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제유배문학,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자료연구(역) : 고영화(高永和)
십청헌 김세필(金世弼, 1473~1533년) 선생은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이며 조선중기의 문인이자 학자로, 선생이 후학에 끼친 도학(道學)과 정치사상은 이미 정평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거제도 유배문학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그것은 그 동안 유배지였던 거제도의 책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거제유배기간동안 그가 쓴 시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당시 25명 정도가 갑자사화에 연류되어, 신현읍일대에 유배온 분들과 주고받은 시운이 첫째이고, 유배지에서 울적한 심정을 표현한 글이 다음이다. 거제유배 기간은 1504~1506년이고, 수양동(수월리)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곳이니 거제도해수온천에서 제산초교 사이 어느 지점에 배소(配所, 귀양사는 집)가 있었다.
선생은 갑자사화 때 거제도에 유배와서, 최숙생(子眞), 이행(李荇,擇之), 강유선(元叔), 이여(強哉), 홍언승(大曜), 홍언충(直卿), 홍언국(公佐), 자백(子伯), 자선(子善), 홍언방(君美), 공백(恭伯), 인지(訒之), 공신(公信) 등과 함께 교분을 나누었다. 1506년 봄부터 가을까지 거제유배생활동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즐긴 장소가, 장평바닷가, 운문(문동)폭포, 소요동[상문동], 신청담(神淸潭, 문동폭포 웅덩이)과 매립전의 고현바닷가, 그리고 유자도(현 대섬(竹島), 현재 유자섬(橘島)은 당시에는 소도(小島)), 주봉 계룡산, 구천동(삼거리)까지 함께 다니며 거제비경을 즐겼다. 거제고을 선비인 이악(李鶚, 斯立), 이맹전(李孟全), 이백완(李伯完)도 가끔씩 참석했으며, 또한 거제 관리 이수간(李守幹), 수위(守威), 수인(守訒), 수심(守諶) 형제들과도 시문을 교환했다. 이분들이 가장 자주 찾은 곳이 거제고전문학의 1번지, 문동저수지에서 문동폭포사이였다. 그리고 거제선비 이악(사립)과 함께 선생의 거제도 유배 시 가장 힘이 되어준 친구는 이행과 홍언충이다. 가장 어려운 시기의 교우였기에 이들과의 교분은 각별하여 평생을 같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 귀양살이 벗들과 시운을 주고받으며..
● 6일, 자백(子伯)과 공석(公碩) 및 자선(子善), 원숙(元叔), 강재(強哉)와 함께 주봉(主峯)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연구(聯句)로 짓다. 3수(三首)[六日 從子伯擇之及子善 元叔 强哉 登主峰望海 聯句三首]
1) 時序重陽近 절서는 중양절이 다가오고 -자백-
江山落日催 강산에 지는 해는 바쁘구나 -택지-
東南迷遠目 동남쪽 멀리 눈길은 아득한데 -공석-
衰病且深杯 병약한 몸으로 깊은 술잔 마신다. -자백-
萬里心逾壯 만리 밖의 마음은 더욱 씩씩하고 -강재-
孤雲首屢廻 외로운 구름에 고개 자주 돌린다 -택지-
乘桴千古意 뗏목 띄우는 것 천고의 뜻이라,-공석-
人事轉悠哉 사람의 일은 더욱 아득해지구나 -자선-
2) 目斷滄溟夕 멀리 푸른 바다의 저녁 바라보니 -원숙-
天高九月秋 하늘이 높은 구월의 가을이구려 -공석-
登臨今日意 오늘 이 산에 올라온 뜻은 -택지-
風物暮年愁 풍물은 늘그막의 시름이지
夷島蜒涎外 푸른 바다 저편의 오랑캐 섬, -자백-
淸樽鰈海頭 접해 가에서 맑은 술잔을 나누네 -공석-
坐中誰主客 좌중에 누가 주인이고 객인가 -자선-
談笑付悠悠 이야기와 웃음이 오래도록 그치질 않네. -자백-
3) 未覺吾身遠 내 몸이 먼 곳에 있음을 모르겠고 -택지-
唯看馬島平 오직 수평선에 걸린 대마도만 본다. -공석-
層雲生眼底 겹겹의 구름은 눈 아래서 일어나고 -자선-
斜日媚秋淸 기운 해는 맑은 가을에 아양을 떠네. -택지-
衰鬢淵明菊 쇠한 머리털은 도연명의 국화요 -자백-
歸心張翰羹 돌아가고픈 마음 장한의 국이로다. -택지-
悠悠今已幸 유유한 요새 생활도 다행이니
莫惜醉宜城 의성에서 취하는 걸 아까워 말게나. -공석-
[주1]뗏목 띄우는 것 : 무도한 세상을 피해 바다에 뗏목을 띄워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공자가 “도가 행해지지 않는지라 뗏목을 타고 바다에 뜨리라.[道不行 乘桴 浮于海]”고 한 말에서 유래한다.
