그것 믿겨져? 육심이 양심과 싸우지 않는 자신이 된 경우 그것 생각한 적이 있어? 그런 사람이 된다. 직접 주관권에 들어가면 육심은 양심을 따르게 된다.
마음이 완전한 플러스가 되었을 때 마음이 완전한 마이너스의 위치에 선다면 이것은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지 않으려 해도 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한 위치에 서야 하는 본래의 인간이 타락에 의해 보잘것 없는 결과가 되고 만 것이 오늘의 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이제, 사탄을 중심으로 만족에 희망을 품는 것은 8푼이 남자와 여자가 하는 짓이라는 걸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절대 필요하다. 메시아는 사탄을 굴복시켜서 사탄 세계의 주권을 탈환해 가지고 그 기반 권내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거기에서 혈통전환을 시킨다. 태어난 사람이 다시 혈통전환을 어떻게 하는가? 길은 하나밖에 없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사탄이 주관하는 떫은 감밭을 하나님이 만일 주관하려고 한다면 사탄이 참소하므로, 하나님은 자기쪽에서 관리할 수 있는 감밭을 분별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우향우 해서 방향을 전환시키자는 것이다. 부정의 길을 더듬어서 하나님편으로 돌아오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분별해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에게 많은 나라가 있어 사탄이 권력을 휘두른 것은 세계 각국을 통합하여 권력을 휘둘러 온 것은 아니다. 민족 단위를 중심으로 해서 한 국가라고 하는 기준을 중심으로 해서 하늘을 향해 반대해 온 것이 사탄의 권력기반인 것이다.
하나님이 인도한 이스라엘
그러므로 하나님편도 사탄편으로부터 분리시켜 우향우 하게 해 가지고 새로운 국가와 세계권을 만들었다. 그것이 종교이다. 종교 가운데서도 중심 종교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유대교이다. 국민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선민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이스라엘 민족인 것이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것은 승리했다는 증명의 표시이다. 승리는 누가 했나? 야곱이 했다.
야곱은 천사를 굴복시켰다. 그리고 에서를 굴복시켰다. 그런 승리권을 가지고 거기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관할기반을 넓힌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의 기반을 선별한 그런 권을 만들어 국가 기준을 준비한 터 위에 메시아를 보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메시아가 왔을 때 사탄국가 기준보다 강한 주권국가를 만들었다면 거기에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인류세계를 직접 주관했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하나님이 직접 인간을 지도할 수가 없다. 사탄과 하나님의 양쪽이 아직 해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편에 설 수 있는 개인도 없거니와, 가정도 없고, 종족, 민족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찾아 세워 사탄 국가보다 나은 기준에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절대로 그것을 주관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탄은 천사장이 타락해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천사장을 주관할 수 있는 주인의 자식인 것이다. 하나님은 주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권을 가진 한 나라보다도 더 나은 입장에 서지 않는 나라를 가지고 그 아이들과 그 주인이 권위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그 이상의 나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 이상의 나라, 그 주권이라는 것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때에 끝나고 마는 그런 주권이 아니다. 영원히 계속되어야 할 주권인 것이다. 그래서 그 국민은 다른 나라를 끌어내리는 국민이 아니다. 절대적인 자신의 나라를 원하는 국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어떤 사탄권내에서도 공격을 받으면 점령당하는 나라가 아니다. 점령하는 일은 있지만 점령당하는 나라는 되지 않는다.
그러한, 사탄 국가보다 나은 국가를 만들어 냄으로써 비로소 사탄보다도 높은 입장에서 하나님과 이 지상에서 직접 대화할 수가 있게 된다. 그 이하에 있어서는 대화할 수가 없다. 그 때문에 4천년간 이스라엘 선민을 준비했다. 그래서 유대교를 중심으로 한 신정일치(神政一致)의 세계를 이루고자 했다.
그런 사상권을 세운 후에 메시아를 보내서 메시아와 이스라엘과 유대교를 하나 만들어 로마를 굴복시키려고 했던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왕으로서의 중심적 인물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지 않고 산지사방(散之四方)하여 버렸으니까 발판이 없어져 버렸다. 그리하여 최후에는 십자가에 달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 발판으로서의 기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다시 열두 제자를 중심으로 해서 섭리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국가기준을 중심으로 해서 메시아를 보내마고 약속했지만, 더 나아가 국가기준보다 더 나은 세계적 기준을 향해 발전해 나온 것이 기독교이다. 기독교의 발전의 목표는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지만, 영육이 함께하는 가족이라든가, 씨족이라든가, 민족, 국가를 얻을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천주(天宙)를 상징하고 있다. 마음은 영계(靈界)를 상징하고, 몸은 지상(地上)을 상징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육신이 사탄에게 침해받고 범하여져서 십자가에 달린 조건이 있으므로, 지상의 기대(基臺)는 사탄에게 빼앗긴 입장이 되었다.
다시 오시는 메시아가 세계를 하나로 만들려면
그 반면에 부활해서 영적 승리기반을 얻은 기준에서 영적 세계를 발전시켜 그 기반을 넓혀 온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문화권이다. 아무리 세계 각국에 기독교인이 많고 기독교를 국교로 한 나라가 많다고 해도, 그 나라 자체가 하나님의 영원한 발판으로서 이스라엘 선민권과 같은 국가 기준의 입장에 섰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국가기준은 산산이 흩어져 있다. 이것이 현재 기독교의 입장인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어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면, 첫째 아담이 실패했던 것을 복귀해야 하며, 둘째는 아담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온 예수님의 실패했던 것도 복귀해야 한다. 예수님은 무엇을 실패했는가? 민족과 교회를 하나 만들지 못했다. 하나 만들어 사탄의 주관권을 타도하고 주관하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실패였으므로, 그것을 다시 되돌려 승리권까지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섭리는 지상 기준의 기대(基臺)를 만들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재림주가 오시는데, 만일 크리스찬을 중심으로 해서 민주세계의 각국이 하나가 되어 재림주님을 맞이한다면, 이것은 진정으로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교와 같은 입장에서 일시에 세계적인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할 경우에는 예수님에게 반대했을 때와 같이,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수천년간 쫓기고 쫓겨서 사탄세계에 밟혔듯이, 기독교는 물론 세계적 기독교 문화국가, 자유주의 국가는 반드시 사탄에게 침해받는 입장에 떨어질 것이다. 이것이 원리의 결론이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2천년의 역사를 통해 탕감의 길을 더듬어 온 것은 현세에서 민주주의 세계와 기독교를 대표한 재림주를 보내서 하나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재림주가 오실 때 그 기준에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반대했을 경우에는 큰일나게 된다. 재림주는 세계를 대표 해서 특정된 지역에서, 그 국가의 민족성을 중심으로 해서 태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그 나라의 기독교는 세계를 대표한다. 그 나라의 주권은 세계를 대표한다. 그러한 입장이다. 그러한 입장이 통일교회로 말한다면 한국이며, 한국의 기독교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통일교회를 반대했다고 하는 것은 통일교회만을 반대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섭리 전체를 반대한 것이 된다. 그렇다고 하면, 역사적 사명을 완성시키기 위해 세운 교회가 재림주를 맞이 하지 않고 반대한 것이 되므로 모든 기독교는 여기에 걸려들고 만다. 그 배후의 문화권, 즉 나라까지 전부 걸려 버린다. 그러면 어떠한 결과가 될 것인가? 사탄세계에 휩쓸릴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국가와 기독교 국가는 공산당에 휩쓸려 들어가는 단계에 와 있다.
