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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를 몇번 넘기고 맞은 아지랑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첫번째 봄나들이길을 경북 성주의 회연서원, 한개마을과 고택 방문, 성주호 산책을 겸해 매화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성주는 참외 주산지로만 알려졌지 국내 여행을 좀 다녔다는 분들조차 성주 '성밖숲' 정도 외에 여행하는 사람은 아직 드물은거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처음 나서는 봄길 여행인데도 신청인원이 적어 새로 마련한 25인승 리무진 버스에 10분을 모시고 단란한 가족여행처럼 다녀왔습니다.
이 좋은 버스에 빈자리가 너무 많아 아깝고 아쉽다는 어느 회원분의 말씀처럼 채우지 못한 빈자리로 아쉬운 빈공간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만 아름다웠던 여행길이 빈자리를 충분히 채운 기분좋은 나들이였습니다.^^
그저께 내린 봄비로 희뿌옇던 미세먼지가 씻겨 나간 맑은 아침 일출이 한강 위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출발길입니다.
▼ 성주 한개마을
여행의 첫 일정은 성주 한개마을에서 시작합니다.
평일이여서인지 관람객이 거의 없어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가 더 좋았습니다.
방문 때 마다 시간이 부족해 휙 둘러보던 걸음에서 오늘은 문화해설사 예약을 신청해 설명을 들으며 제법 여유있게 둘러봅니다.
해설사님의 자분자분한 해설도 귀에 쏙쏙 들어오고, 회원님들께서도 지루해 하지 않고 설명에 집중하시며 재미있게 경청하시더군요~
돌담이 아름다운 한옥 보존 마을로 지정된 '성주 한개마을'은 성산 이씨가 대대로 살아온 전형적인 동성촌락입니다.
한개’라는 마을 이름은 예전에 이곳에 큰 개울 또는 나루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가 처음 이 곳에 이주하여 마을을 만들었으며, 현재는 월봉 이정현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영남 제일의 길지를 이루고 있어 성리학자 이진상, 응와 이원조 등 예로부터 이름난 선비를 많이 배출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는 지방지정문화재 9동을 중심으로 전통한옥 구조가 잘 남아 있으며, 특이한 토석담 등 한옥의 아름다움과 과학이 깃들은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 양지 바른 초가집 뒷뜰에 활짝 핀 산수유의 환영을 받네요~
3월 29일 이천 산수유 여행에서 만날 풍성한 노란 꽃밭에도 기대를 키워 봅니다.^^
해설사님께 한개마을에 대한 전체 개요를 간단하게 듣고 본격적으로 마을 탐방에 나섭니다.
미세먼지가 물러간 파랗고 맑은하늘, 오늘 낮 최고 기온이 18도~19도, 바람은 초속 4m,,,,벌써 등에 따갑게 내리앉는 햇볕을 부드러운 바람이 식혀주는 여행하기 좋은 날입니다.^^
한개마을은 흙담이 특히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마을 내 유명 고택을 찾아 이동하며 골목골목 유연하게 휘어진 토석담을 담아 봅니다.
이른 봄꽃들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과실수들은 봉긋봉긋 새순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유자나무 새순이 꽃처럼 잎을 겹겹이 포개어 돌려가며 앙증맞게 올라옵니다.
성주 대산리 진사댁으로 들어섭니다.
주변이 공사 중이여서 좀 산만한 가운데서 화사하게 꽃을 피운 매화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아직 꽃봉오리가 열리지 않은 붉은색의 꽃받침과 흰 꽃잎이 대조를 이루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날이네요.
진사댁이란 이름은 이 집을 지은 이국희(1868~1939)가 조선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실시한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지만 벼슬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1차에 합격해 진사시 자격은 되었으나 2차 대과시험은 보지 않은 경우라 하는데, 이 시험이 마지막 시험이였기 때문이라 합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고방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함께 들어서 있는데 여기에는 뽐내지 않은 겸손함을 나타내는 선비의 정신이 깃들여있다하네요.
