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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름 같은 날씨가 갑자기 돼가지고 또 이제 더위가 곧 시작될 것 같은데요. 우리는 참 환경에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더울 때는 더워서, 추울 때는 추워서 또 어떤 환경에 놓일 때마다 그 환경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그런 연약한 존재들이죠. 날 때부터 우리는요. 그 어떤 동물보다 가장 연약한 존재로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보면요. 아마 가장 연약한 동물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사슴 또는 말 기린 코끼리 이런 동물들은 새끼를 낳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그 새끼들이 바로 일어나 걷기 시작한답니다. 특히 기린 같은 경우는 퇴원한 지 30분만 지나면 자기 발로 일어나서 걸어다닌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보통 얼마나 걸리나요? 돌 때 돼야 좀 걸음마 하면서 우리가 걷는다고 표현을 하잖아요. 아장아장 걷는 것도 돌이나 돼야 가능합니다. 좀 빠르면 한 10개월 인간은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참 연약한 존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근데 그냥 연약한 존재로만 태어난 것이 아니라 또 우리의 삶에 그러한 자라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연약한 존재로 성장해 갑니다. 자라면서 끊임없이 내 가치를 발견하고 또 그 가치를 즐거워하고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도록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데, 자라가는 동안 우리는 뭘 배우냐면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나는 못한 사람, 나는 무가치한 사람, 힘없고 약한 사람 이라고 하는 인식을 가지고 어떤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대응해야 하는 방법들을 잘 배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상처투성이인 분들이 참 많아요.
근데 여러분 교회 안에서는 지금 이런 부분에 더 가중됩니다. 어떤 부분이 그럴까요? 교회에서는 우리가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말을 합니다.그래서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연약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고 또 알고 있지만 그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약한 존재다. 죄인인 탓이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 이렇게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좀 연약함이 발견될 때마다 우리는 성경에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그러니까 마음은 내가 그런 마음인데 다 알고 있고 이렇게 해야 됨을 아는데 내 욕신이 약해서 나는 그렇지 못한다고 우리가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원래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니까 온전하지 못하니까 내 마음은 그렇지만 내 육신이 연약하기에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 주변에 보면 이 연약함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 사람들은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요? 아니 그런 걸 벗어나서 성경에서는 우리를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우리가 힘들고 어떤 한계에 부닥쳤을 때 그때 합리화하는 말로 이 성경 구절을 우리가 가끔 인용을 하는데 성경에서는 정확하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우리는 분명히 우리의 정체성을 기억하는 이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먼저 우리는 로마서 말씀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 잘라서 우리가 뭔가를 하나님 앞에 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전에는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간다. 그래서 전에는 우리의 몸을 더러움의 죄에 우리가 맡기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의의 종으로서 거룩함에 이르기 위하여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우리의 삶에 거룩함의 열매를 따는,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러한 열매를 맺기 시작한 존재들임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거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냐면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뿐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가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셨다라고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성령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을 의존하는 삶, 그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다는 표현을 쓰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냐면, 내 안에 있는 성령님에 대한 존재를 우리가 잊어버릴 때가 참 많습니다.
성령 충만 성령이 우리 안에 내조하심 이런 단어들이나 이런 문장들을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걸 그냥 개념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때가 있지 않은지를 점검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채워져 있음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원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 부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놓으면서 그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도 우리는 좀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그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내 마음에 그냥 하나의 단어로만 마치 박제되어 있는 아무런 능력 없는 그러한 채로 있지 않은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 안에서 내조하시고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서 계속 깨닫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 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안에 채워주신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마음은 원이로도 육신이 약하도다가 아니라 이제는 거꾸로 내가 마음이 원하니 내 육신이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더라. 우리 안에 수많은 변명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합리화하고 변명을 하지 인간은 다 약해 나는 부족해 그래 사람은 한계가 있는 거야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요즘 심리학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나는 어렸을 때 트라우마가 있어 나는 어떤 상처가 있어 이런 말을 하기도 하고요. 또는 자기의 기질이나 성향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나는 원래 성격이 급해. 나는 원래 화를 내긴 하지만 뒤끝이 없는 사람이야.