3차 7년노정의 의의
2천년의 탕감역사를 거쳐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이 독립하여 국가권을 유지한 것과 같이, 앞으로 2천년의 역사를 다시 탕감해야 되게 된다면 큰일이다. 세번째는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2천년의 역사를 탕감하려고 하는데 대신 3차 7년노정이란 것을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제1차 7년노정, 제2차 7년노정, 제 3차 7년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되어 있다.
지금의 세계 국가들을 볼 때 미국도 공산당에 휩쓸리기 쉽게 되어 있고,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다. 모두 사탄권에 쫓기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그 싸움의 표적, 목적을 잃고 어떠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자유주의 국가권에서는 모두 모른다. 그러한 때가 오면 그때가 말세인 것이다. 그 반면에 통일교회는 개인 복귀, 가정 복귀, 종족 복귀, 민족 복귀, 이렇게 복귀의 기반을 넓혀서 조건적으로는 이미 세계의 횡적 기반까지 만들었다. 선생님이 3차 순회노정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에서 지금까지 20여 년간 싸워 나오면서 얻은 그 실적을 그대로 횡적으로 세계로 연결시키는 운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돌아온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에 들렀지만 일본의 식구에게는 되도록 말을 안 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미국으로부터 들어왔다. 이번의 순회노정은 출발 당시 한국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나올 수 없는 입장인데도 나왔다. 일본에 들어 오는 것도 어려운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잘 되어 일본에 들어왔다. 그리고 카나다에도 갈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갈 수 있도록 되었다. 또한 카나다로부터 미국에 들어가는 길도 완전히 막혀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 갈 수 있게 배후에서 하나님이 움직이고 계셨다. 드디어 목적지인 미국에 갔으니까 여기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국가를 대표해서 유대교의 기반을 이끌고 로마에서 대연설을 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이번에 미국이라든가 유럽에 대해서 선포공작을 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리의 움직임에 반대해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이제는 이 통일교회의 미스터 문이라고 하는 사나이가 아무리 미국 전역을 밟고 돌아다녀도 반대하는 자가 없었다.
영국도 이렇게 하고 돌아오고, 독일도 그랬었다. 이렇게 해서 돌아오는 중이다. 그래서 일본에 들렸다. 일본도 이제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대집회를 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는데, 집회를 하는 것보다는 여러분들을 훈련시키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의 2천년 탕감기간을 하나님께서 20년으로 축소하여 역사를 전개시키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이 20년간은 세계 역사에도 없는 혼란기이며, 아무도 모르는 복잡한 과정을 빠져 나가는 시대인 것이다. 이것이 승리의 결과를 얻기까지 조종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선생님의 사명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의 일선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목적으로 하는 선생님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방비하는 것만으로도 급급하다. 고뇌가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다 세계의 운명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후퇴할 수 도 없다. 전진이다! 선생님이 지금 53세, 반세기 이상의 연령이 된 것이 쓸쓸하기도 하지만, 청년시기라면 이것을 보다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나이가 들고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분들에게 무엇에서든지 지지 않는다. 주먹으로도 지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지겠는가, 지지 않겠는가? 지지 않는 길은 한 가지 있다. 실력만 있으면 지지 않는다. 단순히 힘만 가지고는 이기지 못한다. 아버지와 씨름해서 한번 이겼다고 해서 그것으로 언제나 이기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신뢰하는 실력을 가지면 노부모도 자식을 따르게 된다. 그 길밖에 없다. 이기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부모가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그 길에 있어서 부모 이상의 일을 한다면 지지 않게 된다. 질 것인가/ 지지 않을 것인가?「지지 않습니다」선생님 보다 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 이외의 길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선생님 이상의 일을 할 것인가? 자신 있어?「예」
복귀의 길은 가르쳐 주어 가는 길이 아니다. 복귀의 길이 가르쳐 주는 길이라면 가르칠 방법이 있겠지만, 복귀의 길은 가르쳐서 가는 길이 아니다. 복귀의 길이 이루어 가는 길이라고 하는 것을 알면 가르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만일 가르쳐서 가는 길이었다면 하나님은 수천년 전에 이미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알았어요?「예」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인류의 부모가 타락한 것이므로 부모의 사명자 이외의 사람은 복귀의 길을 더듬어 갈 수가 없다. 복귀의 길을 책임지고 개척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부모가 되는 사람은 누구하고도 상의할 사람이 이 지상에는 없다. 타락하기 전에는 자식이 있었나? 없었지?「예」
복귀의 길은 이루어 가는 길
복귀의 목적은 타락하기 전의 입장이 되는 것인데, 타락하지 않았던 때에는 자식이 없었다.
우리들은 타락한 자식들이다. 그러므로 의논의 상대가 한 사람도 없는 입장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논하고 싶으면 천사와 의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 이외는 없다. 그것이 이 지상에 오시는 메시아가 가야만 하는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국가세계가 복귀되는 기준을 세우기 전까지는. 의논이 허락되지 않은 길을 가게 되는 분인 것이다. 가르쳐 주어서 가는 길이었다면 이미 수천년 전에 복귀되어 있을 것이다. 가르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참부모의 사명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가르칠 수가 없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길을 책임지고 가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실로 외로운 분인 것이다.
어떠한 고생스런 길이 있어도 인간을 의지하고 가는 길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개척해서 승리의 기반을 만들면 가르쳐 준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축복은 자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손을 위해 나누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행복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한다면 선생님보다 나은 자는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하나의 길이 있다. 선생님은 살아도 자신이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자신이 죽는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자신이 먼저 죽어 가는 경우에는, 선생님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한 것이 된다. 그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최초에 가르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것이다. 그런 성서의 말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타당한 것이다. 알았어요?「예」
누구보다 더 고생하겠다는 신념을 가지라
그러면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각자가 원해서 죽음의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해 출영하는 것 같은 심정으로 '선생님은 쉬십시오'라고 해야 한다. 그 길이라면 선생님보다 앞설 수 있겠지만 원리의 길에 있어서는 앞설 길은 없다. 그러므로 선생님보다 더 고생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 고생하면 좋다는 것이다. 고생하겠어?「예」선생님은 여러번 감옥에 갇혀서 고생을 했다. 지금까지 고생하지 않은 날이 없다. 지금도 무리하고 있다. 그것을 안다면…. 선생님보다 더 고생시킨다면 모두 달아나겠지? 달아날 것인가, 달아나지 않을 것인가?「달아나지 않습니다」사탄도 선생님을 보고는 감탄하고 있다. 저 남자는 저런 쓰라린 길을 끌려 다녀도 불평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남자라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그래? 동경대 졸업생이 지식을 가지고 '이것은 무엇인가' 라고 예리하게 비판해도 모른다. 여러분들은 비판해 보아도 모른다. 지금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십년 후면 모두 꼭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죽고 나서 후회하기 쉬운 길이 통일교회의 길인 것이다. 현세에 있어서는 기쁨이라든가,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괴로운 일, 고통스러운 일, 후회하기 쉬운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일을 시켜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정말인가?「예」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예」손을 들었으므로 한 대 때려서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때리느냐 하면 사탄을 때린다. 결의했지? 세계의 운세를 일본에 모두 내리고 갈까? 한국에 반쯤 나누어 주고 갈까? 어떻게 할까? 좋다고 해도 곤란하지 않은가?
