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 ‘김형중’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교법사라는 그의 직책이 떠오른다. 그러나 김형중은 평범한 교법사가 아니다. 한자공부를 위한 베스트셀러를 쓴 한문교육의 전문가이기도 하고, 서산의 선시를 연구해 문학박사 학위를 얻은 선시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선시를 읽는 탁견은 이미 미디어붓다에서 연재하고 있는 ‘명품선시 100선’을 통해서도 익히 알 수 있듯이 가히 무등등의 경지에 이르렀다.
늦깎이로 평론가로 등단한 선시박사 김형중 교법사.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이는 멈출 만도 하지만 그의 열정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지난 몇 달 동안, 잘 소식이 들려오지 않더니 평론가로 등단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문예지 <순수문학>을 통해 ‘심사위원들의 절찬’을 거쳐 당당하게 평론가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작업과 도전들은 오직 하나 ‘법륜상전’의 수레바퀴들이기에 전혀 번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도전하는 모든 분야와, 그가 이뤄낸 모든 성취들이 ‘일즉다 다즉일’의 화엄진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예능프로그램에서의 유행어처럼 ‘언빌리버블’한 그의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일체를 일미로 섭수하는 저 무변광대의 해인(海印)이 아닐까.
쉽고 편안한 언어로, 그러면서도 핵심과 깊이를 놓치지 않고 작품의 요체를 관통하는 예리함과 철저함을 갖춘 ‘김형중 스타일’의 평론을 읽는 재미가 간단하지가 않다.
김형중 평론가는 당선소감을 통해 “30년 동안 일구월심 꾼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며 “운학스님과 미당, 석전 등 세분 스승의 가르침과 시승 조오현 스님의 격려를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형중 평론가는 이어 “늦게 등단을 하였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노력과 정진을 더해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만성(晩成)의 제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작품을 심사한 심사위원들(신동한, 이명재)도 심사평을 통해 “으레 서구적 이론과 모더니즘에 기법에 치우친 나머지 비평의 척도마저 구미에 얽매인 여느 비평가들과는 대조된다”며 “무엇보다 한국 전통시의 원류를 불교적 상상력과 연관해서 접근한 노력을 높이 사고 싶다”고 평가했다.
그로테스크, 도저, 라이트모티브, 결절, 기우뚱한 실존, 언어적 곡비 등등 마치 그들만이 아는 난해한 수사를 동원해야만 평론이 되는 것처럼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기존 평론계의 풍토에 평론가 김형중의 등장은 매우 신선한 청풍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구절구절이 명문이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길 것이 없는 김형중 평론가의 등단평론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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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선시(禪詩)의 현대적 활용>-김형중
선과 시의 만남
‘한글 선시’란 문학용어는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선시(禪詩)란 으레 한시로 된 형태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문학에서 선시란 영역이 생겨난 것도 역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 선시라면 불교와 관계된 모든 시를 통틀어 일반적으로 불가시(佛家詩)라고 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 와서 인권환, 이종찬을 필두로 선시를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서규대, 이진오, 김형중, 박재금, 배규범, 이상미 등이 그 뒤를 이어 선시문학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제출하여 선시문학이 한국문학사에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러나 비평문단에서는 아직 틀이 서 있지 않은 듯싶다.
선시는 선가시(禪家詩)를 말한다.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 모인 수행공동체를 선가라고 한다. 선시란 참선 수행을 하는 과정이나 깨달음의 오도(悟道) 경계를 표현한 시이다. 따라서 선시에는 산사의 고요한 풍경과 선적인 분위기를 읊은 산거(山居) 운수시(雲水詩)도 포함된다. 선시(禪詩)는 시(詩)와 선(禪)의 만남이다. 선시는 범불교적 종교시가 아닌 불교 선종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정신적 경지를 표현한 운문문학이다.
