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점 볼링볼링
김익경
파란시선 0139
2024년 5월 10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25쪽
ISBN 979-11-91897-74-6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10387)
•― 신간 소개
밤을 다 헤아리지 않는 것은 희극이다 비극은 헤아릴 것이 너무 많을 때 찾아온다
[점점점 볼링볼링]은 김익경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으로, 「고독감별사」 「100분 토론」 「비문증」 48편이 실려 있다.
김익경 시인은 울산에서 태어났고, 2011년 [동리목월]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모음의 절반은 밤이다] [점점점 볼링볼링]을 썼다.
김익경 시인은 우리가 너무 쉽게 낙관하는 것을 경계하며 절망과 피폐함으로 고립된 존재의 부정성을 형상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점점점 볼링볼링]이 궁구하는 바는 표제작에서 알 수 있듯이 “차마 젠장이라고 발음할 수 없”어 “된장”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그리하여 모독과 모욕을 감내함으로써 왜소화된 채 “장롱”에서야 겨우 발견할 수 있는 주체의 고통을 우리가 여실히 감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점점점 볼링볼링」). 유폐된 존재가 자신을 증명할 방법은 없기에, “나는 있습니까 없습니까”를 묻더라도 “나는 있습니다 없습니다”라고 스스로 답할 수밖에 없다(「나는 진짜일까요」). 모순된 정체성으로 자신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주체는 ‘진짜’ 자신을 돌보는 대신 “누구도 잡지 않지만/스스로 붙잡히는 무모한 손금들”의 무의미 속으로 침잠하고 만다(「되돌이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 불가해한 절망을 김익경 시인의 세계라고 해야 할까. 그보다는 불가해한 절망을 내면화한 주체를 향한 시인의 애정이 삶의 부정성으로부터 비롯된 존재의 아픔을 성찰함으로써 맺는 관계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비록 때를 놓쳐 관계를 회복할 기회조차 마련할 수 없더라도 “오늘보다 먼저인 어제”를 톺아 “뒤따르기만 했던/저번을 곰곰이 쳐다”보며(「먼저」)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세 시’와 ‘네 시’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타자와의 거리로 마련하여 안온한 삶의 방식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누구의 희생 따위는 없어”야 한다는 것, “불편을 감당하는 일”을 “불편을 사랑하는 일”로 여기며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손을 버려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행하도록 우리를 이끈다(「홀릭」).
김익경 시인은 주의해야 할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섣부른 환대는 오히려 불편을 양산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성급하게 간극을 메우려다 보면 존재가 지닌 비동시적 동시성을 무너뜨려 다른 형태의 폭력을 강제할 위험이 농후하다. 같은 시간에 있다 하더라도 타자와의 거리를 간과한다면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개별 주체의 다양성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입술을 듣”기 위해 “입술만 바라보”며 그 너머의 “얼굴을 지우”는 협소한 관계로 전락할 따름이다(「너를 보기 위해 나를 본다면」). ‘너’를 보기 위해 ‘나’를 보는 것은 이기적 행위일 뿐이다. ‘너’를 ‘너’대로, ‘나’를 ‘나’대로 둘 수 있는 것이야말로 관계 맺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타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이자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부를 때까지 오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다(「그림자의 탄생」). 이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 오늘”처럼 자명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열쇠”처럼 우리가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기에 늘 잊고 사는 것이기도 하다(「금요일」). (이상 이병국 시인・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읽고 난 뒤에야 문득 그것이 궁금해지고, 다시 펼치면 사라지고 없다. 그 없음은 맥락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번득임과 놀람의 불연속 구간이다. 김익경의 시가 그렇다. 그의 어법은 얼핏 단정해 보이나 다정하거나 친절하지 않다. 그것은 설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정의 낭비가 없기 때문이다. 김익경의 시는 모르는 독자와 만나 “모르는 약속을 하고” 그 모름의 힘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세 시와 네 시」). 어떻게 그 모름이 에너지의 작동으로 연결될까. 그 역량은 “모르는 여자의 부고가 도착한 날/아는 여자가 부고를 쓰고 있다”거나 “모르는 여자가 쓴 부고를 아는 여자가 고친 것”처럼 누적된 황량함과(「시작하지 않음으로써 시작되는 것들」) “누가 누굴 쳐다보는지” 알 수 없는 그 모호한 무력감으로 채워져 있다(「쇼윈도의 쇼윈도」). 이러한 무력은 오히려 억제된 무의식의 분출로서 자리할 뿐 아니라 코라 세미오틱에 도달하는 욕구를 언어의 질서에 끼얹는 방법이다. 그것은 때때로 페티시즘으로 혹은 이동과 압축, 거부 등의 정신분석적 기제로 가령 “입, 자꾸 도톰해지는 헬리콥터”가 되거나(「고독감별사」) “돌아와 보니/아무도 지나가지 않았고/나를 따라”가고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Dog Show」). 즉 김익경의 시는 수신자가 불분명하고 감각의 분배 체계를 교란함으로써 정체성이 밝혀지지 않은 채 위반의 부정성을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반을 통해야만 시는 한층 더 조여지고 팽팽해짐이 김익경의 시가 노리는 바다.