선생님 경호가 문제이다. 공산당은 와글와글, 조총련이 노리고…. 선생님은 공산당이 싫어하는 존재가 되어 있기도 하고, 일본의 우익도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사방팔방으로 방비하면서 두 배의 활동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에는 나타나지 않는 편이 도리어 낫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가? 그러므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안고 발판을 넓혀가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두 배의 괴로움이다. 그러나 거기에 입체적인 두 배의 가치가 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뚫고 넘어 수행해 가야 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사명이다. 알았어?「예」사탄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데는 자기 혼자서는 되지 않는다. 선생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이 필요하다. 사탄을 굴복시킬 때까지 선생님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메시아가 필요한가? 완전복귀 될 때까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완전히 복귀되지 않았으면 메시아는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해방. 가정의 해방. 종족의 해방, 민족의 해방. 국가의 해방을 부르짖는 것과 더불어 세계의 해방을 치켜 들면. 세계 만민이 그 피부의 색깔, 인종, 문화의 배경의 차이를 초월해서 하나의 목적권을 향할 준비가 됐다고 깃발을 들면, 태양이 동쪽에서 얼굴을 내밀면 모든 만물이 거기에 인사하려고 가장 선두에 서려고 하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다. 산천초목도 그런다. 나무도 모두 태양에 인사하기 위해 동쪽을 향한다. 생명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향하게 되어 있다. 모든 사물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인간도 물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세계 만민이 통일교회와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방향을 취해서 기뻐하게 될 때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것이 태어나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
우리들은 초민족, 초국가 기준으로 해서 어떻게 단일민족을 중심으로 하나가 된 것 이상 만들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해서 그것을 소망해 왔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우리 통일교회를, 선생님을 중심으로 새로운 아벨의 교회를 만들었다. 교회는 있지만, 나라는 없다. 유대교가 있을 때 이스라엘 민족만 있고 나라는 없었듯이 역시 통일교회를 중심으로 한 나라는 없다. 이것이 문제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하나가 되어, 이것이 가인 아벨이 되어 협력하지 않으면 복귀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세계와 기독교도, 가인 아벨이다. 우리들은 아벨의 입장에서 교단을 만들었다. 아벨 교단을 만들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성교회가 가인의 교단인 것이다. 이것을 쳐 버릴 수는 없다.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된 독립국가로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대권을 생각할 때, 기독교를 때려 부수어서는 안 된다. 거기에서 우리는 한층 더 고생을 해서 기독교와 민주주의 세계가 가인 아벨로서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사탄세계보다 유력한 입장에서 굴복시키는 입장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거꾸로 되었다. 쫓기고 쫓기는 현세인 것이다. 그 가운데서 우리들이 아벨 교단이라면 가인 교단은 누군가? 기독교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상대로 우리들은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그런 입장에 서 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의 나라의 기반을 어떻게 해서 타고넘을 것인가 하는 작전을 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의 현실적 입장인 것이다.
한국은 매우 쫓기는 환경에 처해 있다. 그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올해에 김일성은 60세가 된다. 60세가 되면, 사탄은 60수 이상을 넘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4월 15일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가 문제다. 이제 상대적 세계의 운세를 통일교회에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공산당의 책임자들이 미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더 우리들이 미국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것을 하기 위한 것이 이번 선생님의 제 3차 세계노정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의 금년도 표어 '통일전선 수호' 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최후의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통일교회는 있지만 통일교회를 보호할 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일본이 손쉬운가. 미국이 손쉬운가, 한국이 손쉬운가? 한국이 손쉽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한국의 현 정세는 통일교회와 하나가 되도록, 마주 대하도록 섭리가 밀고 있다. 지금 그런 단계에 와 있다. 안팎으로 함께 그렇게 되어 있다. 기독교도 그런 단계에 와 있다. 통일사상이 없으면 구할 길이 없다고 하는 것을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최고의 기준에서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고개는 넘는다. 그렇다면, 만일 나라가 있을 경우에는 우리들의 선교사는 그 나라의 가장 낮은 한 국민의 발판을 의지해서 가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상대로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뜻 앞에 설 경우에는 즉시 그 나라를 법적으로 구할 수 있다. 멋있는 일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전도하는 시대가 아니다. 나라가 구원되어 간다. 그것이 한 나라, 두 나라 이렇게 수를 더해서 넷을 넘고 7개 국가가 하나가 되면, 세계는 한꺼번에 거기에 휘말려 든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놓고 본다면 4천년의 역사과정을 통과해서 준비한 그 기반이 무너져 간다. 예수님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갔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구원의 길을 더듬어 오는 사람들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 그 가는 길이 막힌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그 내심에 있어서 아픔을 느끼었을 것인가? 얼마나 비참한 아픔을 느끼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을 것인가? 그것을 우리들은 헤아려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입장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통일교회는 있지만 통일의 나라는 없다. 그러므로 '통일전선 수호' 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통일교회를 보호하자고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소문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에 영향을 미치고 한국 정부와 우리 통일교회를 일체화시키는 힘을 가하는 작전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금후에 우리들은 싸워서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복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문제이다. 사탄세계는 때려서 점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법은 쫓기고, 맞으면서 자연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늘을 따라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권위를 복귀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전선을 수호해야 할 1972년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현세에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나라를 찾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 나라 없는 사람이 본적을 가질 수 있는가? 본적지가 없다. 일본인은 일본 나라가 있으니 일본에 본적지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주권국가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국민으로 등록이 안 된다. 종교 등록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복귀가 이루어지려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통일 발전의 공식이 되어 있다. 가인이나 아벨만으로는 구원되지 않는다. 가인을 구해 주어 앞에 가인이 앞서 나아가도록 밀어 주고, 뒤에서 방비권을 만들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이 원리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가인 아벨이 하나되지 않으면 부모를 맞이할 길이 없다. 종교는 아벨의 입장이고 그 나라는 가인의 입장이다. 그러므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과 같이 역사적으로 국가 주권자는 종교를 핍박했다.
종교를 중심으로 해서 나라를 자연굴복시켜 승리의 국가를 이루지 않으면 천국은 지상에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을 이루려고 했던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아벨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신앙의 목표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 나라의 백성이 되지 않으면 그 자녀로서 자유자재로 만민, 혹은 만물세계에 자랑하며 사랑받을 길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라 없는 자는 언제나 공격을 받게 된다. 불쌍한 입장에 서게 된다. 어이없이 당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이 발판으로 할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문제이다. 만일 한국보다 미국이 먼저 그러한 나라가 된다면 우리는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이 일본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디를 중심으로 해 왔는가 하면, 선생님이 생애를 걸고 싸워 온 곳이 한국이다. 그런데 한국이 반대했다. 가장 선두에서 반대한 나라이다.
선두에 서서 반대한 나라가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세계의 나라들이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는 수 없이 또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인 것이다. 불쌍하다. 그런가 하면 세계 정세를 볼 때 우리는 지금 긴박한 위기일발의 시점에 서 있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그 한가운데서 어떤 목표의 기준을 결정짓지 않으면 가는 길이 막혀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전선을 수호해야 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올해의 목표이다.