설명을 듣는 동안 저는 흙담 아래 장독대 사이에서 날씬한 자태로 꽃을 매운 매화꽃에 한눈에 잠깐 팔았습니다.^^
성주는 더운 지방에 해당되기 때문에 마루, 툇마루 등 더운 날 바람이 시원하게 통풍되도록 하는 구조가 특징이라 합니다.
그 예로 툇마루를 설치하고 툇마루에 구멍을 내어 바람이 잘 통하게 하는 기능에 멋을 곁들인 풍혈이라는 문양인데, 자세히 보면 뚫린 구멍이 박쥐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를 들여다보면 박쥐 모양이 더 실감납니다. 박쥐는 다산의 상징이라 합니다. 이렇게 한옥에는 곳곳에 철학과 기능, 과학이 내포되어 있다합니다.
새사랑채 모습입니다.
앞쪽에 난간을 세우고 누마루처럼 꾸민 마루 1칸과 온돌방 1칸,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누마루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만(卍)자 장식으로 멋을 내었으며 보기 드문 섬세하고 아름다운 구조입니다. 창호 문양이 특이하네요.
마을 입구의 광대바위입니다. 전통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마을의 지명 중 하나라 합니다.
마을에 경사가 있을 때 점잖은 양반들을 대신해 광대를 불러 놀게했는데, 한개마을에서는 삼일유가의 광대들이 놀았던 마당을 광대걸이라 하였고, 그 광대걸에서 광대들이 줄놀이를 하다가 줄이 끊어져 떨어져 죽은 바위라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어릴 적 저녁에 광대바위 옆을 지나가게 되면 광대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무서워했다고 하네요.
기와집도, 초가집도 아닌, 스레이트 건물이면서 토석담을 두른 집 하나가 이곳에서는 색다른 눈길을 받네요.
여기는 대산동 교리댁으로, 조선 영조 때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 등을 지낸 이석구 선생이 지은 집입니다.
조선시대 건축물로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43호로 경사진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여 지었습니다.
교리댁이라 한 것은 홍문관 교리를 역임했기 때문이라 하는데, 교리는 선비들이 흠모하는 벼슬이였기 때문에 여러 직책 중에서 교리를 택해 부르는 것이라합니다.
대문에 붙여진 '울루'와 '신도'에 라는 도깨비 설명이 흥미로왔습니다.
울루(鬱壘)와 신도(神荼)....일단 한문이 굉장히 특이했습니다.
봄이 오면 대문에 보통 '입춘대길'이라 써서 붙이는데, 이거보다 더 오래된 풍습으로 도깨비 이름을 써서 붙입다합니다. 궁 문설주에도 도깨비 이름을 써서 붙이고, 명문있는 고택에도 이 도깨비 이름을 붙여있습니다.
'신도'와 '울루'는 문을 지키는 신으로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도깨비 이름을 글로 써 붙입니다.
중국에서는 신도와 울루를 아예 그림으로 그려서 붙였는데, 신라시대 유물에서는 문고리가 아예 도깨비 모양이라합니다.
서향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안채, 사랑채, 중문채, 사당, 서재 등 여섯 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는 여성들의 공간, 사랑채는 남성들의 공간입니다. 바닥의 풀 때문에 덮어 놓은거라네요.
교리댁 한옥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목련나무 아래에 있던 상하마석로 말에 오르거나 내릴 때 사용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돌입니다.
특이한건 돌에 새겨진 한자 '운서영월대'인데, 이 집을 들고나는 손님을 대하는 주인의 진심어린 마음을 담은 글이라합니다.
또 하나가 탱자나무입니다. 가시가 있는 나무는 집안에 두지 않는다는데 고목이 된 탱자나무가 사랑채 마당에 있는건 '남귤북지'라는 2,500년 전 중국의 고사성어가 현재의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는 현상이라 합니다.
남귤북지(南橘北枳)는 남쪽(南)의 귤(橘)나무를 북쪽(北)에 옮겨 심으면 열매가 탱자(枳)로 변한다는 뜻으로, 귤은 탱자나무에 접을 붙이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며 추위에 약한 귤은 사라지고 본연의 탱자나무만 살아남은 까닭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약하게도 되고 착하게도 변한다는 교훈의 의미를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마당 안자리에 자리하고 있다합니다.
