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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에스라 원문보기 글쓴이: 이동기
샤론강좌(성경의 힘) - 제44강 교회의 인사와 행정 1부
오늘 주제는 목회를 하는 중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역이 되겠죠?
우리 한 개인이 준비하는걸로 하면, 맨 처음에 우리 스스로가 성경과 역사와 혹은 과학까지 현대 사회 문화까지 이렇게 공부를 해서 준비를 하고, 그리고 사람들을 전도하고 양육하고 또 그 다음에 교육해서 그 다음에 개인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믿어서 일꾼 된 사람들을 잘 조직화하고, 그리고 그 행정이 아주 화평하게 원만하게 잘 되게 하는 이런것도 목회자의 사역 중 하나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다루는 주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가 될 것입니다.
저는 아마 일생에 목회하면서 성경을 연구하고, 이런것도 참 작은일은 아니죠. 이것도 참 저에게는 근 15년 내지 20년쯤 걸린 것이 아닌가. 성경연구하고 정리하고 역사와 기본적으로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 것을 배우고 정리하는 데 꼬박 15년 20년 이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조직화하고, 그리고 거기에 인사 문제가 따르게 되고 행정이 어떻게 되어야 바른 교회 행정이 될 것인가 이런 것도 고민하게 되는 거죠.
사실은 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공부하고 그렇다고 봐야 되겠죠.
제가 인사문제 행정문제를 성경적인 어떤 기원을 찾아 보니까, 아마 모세가 처음에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나왔는데, 남자만 해서 603,550명이니까 대단히 큰 교회입니다.
여러분 광야에 있는 무리를 모임을 광야교회라고 하죠. 스데반 집사님 말씀 같은데 광야교회에 있을때, 교회가 남자만 그렇지 여자도 그만큼 되니까 거의 120만에서 130만. 20세이하 어린아이도 있으니까 200만 되는 교회니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교회죠.
이런 교회가 이렇게 몸집이 불어나니까 업무가 얼마나 폭주하는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기에 일어나는 이런저런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모세가 진액이 다 빠지는 거예요.
이럴때 잘 아시는데로 장인 이드로라는 사람이 와서, 이렇게 해서는 자네가 기진하고 말 것 같다. 그러니까 역할을 나누어서 분담할 필요가 있다 하면서,
그것이 아마 최초의 행정이 아닌가 싶어요. 그 이전에 행정이라 할지 그런 근거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이드로의 지도는 이렇습니다. 첫째 사람을 뽑는데, 온 백성 가운데서 뽑되, 첫째는 재덕(才德)이 겸전한 자. 재덕이라는 말은 재주도 있고, 덕망이 있어야 돼요.
사람의 면면을 다듬어서 일꾼으로 세울려고 하면 재주가 있으면 덕망이 없고, 덕망이 있으면 재주가 없는 사람이 많아요. 이 둘다 겸전한 사람. 재주도 있고 덕망도 있다.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오히려 그런 것을 어떤 모델을 잘 보여주지 않는데, 저는 성경에서 보다도 옛날 예수님 믿기 전에 삼국지라는 책을 읽어 봤어요.
제대로 읽은게 아니고 몇 번 읽어 봤는데, 거기 재주라든지 꾀 같은 것은 조조가 대단하죠. 머리 굴리는데는 대단한 실력이 있어요. 이사람은 덕망이 없어요.
유비라는 사람은 덕망은 있는데 별로 재주는 없는 것 같죠.
재덕을 겸전하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큰 인물이 될 때 교회에서 비중있는 직분을 맡을려고 하면 재주도 있고 덕망도 있어야 되겠다. 재덕이 겸전한 자.
또 거기에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의 이(利)를 미워하는 자를 빼어서 백성중에 세워라.
우리 국민들도 4년에 한번 5년에 한번 지도자를 뽑을때, 하나의 표준이 되겠죠.
첫째 재주와 덕망이 있어야 돼요. 요즘말로 하면 공부도 좀 해야 됩니다.
지도자가 될 사람이 너무 학교다닐때 농땡이 치고 그러면 안돼. 재주도 없고 실력도 없고 기술도 없고 그러면 곤란해요.
이 시대 지식과 기술이 기반이 된 사회에서 너무 학력이 너무 낮거나, 학력이 높아도 실력이 없는 학력자가 많으니까. 이런 사람은 곤란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할줄 아는 사람.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사람을 믿을수가 없어요. 아브라함이 애굽에서라든지 그랄 목자들 만났을때,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해서 거짓말까지 했다. 그런얘기를 해요.
사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람만 안보면 무슨짓이든 할수 있는거예요. 이런사람 가지고는 안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신다는, 하나님 면전에서 산다는 그런 의식이 있어야만 그런사람이라야 믿을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재덕이, 개인적으로는 본인 인격적으로 재덕을 겸전하고도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그리고 진실무망한 자.
사람이 진실하고 그리고 망령되지 않은 허탄하지 않은 그리고 불의의 이(利)를 미워하는 자. 이게 어렵죠.
요즘 우리 다 잘나가다가 뇌물 받아서 불의의 이를 탐하다가 그렇게해서 공부한 것 전부 하루아침에 다 물거품 되고, 그 명예고 관직이고 다 하루아침에 날아가버리는 그런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것은 아마 이드로가 한 말이지만 정말 우리가 귀담아 들을 말씀이예요.
그래서 꼭 마음속에 담아 두시기를 바라고, 우리는 나중에 지금은 사회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이것보다 더 따져봐야 돼요. 사람을 세울때..
