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 인간의 성장과정은 육체적 변화와 동반하는 정신적 성숙의 전개이다. 성숙은 자신만의 틀 안에 갇혀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며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 그리고 짧은 환희의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단단해지는 삶의 일정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을 지켜보는 누구에게나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일종의 성장 소설이자 교양소설인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은 18세기 말 새로운 시민사회의 대두 속에서 부르주아지 출신의 젊은이의 성장을 추적한다. 그것은 인생의 ‘수업시대’라 할 수 있다.
2. 빌헬름은 18세기 부유한 부르주아지 가문에서 출생한다. 그의 젊음을 지배한 중요한 주제는 연극과 사랑이었다. 상업적 활동을 권유한 아버지에서 벗어나 빌헬름은 연극에 대한 정열을 아낌없이 바치려 한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이익을 권유하는 사람들에게 빌헬름은 질문한다. “우리 지갑에 즉각 돈을 채워주지 않는 것, 우리에게 금방 재산을 안겨주지 않는 것은 정말 모두 소용없는 것일까요?” 빌헬름의 연극에 대한 열정은 점차 확장되어 여행 중에 만난 유랑 극단에 참여하게 되고 그 활동 속에서 새롭게 ‘세익스피어’ 연극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직접 공연에 참여하게 된다.
3. 연극은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게 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행동 속에서 갈등하게 하는 또 다른 인생의 축소판이며 그곳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순적 행위를 관찰할 수 있는 삶의 특별한 공간이었다. 빌헬름은 연극 공연을 하면서 연극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제를로를 만난다. 그와의 협업을 통하여 연극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자신과는 다르게 연극에 접근하는 상반된 성격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표현되는 연극에 대한 시각은 바로 괴테가 갖고 있는 연극에 대한 시선일 것이다. “빌헬름은 모든 것을 그가 파악하고 있던 개념들로부터 연역해 내기를 원했고, 예술을 하나의 큰 연관성 안에서 다루고 싶어 했으며 명백한 규칙을 세워 무엇이 진선미인지 그리고 무엇이 박수갈채를 받아야 할 것인지를 규정하고 싶어 했다. (.....) 제를로는 사물을 아주 가볍게 취급했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결코 직접적인 대답을 하는 법이 없이 어떤 에피소드나 소화(笑話)를 활용하여 아주 근사하고 재미있게, 해명을 하면서 좌중의 사람들을 명랑하게 만드는 동시에 또한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4. 하지만 모든 것을 걸고 집중했던 연극은 빌헬름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겨준다. 연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즉흥적이고 자신에 욕망에만 충실했으며 조금이라고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쉽게 돌변했다. 자신만의 연극적 확신도 없이 관객들의 유혹과 요구에 쉽게 동조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또한 연극 활동 후에 벌어지는 과도한 술과 퇴행적 모습에 실망하면서, 그는 점차 연극과 멀어진다. 거기에는 빌헬름 개인에 대한 냉혹한 비판과 직면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된다. 연극을 보고 한 사람은 빌헬름에게 말한다. 연극을 그만두라고,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자신의 성격과 맞는 배역은 기막히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와 다른 성격을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과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갈등은 결국 빌헬름을 연극과 멀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 또한 그의 수업시대였다.
5. 빌헬름의 삶에 연극 이상으로 영향을 준 것은 어쩌면 청춘들이 겪어야 하는 뜨거운 애정행각이었다. 연극에 입문하면서 알게 된 배우 뿐 아니라 그 후 공연 중에 만나는 수많은 배우나 사람들과의 연애 속에서 그는 사랑의 열락을 알게 되기고 하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끔찍한 질투와 좌절을 경험한다. 특히 첫 번째 연인이었던 여배우의 배신을 알고는 그는 커다란 충격을 받아 한동한 연극를 멀리하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상업활동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내부에 남아있던 연극에 대한 정열은 다시 그를 연극무대로 불러들였고, 그는 그 속에서 연극과 함께 수많은 여인들과의 사랑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빌헬름의 젊음은 연극과 사랑이라는 두 개의 낭만적인 영역을 통한 깊고 뜨거운 정열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6. 연극과 사랑에 빠져 혼돈스러웠던 빌헬름의 삶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은 우연하게 알게 된 한 소년이 과거 자신과 여배우 사이에서 난 아들이라는 점을 알게 되고 아버지로서 책임감을 갖게 된 이후였다. 그러한 감정 속에서 그의 수업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의 수업시대는 끝난 것이었으며, 아버지로서의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그는 또한 한 시민으로서의 모든 덕성들까지도 갖추게 된 것이었다.” 아주 관습적인 일이지만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 그를 어른으로 만든 것이다." 어른이 되기 위한 수업시대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판단할 때, 자신들이 타고난 사명을 생생하게 느끼고 분명히 고백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길을 어느정도 즐겁고 편안하게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연습한 사람들에게만 수업시대가 끝났음을 알려주었어요.”
7. 빌헬름은 자신의 수업시대, 즉 연극과 사랑으로 점철된 삶의 과정을 복기하면서 결국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느끼면서도 그 힘만으로 삶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한다. “이 세상에서 의지대로 지향하고 노력한다 해도 잘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제가 꽉 붙들고 싶던 것은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한편, 받을만한 일도 하지 않는 호의는 억지로 쓰며 저를 뒤따라온단 말입니다.” 결국 빌헬름은 자신의 아이를 잘 돌봐줄 한 여인과 결혼을 약속하면서 빌헬름의 ‘수업시대’는 마무리된다. 연극과 사랑의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삶의 여정은 결국 아버지의 삶과 그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안정된 결혼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이러한 ‘낭만주의’의 폐기를 보고 낭만주의의 대가였던 노발리스는 괴테의 배신이라고 흥분했다고 한다.
8. 빌헬름이 보여준 관습적인 일상으로의 복귀는 결코 손쉬운 현실주의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도전했고 갈등했으며 수많은 아픔과 불행을 경험하고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을 인정함으로써 인식하게 된 삶의 결과였다. 빌헬름의 모습에서 80년대 읽었던 이문열의 대표적인 성장소설 <그해겨울>의 주인공 K가 보여줬던 현실로의 복귀와 묘한 동질성을 발견하게 된다. 끝없는 허무와 알 수 없는 목표에 흔들리던 K도 동해 바다를 만나고 현실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그것은 짧지만 강렬했던 경험의 결과였던 것이다. 800쪽이 넘는 긴 글 속에서 전개된 빌헬름의 성장과정은 18세기 귀족이 아니면서도 끊임없이 성장하길 원하는 부르주아 청년의 자의식과 인식이 날카롭게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결론은 현실과의 조화였다. 바꿀 수 없는 현재와의 타협, 나 자신의 욕망보다 일상의 관습을 선택한 것은 결국 각각의 시대를 살아가는 보수주의자의 모습이다. 그러한 선택은 보수주의를 정당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에 대한 합당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각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들의 보수적 회귀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각각의 삶의 선택을 무엇이라 비난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던 사랑과 관련된 즉흥적인 허위의식과 연극에 몰두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그의 경제적 환경을 고려할 때, 최종적인 결과는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이성적으로는 수용할 수 있어도 결코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빌헬름의 수업시대 결과가 보여준 ‘세속적이며 일상적인 것의 수용’ 때문이다.
첫댓글 - "각각의 삶의 선택을 무엇이라 비난할 수 있는가?" : 선택의 자유!
- 삶의 수업(공부)은 생을 다할 때까지 지속된다. 삶에 대한 질문은 끝이 없고 대답은 메아리로 돌아올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