시가는 선종 사상이 흥기하기 이전의 중국 역사에 이미 장구하게 흘러왔으나, 그때는 시와 선의 연계가 필요치 않았었다. 그러나 선종사상이 중국에서 유행된 이후부터는 많은 문예가들이 시와 참선의 긴밀한 연계를 맺게 되었다. 선종은 당대에 크게 흥성하였으며 많은 시인들이 선종의 영향을 받았고, 시를 창작함에 있어 선의 묘오(妙悟) 경지를 수용하여 원선입시(援禪入詩)로 선미(禪味) 농후한 시를 읊게 되었다.
당나라 사공도(司空圖)의 운외지치(韻外之致), 미외지미(味外之味) 시론은 사람들에게 명확한 시선일치(詩禪一致)이론을 인식시켰고, 후세 중국 문예 이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송대(宋代)에 이르러 선종은 고도로 발전하면서 더욱 광범하게 유행했고, 사대부에까지 선의 풍류가 일어 시와 선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언어의 절제와 응축, 그리고 상징을 중시하는 면이 시와 선에 공존하고 있다. 선은 직관을 중시하고 언어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 초월 언어가 상징으로 나타나면 곧 문학이 되는 것이며, 이런 경우 선승(禪僧)의 게(偈)는 시문학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오도를 목적으로 하는 불교 문학의 절정은 선시이다. 불교적 철학이나 사상을 산문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이보다 직관적인 면에 있어서의 힘은 선시문학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선을 통하여 얻어지는 고요한 마음은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에서 사물의 속성을 신속하게 파악하여 시화(詩化)하는데 촉매작용을 한다. 또 선의 돈오적(頓悟的) 사유방식은 시 창작에 있어 번득이는 영감을 제공해 준다. 선 체험으로 얻어진 무한한 정신세계와 정제된 심리상태는 묘오(妙悟)와 여유, 함축 그리고 의경(意境)을 표현한다.
선어(禪語)의 상징성과 함축, 그리고 논리 구조를 초월한 선구 언어(禪句言語)는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존 관념을 넘어 무의식 세계, 깨달음의 세계까지 정신세계를 확장하는 창조 ․ 혁명적인 언어 구조로 재조직되었다. 선이 시로써 문학이 되었고, 시가 선으로써 사상과 깊이를 더해 갖춘 지고한 격조의 시 세계를 창출하였다.
청대 원호문(元好問)의 말처럼 선은 시인에게 좋은 칼을 다듬어 주었고, 시는 선에게 비단꽃을 덮어 주었다. 선시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언어문자를 부정하는 선종의 교리나 사상을 심오하고 응축된 시어로 정제하여 보존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으레 한시에는 엄격한 형식과 율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가의 시는 게송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로 시의 엄정한 격률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자연과 진정한 대화를 이루려면 무심의 경지, 물아일체가 되어 삼매에 이르러야 그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직관과 돈오에 의한 깨달음은 기존의 고정 관념을 타파하여 창조적 사유방식과 단도직입적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뼈를 깎는 구도심과 자유무애(自由無碍)한 시심(詩心)은 깨달음을 통한 자유, 해방, 한가, 여유로 드러나 작품을 통해 여백미와 정밀미(靜謐美), 미외미(味外味)의 미학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모든 문화현상은 언어문자로 기록되고 사유마저도 언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은 언어문자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선 또한 마찬가지로 소위 불리문자(不離文字)요, 인언현리(因言顯理), 의언진여(依言眞如)이다. 그러나 선가의 언어는 지극히 압축되고 고도로 상징화한, 비약적이고 역설적인 반상(反常)의 언어이다. 일언지하(一言之下) 돈망생사(頓忘生死)하고 일초직입(一超直入) 여래지(如來地)하는 촌철살인적 언어이다.
