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의 귀의 (31)
라자가하로 모여든 수행자들의 물결을 멀찌감치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한때는 나도 저들처럼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맸지...”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서성이는 사람들, 물건을 팔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가득한 라자가하 거리에서 홀로 웃음을 잃은 그는 우빠띳사(Upatissa)였다. 시들한 눈빛으로 우빠띳사는 생각에 잠겼다.
“벌써 오래전 일이 되었구나...”
어린 시절 둘도 없는 단짝 꼴리따(Kolita)와 함께 축제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라자가하 최대의 축제, 산꼭대기에서 칠 일 동안 열리는 제사인 기락가사맛자(Giraggasamajja)로 도성은 북적거렸다.
휘장을 친 유곽마다 무희들의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고, 광장에서는 연극이 공연되었으며, 광대들은 골목마다 곡예를 뽐냈다.
앙가국과 마가다국의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때만큼은 신분과 계급의 장벽을 넘어 함께 떠들며 즐기고 기쁨을 만끽하곤 하였다. 그런데도 즐거워하지도 웃지도 않는 두 소년이 있었다.
“축제에 참여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저들도 백 년 후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겠지. 저 환희와 웃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겟지.”
“저런 축제를 즐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의 강물에 쓸려 버리는 꿈같은 환희가 아닐까. 염증을 느낀 두 소년은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들녘을 거닐었다.
“두려운 죽음을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영원한 삶은 없을까?”
“죽음이 있듯 죽지 않는 법 또한 있지 않을까? 벗이여 죽지 않는 법을 가르쳐줄 만한 스승을 우리 한번 찾아보자.”
“그래,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분명 죽음을 초월하는 법이 있을거야, 좋아, 찾으로 떠나자.”
두 소년은 라자가하의 명사인 산자야(Sanjaya)의 제자가 되었다.
총명한 두 소년은 오래지 않아 스승의 가르침을 모두 암기하고 이해하며 구분해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승께서 알고 있는 가르침은 이것뿐입니까, 아니면 이jt 말고 또 있습니까.?”
“이것이 전부다.”
귀의할 만한 스승이라 여겨 제자가 됐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산자야의 경지는 미련이 남는 불완전한 가르침이었다. 불사(不死)의 길, 영원한 삶을 찾아 두 사람은 여러 곳을 떠돌았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학자와 사상가들을 만났다.
그러나 확신을 주는 스승은 어디에도 없었다.
참되고 영원한 삶을 찾는 두 젊은이는 좌절을 맛볼 때마다 서로에게 다짐하곤 하였다.
“불사의 길을 발견하면 꼭 서로에게 알려주도록 하자.”
그들의 다짐은 가물거리는 추억이 되려고 하였다.
“결국 불사의 길을 찾지 못하는 건가....”
탄식을 흘리며 거리를 바라보던 우빠띳사의 공허한 눈길에 걸식하는 한 사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순간 주변의 산만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시간이 멈춰버린 듯하였다. 시선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사문의 얼굴은 편안했다. 그의 표정에서는 두려움과 초조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손에 든 발우를 응시하며 한 발 한 발 옮기는 그의 걸음걸이는 너무도 평화롭고 고즈녁했다.
‘세상에 아라한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나는 한 번도 아라한을 본 적이 없다. 만약 아라한이 있다면 바로 저런 분이 아닐까.’
탁발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홀린 듯 사문의 뒤를 따르던 우빠띳사는 한적한 곳에 다다라 손에 든 좌구를 내려놓았다.
“사문이여, 여기 앉으십시오.”
그가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가지고 온 병의 물을 따라 드렸다. 우빠띳사는 예의를 갖춰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사문이여, 당신은 참으로 침착하고 얼굴이 밝게 빛납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의 스승은 누구고, 무엇을 배웠습니까?”
사문은 말하엿다.
“벗이여, 사꺄족 출신의 위대한 사문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출가하여, 그분을 스승으로 삼고, 그분을 존경하며, 그분을 따라 배우는 앗사지입니다.”