[주2]접해(鰈海) : 우리나라 바다를 뜻한다. 우리나라 바다에 가자미가 많이 난다 하여 우리나라를 접역(鰈域)이라 부른다.
[주3]도연명(陶淵明)의 국화 : 도연명(陶淵明)의 〈잡시(雜詩)〉에,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하였다.
[주4]장한(張翰)의 국 : 후한(後漢) 때 오군(吳郡) 사람인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벼슬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고사를 차용하여 고향 생각을 나타내었다.
● 제군(諸君)들과 함께 구천(九川)장[구천동]에 놀러 갔다가 연시(聯詩)를 작은 돌에 적어 바위 구멍에 감추어 두다. 발문(跋文)을 아울러 붙이다.[同諸君遊 九川場]..
危壁淸溪上 가파른 벼랑 맑은 시냇가 위를 -언방-
玆晨竝馬看 새벽에 나란히 말 타고 올려보노라 -행(荇)-
蒼苔今古色 푸른 이끼는 옛날의 빛이건만 -세필-
人事盛衰端 사람의 일은 성쇠가 있네. -언승-
雨點催詩急 떨어지는 빗방울 시 짓길 재촉하고 -악(鶚)-
杯心引興寬 가득 찬 술잔은 느긋한 흥을 이끄는데. -언방-
小篇留姓字 작은 시편으로 성명을 남기노니 -행(荇)-
牛斗莫相干 견우성 북두성 서로 범하지 않으리.-세필-
◯ 이 시의 끝에, 부계(缶溪) 홍언승(洪彦昇) 대요(大曜), 홍언방(洪彦邦) 군미(君美)와 덕수(德水) 이행(李荇) 택지(擇之)와 계림(鷄林) 김세필(金世弼) 공석(公碩)이 이악(李鶚)과 함께 이곳에 와서 술을 마시고 한껏 즐겁게 놀다가 자리를 파하다. 이악은 이 고을 선비로 자는 사립(斯立)이다. 정덕(正德) 병인년(1506, 연산군12) 7월 26일에 적는다.
● 직경(直卿)에게 산나물을 보내 주고 아울러 공석(公碩)에게 보이다./ 이행(李荇)
采采山中菜 산속에 들어가 나물을 캐는데
傾筐亦不盈 광주리를 기울어도 차지를 않는구려.
相思人甚遠 그리운 님과 멀리 떨어져 있어
有信物無輕 보내는 물건이니 가벼이 마소.
切莫煩庖宰 번거로운 고기 요리 장만할 필요 없이
眞堪佐麴生 참으로 술안주에 제격이라오
南隣舊御史 남쪽 이웃의 옛 어사(김세필)께서도
一笑與同評 한번 웃고 같이 평해 주구려.
공석이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였다.
[주]보내는 …… 가벼이 마소 : 산나물에 벗의 믿음을 깃들여 보낸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며, 먼 타향에서 친구 이행(李荇)이 많지 않은 산나물이지만 우정을 함께 실어 보내니 즐거이 받아 달라는 시구이다.
● 시냇가에서 지은 연구(聯句).