그래서 일차적 기준이 됩니다. 아주 단순하고 일차적 기준이면 이정도도 괜찮은 것 같애요. 제가 볼때..
재덕을 겸전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무망하고, 불의의 이를 탐하지 않는자라면 지도자의 자격이 있다 싶어요.
그런 사람을 빼어서 백성위에 세워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삼아서 때를 따라서 일을 처리하게 하면 자네가 훨씬 일이 수월할 것이다.
무릇 그들이 판단하기 어렵고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면 자네에게로 가져올 것이고, 웬만한 문제면 스스로 자치적으로 판단하게 해라.
그리하면 그대에게 일이 쉬우리라.
여러분 행정이라는 것은 일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쉽게, 나누어서 가볍게 하는 겁니다. 목적이.
그래서 일을 목회자가 모든 일을 다 짊어지고 이렇게 하면 힘들어요. 그래서 좀 교회에서 좋은 일꾼들 좋은 재목들을 뽑아서 역할을 나누어 지는 이게 지혜죠.
또 그렇게 해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그러니까 단지 그저 예수믿고 그저 죄사함 받고 천당가는것 이렇게만 되는게 아니고 그거야 믿으면 끝나는 거니까, 그렇지만 잘 다듬어서 일꾼을 되게 해야돼요. 일꾼.
이 세상에서 일꾼이 되게 해야 되겠고, 그리고 교회에 유익을 끼치고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게 되는데, 이런 좋은 일꾼으로..
단지 구원받고 복받고 이것으로 끝나면 안되고 일꾼으로 기른다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그래서 목회자의 사역 중에서 사람을 기르는 것, 일꾼도 꼭 목회자 신학자 무슨 선교사 이런 사람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다른 여러 가지 역할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잘 다듬는 것. 일꾼으로. 구원받게 하는데서 끝나면 안되고 구원받은 후에 아주 훌륭한 그릇이고 재목이다 싶으면 다듬어야 돼요.
다듬지 않고 통나무 집 짓듯이 이렇게 할수 없다는 거예요.
통나무 집도 다듬어야지요. 나무가 좀 곧게 커야 되고..
이런 기본이 있기 때문에 항상 사람을 볼때 아무나 헤프게 너무 사람을 세우면 안되고,
또 인원이 너무 적을때 교회를 조직하는 것은 잘 하는게 아닙니다.
인원이 상당수가 모인 후에야 거기에 그릇들이 나온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저도 목회를 해오다가 조금 배우고 깨닫고 느끼고 한 바가 있어서
인원수가 100명도 안되는 교회에서 함부로 중직을 세우거나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거예요.
소수 일때는 거기에서는 확률적으로 큰 인물들 큰 재목들이 많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많은 사람 중에서 사람을 뽑게 되면 비교적 좋은 사람들 실력있는 사람이 나오게 되니까 어느정도 인재가 모일만큼 모였을때 거기에서 사람을 뽑는게 중요하다는 거죠.
모세는 아예 처음부터 200만 되었으니까 인물이 많이 있었겠죠.
오늘날 개척교회가 실패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100명도 안된곳에 중직을 뽑았다가 그 뒤에 더 좋은 사람이 들어왔는데 세울수가 없는 거예요. 이미 세워놨기 때문에..
이런 것을 경험 안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얘기인데, 너무 속히 너무 빠르게 교회를 조직하는 것은 잘 하는게 아닙니다. 충분히 숫자가 수가 양이 좀 차야돼요.
양이 차야 거기에서 인물이 나와요.
그리고 나중에 다윗이라든지 솔로몬 같은 분도 한 나라를 조직화하는데,(삼하8:15-18)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할새
이 정치한다는 것은 공과 의를 행하는 거예요. 첫째는 공평 그리고 정의.
정치한다는 것은 제가볼때 목회보다는 차원이 낮다고 봅니다. 정치에서 추구한다든지 법이 추구하는 것은 공평과 정의 이하입니다. 공평과 정의까지예요.
목회는 그것을 넘어서 사랑하는데까지 가야되니까 목회가 훨씬 더 높은 차원이죠.
그래서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려 가는데,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한다. 중요한 얘기죠. 사무엘하서 8장 15절-18절에 있는데, 공과 의를 행하는 것이 정치라는 거죠.
만약에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인 물의가 일어났다면 어딘가에 공평이 깨진 거예요. 공평이 깨졌거나 정의가 깨진 거예요. 이럴때 사회적 문제가 되는 거죠.
공과 의를 행할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대장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사관이라는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인데, 사초(史草)를 쓰는 사람이죠.
오늘 우리 교회에서는 별로 중시하지 않고 있죠. 저는 작은 교회이지만 개척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교회 역사를 써 나갈사람이 누군고 찾아 봤어요. 역사를 써나가는 사람이 누구냐. 사관(史官).
교회 역사를 차근차근 써나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살 한사람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세명에서 다섯명정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교회 역사를 써나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은 신앙도 있어야 되고 역사도 좀 공부하면 좋고요, 그리고 글을 쓰는 필력도 있어야 돼요. 그리고 두루 살피는 그런 안목도 있어야 되고. 이런 사관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우리도 무슨 회를 조직하면 서기가 반드시 있죠, 서기도 있고 회계도 있고 하는데, 그 다음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이 되니라
이것은 별로 잘 한 것 같지가 않은데요, 자기 아들들을 대신으로 임명했다는 것은 그릇이 그럴만하면 그럴수도 있지만 어떻든 다윗도 조직화 한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 솔로몬 정부는 조금더 커지는 것을 볼수 있어요.(왕상4:1-6)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때,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사관은 빠지지 않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대장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관리장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대신이니 왕의 벗이요
왕의 벗도 있었어요. 왕이 너무 따분하고 안에서 답답하고 할때 이야기 친구 말벗이 있었는거죠. 그 다음에,
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감역관이더라
이렇게 조금더 복잡해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지금은 한 정부 아래 여러개의 부처가 있고 그 각 지방장관이 있고 합니다만,
어떻든 행정이 있었고 제도가 마련된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오면 사도바울이 교회에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있고 받은 은사가 있다는 그런 얘기를 해요.