논자는 여기에서 만해 한용운을 한글 선시의 효시로 보고, 그의 시 가운데서 선적인 풍치가 있는 한글시를 몇 편 골라서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나서 한국의 시성 미당 서정주와 시승(詩僧) 무산(霧山) 조오현(曺五鉉)의 선시를 통해 한글 선시가 그 맥을 이어오면서 발전한 과정을 조명하고자 한다.
한글 선시의 선구자 한용운의 선시
만해(萬海)는 한국 근대사에서 최대의 인물이다. 3‧1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로서, 문학사에서 불멸의 시집 ≪님의 침묵≫을 낸 시인으로서 일제에 조국을 잃어버린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잃어버린 님을 찾아 다방면에서 전인적 역할을 다했던 진기충인(盡己忠人)이요, 의인이었다.
만해는 한문과 한글로 자유자재하게 글과 시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국문학사에서 한시에서 현대시(한글시)로 옮겨오는 과도기에 있어 징검다리 역할을 한 시인이다.
만해의 시조는 ≪한용운전집≫(1978년판) 1권에 39수가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조에도 깨달음의 세계를 읊은 선시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선시가 <춘주> 2수이다.
따스한 별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꾸꿍이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춘주〉전문
<춘주>는 원래 ≪불교≫ 96호 (1932년 6월 발행) 권두언으로 발표된 것이다. <춘주>는 불립문자인 선의 특성을 시적 미감을 통해서 멋지게 나타낸 시조이다.
<춘주>는 최동호 편 ≪한용운시전집≫(1989년판)에는 시의 제목을 <춘화(春畵)> 라고 되어 있는데, <춘화: 그림 같은 봄날>보다는 <춘주(春晝): 봄날의 낮>이 시의 내용으로 보아 맞다. 더구나 시조 <춘조(春朝)>가 있는 것으로 보아 따사로운 봄날 아침과 낮에 쓴 시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춘주>는 “따사로운 봄날 낮에 ≪유마경≫을 읽는데 바람에 나는 꽃잎이 글자를 가린다”로 시작한다. 처음에 붙인 제목 <공화란추(空華亂墜)>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꽃[空華]’은 허공에 핀 꽃으로 본래 실체가 없는 번뇌 망상을 상징하는 선어이다. 번뇌 망상을 없애고 진리의 길에 이르는 길은 불립문자 교외별전인 참선의 체험뿐이다. 그러니 구태여 꽃 밑의 글자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 선의 세계를 시화한 것이다. 봄날에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초‧중장에 서술되고 종장에 이르러는 한흥(閑興)이 결구를 이루게 된 것이다.
초장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고 앉았더니”는 고요한 봄날 향을 피워 놓고 단정히 앉아 참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중장 “삽살개가 꿈을 꾸고 거미가 줄을 친다”고 한 것은 삽살개도 따스한 봄볕 아래 참선하듯이 졸고 있고, 거미도 자신의 본분사인 거미줄을 치고 있다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서 현상계의 모든 사물들이 각기 불성을 발휘하고 있는 화엄성기(華嚴性起)의 세계를 읊은 것이다. 거미는 자기가 친 거미줄에 걸리지 않고 자유로워, 무애한 해탈 자유를 상징한다.
종장에서 “어디서 꾸꿍이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결구한 것은 선시 이론의 극치인 뜻을 글자 밖에 나타내는 운외지미를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산 너머에 꾸꿍이 소리를 따라 깨달음, 봄의 정취가 들려오는 듯하다.
만해는 펼친 일제하의 시조 운동은 한글 즉, 모국어에 대한 애정과 민족의식의 고취한 활동이었다.
≪님의 침묵≫에서 ‘님’의 정체는 ‘부처’, ‘중생’, ‘조국’, ‘깨달음’, ‘불성’, ‘애인’, ‘자유’, ‘독립’ 등 다의적이고 복합적인 상징어이다.