―권주열 시인
•― 시인의 말
나무를 자른다 나무와 숲의 거리는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촘촘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잘못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죽어 가는 것은 기쁘고 살아가는 것은 가볍다 나는 임금님이 당나귀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무는 알고 있다 나무를 찬찬히 만난 적이 없다 나무숲은 가렵다 나무를 자르듯 말꼬리를 자르는 무리들이 바람을 만들고 있다 나무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더 자라지 않는다 바람의 밀정은 많다
•― 저자 소개
김익경
울산에서 태어났다.
2011년 [동리목월]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모음의 절반은 밤이다] [점점점 볼링볼링]을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세 시와 네 시 – 11
운동장 – 12
순간들 – 14
지긋지긋 – 16
버스 정류장 – 18
흐린 날 – 20
외투 – 22
밀항 – 24
시작하지 않음으로써 시작되는 것들―P에게 – 26
점점점 볼링볼링 – 28
로드킬 – 30
친애하는 가족 여러분 – 31
오월, 네 속이 궁금해 – 32
100분 토론 – 34
제2부
종이인간 – 39
비문증 – 40
잠에 대한 이별록 – 42
나는 당신에게 단도직입적입니다 – 44
당신은 박복한가요 – 46
타임머신 – 48
집게 – 50
우리는 줄어들 수 있을까 – 52
성남동 190번지 – 54
12 몽키즈 시즌 4 – 56
제3부
매직쉐프 – 61
고독감별사 – 62
Dog Show – 64
냉장고 – 66
그림자의 탄생 – 68
멀리를 품다 – 70
인터뷰 – 72
미러링 – 74
스미싱 – 76
브레이크 타임 – 78
눈사람 – 80
쇼윈도의 쇼윈도 – 81
제4부
달력 – 85
꿈은 – 86
동화 그만 읽어요 – 88
각설탕 – 90
나는 진짜일까요 – 92
오도 가도 못 하는 날에는 우리 모두 다 함께 – 94
홀릭 – 96
바다 메우기 – 98
먼저 – 100
너를 보기 위해 나를 본다면 – 102
되돌이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 104
금요일 – 106
해설 이병국 관계의 불안을 응시하다 – 108
•― 시집 속의 시 세 편
고독감별사
문밖은 위험해
집을 나서지 않는 사람
집을 이고 있는 사람
손안에 담을 수 없는 그림자만 가진 그래서
숨어 있어도 보이는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
핸드메이드 커피로 혼자를 만드는 사람
층간소음과 입씨름 중인 세입자
집을 나서지 않는 거울과 대화하는
입, 자꾸 도톰해지는 헬리콥터
주위를 물리치는 사람
주변이 없는 사람
어떤 출사표도 던지지 않는 폭풍 같은
달걀 껍데기를 벗기고 있는 소금이 없는 사람
돌아가지 않았으므로 돌아오지 않을 사물함을 비우는
채우지 않았으므로 채워지거나 버림받을 일이 없는
익숙한 버림, 씨앗 없는 물
개껌 같은 클라이맥스 ■
100분 토론
우리 얘기를 하기로 해요
정부에 대해
그들의 아침에 대해
어제의 모험에 대해
기억에 없다면 한 차례로 기억된다면 거울이 깨졌다면
응당 치러야 할 오늘의 색깔은 사각
겉과 속이 다른 육팔면체 그녀가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켤 때
공중전화의 벨이 울릴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해 거짓말을 하기로 해요
모두가 아는
라오스의 아이들에게는 맛있는 캔디를 선물해 줘야겠지
그렇게 편지를 썼다
돌아갈 가능성이 없는
겁을 아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손을 드세요 돌을 던져요 짱돌이면 더 아름답겠지요
우리 얘기는 비밀로 해요
모두가 다 아는
아름다운 춤을 춰요 ■
비문증
보이는 것은 도달하지 않는 것이다
도달하지 않는 것들이 모여
말을 걸어오면 말이 무너지고
말이 생성된다
무너진 것은 무너진 것 이외의
사물에는 관심이 없다
도달하는 것과 보이는 것은
말 앞에 무력하다
분명 고개를 돌렸으나 분명한 것이 없다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곧 말하고 싶었으나
서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습관과
부유물로 도달하는 말들에 대해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말들의 표정에게
도달하지 않기로 했다
벌레, 아지랑이 같은 루키들은
도달하지 않으려고 쌓인다
직접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는 척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