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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때 나온 훈고학(訓詁學)이
유교 경전의 글자와 구절을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을 주된 방법으로 하는 학문이라면,
성리학(性理學)은 훈고학에서 몇 발자국 더 나아가 주자학이 정립되면서 고차원적 학문으로 발전하게 된다.
성리학이란
첫째 우주 삼라만상의 만물이 돌아가는 이치를 일깨우는 일,
둘째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치는 일,
셋째 인간의 이성이 두뇌속에서 어떻게 상호 작용는지를 연구하고,
그 이성을 어떻게 움직이고 사용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일,
그리고 이성의 정립과 확립과정을 거쳐 인격완성을 위해,
인간 내면 안 정신의 세계뿐만 아니라, 영혼의 세계까지 다루는 학문이다.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번째 "인격완성을 위한 이성의 정립과정과 확립과정"이다.
서양철학이 근대 이성철학에 머물렀다면, 주자학에서 발전한 성리학은
이성, 정신의 세계와 영혼의 세계까지 학문적으로 밝혀, 그 근원을 구성하는 세계를 학문적으로
규정하려는 학문이었다.
조선 정부에서는 결국 현실 세계관에 맞추어 이이의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으로 결정하고
사상적, 이념적, 종교적 정통성을 세우게 된다.
이기 일원론과 이기 이원론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그 중간 합점인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으로 결정된다.
한유(韓愈/768~824)가 처음으로 유교 사회철학의 입장에서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면서
불교의 폐단을 지적한다.
그 후 이고(李翺/774~836)가 유교적 관점에서 최초로 인간의 이성(理性)을 찾아낸다.
서양의 근대 이성철학이 벌써 당나라 시대 때 나와 논쟁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고는 인간의 이성이 절대 불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규정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존재하면서 주관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성을 회복할 때
해탈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고를 계승한 주돈이(周敦頤)는 한발 더 나아가 우주 만물의 불변자와 자신의 이성을
동질선상에 놓고 보았으며,
우주 만물의 불변자가 쌓여서 흩어진 기운을 이성의 본질이라 규정하였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우주 만물의 불변은 물질에 해당하고, 이성(理性)은 정신(spirit에 해당한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우주 만물의 불변은 육체에 해당하고, 이성은 넋(혼백/에테르/ether)에 해당한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우주 만물의 본질은 하느님에 해당하고 이성은 영혼(soul)에 해당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이성이 어느 쪽이 주관하여 통제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 것이다.
이성이 리/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종교) 쪽에서 주관하여 움직인다는 이론이 이(理)이론이고,
이성이 기/칠정/정신, 넋, 혼백, 영혼 쪽에서 주관하여 움직인다는 이론이 기(氣)이론이다.
이고의 뒤를 이은 장재(張載)는 우주 만물의 본질을 규정함에 있어,
기(氣)가 잠시 모여든 상태를 기(氣)로 규정하고,
그 기(氣)가 흩어진 상태를 우주 만물의 본질태라 하여 어려운 숙제를 남겨주게 된다.
성리학은 이것보다도 한발 더 나아간 학문이다.
성리학은 정이(程顥)가 시작하여 남송 때 주희(朱熹:朱子/주자)가 완성하는데,
정이와 주희까지의 학문을 정주학(程朱學)이라고 한다.
주희가 완성한 성리학을 주자학(朱子學)이라고 한다.
정이(程顥)는 우주 만물 불변의 법칙인 본질을 이(理)로 규정한다.
이것은 무극(無極)으로 인간의 이성중에 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종교)에 해당한다.
또, 우주 만물의 현 상태를 기(氣)로 규정하며 이것을 음양오행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기(氣)는 인간의 이성(理性)중에 칠정/정신, 넋, 혼백, 영혼에 해당한다.
주희(주자)는 이것을 둘로 분리해서 보았다.
이(理)와 기(氣)를 분리해서 규정한 것이 이기 이원론(理氣二元論)이다.
즉, 리/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과 기/칠정/정신, 넋, 혼백, 영혼을 분리해서
따로 본 것이 이기 이원론이다.
이(理)를 더 중시한다.
우주 만물의 물질적 존재와 삶, 감정, 인식 등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모든 요소는 기(氣)이지만,
기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본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인식의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며 궁극적으로 하나로 귀결되는 요소는 이(理)이다.
즉, 이기 이원론은 기(氣)보다 이(理)에 중점을 두어,
칠정/정신, 넋, 혼백, 영혼보다도 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에 더 치중하는 이론이다.
이말은 따라서 인간 자신은 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여,
이(理)의 입장에서 삶을 영위할수 있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을
유교철학으로도 해탈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리/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인간성 회복>칠정/정신, 넋, 혼백, 영혼 통제론)
이기 이원론은 동인을 중심으로 이언적이 주리론을 제시하고 퇴계 이황(李滉)에 의해서 발전된다.