≪님의 침묵≫ 가운데 가장 불교의 자비사상이 드러난 시가 <나룻배와 행인>이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중략)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나룻배와 행인〉에서
<나룻배와 행인>은 부처님의 자비 속에서 살면서도 부처님의 은혜를 모르고, 저버리고 배반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 날마다 스스로는 낡아가면서 그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대승 보살의 대자대비한 마음을 읊은 시이다.
‘나’는 석가요 불법, 보살을 상징함이고, ‘당신’은 중생이다. 나룻배는 반야용선이다. 중생을 생사고해를 건너서 피안의 언덕으로 실어다 주는 지혜의 용선이요 자항(慈航)이다.
<선사의 설법>에서도 대승 선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 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이운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들였습니다. -〈선사의 설법〉전문
<선사의 설법>은 만해의 혁명적인 선 법문이다. 선이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창조적인 인식의 전환을 추구한다. 공의 세계에서 사물을 정견할 때 올바른 인식작용이 가능하도록, 맑은 선정의 연못에 달이 비치듯이 반야지혜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고통을 면할 수 있음을 서술한 것이다.
선사의 설법을 부정하고 ≪화엄경≫의 사사무애법계에 입각한 대승선 법문을 하고 있다. 만해의 시에서 부정과 역설적 표현이 그의 시에 특징이다. 번뇌가 깨달음이고, 중생이 부처이다. 만해는 잃어버린 조국에 살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임을 되찾아야겠다는 역사의식을 확고히 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잃어버린 조국을 생각할수록 가슴 아프고 고통스런 일이다. 선사상에서는 집착을 버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다시 말해 조국에 대하여 외면하고 무심해 버리면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다. 그러나 만해는 임을 사랑하는 밧줄을 끊을 수가 없다. 더 고통스럽더라도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들여서 언젠가는 잃어버린 님을 되찾겠다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활선(活禪)을 부르짖고 있다. 그래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라고 읊은 것이다.
<선사의 설법>은 일심으로 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하여 독자에게 짜릿한 감동을 주는 수준 높은 한 편의 불가의 설법시 즉, 선시이다. 근래에 전보삼, 이인복, 손종호, 김광원 등은 《님의 침묵》이 《십현담주해》의 내용과 깊은 상관성이 있음을 연구하여, 만해의《님의 침묵》이 선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된 선시임을 주장하고 있다.
만해의 불교정신 그리고 은유법, 그리고 상징과 역설 등을 통해 엮어내 선시 작품세계는 서정주와 조지훈, 고은, 조오현 등의 시에 계승되어 한국시의 형이상학적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인생의 철리를 선시로 노래한 서정주
우리는 또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 나타난 선 사상을 만날 수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여름에는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었어야 하고, 초가을 간밤에는 무서리가 내렸다. 가을 국화가 피어나는 데는 온갖 시련과 풍파가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인연들의 도움 공덕이 있었다. 수많은 병고를 이겨냈고, 무수한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고 극복해낸 결과물로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인타라망처럼 무수히 얽히고설킨 인연(因緣) 연기(緣起)와 중중첩첩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존재(存在)하는 인과(因果)의 세계 속에서 내가 여기에 서 있고 우주 만물이 그렇게 존재해 있는 것이다.
끈질긴 생명력과 황토색 포근함으로 시골 언덕길에 피어난 황국화 같은 40-50대 여인 또한 젊은 날에 가슴 조이던 파란만장한 풍파를 헤치고 천신만고 끝에 거기에 서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리석고 고통 속에서 헤매던 중생이 수행을 통해 번뇌를 털어내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어가는 모습이다.
봄날 영산홍이 곱게 피어나기 위해서는 겨울에 매서운 바람과 추위를 겪어내야만 한다. 미당은 가을 황국화를 바라보면서 인생의 고난 과정을 시간적으로 읊은 것이다. 특히나 가을 국화는 연중 마지막 용트림으로 차가운 서리를 이겨내며 피어나는 꽃이다. 우리에게 인고(忍苦)의 깨달음을 주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군자화(君子花)이다. 이 시는 불교의 심오한 철학이 바탕이 되어 인생을 노래한 최고의 절창이다.