이달 4일, 홍언방과 더불어 이행을 방문하였다. 함께 시냇가에 나가 물의 근원을 찾던 중 한 곳의 폭포(문동폭포)를 발견하였는데 매우 기묘하고 장관이었다. 서로 탄미하던 끝에 다시 약속하기를, 보름날 자백(子伯), 자진(子眞), 대요(大曜), 직경(直卿), 공좌(公佐) 등 제군들을 이끌고 와서 구경하기로 하고 마침내 함께 연구(聯句)를 지어 약속을 다짐했다.
泉石三生夢 수석의 좋은 풍경 삼생의 꿈일러니
樊籠萬里身 만리 길 떠날 몸이 사로잡혀서
今朝高興引 오늘 아침 높은 흥에 이끌렸네 -공석-
夙昔勝流親 옛부터 좋은 풍류에 친하였도다
竹杖敲蒼壁 죽장끌고 푸른 석벽 두드리고 -군미-
芒鞋踏細辛 짚신으로 고운 풀을 밟아 여기오니 가노라
曾陰遺伏暑 층층 그늘에 삼복더위가 잊게고녀 -택지-
密樹祕遊人 빽빽한 나무 숲에 감춰진 유인(幽人)들
脚戰苔痕澁 다리가 떨리니 이끼 흔적 미끄럽고 -공석-
衣霑水氣新 옷은 물기에 젖어 신선한데
怪禽鳴不見 괴이한 새는 울되 보이진 않네 -군미-
餘雨洒猶頻 그치려던 비가 오히려 자주 뿌리는데
遇險疲前陟 험한 곳 만나 전진하기 피로하여라. -택지-
窮源絶後塵 막다른 물 근원까지 내 발길 닿았는데
列屛崖削立 벼랑은 깎아지른 병풍친 듯 서있네 -공석-
驟雹瀑喧嗔 폭포는 성난 우박처럼 울부짖으니
十丈看橫練 가로 펼친 열 길의 비단을 보는 듯 하네 -군미-
靑空訝拖紳 푸른 허공에 드리운 띠인가 놀라라
威稜山鬼避 그 세찬 위세에 산새들도 피하네 -택지-
壯觀謫仙隣 웅장한 광경에 적선이 이웃한 듯
幽事妨倉卒 그윽한 모임을 창졸간에 방해하네 -공석-
佳期待浹旬 아름다운 기약은 열흘을 기다려야지
窪尊天所假 깊고 높은 것은 자연의 힘 빌린 것이네 -군미-
廣樂帝還陳 균천광악을 상제가 진(陳)에 돌아오니
翳薈須先剔 무성한 초목을 먼저 베어 버리네 -택지-
風流惜久堙 풍류가 없어진 지 오랜 것이 애석하게 여겨
同舟俱邂逅 함께 뱃놀이하여 모두 해후를 즐기네 -공석-
一諾肯逡巡 한 번 만나자는 승락 머뭇거리니
物色回秋序 초목에는 가을빛이 벌써 돌아왔네 -군미-
關河輾月輪 어려운 여로(旅路)에서 달을 거듭하였으나
更宜携數子 다시금 벗들과 즐김이 좋겠네 -택지-
且可答良辰 또한 이 좋은 날 서로 알려줌이 좋을걸세
寂寞頭渾白 적막한 신세 머리털만 쇨테니까 -공석-
艱難意自眞 어려운 세상살이 뜻은 절로 참되거니
詩情從跌宕 질탕한 흥취따라 시정(詩情)이 솟아나네 -군미-
交道未緇磷 우리의 우정은 결코 변치 않으리라.
尙憶吳門市 오히려 옛날 오문의 저자 생각나네 -택지-
終非北海濱 끝내 북해의 물가는 아니로다
乾坤莽牢落 건곤은 아득히 고요만 한데
日暮倚松筠 해 저문 날에 송균(松筠)을 의지해 섰네 -공석-
[주1]막다른 …… 닿았는데 : 용재 일행이 산속 깊이 들어왔으므로, 이후 누구도 자신들이 온 곳까지 이를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주2]웅장한 …… 이웃한 듯 : 폭포의 장관을 보러 용재 일행이 온 것을 형용한 것이다.
[주3]균천광악(鈞天廣樂) : 천상의 음악을 말한다.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이 병이 들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 말하기를, “내가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 갔는데 심히 즐거웠으며, 신선들과 균천광악을 들었다.” 하였다.
