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 4시 30분에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 1천여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축사가 있고, 노래가 있고, 인사가 있고, 연설이 있었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감동의 시간이 이어졌다.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실내는 뜨거웠다.
이를 지켜본 이들은 “마치 대선 출정식 같다”고도 했고 “아이돌 스타의 팬 미팅을 보는 것 같다”고도 했다. 제주에서, 경상도 가거도에서, 또 전라도에서 달려온 사람들도 있었고, 근무 중에 틈을 내서 참석한 사람들도 있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스님들만 아니라면, 재야인사와 몇몇 정치인들, 보수언론의 유력자들, 그리고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은 분들의 가족들,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 등 참석자의 면면으로 볼 때, 영락없는 출정식으로 오해를 받을 법했다. 하필 이날은 4.27 보궐선거가 있던 날이기도 했다.
4월 27일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명진 스님.
이 행사는 어떤 행사였을까. 명진스님의 책 <스님은 사춘기>(이솔)의 출판기념회였다. 출판기념회가 시끌벅적한 대선출정식, 또는 아이돌 스타들의 팬 미팅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던 것이다. 어떤 이는 평일 낮 행사에 1000명이 훨씬 넘는 인파가 모여든 것은 차기 대선후보 1순위로 꼽히는 박근혜 의원의 행사라고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개의 출판기념회가 그렇듯이 축사를 하거나 인사말을 하는 사람들의 의례적인 발언은 이날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명진 스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뚝뚝 눈물처럼 떨구었다. 때론 해학과 익살로, 때론 눈물과 노래로, 때론 잔잔한 음성으로 명진 스님을 찬탄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1천명이 훨씬 넘는 사부대중들이 참석했다. 명진 스님의 오랜 도반인 전 송광사 주지 현봉 스님이 축사를 하고 있다.
명진 스님의 도반인 전 송광사 주지 현봉 스님은 명진 스님이 살아온 이력을 특유의 해학 섞인 말투로 이끌어갔다. 가는 곳마다 조용할 날이 없었던 수좌, 어디서든 사고를 쳤던 말썽쟁이, 도저히 주지할 사람이 아닌데도 개운사 주지를 했다고도 하고 나중에는 봉은사 주지를 맡았다고 하더니 결국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오늘 이런 법석을 만들었다며, 도반 명진을 소개한 현봉 스님은 그러나 명진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가 번뇌가 다한 자리에서 나타난 큰 밝음, 대 지혜의 발로였다고 도반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의 웃음을 유도하는 수사에는 진한 진정성이 뚝뚝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이어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나섰다. 그는 명진 스님과의 오랜 인연을 소개하고 “명진 스님이 봉은사 주지로 계실 때, 일요법회를 두어 번 봉은사를 찾아가 경청한 적이 있었다”며 “일요법회에 말씀했던 법문을 정리한 오늘 이 책의 출간은 법문을 들어준 여러 봉은사 신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렇기에 여러 분은 이 책을 읽는 독자이기에 앞서 함께 책을 지은 공동저자들”이라고 말했다.
우뢰 같은 박수가 환호와 함께 터져 나왔다. 명진 스님처럼 활달하고 호탕하고 재미 있고 또한 강직한 분과의 교유가 있었기에 암울했던 시절을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밝힌 김종철 선생은 명진 스님이 천일기도를 회향하고 용산 남일당으로 철거민을 찾았을 때, 강남 신도들과 함께 버스 한 대로 갔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명진 스님이야말로 생각이 다른 강남의 부자들까지 감동시킨 정말로 위대한 스님이였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김종철 선생은 또 “불교계 안팎에 명진 스님 같은 분이 어디 있느냐”며 “아무래도 스님께서 머리를 길러야 하겠습니다”라고 조크, 폭소를 유도하기도 했다.
중견 탤런트 안석환 씨는 ‘인생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명진 스님께서 답해주신 “알 수 없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답변을 듣고 그것이 예술인이 걸어갈 길임을 알게 되었다며 그 힘으로 꿋꿋하게 예술인의 길을 걷고 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안석환 씨는 진정한 감사의 마음으로 명진 스님과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대중들에게 장사익의 노래를 열창으로 들려줘 큰 갈채를 받았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축가를 부르고 있다.
이어 칼럼리스트로도 널리 알려진 정신과의사 정혜신 박사가 무대로 올랐다. 정 박사는 명진 스님이 봉은사 주지로 계실 때, 3년가량 80년대 고문피해자들이 집단상담을 받을 수 있는 장소로 선불당을 제공한 사실을 소개했다. “3년전 민가협 활동가들과 함께 80년대 고문피해자들의 심리상담 장소 물색이 쉽지 않아 이곳저곳을 전전할 때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흔쾌히 선불당 사용을 허락했다”며 “명진 스님의 배려로 고문피해자들은 경내를 거니는 것으로도 치유가 시작했고, 치유를 하는 과정에서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받은 사람이 많았으며, 이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보상금의 일부를 출연해 ‘진실의 힘’이라는 재단을 설립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소개했다. 명진 스님은 재단법인 ‘진실의 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혜신 박사는 “최근 명진 스님께 평택 쌍용차 노조원들과 그 가족의 처참한 실상을 말씀드리니까 명진 스님은 주루룩 눈문을 흘리더라”며 “명진 스님 그런 분”이라고 밝혔다. 정 박사는 이어 수준급의 피아노반주에 맞춰 동요 ‘오빠생각’과 나훈아의 ‘사랑’을 신도들과 합창했다.