수양철학을 하며 널리 보급되었으나, 인간성 회복을 위한 본질 수양에 힘쓰며 서원에서 수양철학을 통해
리(理)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인간성 회복을 통해 극복해 보자는 학문이었다.
그런데 인격완성을 위한 이성의 정립과정과 확립과정이 없어 수양철학만으로는 절대로 극복하지 못한다.
이황의 유교철학은 정신철학을 강조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사단/물질, 육체, 하느님(종교)의 교당 등을 더 중시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양광도 동인/영남 동인의 영남학파/주리론)>
하느님의 교당은 유교사회이기 때문에 서원에 해당하며, 서원의 난립현상이 벌어지는 원인이 된다.
(흥선 대원군 때 철폐).
리[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종교)]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인간성 회복이라는 수양철학을 통해
극복시켜 보려고 등장한 학문이지만, 학벌을 위해 서원에다 돈만 내고 머리를 맡겨놓고 나가 놀면서
스승들이 대리 해탈시켜 주길 바랬기 때문에,오히려 더욱 더 리(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에
의존하려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사이비 서원이 난립하여 정신철학이 고대기로 회귀한다.
선구자는 이언적이며 이황이 집대성하였고, 류성룡, 김성일이 계승자였다.
일본 성리학에 영향을 주었으며, 위정척사 사상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보면 조선후기에 영남으로 정권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도덕적 원리 규범을 중시하였고, 원리적 문제에 충실하였다.
이성 정화주의, 초월주의, 초현실주의, 서원주의(사학주의, 교회주의),이상주의 유교철학으로서
평화시기에 안성맞춤인 이론이다.
이에 대항하여
이기 일원론(理氣一元論)이 서경덕에 의해서 창시된다.
서경덕(徐敬德)은 “기(氣)외부에 이(理)가 없으며, 이(理)는 기(氣)를 주재하는 것”이라 하여
이기 일원론적 입장을 취하였다.
즉, 기(칠정/정신, 넋, 혼백, 영혼) 외부에는 이성이 없으며, 물질을 구성하는 이성(理性)이 정신, 넋, 영혼을
통제한다는 말이다.
(이성 통제론)= 리/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이성>칠정/정신, 넋, 혼백, 영혼 통제론.
기대승은 사회 이성철학적으로 접근하여 주정설로 설명하며 이황과의 사단칠정 논쟁으로
주기론에 힘을 실어주며" 이성의 상호 통제론"을 사상 최초로 제시하며 이론적으로 확립시킨다.
이성은 사단(인의예지)에서 태어나지만 칠정(희노애구 애오욕)으로 옮겨갔다가 체험, 경험하고 돌아와
주기론인 칠정 쪽에 약간 더 치우쳐서 통제한다는 "이성의 상호 통제론"을 이론적으로 확립시킨다.
서인인 이이(李珥)는 기본적으로는 이기 이원론을 계승하면서도
기대승과 이황의 8년간의 사단칠정 논쟁을 지켜보고 기대승 이론에 힘을 실어주며,
이(理)와 기(氣)는 하나이고,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이므로, 서로 다른 물건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서경덕의 이기 일원론적 입장에 비중을 두며 기대승의 "이성의 상호 통제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서 이이의 이론을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理氣二元論的ㅡ元論)이라고 한다.
우주 만물의 본질인 리/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은 만물을 구성하는 이성,
즉, 기/칠정/정신,넋, 혼백, 영혼이 분리되어 있으나,
이것은 결국 분리되었다가도 모여들여 다시 하나로 구성되기 때문에,
결국 분리될 수 없다는 이론이다.
(리/사단/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이성>기/칠정/정신, 넋, 혼백, 영혼 상호 통제론)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 유교 이성철학을 통하여 실현된다고 본 것이다.
율곡(栗谷)이이(李珥/파주/서인으로 강릉출신)를 중심으로 하는 실천철학에서는
현실을 개혁해야하는 입장 때문에 존재의 현실적 요소인 기(氣)를 강조하였다.
쉽게 설명하면 이이의 유교철학은 이성의 정신세계를 강조한 이론이다.
종교철학적으로 보면 이기 일원론은 일신론에 해당한다.(서인의 주기학파/ 주기론)
선구자는 서경덕이었고, 기대승은 이성의 상호 통제론이라는 사회 이성철학적 이론적 확립자였으며,
이이가 종교 이성철학적으로 접근하여 집대성하였다.
이항(정읍 태인), 박순(광주), 김인후(장성)가 계승자였다.
북학파, 실학파, 실학사상, 개화사상에 영향을주며 대를 이어간다.