미당의 〈무등을 보며〉에 나타난 선사상은 다음과 같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중략)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누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히 끼일 일인 것이다. -〈무등을 보며〉에서
이 시 또한 〈국화 옆에서〉와 같은 시상과 구도를 지니고 있다. 인생이란 어떤 시련과 역경에 처하더라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고고하고 의연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노래한 작품이다. 인간이란 고통의 바다에 던져진 존재이다. 고통의 바다를 무사히 건너서 저 언덕(彼岸)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미당은 이 시에서 광주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무등산의 의연한 모습을 닮아서 가난과 배고픔을 극복해야 함을 설법(說法)하고 있다. 이 시는 1954년 8호 《현대공론》에 발표한 작품이다. 미당이 광주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6․25사변으로 인해 경제적 가난과 궁핍함 속에 함몰되지 말고 고고하고 의연한 정신으로 극복할 것을 촉구한 시이다.
〈무등을 보며〉의 시를 살펴보면 당나라 영가 현각(永嘉玄覺)선사의 《증도가》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에 나타난 주제시어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도가》에 나오는 다음의 시구를 용사(用事)하였다.
“빈털터리 수행자가 가난하다 말하지만 몸은 비록 가난하나 마음만은 부자라네. 가난하여 옷치장은 남루하다 할지라도 도를 이루어 마음속에 귀한 보배 다 갖췄네.
값으로 다질 수 없는 진귀한 것 쓰고도 남음이 있어 인연따라 아낌없이 모든 이익 다 베푸네.-《증도가》에서
시 〈무등을 보며〉는 시 전체에 흐르는 시상과 주제가 《증도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파악된다.
한글 선시의 모델을 제시한 조오현의 선시 세계
소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존재이다. 농경문화의 상징으로 목가적 전원 풍경과 평화와 여유를 상징한다. 소는 불교 경전 속에 자주 등장한다. 지금도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하고 있다.
무산 조오현의 시집 《심우도(尋牛圖)》에 나오는 〈무산 심우도〉 10수 가운데 첫 번째 시 〈심우(尋牛)〉는 다음과 같다.
누가 내 이마에
좌우 무인(拇印)을 찍어 놓고
누가 나로 하여금
수배하게 하였는가
천만금 현상으로도
찾지 못할 내 행방을
천 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화살이다
팔이 무릎까지 닿아도 잡지 못할 화살이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 -〈심우〉에서
흔히 《십우도(十牛圖)》에서는 소(牛)를 상징으로 하여 찾아가는 과정으로 묘사하는데, 조오현의 〈무산 심우도〉는 잃어버린 본래 마음을 찾는 과정을 아예 소는 없고 전혀 다른 시적 구상을 통해 창조적으로 마음을 찾아가고 있다. 그는 마음 찾는 공부를 달아난 도둑을 수배하고, 현상금을 걸어 놓고 수사, 체포하는 과정으로 읊고 있다. 도둑은 용의주도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또한 도둑놈의 마음을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심우〉1연 “누가 내 이마에/ 좌우 무인(拇印)을 찍어 놓고”는 옛날 형벌 중의 하나인 죄인의 이마에 죄인의 표시로 인둣불을 지지는 형벌로 표현하였다. 2연 “누가 나로 하여금/ 수배하게 하였는가”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찾아 나선 것을 죄인(도둑)을 수배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3연 “천만금 현상으로 찾지 못할 내 행방을”은 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찾겠다고 수배하고 천만금 현상금까지 걸어 놓았지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4연에서 마음을 화살로 상징하여 표현하고 있다. 화살을 빠르게 흐르는 세월에 비유하는 경우는 있으나, 사람의 마음으로 상징한 것은 참으로 특이하다. 마음이 빠르게 나는 화살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이라서 그렇게 표현했다. 화살은 마음을 상징한다. 세월을 나는 화살에 비유한다. 화살처럼 빨리 흐르는 세월이란 뜻이다. 마음을 화살로 상징한 것은 대단한 비약이요, 상상이다. “천 개 눈으로도 볼 수 없는 화살”은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의 천안통(天眼通)으로도 볼 수 없는 우리의 마음을 읊은 것으로, 확암(廓庵)선사가 《십우도》〈제8, 사람도 소도 다 잊다(人牛俱忘)〉에서 게송 앞에 쓴 서문에서 “관세음보살의 천안이라도 엿보기 어려워라(天眼難竅)”고 한 것에서 용사(用事)되었다.