근데 여러분 지금 제가 말한 이 세 가지의 이런 예들은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의 모습이에요.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의 종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신분이 변화된 사람임을 기억한다면 우리 신분에 맞는 비전을 갖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 무엇이냐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입니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이 세상에 깨어진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가지만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의 삶을 통하여 경험하고 그 가운데 힘 있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불량까지 자라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목적이라고 그렇게 고백 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은 원하는데 육신이 약하다고요. 실질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면요.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마음에 진정한 원함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번 여러분들 주변에 살펴보십시오. 시간이 없다 바쁘다고 말하는 분들 참 많아요. 예배 1시간 드리는 이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커피 전문점 요즘 가서 한번 앉아 있어 보십시오. 2시간 3시간이고 커피집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요즘에는 otp가 너무 잘 돼 있어서요. 요즘 tv로 모든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는 시대잖아요. 요즘 젊은 세대들은 뭘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쉬는 날이 되면 드라마를 하루 이틀의 완주를 해버립니다. 12부작 16부작 이거를 하루 종일 보는 거예요. 이틀 동안 그냥 쫙 이어보고 나 완주했다고 자랑합니다.
근데 그런데 시간은 없다는 거예요. 뭔 말입니까? 비전이 없는 것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비전이 없어서입니다. 마음에 그렇게 되고자 하는 열망이 없어서라고 말씀드리는 것이죠.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비전을 다시 한 번 점검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하는 믿는다라는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요. 믿는다는 그 말 안에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성경 속에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 예수님의 이 모습, 가난한 자,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병든 자들을 위해서, 자기를 배반할 제자들을 위해서 사랑하시고 베푸시고, 그리고 죽기까지 우리를 위해 그렇게 그 길을 걸어갔던 예수님의 모습, 그 모습들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 모습을 우리가 닮아가기를 원하는 그 삶이 우리의 신앙의 여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기초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길 원합니다. 비전이 일어나야 우리의 삶에 행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속에 주신 부활의 능력을 더욱더 붙들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특권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면 아까 서두에 말씀드린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뭐냐면 이 성령을 의지하는 법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요즘 동해안에 가면 윈드 서핑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근데 윈드 서핑하는 사람들의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윈드 서핑은 바다를 내가 이겨먹는 게 아닙니다. 그 바다의 힘을 같이 타는 거예요. 내 힘으로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도를 이용하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이겨내는 법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살아가는 그러한 삶을 살아갔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잘 타고 이용하는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그것들을 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겁니다.
근데 이것은요 훈련이 필요합니다. 윈드 서핑 여러분들이 머리로는 알고 있고 눈으로는 보았지만 막상 가서 타려고 하면 그게 쉽지 않잖아요. 그쵸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타면서 배우면 그러면 점점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우리가 성령의 그러한 도우심을 입을 수 있는 그런 훈련도 우리 안에 필요합니다.
처음에 교회 나온 사람들은 예배드리는 것 그것이 하나의 도전 훈련이 될 수 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배를 그냥 참여하는 정도 수준에서가 아니라 이제 이 말씀이 우리의 삶에 적용되고 그 말씀대로 희생하고 봉사하고 때로는 손해 보기도 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내가 이런 것까지도 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구나라고 하는 그 순간을 그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여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육체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심리적인 한계를 넘어서야 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다 보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할 수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품고 사랑하는 거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기억하면서 채찍질하고 못 박은 그 사람들을 향하여서도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했던 그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가 품고 나아갈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닮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수많은 도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불이익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들을 의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배워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즘 간증을 간혹 여러분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듣게 될 겁니다. 근데 우리가 요즘 간증은요 조금 뭔가 포인트가 이러이렇게 힘들었는데 이렇게 해결됐습니다. 이런 걸 우리가 보통 간증이라고 많이 표현을 해요. 그래서 마치 나도 그 간증 의 주인공이 꼭 되어야 되는 것처럼 그래서 내가 그 간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면 나는 실패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간증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죠.
근데 여러분 간증의 주인공은 꼭 문제가 일어났고 해결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길 원합니다. 오히려 끝까지 그 어려움을 겪었지만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것이 더 큰 간증인 줄 믿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스데반 야고보 바울 베드로 그들은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수많은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견뎌냈습니다. 끝까지 승리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이겨낸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들은 이겨냈습니다. 다양한 한계를 넘어서려고 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힘을 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보물을 간직한 질그릇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담겨진 보물의 능력이 있는 것이죠. 하나님 성령님께서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에서는 마음은 오한인데 육신이 약해라고 하는 이 말이 너무 적용점이 될지 모르지만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나는 더 이상 약한 존재가 아니라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질병이 나를 짓누르고 삶이 나를 짓누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성령님이 나를 인도하시면 내 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나는 강하다라고 하는 인식을 가지고 더욱더 그 고백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하루하루를 힘 있고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주님을 더 닮아가고 그 닮아간 나를 보면서 조금 더 더 기쁨을 누리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