로마서에 나오는 얘기인데, 로마서 12장에 보면 6절-8절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권위라는 것은 권면하고 위로한다 그런뜻이죠. 권면하고 위로한다.
오늘같으면 권사님들이 하는 일이죠. 권위하는 일.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음으로 할 것이니라
교회 안에서 어떤 역할들이 있을수 있다 하는 것을, 아직은 교회라는 단체가 조직화 완성이 안되었을때에 이런 바울의 서신속에 로마서 속에 이런 말씀을 하는 거죠.
그리고 그 뒤에 고린도전서에 보면 하나님이 교회중에 몇을 세우신다는 것은, 사람이 세운다기 보다도 하나님께서 어떤 주신 사명을 쫓아서 직분과 능력과 은사가 있다는 건데, 하나님이 교회중에 모두가 다 일꾼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되고, 몇몇 사람들을 일꾼되게 하시는데, 첫째는 사도죠. 사도. 이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사도를 세우셨으니까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넷째는 능력이요, 다섯째는 병고치는 은사와 여섯째는 서로 돕는것과 일곱째는 다스리는 것과 여덟째는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그러니까 사도라든지 선지자 교사, 아마 오늘같으면 나중에 사도바울이 교사와 목사로 주셨다는 말씀을 하십니다만, 일단 오늘날 우리 목회자의 어떤 위치라면 약간은 사도적이고 또는 선지자적이고 또는 교사적인.
이런 것을 거의 한테 적당하게 통합된 것처럼. 목사에게 그런 위치가 있는거죠.
저는 신사도주의 그런 것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 없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사도죠.
선지자 목회자는 옛날 예언자가 하던것과 같은 그런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교사. 가르치는 사람.
우리가 보통 성경에는 목사라기 보다도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목자입니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목자예요. 목자가 하는 일 중에 가장 큰 일이 양을 돌보는 목자가 있어야 되는데, 그냥 돌보기만 하면 목자면 되는데,
가르치는, 제자 삼아서 가르치는 사역이 너무 크다고 해서, 목자에다가 스승을 보태어서 오늘 목사가 된 거예요.
성경에는 정확하게 목사라고 번역할수 있는 단어가 없어요. ‘목자’로 한번만 나와요.
오늘 우리 교회 목회자는 사도적인 권세, 혹은 선지자적인 사명, 교사와 같은 직능 이런 것을 함께 겸전해야 되는..
물론 지금은 목회자들도 직능별로 자꾸 나누어서 어떤 음악목사 따로있고, 심방목사 따로있고, 상담목사 따로있고, 행정목사 따로있고 이렇게 합니다만,
원래 일반적으로 단독목회를 한다고 할때, 목회자에게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예언자적, 교사적인 사역을 감당한다고 봅니다.
여기다가 서수를 매겨서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나가요.
그 다음이 능력이고, 그 다음이 병고치는 은사, 그 다음이 서로 돕는것과, 그 다음이 다스리는 것과, 다스리는 것은 아마 행정인 것 같애요.
처음 우리가 말할 때 행정. 다스린다는 것이 행정이라고 할수 있어요.
영어로 government 라고 하죠.
행정하는 것과 여덟째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교회중에 몇을 세우셨다고 고린도전서 12장 28절 이하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 보면 다시 바울이 예수님께서 세우신 어떤 제도를 놓고 말할 때,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오늘 복음 전하는 자 하면 모든 성도가 전하지만, 복음 전하는 일에 전무하는,
그래서 이런 분을 예를들면 선교사 같은 분으로 볼수 있겠고, 혹은 특히 전도집회를 잘 하고 다니는 분들.
저가 참 교회에 다른 어떤 은사보다도 전도집회를 잘 하는 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전도설교를 잘하고 전도집회를 잘하는 이런 분들이 굉장히 중요한 은사같은데, 우리 한국교회가 은사론같은 것, 직분이라는 사명을 말할 때 별로 지금까지 관심없어하는 부분인데, 저는 지금까지 볼때 전도집회를 잘하는 분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또 희귀하고.. 전도 강연, 전도 간증 이런 것 말고..
완전 불신자들을 모아서 믿게 만드는 집회, 완전 불신자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성경에 있는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 이 하나님을 믿게하는 어떤 그런 집회를 잘 하는 분이 있다면 참 좋겠어요. 복음 전하는 자.
아쉽게도 이런 집회가 지금 별로 잘 안보이고 대부분 부흥회에 가보면 대개 교회 충성을 강요한다든지 그런 정도 같애요. 지금 부흥회는 보니까.
그래서 죄인들이 회심을 한다든지 불신자가 전도자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되는 하나님을 믿게되는 이런 집회를 잘 하는 분이 있으면 참 좋겠다.
지금도 그런 집회잘 잘 하는 분이 있으면 우리교회에도 모시겠는데 잘 없어요.
아직 한국에서 별로 못 찾았어요.