사랑채 기단 가운데 검은 구멍은 굴뚝입니다.
굴뚝 위치가 지붕이 아닌 바닥에 있는 건 밥 하는 연기가 끼니를 제대로 짓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혹여 고통이 될까하는 배려이기도 하고, 연기로 해충을 쫓는 역할과 목재의 방충 역할도 겸하는 과학이 담겨있다합니다.
중문간은 중문과 사랑채 사이 공간에 담을 쌓아 내·외담을 만든 것이 흥미롭습니다. 안채 기와 지붕으로 위로 키를 높여 화사하게 핀 목련이 중문채로 시선을 당기게 하는군요.
사랑채 뒤로 돌아가면 사당이 나옵니다. 사당 앞이 정원으로 꾸며져 제일 아름다운 사당이 아닐까 싶다합니다.
사당 앞 홍매화는 벌써 낙화를 준비하고 있네요.
교리댁을 나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해설사님의 성실하고 자상한 설명으로 벌써 예정한 시간을 반 이상 쓴거 같습니다.^^;;
여기는 성주 응와종택.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44호입니다.
먼저 솟을 대문과 거목이 된 회화나무가 이 댁의 위상을 먼저 말해 줍니다.
솟을대문은 양반집의 상징으로 아무나 세울 수 있는게 아니고 종2품 이상의 관직을 지내야만 했다네요.
회화나무도 대과에 급제한 경우 기념 식수로 보통 심었다하는데 이 댁은 과거 급제자가 두 명 또는 그 이상이 된다는 의미가 되는군요.
응와종택은 한개마을 성산이씨의 발상지입니다.
성산이씨가 한개에 입향할 당시의 종택이였던 대초당을 경종 1년(1721) 처사 이이신이 매입하여 터를 매입하여 응와종택의 터전을 마련했으며, 이후 그의 아들 돈재 이석문이 북쪽으로 문을 내어 북비고택으로도 불립니다.
잘 가꾸어진 마당이 먼저 눈에 띄는 고택입니다.
대문에 매달린 우편함이 참 고급져 보이네요.
가옥은 안채·사랑채·안사랑채·사당·북비채·대문채 등 모두 6동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통 살림집입니다.
한개마을 고택들 중에서 제일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듯 합니다.
대문을 들어서며 만나는 잘 생긴 반송.
반송 옆 행랑채로 드는 협문의 북비(北扉)라는 편액,
이 댁을 북비고택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사도세자를 호위하던 무관 이석문은 사도세자가 죽은 뒤 세자를 그리워하여 조선 영조 50년(1774)에 북쪽으로 사립문을 내고 평생을 이곳에서 은거하며 살았습니다.
잠겨져 있는 북비 너머 행랑채 마당에 한창 꽃을 피우기 시작한 매화에 앵글을 담아 봅니다.
사도세자를 평생 그리워 하던 이석문의 고고한 성품을 품은 선비의꽃....
담장 아래 또 낮은 담장을 두른 장독대가 인상적입니다.
와우~~ 장독대 옆에 소담스런 할미꽃 한 그루가 싱싱하니 꽃잎을 열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이번 봄에는 꼭~ 할미꽃을 찾아 보리라 했는데 여기서 뜻하지 않은 반가운 만남입니다.^^
왠지 할미꽃에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꽃을 발견할 때면 어? 할미꽃이다 하는 소리가 저 뿐만 아니고 다른 분에게서도 들리더군요.^^
마침 주인장이 계셔 허락을 받고 뒷뜰까지 한 바퀴 돌아 나옵니다.
고택을 나서며 청명한 하늘과 함께 인증샷 찰칵~~~^^
예정시간이 다 되어 급하게 마음 뒷편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무리 걸음이 바뻐도 담장 너머로 살폿이 고개를 내민 백매를 그냥 지나칠수가 없네요.