[주4] 오히려 …… 아니로다 : ‘오문(吳門)의 저자’는 한(漢)나라 때 고사(高士) 매복(梅福)이 문지기로 신분을 감추고 은거했던 곳이고, ‘북해의 물가’는 한나라 때 소무(蘇武)가 흉노에 억류되어 숫양을 치던 곳이다. 여기서는, ‘우리는 매복에 비길 만하지 소무와 같은 신세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주5] 송균(松筠) : 소나무와 대나무. 사람의 정절을 지칭하는 말이다.
● 二十四日24일,水月寺與諸友同賦 수월사(신현읍)에서 여러 벗과 함께 시를 짓다.
邑城東七里 읍성 동쪽 7리(2750m)에는
尋興古胡祠 옛부터 어찌 제사를 흥겨이 지내는지..
肺腑藏回密 마음 깊은 속을 감추고 은밀히 돌아와서
堂除面勢宜 집 뜰을 청소하니 겉으로 드러난 꼴이 참 좋구나.
細泉通道脈 가는 샘물은 물길(道脈)이 통하고
喬木接禪枝 교목(喬木)은 절 추녀 끝으로 이어있도다
滿坐宜文字 마땅히 문자(文字)로 자리 정한다하니
隨觀各入詩 따라가 보니 제각각 시에 빠졌도다.
● 逍遙洞 洞在海島 時謫巨濟 與李容齋 崔盎齋 唱酬甚多 今多不存
소요동은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인데, 이때에 김공석이 거제도에 귀양가 있으면서 이용재 최앙재와 주고받은 시가 매우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愧負溪邊躑躅花 시냇가 봄바람에 한 수 지으니 철쭉꽃이 부끄러하고
丹楓更奈九秋何 단풍도 늦가을에 접어들었으니 어쩌랴
遊魚得計潭心靜 노니는 물고기 잠잠하니 못물이 고요하고
蒼壁無蹤雨脚斜 푸른 암벽에 빗줄기가 비켜나가 종적이 없구나
勝事從來難屢挹 즐거운 일은 원래 두 번 하기 어려운건데
故人何日許重過 다정한 친구 어느날 다시 찾아주겠는가
今朝減却靑春色 오늘아침 갑자기 푸른빛이 가시니
雲外懸流不受遮 구름 밖의 폭포수 더욱 뚜렷이 보이네.
澤堂曰 此在容齋集中 非公詩 乃贈公詩 他無可考 姑存之云 題云 十日書事 ○是日 刪薈蔚于神淸潭之上 欲成四日之約也 택당 왈, (이식 李植 1584~1647, 호 택당澤堂 ) "이시는 용재집에 있다.(이행(李荇 1478(성종9)~1534(중종29)의 문집), 공의 시가 아니고 공에게 준 시이다. 다른 곳에서는 살필 수 없기에 그대로 둔다" 하였다. 제목은 <십일서사>로 되어 있다. 이날 신청담 위에 구름이 걷혔으므로 사흘 동안 놀려고 약속을 하였다.
● 직경(直卿)에게 부치면서 아울러 군미(君美)와 공석(公碩)에게 보이다. [寄直卿 兼示君美公碩]
數君無病灸 그대들은 병 없이 뜸을 뜨고
吾自抱憂眠 나는 괴로운 번민 안고 있네
誰更尋衰老 뉘라서 노쇠한 날 찾아주겠나
還如隔歲年 만난 지 일년도 더 되는 것 같네.
鷄龍山月近 계룡산에 뜬 달은 저리 가깝고
高絶嶺雲連 고절령 고개는 구름이 이어졌어라
餐飯今佳否 지금도 모두들 건강하신지
憑詩仔細傳 시로나마 자세히 전해주게나
직경이 계룡산 아래 머물고 있었다.
[주]계룡산(鷄龍山)에 …… 이어졌어라 : 달과 구름은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용재(이행)의 배소(配所)가 고절령 아래에 있었다.
2. 외로운 객지생활
거제도 유배생활 중, 울분의 감정이 생길 때마다 선생은 많은 시를 지었다.