그래서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 할때, 이 목사라는 말이 ‘포이메나’ 하는 말이 목자입니다. 그냥 목자인데, 오늘날 목사라고 붙인 것은 단지 돌본다, 목자가 양을 돌본다 하는 돌보는 것만갖고는 부족하고 제자를 삼아서 가르치는 역할이 너무 크기 때문에 스승 사(師)자를 붙여서 목사(牧師)라고 한 거죠.
그리고 교사하는 것은 신학대학 교수라든지, 아니면 교회학교에서 아직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가르치는 교사 이것도 하나님이 세우신 거예요.
이렇게 세우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잘 자라나게 하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런 직분들이 주어졌다는 거죠.
그래서 그냥 아무 조직도 없고, 아무 질서도 없고, 그저 목사의 설교만 듣고 예배만 드리고 흩어져버리고 아무일도 안하고 이렇게 하면 조직된 교회라 할수 없고요,
정상적인 교회라는 것은 하나의 어떤 조직이 잘 되어서 아주 균형잡힌 아주 튼튼한 든든한 그런 일꾼들이 다듬어져서 그리고는 그 집이 흔들리지 않게 잘 키워지는 그런 교회는 참 중요하겠죠.
우리 동양에서는 집을 지을때 대개 나무를 가지고 많이 지었어요. 특히 한국은 그렇죠. 지금와서 좀 개념이 좀 모호해졌는데, 옛날에 동량(棟梁), 큰 인물을 기둥감이요 들보감이라 해서 동량(棟梁)이라고 했어요.
그 교회의 기둥이라 한다면 아마도 장로님들이 되겠죠. 기둥.
그런데 우리 교단같으면 제일 작은 집이 뭐냐? 목사 한사람에 장로 둘이야. 기본당회(堂會)가 있는 그런 집 당(堂)자를 쓴 집인데, 당회(堂會)할 때 당자가 집 당(堂)자예요. 겨우 기둥두개야 그러면 방이 나옵니까?
기둥이 네 개라야 방이 나올텐데, 기둥이 두개밖에 없어. 장로가 기둥이라면 기둥 두개로 집을 지으라는 건데 그러면 곤란하죠.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 장로님 두분이 있는데, 장로 두분과 목사 한분 세사람만 되면 조직교회라고 하고 당회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집이 불안해요. 방이 없는데, 기둥 둘밖에 없는데 방이 어떻게 나오겠어요?
그래서 생각을 좀 한다면 기둥이 네 개는 되어야되지 않겠는가. 장로님 네분 정도 설만큼 교회가 성장한 다음에 당회를 조직하는게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가끔 해요.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겁니다. 저 혼자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고.. 저는 원래 목수출신이기 때문에 집을 지어볼때 기둥 두개로는 곤란하다는 거야. 기둥이 네 개 되어야 방이 하나 나오죠.
그래서 우리는 집을 짓는다 할때, 큰 재목(材木)을 기둥이라 하면서 동(棟)이라 하고, 들보라 하면서 량(梁), 동량(棟梁) 이렇게 하거든요.
서양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무로 집을 짓는일이 별로 없어요. 거의 돌로 집을 짓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머리돌이 되고, 베드로도 한 돌이 되는거죠. 베드로는 반석이 아닙니다. ‘페트로스’라는 말은 그것은 돌이예요. 돌. 반석은 뭐냐 하면 ‘페트라’.
헬라어로 페트라 해야 반석이고, 페트로스는 돌입니다. 산 돌.
여러분 선교사 중에 리빙스톤(Living Stone)이라는 분이 있죠. 살아있는 돌. 리빙스톤.
집을 짓는다는 거예요. 그분들을 돌로 짓고 벽돌로 짓기 때문에 예수님은 머릿돌이라고 말하고 베드로도 돌이라고 하는거죠.
제가 처음에 너무 인원이 작을때 중직을 임명해놓고 나서 얼마 안가서 더 훌륭한 사람이 나오면 그 중직에 임명하지 못하잖아요. 이미 임명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우리 교단 같은 경우에는 세례교인이 30명 이상이 되고 그러면 장로 두사람을 선출할수 있고, 세울수 있고 거기에 담임목사님이 있으면 당회라고 조직교회가 되는 거예요.
30명 교인이 작은게 아닙니다만 시골에서는 그것도 힘들어요.
그런데 그렇게 작아서는 장로 둘밖에 세우지 못하니까 정말 기둥같은 인물이 30명 중에 두사람이 아주 훌륭한 분이 있다면 괜찮은데, 그게 글쎄 참..
30명 중에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복받은 교회예요. 그게 잘 안되잖아요. 사실.
그 다음부터는 30명 늘어날때마다 한사람 더 세울수가 있는 거예요.
60명 되면 장로 세사람을 세울수 있는 것이고, 세례교인 90명이 되면 장로 네사람을 세울수 있는거야.
그러면 세례교인 100명쯤 되면 장로를 네분 세울수 있는거죠.
100명 되는데서 4명 나오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30명에 두분이 나온다는 것은 쉽지 않는거죠.
기둥이 둘밖에 없으면 벽만 한개 나와요. 벽만 한개 나올텐데, 건축의 원리로 하면 기둥이 둘일때에 벽이 하나가 나오는데, 기둥이 네 개가 되면 벽이 네 개 나온다니까, 방이 하나 나오고.. 무슨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머리가 다 좋은 것 같애요. 그걸 알아듣는 것 보면..
그래서 많을수록 좋은 집을 지을수 있다는 거예요.
너무 작을때, 너무 섣부르게 장로같은 중직을 너무 섣부르게 세우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은 경험을 해보신 분들만 아시는 내용입니다.