줄기를 떨꾼 나목의 실루엣과 정갈한 토석담장, 기와 지붕 사이로 살짝 보이는 매화의 어울림이 한결 더 멋스러워 보입니다.
마을 뒤켠 언덕을 살짝 오르면 전망대가 있어 마을이 내려다 보입니다.
한개마을은 마을 북쪽으로는 영취산(331.7m)이 좌청룡 우백호로 뻗어 있고, 서남쪽으로 백천이 흐르고 있어 영남 제일의 길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개마을에는 특이한 담장이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담장은 크게 외곽담과 내곽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외곽담은 마을의 가옥이 대체로 경사지에 위치한 관계로 산지에 접한 담과 주택동 쪽의 측면담은 높은 반면 앞뒤 주택의 영역을 구획하는 담은 낮게 되어 있습니다.
내곽담은 주거건물의 처마보다 낮아 담 양측의 영역을 시각적으로 차단 또는 연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산자락 아래 전망대를 돌아 아래로 내려가며 들린 이승희 생가.
한말 구국운동과 1910년대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이승희가 태어나 살던 곳입니다.
대문 양쪽에는 독립운동가 고택답게 '반공' '방첩'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기도 합니다.
대문 옆으로는 해설사님이 가르키는 하인들이 드나들던 작은 쪽문이 있는데, 하인이 쪽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 대문을 열어주면 양반이 들어왔다 합니다.
그 옆에 대산동 한주종택.
한주종택은 격상북도 민속문화재 제45호입니다.
한개마을의 가장 안쪽 산울타리에 위치한 옛집으로 현 소유자 할머니가 시집 온 동네 이름을 따 ‘동곽댁’이라고도 합니다.
영조 43년(1767)에 이민검이 처음 지었고, 고종 3년(1866)에 성리학자인 한주 이진상이 고쳐 지었다고 전합니다.
1910년에 먼저 다녀온 독립운동가 이승희가 아버지인 한주 이진상의 호를 딴 한주정사를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한주정사라고 불리는 정자가 있는 부분과 안채·사랑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정자 옆에는 네모반듯한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어 정원을 꾸며 놓아 이 지방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는 집으로 원형이 잘 남아있고, 주위의 풍경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연못 복원 공사를 잘못해 옛 멋은 자라지고 없네요. 다시 재복원 공사 중으로 연못도 다시 복원된다 하는데 지금은 연못의 흔적 조차 없습니다.
공사장 돌더미 위에서 기념 사진 하나 남깁니다.
휘어진 소나무는 여전히 멋진 위용입니다.
한개마을 토석담장 포토존, 홍매화가 활짝 피어나면 골목이 화려하게 변할거 같습니다.
성주 대산리 하회댁도 힐끔 들여다 보고 갑니다.
지금 소유자의 어머니가 안동 하회마을에서 시집을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요.
정원이 잘 가꿔진 고택입니다. 주인이 거주하고 있어 밖에서만 보고 지나갑니다.
해설을 들으며 마을 고택 몇 집을 돌아 출발했던 관광안내센터로 돌아옵니다.
여유있게 해설을 들으며 돌아보려면 2시간은 잡아야 한다는군요.
조금 부족한 듯한 시간이였지만, 흙담과 어울러진 싱싱한 매화꽃도 만족스레 감상한 한개마을 답사였습니다.^^
성주 월향면 한개마을에서 30분 정도 이동한 수륜면에 위치한 돌물레 민속식당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 메뉴는 취나물솥밥에 두부짜글이입니다.
밑반찬이 보기 좋게 깔끔하게 차려지니 더 맛나 보이더군요.
특히 왼쪽에 있는 묵무침이 인기였어요. 이틀 마다 볶는다는 고소한 깨가루가 얹혀진 쫀득한 묵이 일미입니다.^^
두부짜글이입니다. 슴슴한 두부찌개 같습니다.
반찬이 냉장고를 타지 않은 감칠맛이 돌아 좋았습니다.
슴슴하고 아삭하던 배추김치와 무우김치도 좋아들 하셨어요.
