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감독의 1996년 영화 <박봉곤 가출 사건>은 그 ‘튀는’ 제목 그대로, 뭔가 독특한 느낌을 준다. 말도 많고 꿈도 많은 주부 박봉곤(심혜진)은, 툭하면 윽박이나 지르는 남편 최희재(여균동)와의 결혼 생활을 못 견디고 끝내 가출을 감행, 꿈꾸던 가수의 길을 찾아 나선다. 남편은 ‘가출 주부 찾아내기’가 전문이라는 희한한 탐정 X(안성기)에게 부인 찾기를 맡기는데, 박봉곤을 추적하던 탐정은 그만 그녀의 순수함에 끌리고 사랑에 빠진다.
결혼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심리적 공허감을 느껴본 모든 주부의 공감대를 건드리는 페미니즘적 터치의 스토리이고, 로맨스엔 복고풍의 따뜻함이 스며 있다. 게다가, 살아온 내력부터가 웃기는 수십 명의 독특한 주변 캐릭터들(보들레르가 귀를 자른 시인라고 우기는 술집사장에서 흥분하면 꽃을 먹는 작곡가까지)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기발하다 못해 엉뚱한 유머감각들이 폭소를 자아낸다.
이 영화를 한꺼풀 벗기면 음미해 볼 상징, 내면의 영화적 장치들이 숨어 있다. 말하기 좋아하는 박봉곤이 ‘말 많은 여자’ 싫어하는 남편의 곁에서 탈출해 남의 말 잘 들어주는 탐정 X를 사랑하게 되고, 남편은 반대로 푸줏간의 벙어리 처녀를 좋아한다.. 이쯤에서 대강 눈치 챌 수 있듯이 영화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는 인간의 말하기와 듣기 즉, 소통의 문제다.
다소 주관적이지만 이 문제를 풀어내는 영화적 장치로 여러 대목에서 동원된 오리의 존재는 중요하다(닭과 달리 오리는 늘 꽥꽥 소리를 지른다는 점). 박봉곤의 가출을 부른 기폭제도 봉곤의 오리들을 남편이 내다버린 사건에서 출발하고, 영화의 중요 대목마다 오리가 걸어 다니거나 오리 깃털이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