자 그 다음에 문제는 사람을 다듬어야 되는데, 목수들은 지금은 뭐그냥 워낙 큰 초대형 나무가 수입되어서 재제소에 막 켜니까, 나무보는 안목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옛날에 손으로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먹줄로 나무 방향을 잡아서 도끼나 짜귀를 가지고 나무를 다듬고 할때, 실제 다듬는 것을 봤어요.
다듬을 때는 그 나무의 쓸모에 대해서 기둥이 될건지 들보가 될건지.. 기둥은 반드시 곧아야 됩니다. 기둥은 곧아야 돼요.
그런데 들보는 구부러진 것이 멋이 있어요. 들보는 구부러져도 얼마든지 쓸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구부러진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멋으로 구부러진것으로도 들보를 만들었어요. 목수일 해보신 분을 알 수 있는 얘기인데,
어떻든 기둥감들을 다듬고 들보를 다듬고 할때, 기본적으로 갖춰줘야 돼요.
길이가 있어야 되고, 굵기가 있어야 돼요. 그래서 너무 짧아도 못 쓰고, 너무 구부러져도 못써요.
그리고 나무를 보면 비틀어진게 있어요. 나무가 잘 삐어지고 뒤틀리는 것이 있다니까. 그런것도 목수일 안해본 분은 잘 몰라요.
제일 잘 뒤틀리는 것이 낙엽송이예요. 낙엽송은 얼마나 돌아가느냐? 생나무를 베어서 집을 지으면 거의 한바퀴 돌아버립니다. 완전히 꽈베기처럼 돌아가버려요.
그리고 또 쩍쩍 갈라져요. 그래서 이런 나무는 썩 좋은 나무가 아녜요.
재목을 잘 볼때, 변덕을 부리지 않는 나무. 그리고 잘 삐어지지 않는 토라지지 않는 나무. 이런것도 목수일을 하다보면 보이는데, 목수일 하다보니까 그런것도 보이는 거예요.
여간해도 그저 무덤덤한 그런 사람이 있어요. 잘 상처받지 않고 잘 삐어지지 않고 토라지지 않고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조금만 그저 자존심이 이만큼 상처가 나면 그대로 삐어지고 토라지고 이런 사람은 낙엽송이예요. 제가 볼때 이건 낙엽송이구나..
그리고 아예 못도 안들어가는 나무가 있어요. 못도 강철못도 안들어가는 나무가 있어요. 오크(oak)라고 참나무.. 그것은 참 단단해요.
그리고 영 물렁한 나무가 있어요. 오동나무 같은 것인데 그것은 농짝안에 무슨 안심재료로 쓰지 고급 재료로는 안 씁니다. 물렁한 나무예요.
그래서 사람도 보면 그런 목수가 보는 것처럼 안목이 있는 거예요.
교회를 조직화 한다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집을 짓는거나 마찬가지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집을 지어가는 것인데, 거기에 어떤 원리가 조금은 목수일을 해본 사람이 조금은 적용할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든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화평의 하나님이시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몇사람을 인물을 주시는데, 적재적소에 적성을 따라서 적임자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교회가 건전한 교회예요.
그리고 만약에 임명을 너무 함부로 헤프게 해서는 안돼요.
그리고 한번 임명하면 끝까지 믿어줘야돼요. 실수한다고 금방 바꾸고 하면 안돼요.
그래서 처음에 잘 다듬어서 집을 짓고 한번 기둥으로 세우면 함부로 그것을 빼내거나 하면 집 전체가 흔들리니까, 극히 삼가야 돼요.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가 지금 볼때, 참 잘하는게 많은데, 기도도 제일 잘하죠. 잘하는지 많이 하는지 모르지만 열심이 있어요. 헌금도 세계 모든교회보다 잘하는 편입니다. 전도도 상당히 잘하는 편이고 봉사도 잘하고 예배 출석율도 세계 1위야. 어느 기독교도 한국교회 출석율보다 좋은 나라가 없어요.
그리고 새벽기도 철야기도 할것없이 금식기도 하여튼 모든 면에서 다 잘하는데, 제가볼때 한두가지 조금 미흡한게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난번에 말씀드린데로 교육이 너무 없다는 거예요. 특히 성경교육이 턱도없이 부족합니다. 턱도없이.. 성경교육을 하지 않으면 잘 다듬어지지 않아요.
성경말씀을 가지고 인재를 잘 다듬는것인데, 성경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인재들이 재목들이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 재목으로 집을 짓기 때문에 집이 흔들리고, 또 한번 임명한 사람을 너무 쉽게 옮겨요.
여러분 집을 짓다가 기둥을 뺏다가, 기둥을 빼내어 서까래 했다가, 서까래 빼내어 기둥했다가 해봐요. 그 집이 성할날이 없죠.
그래서 임명을 할때 정말 처음부터 든든한 그런 일꾼을 기둥으로 세우고 함부로 빼어내거나 그런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돼요.
그리고 이왕에 일꾼을 세울려면 임시직을 많이 세우지말고 할수있는데까지 잘 다듬어서 항존직을 세워야 돼요.
제가 아직도 잘 납득이 안되는게 서리집사를 평생하는 분이 있다는 거예요.
만약에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되었다고 하면, 다음 국회때까지 다음 국회 차기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에 인준을 할때까지만 서리이고, 인준받으면 서리자 떼고 바로 총리죠. 맞아요.