김치는 판매도 한다합니다.
김치를 사는 분이 계셔 꺼내온 통김치가 먹음직스러워 한 줄기 부탁해 얻어 먹으니 시원하고 새콤하니 더 꿀맛입니다.^^
▼ 성주 회연서원 매화 탐방
오늘 메인 방문지인 성주 회연서원 도착, 입구가 되는 현도루에서 기념사진 남깁니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서원을 기대하고 도착합니다만 그 풍성하던 매화꽃은 어디로 가고 줄기만 앙성하게 남았을까요?...
오전에 다녀온 한개마을에서 해설사님이 가지가 다 잘려나갔다는 당황스럽고 슬픈(?) 소식을 먼저 접하고 각오는 하고 왔습니다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야 하는 기대감을 놓지 않았는데,,,정말 아쉽네요~~^^;;
매화꽃은 사라졌지만 서원 자체는 규모도 크고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곳입니다.
성주 회연서원은 조선 선조 때 대유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을 주향하는 유서 깊은 서원으로,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입니다. 선생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웠습니다.
한강은 살아 생전에 회연초당을 짓고, 매화 1백 그루를 심어 '백매원(百梅園)'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매화나무가 서원 안과 밖을 가득 메우고 담장을 넘어 매화나무 터널을 이룬 모습이 장관인 매화 명소입니다만,,,,,
지난 가을 가지치기를 하며 강전지를 하는 바람에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썰렁한 모습입니다.
그나마 몇 가닥씩 남아있는 줄기에서 매화꽃이 활짝 피는 시기여서 매화향도 맡아보고~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귀하게 바라보며 접사 촬영도 해 봅니다. 적은 것의 소중함을 깨달은 하루이기도 합니다.^^
입구인 현도루를 들어서면 다시 중문이 지나야합니다.
양옆에 자라는 느티나무도 대단합니다. 수령400년의 보호수입니다.
매화나무 가지가 저 담장을 넘어와 소담하게 기와담에 얹혀야하는데....
풍성하게 군락을 이룬 꽃밭이 아니라 홀로 핀 독매(獨梅)의 꽃을 감상하듯 꽃송이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향기를 탐닉합니다.^^
회연서원은 영남5현(김굉필·정여창·이언적·이황) 가운데 1명인 정구가 1583년(선조16)에 세워 제자들을 교육하던 회연초당(檜淵草堂)이 1627년(인조5) 지방사림의 여론에 따라 서원이 되고, 1690년(숙종16) 사액을 받았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4년에 정부의 보조와 지방유림의 협력으로 복원되었습니다.
경회당입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하던 경회당 대청마루 뒤의 영쌍창 창틀을 만나 많이 반가웠습니다.^^
종이 창호가 아닌 나무로 만든 두 문짝 사이에 기둥(설주)가 있을 창을 말합니다. 사진의 오른쪽 열어 놓은 창문에서 보이는 것처럼 문을 열면 가운데 설주가 남아있는 모습으로, 한옥에서 간혹 보이는 특이한 형식이라합니다.
브리사님 언니께서 알려주셔서 덕분에 잘 감상했습니다. ^^
대구 하목정의 흔적만 남은 영쌍창이 보물로 지정된 가치 중 하나라고 해서 어떤 모습을 말하는지 마침 보수 중이던 관리자에게 물어보아도 잘 몰라 답답했는데 여기서 그 모습을 확실히 확인했네요.
풍성한 매화꽃을 보지 못한 아쉬운 빈자리를 영쌍창을 본 것으로 꽉 채웠습니다.^^
아쉬움과 미련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라는 말이 오랜만에 다시 생각납니다.
두어 해 지나고 나면 이 담장 위로 화사한 매화꽃이 축축 늘어져 얹혀질 날에 다시 찾아와야겠네요 ^^
회연서원은 꼭 매화꽃이 아니여도 서원의 규모나 주변 경치와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광이 들려 볼만한 곳입니다.