“당신의 스승, 위대한 사문께선 어떤 법을 가르치십니까?”
“벗이여, 저는 이제 막 출가한 사람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스승의 넓고 깊은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당신에게 제대로 말 할 수 없습니다.”
앗사지는 말문을 닫고 가만히 시선을 낮추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세 치 혀를 칼과 방패 삼아 싸우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말을 위한 말, 상처만 남기는 헛된 논쟁을 우빠띳사는 수도 없이 겪었던 터였다.
우빠띳사는 몸가짐을 바로 하고 앗사지의 발아래 이마를 조아렸다.
“저는 우빠띳사입니다. 많은 말씀을 바라지 않습니다. 저를 가엾이 여겨 요점만이라도 일러 주십시오. ”
천천히 눈을 뜬 앗사지는 우빠띳사를 한참을 바라보더니 게송을 읊었다.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
앗사지의 눈동자는 빛이 났다. 우빠띳사는 그의 게송을 듣자마자 번민의 열기가 가시고 눈이 시원해졌다.
눈앞이 열렸다. 열반의 강물에 몸을 담근 우빠띳사는 기쁨에 넘쳐 소리쳤다.
“대덕이시여,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들의 스승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죽림정사에 계십니다.”
“대덕이여, 그곳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우빠띳사는 앗사지의 발아래 거듭 이마를 조아린 다음 급히 떠나갔다. 그에겐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산자야의 수도원에 있던 꼴리따가 가깝게 다가온 우빠띳사를 보고 물었다.
“벗이여, 오늘은 그대의 얼굴이 유난히 빛나는 구려, 무슨 경사라도 있는 것인가?”
“기뻐하게, 드디어 불사의 길을 찾았네.”
우빠띳사는 앗사지와 만남을 이야기하고, 그가 들려준 게송을 꼴리따에게도 전하였다.
꼴리따 역시 게송을 듣는 순간 소리쳤다.
“드니어 길을 찾았다.”
기쁜 소식을 둘만 누릴 수 없었다. 우빠띳사와 꼴리따는 스승 산자야를 찾아갔다.
“스승님, 드디어 불사의 길, 영원한 자유의 길을 찾았습니다.”
기쁨에 들뜬 우빠띳사와 꼴리따의 설명에도 산자야는 곁눈질을 거두지 않았다. 산자야가 말했다.
“나는 평생 수많은 수행자들을 만나보았다. 일체의 고뇌를 벗어 났다는 이, 모든 것을 안다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이, 다들 자신의 말이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이 참이라고도 생각지 않고 거짓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영원한 자유의 길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산자야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명성과 권위를 버리고 낯선 길로 들어서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뛰어난 두 제자 역시 잃고 싶어하지 않았다. 우빠띳사와 꼴리따는 함께 교단을 이끌자는 스승의 만류를 뿌리치고 산자야의 동산을 나섰다. 이백오십 명의 수행자가 두 사람을 뒤따랐다.
세존께서는 수많은 비구들에게 에워싸여 법을 설하고 계셨다.
먼 길을 걸어온 우빠띳사와 꼴리따가 이백오십명의 동료와 함께 죽림정사를 들어섰다.
부처님은 설법을 멈추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길을 열어주어라, 저기 훌륭한 나의 두 제자가 찾아오고 있다.”
두 사람은 부처님께 예배하며 간청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날라까(Nalaka) 촌장 방간따(Vanganta)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루빠사리( Rupasari)입니다. 세존이시여, 당신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세존이시여, 저는 꼴리따(Kolita) 촌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목갈리(Moggali)입니다. 세존이시여, 당신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미셨다.
“오라, 비구들이여, 나의 가르침 안에서 청정한 범행을 닦아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라.”
어머니의 성을 따라서 이 두 사람은 사리뿟따 (Sariputta, 舍利弗)와 마하목갈리나(Mahamogallana, 大目,連) 로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부처님 교단을 지탱하는 튼튼한 두 기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