그게 상식적인건데, 서리집사로 임명되었으면, 늦어도 그 다음해에 공동회의에서 정식집사로. 서리집사가 아니고 정식 항존직 안수집사로 임명이 안되면 탈락입니다.
서리집사도 아니고 집으로 가야돼요. 탈락하고 그 다음 다른 서리집사를 세워서 또 임명받는 것 보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어떻게 된 서리집사가 평생을 서리집사 하다가 정식집사 못되어 천국가면.. 천국가서도 서리신자.. 그러면 곤란하죠.
이것 빨리 생각해보고, 될만큼 부지런히 다듬어 보고 훈련을 시켜보고 교육을 해보고 안되면 완전히 제외하고, 평생을 서리자를 달고살면 어떻게 합니까?
정말 제가 볼때는 납득이 안돼요. 이런것도 아무도 문제제기 안하고 다 그렇게 하니까 그게 정상이 되어 버렸어요. 이것도 제가 알기로는 제가 견문이 좁으니까 제가 아는게 미천해서 바깥 넓은 세상 잘 몰라요. 제가 알기로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제가 처음인 것 같애요. 서리집사를 평생 달고 다니지 마라...
그리고 교회가 빨리빨리 사람을 다듬어서 서리자를 뗄수 있도록 공부하고 배우고 다듬어져서 정식집사가 되어야지 맨날천날 서리집사면 곤란해요.
그리고 우리교단은 더 웃기는게, 앞으로 시정이 되겠습니다만 이것도 문제를 제기해야 돼요. 그래야 시정의 필요성을 느끼겠죠.
여성들은 우리교단은 그래요. 여성들이 목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권사도 되는데, 여성이 안수집사 되는 길이 없어요. 참 희한한거죠.
장로도 되고 목사도 되는데 여성이 왜 안수집사가 안되는지 이해가 안되죠.
빨리 고쳐야 돼요. 다 되는데, 집사는 안되는 거야.
그리고 또 한가지는 교사같은 경우에, 지난번에 교육할 때 말씀드린 것 같은데, 교사같은 경우에 그 자격을 교사를 실사하는 아무 기준도 없어요.
기준도 없고 어떤 교사가 되는 특별한 무슨 공식화된 어떤 표준화된 그런 과정도 없고 말이죠.
출석 잘하고 율동시켜봐가지고 교사 임명하고... 이렇게 해서는 참...
교회학교는 하나님의 학교인데, 교회학교가..
너무 어처구니 없이 교사를 함부로 임명하고 성경 한번도 안 읽어본 사람을 교사로 임명하는.. 이것은 정말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일이예요.
그런 일들이 지금 우리 교회의 행정이라는 거예요.
교육행정이나 인사행정 전체가 많이 시정되고 가다듬어서 목사만 중요한게 아니라, 저는 장로님도 중요하고.. 어쩌면 목사보다 장로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그 지역에 그 교회에 안맞으면 딴데로 옮길수 있잖아요. 그렇죠?
장로는 붙박이이예요. 붙박이. 그것은 붙박이별이라서 빼내지도 못하고, 집에서 기둥 빼내봐요. 그러면 집 전체가 흔들리니까.
목사를 세우는 것 보다 더 중요한게 장로님을 세우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교사를 세우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목사와 거의 같은 수준의 교육이 있어야 돼요.
그런면에서 아무도 지금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분이 없었는데, 저는 지금까지 기독교가 이만큼 되어온 것은 선배들이 좋은 유산을 많이 남겼지만 한계에 왔다고 봐요.
그 한계에 온게 뭐냐 하면 인사와 행정. 이런것이 너무 잘못됐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한국 교회가 한단계 성장 성숙해 갈려면 교회 중직자를,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일반 사회수준이 많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교회도 따라서 그 이상으로 향상되어야 되겠고 교회 중직들을 좀더 다듬어진 사람들, 좀더 훌륭한 사람들 그리고 교사들은 좀더 교사를 제대로 된 교사를 길러내고 어떤 표준이 있어야 돼요. 교사가 될려면..
이런 것을 마련해야 되겠는데, 간단한 일이 아니죠.
저는 일단 문제를 제기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방법을 찾아 보는데,
적재적소에 적성에 맞는 적임자가 적당한 그런 합당한 그런 직분을 맡아서 일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 끝없이 성장하는 교회 성숙하고 성화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한번 임명하면 끝까지 신뢰하는 교회, 자꾸 헤프게 사람을 바꾸지 말고,
저는 인사를 할때, 작은 교회이기 때문에 대형교회가 아니어서 인사할 것도 없습니다만 그래도 몇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그 사람이 그 직분 그 장소에 적임자냐?
적성에 맞고 은사가 있고 사명감이 있고 거기 탈랜트가 있고 성향과 이런 모든 것이 그 사람이 부합하는가?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원하는지?
반드시 어떤 그 직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 그래서 자원하는 원서를 받아서 임명을 합니다. 억지로 강제로 임명하는 법이 없고.
일이 아무리 안되어도 억지로 강제로 임명하지 않습니다. 꼭 저는 목회 처음부터 그렇게 해 왔어요.
새해에 아직 임명 안된 분 중에서, 우리 교회는 등록한 후에 억지로 임명하지 않으니까 자기가 이런일을 할수 있고 해왔고 경험도 있고 적성에 맞고 거기에 사명감을 느낀다 하는 그런 직분에 일하겠다하는 자원 원서를 쓰게하니까 양식을 만들어가지고..
인사문제 가지고 지금까지 말썽난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항상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자 이제 모든 일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기 위하여 교회는 적절한 인사와 능률적인 효과적인 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보통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면 의사 간호사 할것없이 아주 그 꼭 필요한 필수교육과정을 거칩니다.