▼ 매화둘레길 따라 한강고택,수성리중매댁
오늘 하늘 참 맑습니다. 해를 등지고 순광으로 하늘을 담으니 더 파랗고 맑네요.
사철 푸르른 소나무, 물을 올리느라 작은 연초록 잎새, 아직 겨울을 떠나지 못한 누런 단풍잎과 파란하늘에 흰구름,,,,무심히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본 하늘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네요~
회연서원을 나서 대가천 다리를 건너니 개천변을 따라 매화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여기 매화나무도 가로수 나무 전지하듯 일렬로 반듯하게 이발(?)을 한 모습입니다.
지금은 나무 사이가 휑합니다만, 그래도 꽃은 많이 달렸습니다.
앞으로 1~2년 지나면 볼만한 매화 꽃길이 될거 같습니다.
오후에 들어서며 바람이 초속 7m로 더 강하게 불지만 오히려 나른하고 따가운 봄볕으로 발걸음을 내놓기가 망설여지던 등을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밀어주니 그윽한 매화향 맡으며 뚝길을 기분좋게 산책에 나섭니다.
수성리 중매댁을 먼저 방문합니다.
1903에 현 소유자의 조부가 건립한 가옥으로 안채·사랑채·대문채.고방채.안대문채가 전통적인 주택의 배치법과 구조양식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부엌 뒷마당을 중심으로 찬방.안방,부엌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가사노동을 기능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돋보이는 고택입니다.
이어서 중매댁과 담을 나란히 한 수성리 한강종택입니다.
현재 거주자가 있어서인지 주변이 산만한게 좀 아쉬웠네요.
수성리 한강종택은 회원서원에 배향된 '한강 정구'의 후손들인 청주 정씨 문목공파의 종택입니다. 건립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180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자형의 사랑채와 안채를 '二'자형으로 배치하였으며, 사각형의 토석담장을 두른 사당이 종택 우측에 별도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강종택 아랫에 위치한 이름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단아한 고택이 존재감이 있네요~
한강종택 앞 줄기와 가치가 용트림 하듯 뒤틀리며 자라 거목이 된 소나무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 성주호둘레길 (가야산 선비산수길)
성주군 금수면으로 이동해 성주호 수변을 산책처럼 걸었습니다.
성주호 수변 산책길은 거대한 인공호수인 성주댐을 끼고 도는 성주호반을 잇는 산길, 물길, 드라이브 길로 이뤄져있습니다.
벚꽃 산책길로 아름다운 곳입니다만 아직 개화 전이여서 독용산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1코스 중에서 광암교~아라월드까지 3km 정도를 상큼한 봄바람 맞으며 산책처럼 즐겼습니다.
오늘 날씨가 맑아 성주호 물빛이 하늘빛과 같은 아름다운 푸른 빛이네요.
성주의 유명 장소에는 한강 정구 선생이 흔적이 남아 있네요.
이곳 성주군 금수면, 수륜면 부터 김천 증산면까지 대가천의 맑은 물과 계곡이 절경을 이루어 한강 정구 선생이 7언절구의 시를 지어 노래한 무흘구곡이라는 빼어난 경관이 있으며, 성주호둘레길은 무흘구곡과 함께 합니다.
광암교에서 수변길로 내려섭니다. 노란 생강나무꽃이 오후의 빛을 받아 밝게 빛나네요.
시작은 평지같은 완만한 산자락길입니다.
대가천 맑은 물길이 독용산 산자락을 따라 흐릅니다.
팔뚝 만한 고기들이 그물만 던지면 가득 올라올듯 고기 반 물 반입니다.
둘레길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만, 이런 정도의 데크길로 이어지는 오르내리막이 서너 차례 이어집니다.
성주호 물색이 고은 날입니다. 물가를 향해 꽃을 피운 분홍빛 진달래와 노란 생강나무꽃이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데크가 아닌 흙길은 잔돌 하나 없이 말끔하게 빗겨진 흙길입니다.