만일 통일용사가 세계에 몇 억 있다면 그들을 38선에 동원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김일성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나라가 있다면 우리들은 거기에서 죽을 필요가 없다. 봉사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작전은 지금까지 전면적으로 맞는 것이었다. 맞고 점령해 왔지만 마침내 하나의 하나님 나라를 중심하고 세계에 기대를 만들어 출발하는 때에는 악을 치게 된다. 정의의 권위를 전면적으로 적응시킨다. 그런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지금까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능하시고 절대적인 하나님일지라도 그 능력을 펴실 수가 없었다. 사탄 주관권내에서 하나님이 섭리를 펴시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권위가 침해를 받는다. 지상에 하나님이 주관할 하나의 나라를 구해서 수많은 종교를 통합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라고 하는 것을 지금의 종교계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나님의 선한 발판을 만들어 하나님이 지상을 바라보시며 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도록 해드리는 교회인 것이다. 이 지상에 본향의 땅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사실 수 있는 기점을 만들어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사시겠는가? 영계에 살지 않으신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는 곳에 살고 싶어하실 것이다. 영원히 침해받지 않는 편안한 자리에서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이 부모의 소망인 것이다. 헤어져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하나님과 인간은 헤어져 살아왔다. 그 원한이 풀리자면 하나님이 누구든지 주관하시면서 당당히 주체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이 땅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탄주권 이상의 국가를 이상으로 하면서 섭리해 오신 것을 지금까지의 종교는 알지 못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사는 나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망명자인 것이다. 하늘로 부터 보내어진 스파이다. 간첩인 것이다. 밀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서 자유스런 행동을 할 수 없다. 환경적으로 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방책을 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그런 작전을 해왔다. 만약 때가 온다면 그것을 일제히 할 수 있다.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이번 순회노정 기간에 한국의 중요한 식구들이 7명이나 영계에 불려 갔다. 더러는 탕감을 받아 가 있다. 선생님은 그것을 걱정하면서 출발했던 것이다. 이 기간에 3명 이상은 갈 것으로 미리 생각하고 떠났었는데 7명이나 갔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탕감의 뜻도 있다. 왜 한국이 탕감을 받아야 하는가? 전장 (戰場)의 선두에 선 자가 탕감을 받게 된다. 죽게 된다. 같은 이치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한국에서 본다면 일본 땅에 있는 여러분들은, 고생도 하지 않고 이러한 혜택권에 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없다. 묵은 감정은 아무것도 없다. 사탄세계의 감정을 남긴 곳은 사탄의 터전으로 돌아가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초민족적으로 하나의 이상국가를 찾아오셨으므로 미국인도, 영국인도, 독일인도 과거에는 전부 서로 원수였지만, 여기에 들어오면 하나의 형제자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죽더라도 서로를 위해야 한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여러분들이 죽게 되면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죽어 간다. 그것은 비참한 운명인 것이다. 교회와 나라가 하늘법으로 하나가 된 그 주권하에서 죽는다면 국장을 거행할 수도 있는 훌륭한 입장이 될 것이 아닌가?
영원의 역사를 두고 세워지는 전통이야말로 그 나라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것은 한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 만민의 해방을 위해, 천주복귀의 전통의 기반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존귀한 용사가 있다면 그 무덤에는 꽃다발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가치를 백 퍼센트 알아 주는 나라가 없다. 그러므로 불쌍한 것이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렇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악의 주권보다 선의 주권을 바로 세우고 그 기반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혈통전환을 하자는 것이다. 혈통 전환이 무엇이냐 하면 축복받는 것을 의미한다. 혈통은 무엇에 의해 심어졌는가 하면 사랑에 의해 심어졌다. 그 악의 혈통은 아담 해와가 가정을 잘못 만듦으로 인해서 심어졌던 것이므로 통일교회는 축복가정을 만듦으로써 그것을 뽑아내자는 것이다. 그것은 탕감복귀 과정의 수많은 조건물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거기에는 전환식이 있다. 이러한 가정은 어디까지나 본국을 위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본국이라고 해서 한국이 본국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나라는 아직 멀리 있다. 그러나 우리들과 접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2차 7년노정
이미 최후의 종점에 와 있다. 이것을 전면적으로 포위해서 최후에는 일거에 복귀시키는 길을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다. 한국뿐만이 아니고 한국의 승리기대를 확보함과 동시에 아시아적, 세계적 기대를 여하히 전체적 승리권으로 넓힐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지금 미국에 대한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그 목적을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행한 그 기준을 중심으로 한다면…. 만약 한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한국을 뒤로 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해도 어디에서나 활동할 수 있는 그런 기대가 만들어진다.
완성권이라고 하는 것은 소생, 장성권을 넘은 기준을 말한다. 제 2차 7년노정은 장성기를 말하는 것이다. 제2차 7년노정을 끝내면 선생님은 어디에든지 갈 수 있다. 제 1차, 제2차 권내에서 세계적인 기반이 만들어지게 된다. 지금이 그 3년노정인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제 3차 7년노정을 출발하는 3년 준비기간도 된다. 그래서 3년간의 활동은, 그러니까 1974년까지는 제3차 7년노정의 3년 준비기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3년간 준비해서 미국에 사회적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미국을 방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를? 미국의 사탄 세력을.
일본은 빨리 선생님을 비롯해서 한국 식구들과 함께 행동하고, 하나가 되지 않으면, 어쩌면 일본 국가는 해와 국가로 서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 자체도 아담 국가로 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아담 국가가 된다. 왜냐하면 가인 아벨을 중심한 섭리를 연결시켜 가인 세계가 상대기준이 되어야 했으나, 그것을 반대하여 그 나라 자체가 그 사명을 하지 못했을 때,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호응하는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에 그것을 다시 적용할 수 있다. 그렇게 되어 선생님이 한국의 간부와 일본의 간부들을 전부 데리고 미국에 가면 미국을 중심한 세계적인 가인 아벨권이 형성된다.
그렇게 될 때는 미국이 아담 국가가 되고 영국이 해와 국가가 되고 독일이 천사장 국가가 된다. 그렇게 되기 쉽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멸망하고, 한국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를 중심으로 해서 빨리 복귀한다면, 복귀가 끝났을 때는, 한국도 일본도 빠른 방법으로 세계로 나아간다. 그러니까 그 기반을 만들면 선생님이 3차 7년노정의 세계적인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자칫 잘못해서 일본이 반대하게 되면 일본의 통일교회는 다 황야로 가게 된다. 한국의 통일교회도 가게 된다. 중국의 통일교회도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하나가 되어 소생적인 아담, 해와, 천사장이 되는 것이다. 장성기적인 기반을 그대로 거기에 제쳐두고 새로 발전시키게 되는 것이다. 아시아의 정세가 긴박해져서 우리들이 선두에 서서 다 피를 흘리는 그런 위험한 일이 있으면, 선생님은 교체 작전을 할지도 모른다.
선두에 서라
선생님은 그런 일을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준을 만드는 데 해와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복귀노정은 해와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식구들을 미국에 파견해야 한다. 그것이 원리적이다. 그 기반을 중심으로 한국도 가고 중국도 가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문제가 있어도, 아무래도 좋다. 미국이 일본과 의논없이 중공과 만났으므로, 일본도 오른쪽으로 돌아서 소련과 손을 잡게 되면 큰일이다.
지금 일본 공산당은 소련측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대만이 대소 정책을 고치게 되고 중공이 움직여 나오면, 대만이 소련을 끌어들인다고 할 때 일본의 장래는 큰일이다. 선생님은 벌써 이런 문제를 놓고 말해 왔다. 소련도 중공도 남진정책과 동진정책의 두 갈래를 다 써 가지고 인도네시아에 경제 원조를 하게 된다는 말을 해 왔던 것인데 그것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동남아시아를 방어할 길이 열리지 않고 막혔을 때는 그것이 매우 중대한 일이 된다. 그렇게 되어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이번 싸움에서 소련이 그랬었다. 지금 인도양에는 소련 함대가 출정할 기회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서 대만이 어떻게 될 것인가? 대만이 소련과 손잡을 경우에는 블라디보스톡으로부터 일본과 지나해를 통해서 남태평양의 아시아 연안과 인도양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면 블라디보스톡의 소련 함대는 정점 증가된다.
지금 일본은 급히 서둘러서 많은 무기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에는 또 대만이…. 그러나 대만 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좀 더 가게 되면 알게 될 것이다. 대만에서 장경국의 부인(러시아인)이 전에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그녀가 방송에 얼굴을 나타내고 있다. 소련이 대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배후 관계가 되어 있다. 내적으로 그런 운세에 빠져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금후의 장래는 암담하다. 그렇게 느껴진다. 아시아에 있어서 소련이 일본만 손에 넣게 되면 아시아 적화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큰일이다. 그러므로 일본을 가까운 장래에 군비 확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전략 전술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된다.
