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기다림에 성공한 사람들 Date 2012. 12. 9
Text Lk 2,22-27
(22)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5)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1. 아마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것 중의 하나가 ‘기다리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민의식이 높아질수록 같이 높아지는 것이 기다리는 성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새치기 잘 하는 것이 능력으로 여겨지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새치기하는 것은 매우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젠 누가 새치기를 하면 흥분하고 싸우려하기 보다는 한심하다는 듯한 눈총을 보내거나 혹은 뭐 ‘많이 바쁜갑다.’하는 정도로 생각해주는 아량도 생긴 것 같습니다.
이 기다림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인생들에 대하여 절대 강제하지 않고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한정없이 기다리시는 기다림의 선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주님의 백성들은 이 기다림을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믿음 안에는 소망이 있고, 이 소망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바로 기다림이요, 믿음을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굳게 지켜나가는 것이 기다림이며, 하나님은 이 기다림을 통해 연단하시고, 전체를 보게 하시며,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이끄십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애3,26에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하였고, 예수님과 사도들은 주의 재림을 대비하는 제 1번 항목이 ‘깨어 기다리는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기다린다면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을 수 있으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셨을 때, 오신 예수님을 알아본 극소수의 사람들 중 시므온 제사장 얘기가 오늘 읽은 성경 내용입니다. 오늘 강림절 제 2주일에 이분의 이야기를 통해 기다림이라는 은혜를 함께 받고자 합니다.
2.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에 올라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 예식을 행하고 있을 때,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나아왔습니다. 25절은 시므온에 대하여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의롭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의롭다’는 말이 강조되는 것은 시대적 상황이 사람들로 하여금 의롭게 살기 어려운 때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군사 제국주의의 압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소동을 부렸고, 백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 권력에 아부하고 죄를 서슴없이 지었습니다. 그래서 급진세력들은 때때로 강력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불의하고 법질서가 무시당하는 시대에 믿음으로 의롭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성경은 그를 ‘경건하다’라고 했습니다. 경건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므온이 살던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력과 부와 지위와 향락을 유지하고 누리는 것을 하나님의 뜻보다 더 우선으로 생각하여 부정이나 불법이나 부패 등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병들고 썩었을지라도 시므온과 같은 의로운 사람을 찾으십니다. 음란과 죄악이 관영한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의인 열 명을 찾으셨습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렘5,1절에서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길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라며 의인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시므온은 바로 이러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그 시대와 타협치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하기 위한 최고의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로 꽉 차 있습니다. 우리나라 뉴스들 중 연간 뇌물기사가 4천여건 이상, 부패 기사는 3천여건 이상이라는 통계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정대출을 해준 댓가로 거액의 커미션을 챙기고, 공무원들이 각종 기업으로부터 받은 뇌물의 액수가 천문학적이며, 군수품 구입과 관련한 커미션, 무슨 떡이 그렇게 비싼지 떡값으로 20억이나 주고 받은 것 등 다 말하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할 지경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어둡고 절망스럽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이러한 시대에도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시므온은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여러분, 오늘날의 기독교 위기는 사회적 환경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의 내용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 전략은 기독교신자라는 이름이 사회에서 보증수표로 통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신앙, 힘 있는 신앙이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의롭게 살고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하여 사는 것이 주님을 만나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 안 신자’일뿐 아니라 ‘가정 신자’, ‘직장 신자’, ‘길거리신자’도 되어 주님과의 깊은 만남이 많은 신자가 되십시다.
둘째, 오늘 읽은 성경은 시므온을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국가였습니다. 국권을 잃어버린 나라의 국민이 지배자들에 의해 겪는 괴로움과,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놓고 사분오열되어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며 당한 상처를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겪는 고통과 괴로움의 뿌리가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것이고 매우 복잡다단한 것이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절망감이 가져다 주는 아픔을 겪고 있었습니다.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는 것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희망을 걸고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대망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고통 받는 현실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이며 모든 문제에 대하여 분명하고도 확실한 정답을 주시는 위로를 믿었고, 기도하고 있었으며, 희망 중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대가 점점 어려워질수록, 믿음을 포기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생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므온의 기다림은 흐릿해지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메시야 강림 소망은 더욱 간절해져 갔고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위로의 날을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만난을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문화혁명때 여러 해동안 옥에 갖혀 있다가 풀려난 중국인 신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체포되어 감옥에 있을 때, 그의 아들은 7살이었습니다. 그가 나중에 석방되었을 때 말하기를 숱한 회유와 겁박을 받아서 무너져 내릴 뻔 했었는데 결딜 수 있었던 것은 감방 창문을 통해 보이는 붉은 연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연은 그의 7살난 아들이 띄우고 있었는데,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늘을 나는 것을 감옥 창 틈 사이로 보았습니다. 때로는 낮게, 때로는 높게 하늘을 나는 연을 볼 때마다 감옥에서 나가 만날 아들을 생각하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위로의 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대하고 기도하십시오. 성경은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고, 너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는다고 하였으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얻을 수 있고 찾을 수 있으며 열릴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비록 빛나던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 어둠이 몰려올지라도 내일에는 분명히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역사를 오늘도 기대하십시오.
셋째, 시므온에 대하여 25절에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고 하였고, 26절에는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하였으며, 27절에는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므온이 성령이 그 위에 계시고 성령의 지시를 받고 성령의 감동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부분은 아니지만 29-31을 보면 아기 예수님을 안고 기도한 시므온의 기도문이 있는데, “(29)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구들은 얼마나 간절히 메시야 탄생을 보고 싶어 했는지, 얼마나 기도하였는지, 그렇게 기도하였더니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지시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마침내 성령의 지시대로 그는 대망의 메시야를 만났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심령의 위로와 평안을 맛보았습니다. 요약하면 시므온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기도’를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36,37절에 보면 아기 예수님을 보고 메시야로 안 안나라는 할머니가 나옵니다. 안나 할머니는 아셀지파에서 태어났는데, 결혼한 지 8년 만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더 늙기 전에 재혼을 하여 아기랑 자기랑 오손도손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나는 남편이나 자식에게 소망을 두기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했으며, 종교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만민구속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밤이나 낮이나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동안 1년, 2년, 10년, 20년,30년, 어느새 80년 하고도 4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검은 머리는 백발이 되고, 탄력있던 피부도 주름살이 깊게 패이고, 건강하던 이도 다 빠져버린 호호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나는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마치 선지자 사무엘과 같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 코 범치 않았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인심도 변하고 왕들이 바뀔지라도 안나는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며 그는 대망의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자, 기다리는 자에게 나타나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십시다.
3.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예수님보다 루돌프 사슴이나 산타가 더 많이 등장하는 성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예수입니다. 이 예수를 메시야로 알아보고 첫 크리스마스를 가장 감격스럽게 맞이한 사람들이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이들은 기다림에 승리한 분들이었습니다. 기다림에 성공하여 은혜 충만한 성탄절 시즌을 맞게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