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의 건장마와는 달리 많은 비를 동반한 먹구름이 며칠 동안 장대비를 억수같이 퍼 붙고 있다...
어제 밤 무섭게 퍼 붙던 비가 아침되어 소강 상태로 이어져 구름 사이 사이로 햇볕이 숨박꼭질 하듯 흰 대각선을 그려간 다.
이탈리아의 긴 여행을 마무리하고 귀국한지 불과 열흘...
한동안 시차에서 오는 피로로 긴 잠에 취하였다 깨어난 탓인지, 두 어깨가 무거워진다.
우두커니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가방 하나 꺼내어 주섬 주섬 세면구와 옷가지 챙겨 둘러 메고 발길하던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 다시 집을 향한다.
소지품 중 무엇인가 누락시켰는지, 와인 페트룸 문 열고, 보관된 양주 몇 병 들어 보더니, 그 중 가장 큰 한병을 끄집어 가방 속 챙겨 나서는 발걸음...
어느 날 이리 컸는지, 모판 나르던 날이 엊그제 같았는데 논 뜰은 이미 푸르름이 짙어져 지나던 바람결 따라 춤추고, 푸른 녹음 짙어지는 숲속에서 따사롭던 봄날 찾았던 뻐꾸기는 이 대지와의 이별이 아쉬워 울어대는 애절한 소리가 애간장을 태운다.
숲 향 짙은 외딴 독립가옥 한채...
녹음 짙어진 숲 속에 빼어난 자태의 적송 한 그루가 지나던 길손을 멈춰 세운다.
한국의 자연미가 물씬 풍기는 잘 가꾸어진 정원에 세워진 집 앞 차를 정차시키고, 대문에 굳게 잠겼던 번호 키 하나 하나를 핸드폰 적혀 있는데로 돌려 철문을 활짝 열고, 곱게 자란 푸른 잔디위에 차를 주차시킨다.
야외 테이블에 가방 올려 놓고, 큰 양주병 꺼내어 뚜껑 열더니 메마른 목을 흥건히 적신 후 현관문 열고 들어 선다.
거실에는 이미 허기진 배에 식욕을 불러 들일 푸짐한 상차림으로 곱게 차려진 안주상이 이 집 찾은 객을 맞이하고있다.
들녘 나물 뜯으러 나갔던 여인이 푸짐히 채운 다라를 들고, 길손 도착을 시선에 담았는지 뒤쫒아 들어선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자리...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오늘의 이 자리 준비 된 만남과 기쁨...
외박에 길들여진 이 남자는 오늘도 이 낳설은 집에서 습관된 하룻 밤을 지새울 요령인지 빈방 들어가 간편한 옷차림으로 갈아 입고 나서, 자연과 벗삼아 한잔 술에 취기를 더해간다.
고개 넘어 민족의 분단으로 남북의 왕래가 끊어진 넓은 수로가 이별의 긴 아픔을 품은체 도도히 흘러 긴 역사를 침묵 시키는 밤을 맞이하고...
먹구름으로 잔뜩 덮혀진 밤 하늘이 그 아픔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가장 조용한 시간 속에 창가 흐르는 빗물 따라 빈 식도를 넘기는 짙은 알콜 향이 오늘의 만남과 행복을 충족시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