경험적 현실세계에 충실하여 현실 개혁에 치중하려는 유교 철학 사상을 견지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성적으로 기/칠정/정신, 넋, 혼백, 영혼, 하느님 등은 마음속으로 각자 담아 두고,
현실에 치중하고 삶을 영위하며 현실 개혁을 통한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유교 이성철학이 이기 일원론이다.
주기론을 보면 이이의 10만 양병설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이론이다.
영남학파를 잇는 학자들이 10만 양병설의 허구를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이기 일원론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이이의 10만 양병설이 허구라며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서인 정권을 모략하기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고려, 조선 역사를 들여다 보면 명인물, 명장, 독립투사는 상당수가 서인 출신이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흠짓을 내보려는 것 아니겠는가? ^^
인간 자신은 물질, 육체, 자본,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여,
이(理)의 입장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을
유교철학으로도 해탈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교당, 서원같은 곳을 많이 세우는 오류를 범해버렸다.
정작 말하고자 하는 근본이유는 자신이 우주 절대 불변자의 일부인 초월적인 존재인 사실을 확인하고,
정신수양을 함양하고 깨우쳐 이성을 회복하면 해탈할 수 있다는 유교 이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교당, 서원을 지어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빌리려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만다.
(현대로 치면 서원은 교회에 해당한다.)
평화시기, 풍요시기, 안정시기에는 이황의 주리철학이 이상적이지만,
미래에 대한 대비책이 없기 때문에 비상시기, 전쟁시기에는 아주 큰 단점이 드러나
나라가 위기에 빠지게 되는 철학이다.
[정읍 태인/칠보의 일재(一齋) 이항(南皐書院/남고서원)은 주기학파의 실질적인 대부였으며
임진, 정유재란 때 호남을 방어하는 주기학파 문, 무관 제자들이 모두 이항의 제자]
이에 비해서 기대승, 이이, 이항의 주기철학은
현실 이성과 현실 개혁에 비중을 두는 철학이기 때문에,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은 마음속으로 일신론적(유일신)으로 정립하고,
학문적으로만 규정하여 한쪽으로 정리해 놓고,
현실적인 문제에 접근하여 국가, 사회, 국민을 개혁해 나감으로서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이론이다.
이성주의, 경험주의, 현실주의 유교철학으로서 합리주의적인 이론이다.
이이의 주기철학을 버린 조선후기 정부는
현실을 버리고 이상주의적 주리철학을 선택함으로써
결국 풍양조씨, 안동(장동)김씨 세도정치 60년을 맞이하였고, 외침을 받아 나라가 넘어가는 사태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p/s
서인 기호학파 중 주기학파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조헌(김포), 김장생 (논산)은 서인으로 기호학파인 것은 분명하다.
조헌은 서인 성혼의 제자이다.
김장생은 서인 송익필의 제자이다.
성혼, 송익필 역시 기호학파에 속하는 인물이지만 주기학파는 결단코 아니었다.
성혼은 주기학파와 주리학파 사이에서 주기학파 박순과 함께 중재하여
기대승의 상호 통제론을 바탕으로하는 이이의 이기이원론적일원론으로 동인과의 협상을 벌여
완성하는 인물이다.
엄밀히 따져서 성혼은 기호학파이지만 주기학파는 아니었다.
그 중간적 입장에 서있는 성리학자였다.
성혼은 잇는 조헌, 윤증은 엄밀히 따져서 주기학파는 아니지만 주기학파의 철학을 인정할 수도 있는
중간파적 성향의 주자학 중도파 성리학자들이었다.
단지 영의정 박순을 대신하여 중재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성혼을 주기학파에 넣어준 것이다.
주기학파가 대북, 노론, 남인정권에서 탄압을 받아 대체학문으로 양명학을 선택해서 이어갔기 때문에,
주기학파 명맥에 성혼, 윤증이 포함되는 것이다.
[주자학 중도파 영수 성혼이 주기학파에 포함된다고 해서 제자까지 포함되는 것은 절대 아님].
송익필을 잇는 김장생은 서인 주자학 원리주의 학파로서 주기학파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인물이다.
서인의 기호학파이기는 하지만 주기학파로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학파이다.
송익필은 정주학 [태극설] 신봉자이며 예학의 대가로 알려져 "주자가례""구봉집"등을 남긴 인물로
주자학 원리주의자이자 고전 성리학파였다.
그 제자로 김장생, 김집, 김류, 이귀(인조 반정 주도자), 이서(신립아들 신경진과 함께 인조반정 계획수립),
신경진, 송시열 등 양광도 서인 노론학파로 이어진다.
예학을 숭상하였다는 것은 주기학파와는 전면으로 배치되는 학파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주자학 원리주의학파(노론으로 이어짐)는 인조반정후 낙동강 서안의 조식학파 대북, 소북 200여명을
유배보낼때, 호남 주기학파 40여명을 동반 유배보내놓고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맞음].