이어 일요법회에 부모님과 함께 참석했던 최정일 어린이가 30분 동안 혼자서 끙끙거리며 썼다는 명진 스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명진 스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커서 돈 많이 벌어서 큰 절을 지어 드릴께요.”
낭랑한 목청으로 편지를 낭독하자 명진 스님의 눈가에는 물기기 맺혔다. 참석한 신도들의 눈도 누구랄 것도 없이 젖어 있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정휴, 장윤, 법등, 현봉, 지운, 일수, 금강 스님 등 조계종의 중진 스님 20 여명과 박선숙 민주당 국회의원, 박보균 중앙일보 편집인,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우희종 서울대교수, 김영국 거사, 권오헌 민가협 회장,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박해군 인권재단 상임이사, 용산 유가족인 전재숙씨,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씨 등 재야단체와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명진스님은 인사말에서 특유의 달변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드디어 주인공 명진 스님이 연단에 올랐다. 환호와 함성, 박수. 이런 난리법석이 또 있을까 할 정도였다. 명진 스님은 인사말에서 영화 ‘쇼생크탈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50년 이상 교도소에서 수감돼 있다 가석방됐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자살하는 브룩 하트렌 얘기였다. 명진 스님은 “이 책 <스님은 사춘기>는 바로 ‘쇼생크 탈출’에서 말한 것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며 “우리는 삶속에 그동안 익혀왔던 습관적 생각, 받아들여진 정보들, 권위 권력의 힘으로 또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굳어져 있던 사유가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안주하고, 번뇌 속에 갇혀 있지만, 이런 구속과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 사람이 뭔가에 대한 끝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가하는 고민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고 밝힌 스님은 이어 정권을 비판하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 설명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과격하다, 정치적이다라는 비판을 많이 하고 있지만, 만일 길에서 강도가 약한 사람을 패고 있는데 저건 스님인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라고 한다면 그게 과연 올바른 스님일까”라고 되물었다. “힘 없는 사람이 맞는 것을 구하는 것은 스님이 해야할 일이고, 거대한 권력이 힘없는 사람에게 압박을 가하고, 착취하고 소외키시고, 이런 것을 보고 비판하면 잘못된 것이냐?”고 물은 명진 스님은 “이 문제는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역설했다.
명진스님의 인사말에 경청하며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는 봉은사 신도들.
“의식주 기본적인 삶의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주고 책임져야 한다.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고, 집이 없어서 전세방을 쫓겨 다니는 중에도 끝없이 올라가는 전세금, 그게 안 되니까 결국 도둑질이라도 해야지 하는 세상,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쥐꼬리 만해 도저히 살 수 없는 세상, 애 낳으면 대학 가르치기 힘들어서 애를 안 낳는 세상,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올라 300~400만원 월급으로는 애들 대학을 보낼 수 없는 세상, 이런 세상을 불교적 관점으로 극락이니 지옥이니 따지기 이전에 끝없는 자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난 정치라고 본다. 내가 만약 정치적 발언을 좀 했다면 이런 차원에서 한 발언이고, MB에 대한 비판을 했다면 이런 차원의 비판이었다고 깊은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는 명진 스님의 열변에 1천여 대중은 함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명진 스님의 책 <스님은 사춘기>은 현재 서점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월 27일 현재 6쇄(1만8천부)를 찍었을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명진 스님은 책을 들고는 이 책이 100만부는 팔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조크를 던졌다. 1천여 신도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스님은 사춘기> 책을 틈틈이 들춰보았다. 그저 그런 책이려니 했던 선입관은 첫 장인 ‘어린 시절’을 읽는 순간 산산히 깨져나갔다. 명진 스님 특유의 선기와 활달함이 가득했고, 문장도 잘 정리된 수준 높은 책이었던 것이다. 지난 해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봉은사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 혹시나 그 이야기가 포함되었다면 책의 가치는 반감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였다. 순간 든 느낌은 “역시, 고수는 다르구나”였다.
대중을 휘어잡는 특유의 연설, 어느 순간 대중을 쥐락펴락하는 타고난 ‘선동 능력’, 명진 스님만이 갖고 있는 특출한 장기들, 그것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또 어떻겠는가. 대중들은 명진 스님의 절묘한 선 법문에 환호하고 공감하며 청량함과 행복함을 만끽하고 있는데….
절집을 벗어나 야단법석으로 치러진 행사이기는 했지만, 이날 출판기념회는 불교계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감동과 환희의 시간이었다.
명진 스님의 입가에 미소가 일자, 참석한 봉은사 신도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명진 스님이 포효하듯 연설하자 대중들은 천둥같은 함성과 박수로 답한다. 아, 이 순간 무슨 뜻이 오가고 있는까. 붓다의 염화에 조응한 가섭의 미소가 후오백세에 찬란한 선불교를 잉태했듯이, 명진스님과 1천여 봉은사 신도들이 연출한 이날의 이심전심은 한국불교에 어떤 결과를 도출할 것인가. 효창공원 내리막 길에 흰 꽃잎 더덩실 춤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