“팔이 무릎까지 닿아도 잡지 못할 화살”은 부처님의 몸이 보통 사람과 다른 뛰어난 특성이 32가지가 있으니 이는 곧 삼십이상(三十二相)이다. 삼십이상 가운데 아홉째가 ‘팔을 펴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간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것은 팔이 무릎까지 내려가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도 잡지 못할 마음이란 뜻이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는 소머리를 쳐서 죽이는 도살장의 소 도끼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은 우리의 마음(화살) 밖에 없다. ‘찾는다’는 말을 ‘도둑질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 마음 깊은 곳 여래장식(如來藏識) 속에 숨은 부처의 보주(寶珠)를 밤을 새워가며 찾는 수행자도 밤바다 용의주도하게 남의 집 보물을 터는 도둑과 같다. “도살장 쇠도끼 먹고 그 화살로 간 도둑이어”는 〈심우도〉의 소가 도살장에서 소를 잡는 쇠도끼로 나타났다. 쇠도끼를 먹고 달아난 도둑놈인 자신의 마음을 찾으라는 뜻이다. 시가 전혀 모방이 없는 창조적이다.
《십우도》의 꽃은 마지막 10단계인 ‘보살이 중생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노래인 입전수수(入廛垂手)’이다. 《십우도》의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는 보살이 중생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노래이다. 즉 보살송(菩薩頌)이다. 깨달음을 얻었으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천 명의 성인도 알 수 없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흙투성이 얼굴을 하고 저자거리로 나왔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통하고, 아름답고 기적 같은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보살행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마른 나무에 꽃을 피게 하는 기적이다.
〈무산 심우도〉의 마지막 〈입전수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肩帶) 차고 나온 저자
장가들어 본처(本妻)는 버리고
소실(小室)을 얻어 살아볼까.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
일금 삼백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
일금 삼백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
해 돋는 보리밭머리 밥 얻으러 가는 문둥이여, 진문둥이여. -〈입전수수〉전문
1연의 “생선 비린내가 좋아/ 견대 차고 나온 저자”는 보살은 중생이 모여 사는 시장 저잣거리가 좋다. 독각불은 고요하고 한적한 난야(蘭若)를 좋아하지만, 보살은 시장의 생선 비린내가 좋고, 전철 속의 땀 냄새가 좋다. 확암(廓庵)선사의 《십우도》에서는 그림으로 포대화상이 중생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을 가득 담은 포대를 걸치고 육중한 몸매로 여유 있게 나타나는데, 무산은 장사꾼이 어깨에 걸치는 작은 돈가방인 견대로 바꾸어 표현했다.
“장가들어 본처는 버리고/ 소실을 얻어 살아볼까”는 인간사 일 중에 가장 세속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가난한 사람이 장가들어 부자가 되면 못생긴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고 예쁜 계집을 소실로 얻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백일몽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탐욕스럽고 앙큼한 망상이다. 인간 세상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나막신 그 나막신 하나/ 남 주고도 부자라네”는 보살행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 발바닥에 붙은 나막신마저 가난한 이웃에게 보시해 버리는 사람은 마음이 큰 부자이다. 모든 인간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큰 사람이다. 거추장스럽게 발바닥에 붙은 집착을 떼버린 도인이다.