● 대가서부지(待家書不至) 집에서 보낸 편지가 아직 오지 않아 기다리며..
家書裁幾帛 집의 편지는 몇 필의 비단에 쓰길래,
天里邈無傳 천리 길 아득히 전해오지 않는구나.
破褐風霜急 찢어진 베옷은 바람과 서리에 급박한데
窮途歲月遷 궁핍한 타향 길에 세월만 가네.
殷郵應見辱 활발한 역참편(우편)에 응당 욕을 보는데도
陸犬不時旅 편지는 제때에 돌아오지 않는구나.
朝暮占乾鵲 아침저녁으로 까치소리 점치나니
秪爲愁緖牽 다만 근심의 단서만 끌어낸다오.
◯ 외딴섬에서의 궁핍함과 근심스런 정황이 핍진하게 나타난 시이다. 얼마나 집의 소식이 그리우면 아침저녁으로 까치소리에 점을 쳤겠는가?
● 구절향신이래희부지(久絶鄕信人來喜而賦之)의 아래 시에서는 유배지를 찾아온 하인을 만나 가족의 안부를 듣고는 콧등이 시큰하여 눈물을 참지 못하는 심정을 토로하였다.
初欣推枕起 처음엔 기뻐 벌떡 일어났으나
復畏道何事 집안에 무슨 사고 있나 두려워
茫如鉗在口 재갈 문 입처럼 멍하니 있다가
久乃問童椎 한참 만에 아이들 소식 물었네.
● 水月寺 수월사 (신현읍 수월리 사찰)
歲暮山林飽雪霜 해저문 산림에 눈서리가 덮이어
重來物色轉悽涼 다시 돌아와 보니 모든 게 더욱 서글퍼진다.
萬竿唯有西坡竹 무성한 대나무는 오직 서쪽 언덕에 있는데
依舊蒼陰擁佛堂 예처럼 푸르르게 불당(佛堂)을 감싸았네.
● 十二月初二日朝早 12월 2일 새벽。枕上有吟 침상에서 읊조리다.
龍鍾愛床席 쇠약하여 침상에서 자리보전하다
旋枕日高欹 베개 위를 뒤척이니 해가 높이 떴구나.
蓬鬢梳猶懶 쑥대머리 빗다 오히려 게을러져
鶉衣攬或遲 남루한 옷 손에 쥐고 괴이쩍어 굼뜨네.
颭籬驚暴颶 울타리 흔드는 사나운 구풍(颶風)에 놀라
窺牖媚寒曦 들창을 엿보니 차가운 햇빛이 아양을 떤다.
閑味吟成句 한가한 맛에 읊조리다 글귀가 이루어지니
非關苦學詩 시 공부가 어려운 건 아니라네.
[주] 구풍(颶風) : 회오리치면서 북상하는 급격한 바람
● 臘後五日 東里諸友會弊寓 將散 忽有梅興 聞北墅一樹常早花 諸君使探信 往折數枝 竝詩報之 섣달이 지난 후 5일 날, 동쪽 마을 여러 벗들이 폐단을 핑계 삼아 모여서, 흩어지려는 즈음에, 갑자기 매화나무에 흥이 일어났다. 북에서 오는 소식보다 농막집의 한그루 나무가 언제나 앞서 꽃을 피우니, 여러 벗들이 제멋대로 엿보는구나. 가다가 여러 가지를 꺾으며, 나란히 시를 지어 화답했다。3수(三首)
未負尋梅約 매화나무와 맺은 약속 어길 수 없어
孤筇曳近隣 외로운 지팡이가 가까운 이웃으로 이끈다.
三冬方積雪 겨울내내 온 천지에 눈이 쌓였는데
一樹巧偸春 한그루 나무가 봄을 훔치니 참 교묘하도다.
不綻紅房密 꽃 봉우리가 붉은 신방에 숨듯 터지지 아니하니
應禁俗子親 속인들을 가까이 함을 응당 금함인데
明朝剩携酒 내일 아침에는 남은 술을 가져와
玉蕊也能新 아름다운 꽃술에 다시 새로워하리라.
