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이르테네프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문의 빚을 정리하고 무너져가는 영지를 일으키기 위해 시골로 내려온다.
그는 젊고 유능한 귀족이었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려 애쓴다.
하지만 독신 생활을 하던 그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마을의 유부녀 농부 스테파니다와 관계를 맺는다.
예브게니는 이를 단순한 육체적 관계일 뿐이라고 여기며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끝날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지고, 그는 과거를 깨끗이 정리했다고 믿는다.
얼마 뒤 그는 교양 있고 아름다운 귀족 여성 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리자는 순수하고 다정한 여성이었으며
남편을 깊이 사랑했다. 예브게니 역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이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영지에서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우연히 스테파니다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그의 평화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욕망은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되살아난다.
스테파니다는 특별히 그를 유혹하지도 않고 예전처럼 접근하지도 않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가 예브게니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는 그녀를 보지 않으려 애쓰고 일부러 길을 피해 다니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내와 함께 있을 때조차 스테파니다를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깊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신에게 기도하고,
일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다스리려 하지만 욕망은 오히려 더 커질 뿐이다.
예브게니는 점차 자신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악마가 들어와 자신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하지만 작품은 독자에게 그것이 진짜 악마가 아니라 인간 안에 숨어 있는 욕망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스테파니다를 잊지 못하는 모순 속에서 점점 이성을 잃어 간다.
결국 그는 자신의 고통이 모두 스테파니다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녀만 사라진다면 평온한 삶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단둘이 마주하게 되고,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욕망과 분노, 증오가 한꺼번에 폭발한다.
예브게니는 결국 총을 꺼내 스테파니다를 쏘아 죽인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그는 자신의 삶과 가정, 명예를 모두 잃고 만다.
그런데 《악마》에는 또 하나의 결말이 존재한다.
톨스토이는 다른 원고에서 스테파니다를 죽이는 대신 예브게니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자살하는 결말도 함께 남겼다.
작가는 끝내 어느 쪽을 최종 결말로 확정하지 않았으며, 두 결말 모두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비극이라는 같은 주제를 담고 있다.
《악마》는 겉으로는 불륜과 살인을 다룬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 내면의 욕망과 양심이 얼마나 치열하게 충돌하는지를 그린 심리소설이다. 톨스토이는 악마가 인간 밖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본능 그 자체임을 보여 준다. 결국 예브게니를 파멸시킨 것은 스테파니다도, 운명도 아닌 자신의 욕망을 끝내 통제하지 못한 나약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인간 심리를 가장 깊이 파헤친 톨스토이의 문제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이작품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걸까?
이 질문이 바로 《악마》의 핵심입니다. 톨스토이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불륜은 나쁘다"가 아닙니다.
그는 인간 안에 있는 욕망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예브게니는 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한 번의 욕망을 '별것 아니다'라고 가볍게 여긴 순간, 그 욕망은 끝난 것이 아니라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다시 살아납니다. 톨스토이는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지배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욕망이 인간을 지배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 하나 중요한 메시지는 '악마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예브게니는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 스테파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녀만 사라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독자는 알고 있습니다. 스테파니다가 사라져도 그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결국 예브게니가 싸워야 했던 대상은 스테파니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인간이 흔히 저지르는 착각도 비판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기 쉽습니다. "저 사람이 없었다면", "그 상황만 아니었다면"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문제의 뿌리는 자기 안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브게니는 끝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 자신의 욕망을 외부의 적으로 착각한 채 파멸하고 맙니다.
이 작품에는 톨스토이 자신의 삶도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도박과 방탕한 생활을 했고, 결혼 후에는 깊은 신앙과 도덕적 삶을 추구했습니다. 《악마》는 그가 젊은 시절의 자신을 돌아보며 "인간은 왜 선하게 살려고 하면서도 욕망 앞에서는 이렇게 무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 해설이라면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하면 여운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말한 악마는 뿔이 달린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이번 한 번쯤은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욕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비극은 그 욕망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악마》가 남긴 가장 무서운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