왜냐하면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은 더욱더 신실한 사람을 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사람들의 무슨 육체적 건강 일생 이런정도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다루는 그런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아 일하는 사람들은 의사 간호사 보다 더 신실한 사람들 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더 잘 다듬어서 그렇게 사람을 세워야 된다는 거예요.
제가 지금까지 볼때 교회에서 너무 사람을 헤프게 직분을 너무 헤프게 임명했다는 거예요.
참고로 성경구절 한절을 소개합니다.
목사님들이 여러분 계시기 때문에 또 이 방송을 듣는 분들이 목사님들이 들으시기 때문에 교회 중직을 세울때 꼭 명심해야 될 말씀이 있는데,
잠언 26장 8절이예요.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여러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을 거예요.
거의 처음듣는 말씀이죠. 워낙 성경을 많이 보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미련한 자, 전혀 자격이 안된 사람에게다가 영예, 상당히 높은 영예로운 직분을 맡긴다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것과 같다는 건데,
물매라는 것은 이만한 막대기에다가 보통 50cm 60cm되는 막대기에다고 끈을 달아요. 끈을 다시 접어서 접힌 부분에 돌을 얹어서 던지면서 한쪽 끈을 놨버리면 사람 팔길이보다 배나 되기 때문에 물매 날아가는 돌의 거리가 손으로 던지는것보다 두배내지 세배 날아갑니다.
이게 물매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돌을 끈이 접혀진 부분에 얹어서 끈이 풀리면서 돌이 날아가야지, 그 돌을 물매 끈에 매어서 던지면 어떻게 될까요? 나한테 떨어지는 거죠. 그
러니까 자격이 안된 사람을 예를들어 교회 중직에 임명했다 그러면 반드시 목회자를 찍어냅니다. 아직도 무슨말인지 이해가 안되는 모양인데, 이제는 알지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한번 해보세요.
그릇이 안되고 자격이 안되는 사람에게 중직을 맡겨놓으면 꼭 그런짓 합니다.
목사님들 특히 명심해야 돼요.
저는 그런 건을 몇건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직접 목격한게 세건, 네건을 목격햇는데, 이것은 진리중에 진리라.
이게 정말 어떻게 솔로몬에게 이런 놀라운 지혜가 나오는지..
그러니까 물매라는 것은, 물매를 안 던져본사람을 잘 몰라요. 또 이런일을 실제로 안 겪어본 사람은 잘 모르는데,
특히 교회에서 항존직 장로 혹은 권사 집사 이렇게 항존직을 세울때 그릇이 안된 사람을 너무 헤프게 섣부르게, 그런 교회 집사 장로는 굉장한 직인데, 이런 중직을 맡겼다가는 꼭 돌을 물매에 매는것과 같다는 겁니다.
어떤 나이가 젊은 목사님이 이런 실수를 한 거야. 그래서 너무너무 잘하니까 목회자에게 너무 잘하고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하고 이렇게 하니까, 아 저사람 저정도이면 장로가 되어도 되겠다 해서 장로를 세웠는데, 장로 세운지 얼마안되어 바로 교회에 문제가 일어났는데,
그 젊은 목사님이 저를 찾아 왔어요. 찾아왔길래 제가 잠언 26장 8절을 얘기해 줬죠.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것이 돌을 물매에 매는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했더니, 그 자리에서 그냥 쓰러지려고 해요.. 성경에 이런말씀이 있는지 잘 몰랐다 하면서..
깊이 새겨 들으시고 충분히 다듬어서, 그리고 다듬을걸 다음어야지.. 너무 허약한 것을 다듬으면 기둥이 안돼요. 다듬어 버리면 아무것도 남는게 없죠.
원래 동량감은 그릇이 큰, 나무 굵기가 있어야 돼요. 굵기가 있는 것을 깎아야지. 연필심만한 것을 깎아봐 그것은 기둥이 안되고 말잖소.
그러니까 나무를 볼때 이것은 큰 재목이다.. 어려서부터 쭈욱 살아온 과정까지 다 검증해서..
제가 그래서 인사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이 있죠. 인사만사 할때, 한 100가지를 살펴봐요. 지금도.. 사람을 살펴보는데, 죄송합니다만 우리 성도들이 우리 목사님 맨날 사람 눈치만 보고 살았나? 그렇게 염려할 정도로 사람을 살펴보는데, 기본으로 한 100가지 방면에서 살펴봅니다.
아까 재덕이 겸전하고 진실무망하고 불의의 이를 탐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대여섯가지가 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돼요.
사회가 하도 복잡하고 인물들이 하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정도 표준갖고는 안되고, 제가 성경에 있는 어떤 교훈을 쫓아서 성경에서 어떤 인물들을 요구하는지..
여러분 구원 얻는데는 이것저것 안따지지만, 일꾼되는 데는 얼마나 성경이 다듬어진 사람을 요구하는지 잘 몰라서 그렇지 한번 봅시다. 한번 다듬어 봅시다.
첫째, 맨 처음에 뭘 보느냐?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예요.
옛날에 우리 어른들이 수신(修身)하고 제가(齊家)라고 했어요. 가정을 잘 꾸려 가느냐?
자기 가정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교회를 돌아보리요. 그것은 말이 안되는 겁니다. 가정을 잘 건사해 나가는 인물을 세우는 겁니다.
둘째,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
너무 쉽게 폭발하는 사람은 안돼요. 감정의 노예가 되어서 그릇이 너무 작다는 거예요.