선조시절 주기학파는 주리학파와의 사이에서
주자학안에 있는 노자의 도교적인 색체를 모두 지워버리려고 정이학, 정주학, 예학 등을
모두 파내버리고 혁신적, 혁명적인 개혁으로 근대화시키려 하였던 개혁 성리학파였다.
주자학 안에 있는 정이학, 정주학, 예학 등은 노장철학으로 끊임없이 파내려는 주기학파와
고수하려는 주리학파와의 사이에서 치열한 대립이 있었다.
그래서 정치적 보복이 두려워 서경덕, 기대승, 이이, 이항 등은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고
제자들을 키워내는데만 집중하였던 것이다.
나중에 1572년 기대승만 선조의 부름을 받고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삼사의 요직인 사간원 수장
대사간직을 받으면서 대기실에서 오래 기다리다 차를 마시는 바람에 몸이 아파 사흘후 사임하고
내려오다가 전북 정읍 고부군에서 주기학파의 대부 이항을 만나고 45세의 나이로 최후를 맞이하였다.
주기학파의 정통을 잇는 성리학자는
주자의 주리론을 정면으로 뒤집어버린 주기론은 서경덕이 효시.
(이성이 뭔지 확실히 인지한 최초의 성리학자)
주기론 이론을 다시 수정하여 주기론 칠정 쪽에 약간 더 치우쳐서 이성이 상호 통제한다는 주정설은
기대승이 이론적 확립자.(사회 이성철학 완성)
기대승의 상호 통제론을 바탕으로 이기 이원론적 일원론을 제시한 승려 출신 이이는
종교 이성철학의 완성자.
실질적 계승자는 이항, 박순, 김인후등 40여 명.
형식상 계승자는 조헌, 김장생이다.[실제로는 형식적 계승자도 절대 아님]
만약 조헌, 김장생이 실질적 계승자였다면 임진왜란, 정유재란(동인 주리학파 정권시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서인 주자학 원리주의 학파/ 노론으로 이어짐)을 겪지도 않았을 것임.
대북, 소북 200여명과 호남 주기학파 40여명을 유배보내놓고 권력독점을 위해
주화파와 척화파로 나눠 대립만하다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봉림대군, 소현세자,
민회빈 강씨와 3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가 볼모로 끌려가는 것임.
주기학파를 잇는 이항,박순 [영의정], 김인후 등 40여 명은 실질적으로 조선을 개혁하여,
주자학 안에 포함되어 있는 도교적인 학문인 정이학, 정주학, 예학 등을 파내 없애 버리고
조선을 혁신적으로 개혁하여 근대화시키려 했던 학자들이었다.
이들이 진짜 주기학파이다.
[임란, 정란 때 호남을 방어하는 주기학파 문무관 제자들은 모두 이항(일재/남고서원)의 제자였으며
실질적인 주기학파의 대부였음].
주기학파의 개혁이 성공하였더라면 도교적인 색체가 모두 사라지면서
근대 이성철학으로 바로 이어져 조선이 개화되었 뿐만이 아니라, 주자가례, 허례허식이 타파되어
신분질서 타파, 악질적인 전통, 관습, 관의복의 복식이 혁신적으로 개량되어 상투, 제사, 가례복식 등이
혁파되었을 것이었다.
갓을 쓰고 다니는 풍습이나 제사, 장례 등 도교풍습, 문화면에서 혁신적으로 개량되어
주자가례 등 허례허식이 타파되고 근대화의 길을 앞당길 수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학파의 계승자 조헌, 김장생 등은 정통적 계승자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진짜 주기학파의 계승자 40여 명이 모두 호남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호남인을 빼내고
형식상 계승자를 정통이라고 올려놓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결과로 말한다.
이것은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송익필의 제자 김장생은 더더욱 주기학파의 계승자가 될 수가 없다.
송익필의 제자중 선조시대 8대 문장가의 한명인 이순신(李純臣)은
삼도 수군통제사 주기학파 이순신(李舜臣)과 이름만 같을뿐 이순신 장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이성주의, 경험주의, 현실주의, 합리주의가 모두 나온다.
정치가나 무인이 자체적으로 백성들에게 토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게 하고 세수를 확보하면
권력을 장악한 정파는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역성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며 올가미를 씌우는데,
이순신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부족한 군량미와 전선 수주비를 백성들에게 토지를 개간시켜
땅을 주고 부족한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상소를 올려 마침내 100여척을 건조하여 전과를 올린다.
[이 전선을 서인 주자학 원리주의 학파 원균(평택)이 칠천량 해전에서 모두 말아드시는 것임].
이런 것이 바로 경험주의(목적론적 윤리)의 시작이다.
p/s
과거에는
에테르(ether)는 기운(氣運)이 움직이는 파동같은 것을 넋/혼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지랑이같이 피어 오르는 그 기운을 만물이 생성되는 근원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