2연은 더욱 파격적인 표현이고, 역설적이다. “일금 삼백 원에 마누라를 팔아먹고”는 인간의 집착 가운데 가장 큰 집착이 마누라에 대한 집착인데, 이런 경지는 완전히 세상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버린 것이다. 이것은 파계가 아니다. 석가모니의 《전생담》에 보면 그가 보살로서 인행(因行)을 닦으실 때 자기의 자식과 부인까지 모두 보시하는 한없는 무주상(無住相) 보시행이 나온다.
“일금 삼백 원에 두 눈까지 빼 팔고” 역시 분별과 차별심을 모두 끊고 중생과 하나가 되는 공(空)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보고 분별심과 차별심을 일으킨다. 그러니 두 눈을 빼버리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된다. 이것이 보살의 공관(空觀)이다.
조오현의 〈아득한 성자〉에 나타난 선 사상은 다음과 같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아득한 성자〉전문
〈아득한 성자〉는 심오한 철리(哲理)의 깨달음을 읊은 오도의 세계를 너무도 쉬운 언어로 누구라도 읽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읊었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라는 시구는 깨달음 없이는 표현이 불가능한 수사이다. 우리가 백년 천년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현재 이 순간만을 살아갈 뿐이다. 지나간 시간을 과거라 하고, 아직 오지 않는 시간을 미래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주의 모든 존재는 과거나 미래를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현재만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찰나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무한한 시간인 겁이라는 영원한 시간을 이루는 것이다.
시간은 현재 이 순간 찰나의 연속일 뿐이다. 본래 시간이란 실재가 없다. 다만 인간이 살고 있는 현상계의 사물들이 무상하게 변화할 뿐이다. 인간들은 사물의 변화 모습에 따라 시간이란 관념을 만들어 놓고 마치 시간을 기준으로 세상 만물이 변화하는 것으로 거꾸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하루”라는 시구를 통해서 찰나를 살다가는 인생사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는 무상한 인생에 대한 집착이 없음을 읊은 것이다.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집착이다. 집착은 고통의 근원이다.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는 무상한 인생에 대해 더 미련이나 집착이 없다. 초연한 삶이요, 깨달음의 경지다. 하루살이 떼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시인은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라고 담담히 속내를 밝히고,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라고 노래한다.
범부도 천성도 오직 현재 이 순간만을 살다가 가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하루밖에 못 사는 존재임에도 하루살이는 자신이 되돌아가야 할 시간을 알고 집착을 버리고 마지막 알을 까고 죽는다. 그런 까닭에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는 위대하다. 만약 알을 까지 않고 죽는다면 하루살이의 인생은 영원히 끝나 버린다. 알을 까고 죽기 때문에 하루살이 인생은 영원히 지속된다. 후회도 미련도 없이 하루를 잘 살다가는 하루살이는 천년을 사는 성자이다.
〈아득한 성자〉의 탁월함은 하찮은 하루살이 벌레에서 부처의 무한한 생명력을 발견했다는 데 있다. 자애심 없이는 볼 수 없는 시력(視力)이다. 그리고 이러한 혜안은 드높은 에스프리의 시력(詩力)으로 표현됐다. 시인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천한 미물인 하루살이가 성자로 보이고,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이 풍파에 바위가 마모돼 사라지는 영겁의 시간과 다르지 않다. 시인은 가장 속된 것을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환치시키고, 찰나의 유한성을 영겁의 영원성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시를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의상대사의〈법성게〉에 나오는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시인의 깨달음이 세상 만물을 끌어안는 화엄의 바다만큼이나 깊기 때문이다.
<아득한 성자>는 기존의 오언 한시 형식을 금과옥조로 고수하는 한국 선시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시조 형식의 모형을 제시한 본격적인 한글 선시의 전범(典範)을 제시한 것이다. 하나의 돌파요, 창조요, 혁신이다.