北里探梅早 북쪽 마을 찾아가다 매화꽃 일찍 피었다고
東隣報喜新 동쪽 이웃이 기뻐하며 새로운 사실을 알린다
馨香如脈脈 꽃향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니
花意少津津 꽃 풍정(風情)의 깊고도 흐뭇함에 빠져든다.
煙雨肯資活 안개비가 재물이 콸콸 흐르듯 즐겨 내리니
蝶蜂還斷夤 나비와 벌이 한결같이 이어져 돌아오겠지
吾儕淸分在 우리네는 정분(淸分 맑은 분별)을 살피어
煩寄隴頭人 번잡스레 농두(隴頭) 가족에게 부쳐 보낸다.
[주] 농두(隴頭) : 농두는 농서이며 지금의 중국 감숙성 일대를 가리킨다. 강남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을 가리키며 이 시에서는 서울 집을 뜻한다.
留滯南荒客 남쪽 변방 나그네로 버려져 머물다
重看海國花 거듭 바닷가 지방의 꽃을 본다네.
朔風吹褐急 북풍이 불어 베옷이 긴요하나
梅興動詩多 매화 흥취에 감응하여 지은시가 많구나.
欲訊來春事 묻고자, 봄 정취가 돌아오니
還持舊歲華 또다시 견뎌내어 지난해가 빛났도다
高標天獨賦 높은 가지 끝은 하늘에서 홀로 시를 읖조리고
桃李肯交柯 봉숭아 오얏나무 가지가 엇갈려 즐긴다.
● 이악의 운을 빌어 짓다. 和李斯立 (鶚) 韻 謫巨濟時作(거제 유배 때 지은 시) 七首.
一首
獻賦當年走帝衢 그 해에 임금의 갈림길에 나아가 부를 지어 올렸는데
照牕乾雪想增吁 가벼운 눈이 창에 비치니, 생각할수록 더욱 탄식만 드는구나
魚充彭越懷鄕味 물고기와 갯펄 게로 반찬삼아 고향의 맛이 그리웠고
粟近敖倉餒客軀 곡식창고를 가까이 두고도 나그네 몸을 굶주렸다네.
交際固難飜覆手 이리저리 손을 뒤집어 교제하기 본디 교제하기 어려운 것
附麗宜愼愛憎烏 붙좇는 데는 애증을 마땅히 삼가야 한다네.
橐裘莫恨留秦苦 답답한 괴로움만 머무니 전대 갖옷 한탄하지 말아야지
十策蘇君思不枯 진나라 소진의 열 가지 방책, 생각 마르지 않았네.
// 聞斯立寓倉洞 而戲及右長安客況 사립(이악)이 창고가 있는 마을에 있다는 말을 듣고, 희롱삼아 부친다. 이상은 장안에 있을 때 객지 형편을 서술한 것이다.
二首
半年遊子滯京衢 반년동안 나그네는 서울 가는 갈림길에서 막히어
遙向高堂幾悵吁 멀리 고향 바라보며 몇 번이나 눈물졌던가.
倚企門閭干業地 마을 어귀 문에서 부모의 땅 바라보고 의지하니
風流鄕里訪眞軀 시골 마을에서 풍류를 즐기며 참된 몸을 찾는다.
背萱春色疑叢桂 봄 빛깔 완연하여 원추리(백합) 뒤쪽 계수나무 숲에 미혹되고
極宿宵光敵踆烏 북극성의 밝은 빛 태양과 맞먹게 빛나네.
晝錦恩榮期尙邇 금의환향할 영광도 곧 있을 것인데
賀筵吾臂不偏枯 축하자리에 박수 아끼지 않겠네.
//常謂斯立前身仙骨 故使眞字 늘 이사립(이악)이 이르길, 전신이 선골이었다고 했으므로, 진(眞)자를 사용하였다. 右高堂好信 이상은 고당의 평안함을 서술한 것이다.
三首
少將高武布亨衢 무예가 높은 젊은 장수가 조정에 즐비하지만
一得誰知失處吁 한번 올랐다 자리 잃고 탄식하는 줄 누가 알랴
文墨自慙無遠計 먼 계획도 없이 시문을 지으며 스스로 부끄러하는데
雷霆何怪被頑軀 천둥소리가 어찌나 괴이한지 둔한 몸까지 미치는구나.