대만은 그대로, 장개석이 죽을 때까지 포기해 두어도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 만일 그렇게 되면 태평양이 막히는데, 싱가폴을 중심으로 해서 대만해협이 막힐 경우 일본은 어디로 갈 것인가? 석유 수입이 끊기는 경우에는 2 주간이면 완전히 혼란이 일어날 운명에 놓여 있는 일본은 어떻게 해서라도 대만과 인도로 들어오려는 제3의 물결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선생님이 여러 가지로 말하는 것은 그것이다.
인도가 문제다
승공연합이 관심을 두는 곳은 인도이다. 인도의 방어는 시급하다. 만약 아시아가 적화되더라도 6억 가까운 국민을 가지고 있는 인도는 방어하고 봐야 한다. 중국에 지지 않는 쌀 생산을 하고 있다. 그들은 3모작을 하고 있다. 토지는 중공보다 좁다고 하더라도 중공 이상으로 풍부한 기반이 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번에 인도에 갔을 때, 미국에서 선교사들을 빨리 파견해야 한다고 했다.
인도를 중점적으로 작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도는 중공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 틈새를 노리는데 지금이 가장 찬스라고 하는 것을 보고 왔다. 과거에 이런 문제를 보았을 때, 일본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안 됐지만, 아시아에 있어서 이들의 방파제의 사명을 일본 통일교회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용돌이치는 이런 시점에 태어났다고 번민하지 말고 멋있는, 가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고 생각을 고쳐 먹고 이 사정을 놓치지 않도록. 때를 잃지 않도록 활동해야 한다. 이것이 일본의 사명이 아닌가? 여기에서 일본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을 위해 단식운동을 했다. 공원 앞에서 단식을 했다. 왜 이처럼 하는가? 이것은 우리들이 세운 조건으로나마 하나님의 소원을 상속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빠른 시일내에 일본의 활동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식구들은 각오를 새로이 해서 일본의 통일교회의 발전을 위하고 세계의 통일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선생님의 안이다. 금후의 되어 갈 일을 놓고 일본에서의 여러분의 활동실적을 어떻게 외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만들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여러분은 불쌍한 입장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불쌍한 경지를 극복하고 타고 넘을 때에는, 승리의 깃발은 여기에서 올릴 수 있다. 승리의 합창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거기에 가지 않고 멸망한다면 비참한 것이지만 극치에 서서 승리를 획득했다면 멋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으로 일본 식구들을 모아 미국에 보내자. 일본은 해와 국가이니까, 타락은 해와로부터 했던 것이므로.
메시아에게 필요한 개인
메시아와 우리들이라고 하는 문제에 있어서, 메시아가 선의 주권을 복귀하기 전에는 그 국민이라고 하는 것은 떫은 감과 같으며 그 떫은 감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 떫은 감이 단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단감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면 접목을 해야만 한다. 완전히 달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는, 그러한 일을 하는 통일교회를 동원해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여러분들도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를 짊어질 만한 사람, 그 나라를 위하여 필요로 하는 사람, 그 나라를 살리는 민족은 일본에 있어서는 우리 통일 민족인 것이다. 통일민족은 국가와 세계를 복귀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얼마동안은 앞을 내다보아 두라고'하는 것이다. 1973년 1974년이 문제다. 우선 그 나라를 차례차례 만들어 나간다면 세계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어 가는 것이다.
전도사는 대사(大使)가 차례차례로 되어야 한다. 대사는 전도사의 책임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나라의 대통령을 전도한다면 그 나라는 한꺼번에 복귀된다. 그렇게 3개국 이상 복귀되면 세계는 전도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 원수 국가와 원수 국가가 하나가 되고, 많은 민족과 민족이 연합하여 잘살게 된다고 하는 세계의 새로운 무엇, 그런 국가가 생겨난다면 싸우지 않고 세계는 거기에 말려들게 된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기성교회를 빨리 복귀시키고 공산주의를 빨리 분별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는 우리들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메시아를 위해 필요한 개인이 되라. 그런 개인을 요구한다.
축복가정의 책임
여자는 남자에게 지지 말라. 지지 않는 입장을 해 가지고 계속해 가지 않으면 함께 걸어갈 수 없다. 남자를 의지해서 가려는 여자는 세계에까지 데리고 갈 수 없다. 생각해 보라.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갈 테니 남편은 어디에 가도 좋다고 해야 한다. 메시아가 필요한 가정을 만들어라. 가정을 만들어 부부가 함께 사랑하는데 있어서, 사랑이란 함께 뺨을 맞대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천만년 헤어져 있어도 누구보다도 두터운 사랑을 가지고 사랑할 수가 있다. 헤어져 봐야만 정말로 그 가치를 알게 된다. 함께 있으면 부인이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지 어쩐지 모른다. 헤어져 보면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남편도 그렇다.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지 어떤지 헤어져 보지 않으면 모른다. 때때로 헤어져 보는 것이다. 3년이나 10년이라도 좋다. 검은 머리가 흰 머리가 되도록 상대를 고대하면서 상대를 사모하는 부부 라면 영원의 세계에 가서 두 사람은 태양빛과 같은 실체적인 부부가 될 것이다. 극과 극의 힘을 통과하는 그러한 자력선을 가진다면 대단한 것이다. 해어진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필요로 하는 부부가 되고 메시아가 필요로 하는 자식을 낳아라. 나라의 전통을 가진 나라의 아들이 되라. 주권자의 전통을 따르라.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교육을 시키는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하는 데도 '귀엽다. 귀엽다'고 하는 일방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아, 하나님이 수천년간 복귀노정을 통해 사랑받을 수 있는 남녀를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려 왔는가? 해야 한다. 그 심정을 가진 사랑하는 자녀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세계가 생겨 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때도 바르게 자라. 그렇게 생각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을 때에 유언하는 부모가 아니고 살아 있을 때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자식들이 잘 가르쳐 주었다고 감사하면서 죽어가는 부모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유언할 때 바빠 가지고 '아, 이러이러하면 안 된다'고 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 비밀을 함께 알고 나누어 가져서 함께 이루어 놓은 실적을 바라보면서 더욱 잘해 달라며, 기뻐하면서 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부모인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필요로 하는 부부가 되라. 그리고 가정을 만들어 자식을 만들고 종족을 만들라. 순결한 혈통을 지금부터 남겨야 한다. 수천년의 역사에서 하나님은 혈통전환을 위해 수많은 희생자를 남겼다.
축복가정은 특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여러분들도 축복을 받고 잘못했을 경우 살 길이 없다. 하나님은, 그런 모습은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만일 잘못된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았다면, 그 자식은 동물원의 먹이도 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무서운 하늘의 법칙을 지켜서 사탄을 완전 방비하고 복귀섭리의 모든 고통을 해결해야 할 것이 우리들 가정의 사명인 것이다. 심각한 문제이다. 선생님은 생명을 걸었다. 예수님은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수천년 동안 크리스찬들은 그것을 목표로 하면서 때를 기다리며 죽어갔다. 하나님은 6천년의 섭리를 해 나오심에 있어서 고생했던 모든 것을 잊지 않으신다. 그리고 지금도 고생하고 계신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은 축복가정에게 바라고 계신다. 그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축복받은 가정은 예수님 이상의 세계에 돌아간다. 예수님이 부탁하고 있고, 소망하고 있다. 예수님이 경의를 표하는 그런 굉장한 축복가정이다. 그런 것을 정말로 알고 있느냐? 여러분들, 지금까지 역사에 남아진 사탄권의 혈통을 일소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새로운, 하나님에 의한 순결한 혈통을 이제 남겨야 한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후손은 몇천 대나 이 혈통을 남길 것인가? 이것이 만일 더러워졌을 경우에는 자식을 낳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런 각오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순수한 혈통, 알겠어?「예」
남자가 결혼했는데 만일 여자가 죽으면 독신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여자도 그렇다. 그러나 자식이 없을 경우에는 축복받은 후손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같은 입장의 사람끼리 맺는 길도 있겠지만, 남녀는 일대일인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볼 때 여러분들의 축복은 무서운 것이다.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 영계에 가 보면 곧 안다. 축복받은 사람은 천국에 갈 길이 열려 있다. 축복받은 사람은 사탄이 참소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가 참소한다. 하나님의 법을 중심으로 해서 볼 때 잘못했을 경우에는 천사장이 이룰 부정한다. 그러므로 모두 원리를 알고 축복받아서 천국에 가면, 영계의 길은 깨끗이 열려 있다. 그러나 가는 데는 고운 옷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발을 헛디딜 수 없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입체적인 책임이 있다.