쉼터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낮은 오르내리막에 등이 촉촉히 젖었는데 시원한 강바람이 소나무 향을 실고 부드럽게 불어오니 자리를 뜨기가 어렵네요^^
하늘 맑고 곱다는 말을 여러 번 하게 되네요~
오늘 맑은 하늘 덕분에 풍광이 더 빛나고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져 여행이 더 찰지고 풍만했던거 같습니다. ^^
이 정도로 다시 한숨 오르고나면~
요런 삼삼한 길을 다시 만나기를 반복합니다.
둘레길 따라 진달래가 한창 피기 시작해 산책길에 화사함을 더해 줬습니다.
지금 걷고 있는 길 모습이 이 사진에 다 담긴 것 같습니다.
파란하늘에 흰구름, 호주호를 끼고 이어지는 산자락 데크길, 이제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나목들~~
언니와 동생이
홀로 걷는 듯
함께 걷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걷는 구간의 하일라이트(?)인 부교를 만납니다.
와~~날씨 좋다~~~
호수 이쁘다~~~^^
구름 죽여 줘요~~~ ㅎ~~^^
길지 않은 부교 걷기, 주변이 어우러져 멋진 물길 걷기입니다.
어는 덧 오후 4시가 넘어가는 낮은 햇살이 물가 버드나무를 노랗게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부교에서 오솔길로 올라서면 어느새 영모재를 거쳐 목적지가 코앞입니다.
지금부터는 반듯한 비포장길입니다.
새잎이 돋기 전 이제 곧 사라져 갈 앙상한 나목이 그리는 마지막 겨울 풍경이 될거 같습니다.
찔레꽃 새순도 파릇하게 예쁘게 올라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찾아 나섰던 봄꽃의 전령사 매화꽃이 지고나면 여기저기서 봄꽃들이 폭죽 터지듯 피어나겠네요~
경북 문화재자료 제281호로 지정된 '봉두리 영모재(永慕齋)' 건물을 지납니다.
선조 시절 사람인 한춘부와 그의 손자인 한두남의 재실로, 1925년에 건립됐지만 성주호 수몰로 이곳으로 옮겨졌다합니다.
재실 주변도 아름답지만, 배롱나무가 세 단계로 높이를 달리해 영모재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한 여름 배롱나무꽃이 필 때 찾아봐야 할 곳으로 마음에 새깁니다.
영모재를 지나면 포장도로가 나타납니다.
벚꽃이 가로수로 자라고, 포장도로지만 S라인으로 구불구불 휘어진 길이 아름답습니다.
아라월드와 만나는 삼거리, 이곳에 토로네여행길 전용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쉬엄쉬엄 여유로운 성주여행이였습니다.
서울로 향하는 귀경, 그 맑던 하늘의 흰구름이 금방이라도 억수같은 비가 쏱아질 듯한 검은 구름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자연은 참 신묘합니다^^
이제 꽃들이 정신없이 피어나는 봄길~
또 꽃길에서 봬요~~~^^
첫댓글 다시 가본 한개 마을 ~ 여전히 우리나라 건축물의 자연 친화적이며 정감이 있는 포근함이 돋보여 좋았어요
맑고 투명한 파아란 하늘에 흰구름
매화향이 그윽한 서원과 고택, 그리고 길~~
나목 사이로 보이는 호수의 깊은 물색과
파아란 하늘에 흰 구름을 보며 걸은 성주호 둘레길은 대박
토로님의 소담스런 할미꽃과
매화 접사 사진 ~👍
퍼갑니다요🤩
해설사님을 미리 부탁 하신 토로님 탁월한 선택으로 자세하게 한개 마을을 설명을 듣고 여러가지 새로운 공부을 듣으면서 또 토로님 후기을 복습삼아 다시 한번 읽어 봤습니다 .
다양한 꽃도 많이 보고 성주호 둘레길도 만족스런 만보 이상을 걸었습니다 .
럭셔리 리무진 버스 너무 편하고 좋았습니다 .
예쁜 꽃길에서 많은 길벗님과 같이 걸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토로님 일정 만드시라 고생하셨는데 인원이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토로님 힘 내시고 계속해서 일정 만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