〈아지랑이〉에 나타난 선 사상은 다음과 같다. 〈아득한 성자〉가 하루살이의 삶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워준 시라면, 〈아지랑이〉는 실체가 없는 허상인 아지랑이를 쫓아 헤매는 부질없고 어리석은 인생을 읊은 철리시이다.
〈아지랑이〉의 시 전문을 소개하고 그 내용을 음미해 보자.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아지랑이〉전문
《금강경》에서 공(空)사상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일체의 모든 현상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그림자 같네. 또한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네.”
인생은 구름 같고, 아침 이슬 같고, 꿈과 같다. 실체가 없는 허상을 붙들고 발부둥치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다.〈아지랑이〉는 오도의 세계인 공의 세계를 아지랑이라는 시어를 통해 멋지게 시화하였다.
1연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의 시구는 백 척의 긴 장대 끝에서 한 발을 내딛느냐 마느냐 생사를 걸고 구도 일념으로 임하는 수행자의 자세를 읊고 있다. 2연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의 시구에서는 드디어 백척간두에서 한 보를 내딛는 충천 대장부의 기개를 보이고 있다.
이 시를 살려내는 시어가 ‘낭떠러지’와 ‘절벽’인데 시어가 신선하고 긴장감을 준다. 칡넝쿨을 생명줄 삼아 우물 속에 매달려 있는 나그네에게 밤낮으로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 칡넝쿨을 번갈아가면서 갉아먹고 있는 현실은 낭떠러지나 절벽처럼 위태롭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삶이 우리의 인생이다. 수행자의 마음은 모름지기 이와 같아야 한다.
3행 ‘우습다’는 깨달음의 겸손한 표현이다. 인생을 깨닫고 보니 내가 그 동안 실체가 없는 아지랑이를 붙들기 위해서 발버둥친 것이 우습다. 깨닫고 보니 세상은 허망한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다. 죽음을 등에 지고 벼랑 끝에 서 있는 우리의 인생, 덧없는 재물과 미인, 명예를 쫒아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지랑이 인생이요, 허공에 핀 꽃을 찾는 허망한 인생이다.
〈아지랑이〉는 한국 문학사에서 만해에 이어 시조시형에 선시를 도입한, 일반 대중의 곁으로 가깝게 다가간 선구자이다.
선시가 역사적으로 한시와 만나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선시가 한시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은 불문율이다. “죽은 문자로는 결코 살아있는 사상이나 문학을 만들 수 없다.” 는 중국 신문화운동의 선구자 호적(好適) 선생의 선언처럼 우리가 선시의 전통적인 틀과 관념 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 거기에 안주하다가는 우리의 자유스럽고 자연스런 감정과 느낌을 시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려운 문자인 한문의 한계성과 제약성으로는 도저히 우리의 신선하고 활발한 자유롭고 개성 있는 상상의 세계를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한글세대에게 문자와 말이 일치하는 우리글인 한글을 통해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형식의 선시의 창작을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한문을 타국지언(他國之言)으로 보고 국문가사 예찬론을 제창했던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은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설파하였다. 우리가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한글을 통해 창작해야 깨달음의 노래인 선시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에필로그
위에서 필자는 유현 심수한 동양 시문학의 정수로서 불교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한문 선시와 한글 선시의 관계를 밝혀 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계에서 이루어 온 연구 노력을 곁들여 문학적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아울러 한글 선시의 원류를 한용운의 시로 보고, 만해의 영향을 받아 현대적으로 활용해 온 서정주와 조오현의 선시를 살펴보았다.
조지훈과 고은의 선시 등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한다. 본디 불교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한글 선시는 전통시와 시조를 아우른 현대시 미학으로 활용되고 있어서이다. 한글 선시의 추구는 바야흐로 서구적 발상과 모더니즘 기법으로 치우쳐 있는 한국 현대시를 올바로 세우고 거듭나게 하는 지름길을 찾는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