순수한 혈통을 남기기 위해 우리들은 지금 깃발을 올리고 세계에다 문제를 일으켜서, 여기에서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고 부부가 된 것이 축복 가정인 것이다.
우리들은 공산당보다 무서운 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원리에 위반했을 때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나라가 이루어졌을 때는 헌법을 만들고 법률을 만들어 즉결하는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편에서 탕감하지 않는다. 구원의 길이 없다. 구원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축복가정은 메시아를 위한 가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메시아는 결국 하나님을 위해, 만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계시는 분이시다.
축복가정은 뿌리가 있고 덩굴이 있는 꽃과 같다. 꽃이 핀 후 열매가 맺힌다. 포도의 열매라고 하는 것은 뿌리로부터 모든 양분을 1년 동안 계속 받아온 대표적인 결실체이다.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것을 모든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가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런 가정을 만들기 위해 우리들 스스로 탕감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자. 그리고 새로운 선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종족을 만드는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의 종족을 거느렸으므로 그 종족의 족장이 된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데, 우리들 축복가정은 모두 아브라함 이상의 조상이 되어야 한다. 무슨 조상인가 하면 심정의 조상이다. 심정의 선조를 만드는 것이 통일교회의 근본사상이다. 미래를 바라보고 신앙하고 따라가서 목적에 일치하는 그런 입장이 아니다.
생활을 하면서 심정기준을 세우고 목적을 이루는 곳이 통일교회의 가정이라는 것이다.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 선한 가정이 생겨나지 않으면 선한 종족은 생겨나지 않는다. 선한 가정이 생겨나지 않으면 선한 국가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런 세계도 생겨나지 않는다. 가정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가정이 함께 구원받아야 한다. 남자가 걸려들었을 때는 여자도 같이 갈 수 없다.
두 사람이 공동운명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태어난 것은 누구를 위해 태어났나? 여자를 위해. 여자는 누구를 위해서? 남자를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무릇 자신의 것이 아니다.
남자가 없으면 여자에게 사랑이 있겠는가? 혼자서 사랑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완전한 남자가 되고 완전한 여자가 되어야만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결혼했을 때 남편에게 '정말 나를 사랑하는가? 얼마만큼 사랑하는가? 이만큼 사랑하는가' 하고 묻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천주 이상 사랑한다면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이 있어야만 모든 것을 포괄한다. 사랑은 실로 위대한 것이다. 사랑은 실로 크다고 하겠다.
사랑은 이렇게 큰 것이므로 하나님이 들어오고도 또 남는다. 사랑 없는 마음을 가지고 욕심을 냈을 때는 하나님은 들어올 곳이 없다.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사랑은 자신의 것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사랑, 그것은 잘못되어 있다. 사랑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남자도 그 모양으로 태어났으며 여자도 그 모양으로 태어났다. 지금까지의 상대가 그렇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지금까지의 사랑의 기준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남자가 위대하다고 해도 여자가 있으면 여자에게 안겨서 죽어야 한다. 이런 것이다. 혼자서 죽고 싶은 남자가 있는가? 젊은 사람들, 죽을 때 혼자서 죽고 싶은 사람 있는가? 자신의 형제나 자신의 아내, 아니면 자기의 부모의 품에 안겨서 죽고 싶어하는 것이다. 태어날 때 사랑에 의해 태어나고 죽을 때도 사랑에 안겨서 죽고 싶은 것이 인간 본래의 마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는 것도 사랑에 의해 함께 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이상인 것이다. 한 사람으로는 갈 수 없다.
진실로 좋아하는 여러분들의 부부가 서로 안았을 때 '하나님, 우리 부부는 서로 가장 사랑하는 부부이므로, 지금 사랑할 때 하나님이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는가? 만일 그런 기도를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사랑은 하나님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귀하며, 가장 가치있는 것이므로, 사랑의 현장에서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본성의 소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함께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한다면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사랑은 삼각관계이다. 이 세상의 삼각관계는 파괴이지만,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고는 참다운 동기가 된다. 그것을 일반인들은 모른다. 그러나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삼각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통일교회의 식구도 선생님과 삼각관계를 가지려고 한다.
'저 사람의 성질은 저러하고, 이 사람의 성질은 이러합니다. 이런 성질이 있으니 선생님이 오셔서 한 말씀만 해주시면 나아질 테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한다. 미국 사람도 같다. 서양인도 그렇다. 아내가 있으면 '집의 아내가 어떠어떠한데 한 말씀만 해주시면 즉시 낫겠으니 잠시만 들려 주십시오'라고 삼각관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무리가 있다.
메시아가 만일 이 지상에 오셨을 때 그런 사랑을 하는 부부가 있다면, 그 자녀가 있다면 그들이 보고 싶고 그들과 함께 있고 싶다고 했을 때 기분이 좋겠는가 나쁘겠는가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통일사상에서는 그것을 기분 나쁜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메시아에게 필요한 가정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선하고 순결한, 하나님으로부터 이어받은 전통을 계속시키는 종족이 세계를 지배하는 주체적인 종족이 될 것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기도하는 것이므로, 자식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는 아침 저녁으로 자식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관심을 가지고 위하려는 그 참마음에 대해서 자식들이 감복하여 그 입장을 받아 들이는 환경에서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새로운 종족이 태어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켜야 되는 것이 통일교회의 통일사상의 가야 할 목적인 것이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기준이 통일사상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입장이 되었을 때 메시아가 오셔서, 국가기준으로부터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을 한꺼번에 그 떫은 감을 잘라 버리고 단감에 접목시킨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합동결혼식에 대해서는 부모들이 반대하고 기분 나쁘게 여긴다. 기분 나쁜 일을 하는 문선생이 아닌 것이다. 나중에는 천만번 고맙다고 감사를 표시할 것이다. 알지 못해서 그렇지, 그런 나쁜 일이 생기게 하고, 나쁜 결과를 오게 해 놓고 즐거워하면서 세계적인 활동을 하는 문선생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요구하는, 하나님의 최고의 희망에 부응하는 것이므로 당당히 할 수 있다. 겁내지 않고, 자신을 가지고 할 수 있다. 영계에서, 나라에서 반대해도 당당히 하겠다. 밀어제치고 가겠다는 것이 통일교회의 책임자인 문선생인 것이다.