조그만한 일에 폭발해버리면 곤란해요. 그릇이 너무 작아서..
다듬어봐야 남는게 없어요.
이런사람으로서는 인물이 안 됩니다. 감정에 노예가 되어있다.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죠?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목석같은 사람이 되면 안되죠.
그래서 감정에 너무 치우쳐있거나 감정에 노예가 되어있는 사람은 안돼요.
그 다음에 건강하고 건전한 사람.
여러분 교회에 중직자를 세우는데 맨날 그저 병을 달고 살고, 그러면 곤란해요.
거기다가 몸이 너무 허약해서 도중에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중 하차된다면 그러면 곤란하잖아요. 건강하고 건전한 사람. 사고방식이 건전해야 돼요.
제가 하도 살펴본 제목이 많아서 ‘가나다’ 순으로 했습니다.
사실은 좀 다르게 해야되는데 일단 가나다 순으로 제목을 정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건전한 사람.
그 다음 네 번째, 겸손한 사람.
제가 자주하는 얘기인데 겸손한 척하는게 겸손한게 아니고 진짜 겸손한 것.
겸손이 뭐냐?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게 겸손이야.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게 겸손입니다.
잘 안믿어지는 모양인데, 스바냐서를 한번 보세요. 스바냐서 2장을 보시면 어떤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냐? 성경이 말하는것과 세상사람이 말하는 것이 달라요.
스바냐서 2장 3절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게 겸손이예요. 교만이 뭐냐? 여호와의 규례를 무시하는 것.
하나님 말씀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교만의 극치죠..
더 교만한게 있어요. 교만의 극단 극단이 뭐냐? 신을 만드는거야.
자기가 자기 손으로 신을 만드는 것,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죠. 교만의 극치예요.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겸손한게 뭐냐?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게 겸손입니다.
더 겸손해지면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아까 이드로 봤죠? 이드로가 꼭 시내산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겠다 하는게 아니고 자기 장인어른이예요. 자기 장인어른이 말하는데도 거기에서 배울게 있다는 거예요.
그런 열린 마음이 있어야 돼요.
우리 남자들은 장인어른의 말 잘 들어야 됩니다.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인어른이 없는데..
경륜이 있는 어른들의 말, 선배들의 말을 잘 들어야 돼요.
또 겸손한 사람은 사람의 말 중에서 후배의 말도 들을줄 알아야 돼요.
후배가 하는 말도 옳으면 들을줄 알아야 돼요.
어린아이가 시키면 옳으면 들어야 돼요. 이게 겸손이예요.
겸손한 척 하는게 겸손이 아니고, 어떤 사람은 너스레를 떨면서 겸손한 척 하는데, 그것은 겸손한 척하는 교만입니다. 나는 이만큼 겸손하다 하면서 겸손을 과시하는 교만이예요.
그 다음에 다섯 번째, 경건한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앞에 늘 예배하는 것 같은 삶을 사는 것.
하나님과 종적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항상 흐트러지지 않는 그런 사람..
여섯 번째는 계명을 즐겨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의 계명이 옳다는 것을, 옳은 것을 옳은 것으로 분별할수 있는, 그래서 그것을 즐거워하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이런 사람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고집으로 주장을 하지 않는 사람.
세상에 고집, 이것도 감당을 못해요.
그래서 디모데전서에 보면 제고집대로 하지 않는 사람을 세우라고. 장로를 세울때 제 고집대로 하지 않는 사람..
예수교장로회 구조 같은데서는 고집부리는 장로 한분이 있으면 집사님 50명이 있어도 안돼요. 고집부리는 장로 한번이 애 먹이면 집사님 50명 달려들어도 안돼. 고집불통 이런 것 안돼요. 일절 고집을 부리지 않는 사람.
그 다음에 공(公)과 사(私)를 구별할줄 아는 사람.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적인 문제를 가져와서 공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있어요.
요압같은 사람이죠. 공적인 사건에 있던 것을 사적인 감정으로 폭발해 버리는 이런 사람은 결국은 사고를 냅니다. 공사를 구별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다음에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사람.
항상 어느 편으로 기울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되고, 공평무사. 사사로운 감정을 갖고있지 않고 항상 공평을 공의를 추구하는 사람.
그 다음에 관대하고 관용하는 사람.
사람이 여러 사람을 지도하려면 관용해야 돼요. 성경의 여러곳에서 너의 관용을 모든사람에 나타나게 하라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2부에 계속..)
[정리]
◎ 로마서 12장 6절-8절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 고린도전서 12장 28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넷째는 능력이요,
다섯째는 병 고치는 은사와,
여섯째는 서로 돕는 것과,
일곱째는 다스리는 것과,
여덟째는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 에베소서 4장 11절-12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고린도전서 14장 33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 하나님께서 몇(일꾼)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 적재적소에 적성을 따라 적임자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교회가 건전한 교회입니다.
- 한번 임명하면 끝까지 신뢰하라
- 항존직 일군으로 세우라
- 모든 일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기 위하여 교회는 적절한 인사와 능률적인 행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신실할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 교회 일꾼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
1.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를 세운다.
2. 감정에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을 세운다.
3. 건강하고 건전한 사람을 세운다.
4. 겸손한 사람을 세운다.
5. 경건한 사람들을 세운다.
6. 계명을 즐거워하는 사람을 세운다.
7. 고집으로 주장하지 않는 사람을 세운다.
8. 공(公)과 사(私)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을 세운다.
9.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사람을 세운다.
10. 관대(寬大)하며 관용(寬容)하는 사람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