爭如叢薄安巢雀 숲속에 깃들어 사는 참새처럼 조잘대다가
應笑泥塗跕翅烏 까마귀 날개 떨어져 진흙 속에 더럽히니 웃음 살만하고
兩度春風吹海菊 두 차례나 봄바람이 해국에 불었지만
榮光不借澤邊枯 영광에 힘입지 못하고 못 가에서 시든다네.
// 右海上羈懷 이상은 해상의 나그네 회포를 서술한 것이다.
四首
似聞君寓近鍾衢 그대(이악)가 창고마을에 산다고 들었는데
偏遠吾廬每歎吁 나의 집 멀리 치우쳐 있어 늘 탄식만 한다네.
多謝寒溫傳病老 병든 노인에게 안부 전해준 것 감사한데
更煩生死語窮軀 다시 궁한 사람 번거롭게 하니 내가 할 말이 없구려.
熏心春社尋棲燕 사당 추녀에 제비 다시 깃들어 훈훈하고
忍淚前林反哺烏 까마귀도 어미에게 보은한다는데 앞 숲에서 눈물을 참는다.
總角兩兒癡騃甚 머리 딴 두 아들 미련하기 짝이 없으니
豈知人世有榮枯 세상에 영화와 슬픔이 있는 줄 어이 알까?
// 右謝傳消息 기별을 알려줘 감사를 표하며..
五首
好是東皇御震衢 봄의 동쪽 신이 우레치는 갈림길을 다스려 무릇 좋아지는데
羈人何事獨憂吁 나그네가 무슨 일로 홀로 근심하고 탄식하는가?
細看品彙皆生意 만물을 세밀히 보니 모두 생기를 찾았는데
遙憶家山未脫軀 고향산천 떠올려도 아직 몸은 벗어나지 못하구나.
北里梅梢前度雪 북쪽 마을의 매화가지 저번처럼 눈 덮였고
南陵松樹舊時烏 남쪽 언덕 소나무에 지난날 그때 그 까마귀로다.
客中懷抱君如我 객지의 회포 그대도 나와 같을 것인데
芳草春心兩不枯 꽃다운 풀 봄의 정서만은 마르지 않았네.
// 詠梅賦烏(까마귀와 매화를 읊은 것이)
皆在去春(모두 지난봄의 일이었구나)
斯立亦記否(사립도 기억하겠지)
況吾所厭見(나도 보기가 역겨우니)
在斯立猶苦憶(사립 또한 기억하기를 괴로워하리라)
彼此懷抱(서로간의 마음속 품은 생각을)
易地皆然(처지나 경우를 서로 바꾸어 놓으면 행동이나 생각하는 것이 다 같으리라)
六首
追風逸足度雲衢 갈림길에 눈이 내리면 매우 빠른 발로 바람을 쫓아가
地上駑駘仰更吁 지상에 둔한 말을 다시 불러 탄식만 하누나.
藝苑一鳴宜索價 예원에서 한번 읊어도 값을 따질만한데
詞場三捷尙充軀 문단에서 세 번 합격한 것 몸을 가득 채워 자랑했네.
絶域久羈嘶病驥 먼 변방 이 지역에 오래 잡아 두니 준마가 병에 걸려 울고
荒郊猶怕啄瘡烏 황폐한 들이 두려워 까마귀는 부스럼만 쪼는구나
飽聞漢室歌天馬 한강의 집(가족) 소식을 많이 들으니 천마가 노래해도
縱得孫陽骨已枯 손양(孫陽)을 얻어도 뼈는 이미 말랐다네.
// 右奉賀(귀하게 섬겨 축하하며 적는다)
[주] 손양(孫陽) : 춘추전국시대 백락(伯樂)이다. 백락이 왔다해도 죽은 말을 살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자신은 늙어 이제 틀렸다는 말을 의미한다.
七首
堯尊重飮古康衢 옛날 사통팔달 큰 길거리에서 거듭 마시고 높이 공경했는데
民物當時孰見吁 백성의 재물 당시에는 누가 봐도 근심이 컸다네.