훌륭한 통일교회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메시아를 위한 나라. 메시아를 위한 교회, 메시아를 위한 가정, 메시아를 위한 개인을 찾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사탄권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로부터 해방된 그런 권을 바라고 메시아를 모시는 승리적인 자신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과 천국에 직통한다. 최단거리로 우리들은 갈 수 있다. 그것은 공상이 아니다. 통일교회는 심정적 이상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우리 나름대로의 원리의 가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국가기준을 이루는 데 있어서 우리들은 명령적, 협박적으로 하라고 하지 않아도 이것을 안 이상은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마음이 달려가는 것과 함께 몸을…. 마음이 달려가는 그 힘이 얼마만큼 강하냐 하면 지금까지의 마음과 다르다. 몸이 오지 않으면 끌어당겨 간다.
통일교회가 어느 단계까지 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여자가 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사러 시장에 간다고 간 것이 결과적으로는 교회에 가 있게 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몸을 자유자재로 지배해서 그 몸을 끌어당기는, 원하는 장소로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때로는 자기는 입을 다물고 있어도 무엇인지 모르지만 입을 벌려서 말을 하게 되고 그 말을 자신이 들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말을 한다, '이러이러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그 말을 들으면 자신의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알게 된다. 그것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 들어가면 거기에 전기 장치를 해서, 마약을 뿌려서, 최면술을 걸어 몇 번이고 돌려서 방향을 전환시킨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다. 문선생은 무엇인가 마술사 같다는 것이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다섯 명 정도의 감시원이 돌고 있었다. 저 남자는 어떤 일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다. 봄이 와서 더워지면, 겨울에 입었던 것을 벗고 가벼운 차림의 옷으로 갈아 입는다. 여름이 되면 그것을 벗으라고 하지 않아도 벗는다. 그것은 명령하지 않아도 한다. 그와 마찬가지이다. 어떤 무서움이 있더라도 통일교회에 오게 되면 자신의 마음이 그것을 느낀다.
통일교회에서 원리의 맛을 알게끔 되고, 맛을 붙이게 되면 그때부터 자신의 부모에게 가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리 훌륭하고 별장 같은 곳에 살고 있어도 마음이 피곤해진다. 먹는 것은 빵조각이라도 좋고, 무엇이라도 좋다. 그것이 너무나 맛있어서 견딜 수 없다. 잘 때는 이불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 이는 없지만, 이의 사촌쯤 되는 것이 돌아다녀도 좋다. 그곳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통일교회를 외양(外樣)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 맛들었을 때는 동경대학(東京大學)이나 그 무엇도 우습게 여겨지며, 이곳으로 달려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부모가 다른 일은 무엇을 하더라도 교회만은 가서는 안 된다고 아무리 부탁하고 아무리 말을 하여도, 그럴 듯하게 생각은 하면서도 발이 자꾸만 이쪽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 보았을 때는 미치광이처럼 보인다. 우리 쪽에서 볼 때는 저쪽이 미치광이이다. 양면이 있다.
가장 잘 아는 것이고, 가장 잘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맛을 더욱 상세하게 깊이 분석해야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미각은 민감한 것이며 둔감한 것이 아니다. 수천년 전에 있었던 것이 심정세계에서는 어제 일과 같은 것이다.
선생님은 그것을 실험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틀림없다. 그런 일은 틀림이 없으므로 누가, 천하 모두가 반대해도 겁내지 않고, 생명을 걸고 당당히 지금까지 그 기반을 만들어 오고 있다. 만일 불완전한 길이라면 선생님은 이미 보따리 싸 가지고 돌아갔다. 그러나 돌아가도 갈 길이 없으므로 계속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머리를 보더라도 누구보다 크다. 가장 큰 모자를 두세 번 갈아 써 보았으나 대자도 맞지 않았다. 머리가 크다. 뇌수로 보더라도 틀리다. 많이 들어가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복잡한 일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데도 자신에게 손해 되는 것 같은 일도 있었다. 이익이 되는 것을 찾고 찾아 생각한 결과, 이것이 좋다고 하는 결론을 냈다. 선생님은 자기의 생각을 다해서 발견하고 그것으로 결말을 얻는 그런 남자와는 다르다. 한 남자가 생명을 거는 일이다. 생명을 폭탄처럼 사용하면, 날아가서 죽으려고 하면 폭탄 이상의 힘이 어디에서부턴가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일을 많이 해왔다. 참으로 재미있다. 참으로 멋있다. 선생님은 자극적이다.
여러분들은 자극을 느끼는가? 만일 자극을 느끼지 못하면 무한한 자극을 느끼도록 노력하라. 그래서 선생님은 피곤하지 않다. 선생님은 어제도 몇 시간 자지 않았다. 하루종일 얘기해도, 선생님이 많은 자극적인 얘기를 하면, 여러분들은 자기도 모르게 상대적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 몇 시간쯤 되었지? 벌써 여섯 시간이 지났군. 여섯 시간은 동경(東京)에서 점보기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다.
선생님은 지금부터 10년간 계속해서 얘기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웃음) 그렇게 얘기해도 할 얘기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설교 준비를 하고 단상에 선 일이 없다. 서면 얘기한다. 얘기하면 얘기가 나오게 되어 있다. 그것은 참으로 녹음 장치보다 더 입체적으로 교차되어 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멋있는 곳이다. 이제 슬슬 끝내기로 하자.
여러분들 메시아가 필요한가?「예」그렇다면 얼마만큼 필요한가? 여러 분들의 눈동자만큼? 눈동자 한 개만큼 필요한가, 그 이상 필요한가? 「그이상…」눈알 하나 뽑아도 이 길을 가겠는가?「예」메시아를 소개하는 데는 눈알 하나 주어도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예」 정말인가?「예」이 눈알 하나 몇억 엔 하지? 그러면 이 정도의 사람이 있으니 이만하면 통일교회는 재벌이다. (웃음) 그렇게 생각한다. 손 하나는 어느 정도 하나? 몇억 엔 하겠지? 만약 메시아를 소개해 받자면 손을 하나 주고라도 소개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부자이다. 알았어?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고서 가치를 따져서는 안 돼요. 여러분들이 그 가치를 알았다고 해도,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이것 하나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인간의 욕심으로 생각해 본다면 전부 가져도 만족하지 않게 되겠지만 영원히 절대적인 하나를 얻으면 다른 모든 것은 필요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런 욕심을 가지고 있다.
최고의 것을 점령하자
여러분들은 구보끼(久保木) 회장보다 훌륭하게 되고 싶지 않은가?「되고 싶습니다」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죽어 버려라. 그러면 구보끼(久保木) 회장의 머리에 올라 타고 가라. 선생님보다 훌륭하게 되고 싶지 않는가?「되고 싶습니다」선생님 위에 올라타라. 사고 없이 올라가라. 부작용 없이 올라가라. 만약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은 독재주의자이다. 알았어? 절대의 하나님은 최상의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을 위해 계시다.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 있느냐? 하나님을 위해 있느냐? 그 논법이 성립되는가? 하나님도 사랑을 가졌다면 그 사랑은 상대자를 위한 사랑이지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성격에서 본다면 그렇다. 아니, 그렇다면 그 사랑은 누가 점령하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여러분, 하나님이 부인이 있다는 것 들었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얘기를 들은 일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녀 있다는 것은 알겠지. 인간으로부터 연구되었던 최고의 위치, 만일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절대라면, 하나님이 사랑의 주체라면, 그 주체 앞에 상대자의 절대적 위치에는 누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자녀 이외에는 없다. 만일 하나님이 혼자서 계실 경우, 고독할 것인가, 기쁠 것인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눈동자만 두리번거리면서 멍하니 있다면 그것은 미치광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하는 수 없다. 왜 창조했는가?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얻어서 무엇을 하는가? 함께 사랑하고 싶으니까 상대자로서 인간을 만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으로 보고, 인간은 하나님을 인간으로 느끼며 하나님과 인간과 상대적 관계를 갖는다면 어떠한 입장으로 될까? 그것은 이론만이고, 하나님이 최고의 사랑의 기준으로 원하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부인이 없으면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자녀의 기준이 될 만큼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론적 결론이 정확히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어떻게 되나? 진심을 다해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을 때, 친아버지의 물건은 자식의 물건이 절대로 되지 않는다는 법칙이 있는가?「없습니다」그러면 기분 나쁘게 된다.
두 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자신의 친구와 놀 때 '우리 집은 여기야, 이곳이야' 하는데 그 여기라 하는 곳은 큰 저택이라는 것이다. 그 저택을 몇억 엔 이상의 돈으로 지었다. 그것을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한다면 그 말을 지나가던 사람이 듣고 '이 바보 같은 것아, 무엇이 여기가 너네 집이야' 하며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여기여요. 여기여요'라고 하면 '아! 이 집이 이 아이의 집이로구나' 하고 곧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버지가 한평생 몸이 가루가 되면서 돈을 벌어서 만든 저택인데 그런 것도 모르면서 '여기여 요. 여기여요'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 아이를 보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 사람 있나? 그 아이가 작으면 작을수록 그 아이의 말은 멋있는 것이다. 그렇지? 그러니까 집은 누구의 것인가? 하나님의 것이지? 우주는 누구의 것인가? 자녀의 것이다.
우주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인간 축에 끼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주를 점령하고 싶지 않는, 욕심 없는 사람도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인간의 부류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주를 점령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여자들은 그런 욕망 가지고 있지 않겠지? 그런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인간의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원숭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참으로 최고다. 완전한 최고의 것을 얻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입장이 되었을 때는…. 인간의 욕망의 정착지는 어딘가 하면, 그것은 무한대가 아니냐?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에 점령당해서 사랑을 받는 경우에는 완전 포화상태가 된다.
사랑의 극치
사랑의 극치,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안겨서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식처럼 자기 형제처럼 생각하고, 어린아이는 자기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그러한 멋있는 남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적인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다. 과거의 성인 정도로는 안 된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영원히, 절대적인 남자로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들이 사랑하지 않았던 분야를 우리들은 지금 사랑한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동양인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나는 미국에 가서 미국인들을 사랑했다.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은 지금부터 50년 전에는 모두 생명을 걸고 싸웠다. 선생님도 일본의 군인과 싸운 사람이다. 일본 관헌에게 고문도 당했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다. 복수심을 가진 사나이다. 그들은 모두 원수인 것이다. 해방 직후에 그들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선생님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때의 일은 그런 인연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던 것이고, 당신들은 이제 때가 되었으므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면서 짐을 싸 가지고 돌아가게 해준 사나이였다. 일본 국민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을 밀항선을 태워서 보냈는데 실패하고 돌아오면 되돌려 보내고 이렇게 두 번 세 번 되돌려 보내며 '죽어도 돌아오지 말라'고 명령한 사람이다. 그토록 일본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선생님은 일본의 누구보다도 일본인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일본의 장래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중국에 대해서도 장개석은 이렇게 될 것이라고 걱정해 왔다. 미국은 이렇게 되는데 하고 걱정하고, 독일은 이렇게 되는데 하고 걱정해 왔다.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 태어났다고 해서 한국인만을 사랑하는 식의 남자는 아니다. 일본인도 선생님의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본인들까지도 선생님을 하나님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기준에까지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사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일본의 부모가 사랑받는 이상의 입장에 서지 않고 그 나라의 가족이 될 수 있겠는가? 될 수 없다.그 이상이 되어야 된다. 극은 극과 통한다. 그러한 활동을 우리들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 만민이 맞이할 수 있는 발판을 일본 민족이 단결해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먼저 만들었을 경우에는 천국에서 칭찬받는 날이 올 것이다.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라도 악의 주권을 탈피해서 선한 하늘의 혈통을 우리들은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여자들, 얼굴이 문제가 아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여자는 얼굴이 문제가 아니다. 얼굴은 아무래도 좋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상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여자들은, 부인들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부모에게 사랑받고 키워진 자녀이다. 그런 딸이며, 아들인 것이다. 부모가 사랑을 줄 때에는 자기가 부모를 사랑한 것 이상의 사랑을 해준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결혼한 남자는 여자가 자기 친정 집에 돌아가겠다 하는 여자가 되도록 하면 안 된다. 가라고 해도 가고 싶지 않다, 괜찮으니까 어서 가라고 하여도 기쁘게 가고 싶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여자가 되도록 사랑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자는 어떤가? 남자는 자신의 부모가 사랑해 준 것 이상,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고 있는 것 이상 부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본래의 결혼이라고 하는 것의 최고 기준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에 대해 부모보다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형제, 오빠, 남동생보다도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나라에 등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이 입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일본의 나라를 때려 부수어 없애 버린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일본을 인솔해서 하나님 나라에 등록했을 때에는, 일본이 세계에서 최초로 등록했을 경우에는 일본이 지도 국가가 된다. 그런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 이러한 것을 생각해서 자신부터 시작한다. 결국은 메시아가 자신을 나라보다도 사랑하고, 민족보다도 사랑하고, 종족보다도 사랑해 온 것도 결국은 자기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국가적 가치까지 더듬어 그 상대적인 발판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것이다. 그것이 영원히 남는 기대이다. 국가를 복귀해야 자신들을 해방하게 된다. 그것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메시아는 참부모이다. 우리들은 참자녀이다. 같은 운명권에 서서 거기 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일본이 중심이 되어 세계 각국에 지지 않도록 선생님이 뒤를 밀어 줄 테니까. 아무쪼록 선두를 달리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
기도합시다.
기 도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시여, 오늘은 4월 23일, 네번째 맞이 하는 성일이옵니다. 멀고 먼 여행길을 거쳐 이 일본에 와서 서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지금 일본에 있는 젊은 통일용사들에게, 아버님, 부디 희망을 가져다 주실 것을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이곳에서 맹세하는 사람이 있으면, 천국을 건설하는 용사로 설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되옵니다.
오늘 '메시아와 우리들'이라고 하는 제목을 중심으로 해서 얘기했습니다. 메시아가 이 지점까지 오는 데는 수천년 역사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더듬어 왔다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수많은 원수를 맞아 싸우면서 짊어진 짐을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고, 안고 승리권까지 왔다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감사하며 주님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악의 주관권 세계에서 선한 주관권의 아버님의 세계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중대한 사명이 약한 저희들의 두 어깨에 걸려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올 때, 채찍을 맞아도 최후의 승리의 종착점까지 밀고 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실 것을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이 점하고 있는 입장을 생각하올 때, 하늘 앞에서 그 중대한 입장과 사명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이 민족은 모르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것을 각성시켜서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젊은이들의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지금 확실히 알았습니다. 아침에도 맹세하고 밤에도 맹세를 해서 그 목적을 향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각오를 새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 부디 안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내일의 승리자로서 오늘의 결의를 굳히는 이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실 것을 간절히 원하옵니다.
금후의 모든 시간도 아버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인도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지금 이 시간 세계 각국에 널려 있는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일본을 향해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는 그 모든 사람들 위에 아버님의 은혜가 멈추시옵기를, 그리고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저희들은 심정이 일치하는 형제로서 모든 국가를 초월하고, 민족 감정을 초월해야겠사옵니다. 혹은 색깔이 문제가 아닙니다. 종족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화가 문제가 아닙니다. 아버님의 심정을 중심으로 해서, 아버님을 선두로 해서 모두 하나가 되어 아버님이 원하시는 목적 완성에 연결되도록 높여 주실 것을 간절히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아버님의 뜻에 맡기오니 당신의 승리권에 남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원하올 때, 이 모든 기도를 참부모님의 이름을 통하여 당신 앞에 바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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