屋比封旌淳俗化 집집마다 정표(旌表)했으니 순후한 풍속이요
人知耕鑿養形軀 백성들은 농사지어 먹고 살 줄을 아는구나
甘歌聲樂來儀鳳 노래를 달게 여겨 풍류를 즐기니 봉황이 춤추며 날아오고
肯賦詩篇莫黑鳥 새까만 까마귀의 시편 지을 필요 잇겠는가?
摹寫太平應有象 태평세월 묘사함에는 응당 조짐이 있는 법
帶春花木豈曾枯 봄을 맞아 꽃나무가 어찌하여 일찍 시들꼬.
// 右都城景興(우도성경흥)도성(여기서는 거제읍치 고현을 일컬음)의 경치와 흥취를 서술한 것이다.
● 二十九日 29일。夜臥漫占 밤에 누워 함부로 점을 친다
春宵與冬夜 봄밤은 겨울밤과 같이
在十去三分 겨우 10에 3을 나눈 듯 춥고
促漏人偏苦 집에 물이 새니 나의 고통이 더하여
晨鷄獨喜聞 새벽 닭 소리가 어찌 이리 기쁘게 들리는지..
惺心蟲度壁 벌레가 낭떠러지에 거듭 있듯 도의 본원을 깨닫고
聒耳鼠奔群 심히 시끄러워서 쳐다보니 쥐가 무리지어 달린다.
憂惱翻成疾 근심과 고민이 도리어 병을 일으켜
何由膽 (缺) 溫 어찌하면 담낭(膽囊,쓸개)을 편안할 수 있을까?
● 人日 음력 1월 7일。邀會諸友 여러 벗을 반갑게 만나다.
前賢重令節 예전의 선현들은 이를테면 절개를 중히 여겨
人日樂偏繁 인일날 한편에서는 번거롭게 아뢰기도 했었다.
杜老江湖興 두보 노인은 강호(江湖)에서 기뻐하고
韓公淸濁樽 한공은 맑고 탁한 술통을 함께 마셨다.
陰晴看世故 흐리다 맑아져 이런저런 세상사 헤아리듯
諷詠暢詩魂 풍자시(諷刺詩)는 시심(詩心)까지 후련하다
勉子須拚會 부지런한 자식은 틀림없이 손벽치며 깨닫고 보면
隣梅況滿園 이웃 매화나무가 온 동산에 가득하겠지
● 漫成 만성, 부질없이 지어본 한수. / 봄날 거제도 배소의 풍경.
倦倚南窓晩 남쪽 창 해질녘에 비스듬히 기대어
宿陰時復晴 졸다보니 흐린 날이 다시 맑게 개이네.
鷄聲春色暖 닭울음소리에 봄빛이 따뜻한데
鳥語客心驚 지저귀는 새소리에 나그네 마음 놀란다네.
耒耟田家務 쟁기와 따비로 농부가족은 부지런히 일하는데
筐籠蠶婦情 대바구니엔 누에치는 여인의 정(情) 담았구나.
天涯曾失業 먼 변방에는 예전에 생업을 잃어
生理獨無營 백성의 생활은 할 일없이 외로웠다하네
◯ 김세필선생은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충주 팔봉서원과 지천서원에서 향사하고 있다. 또한 문간공 김세필 묘역을 경기도 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고, 위치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산23번지에 있다.
지난 2010년 선생의 후손(문중 대표) 3분이 거제도에 2차례나 선조의 흔적을 찾아 왔으나 찾을 길이 없어서, 저가 대구에서 연락받고 거제로 내려가, 선생이 거처한 곳과 다녔던 곳을 안내해 주었다. 당시 선생의 지우(知友)인, 거제선비 이악(李鶚, 斯立)의 후손을 찾아 500년만의 해후를 하고 싶어 했으나, 족보나 기록을 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십청헌 김세필 문중에서는 거제도에 대한 각별한 인연을 강조하며, 다시 찾아 올 것을 약속하고, 그 옛날 선생이 다시 배를 타고 돌아간 오양역(오양포)에서 헤어지며 아쉬움을 달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