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가 제12장 2) † 사내아이는 누구인가? (묵시11,19-12,1-11)
<사내아이는 누구인가?>
여인은 이스라엘 왕국의 예루살렘을 대표한다면, 그렇다면 사내아이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켜 말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1) 해와 달, 별이 이미 이스라엘 왕국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2) 이 사내아이는 보좌 앞으로 휴거 되는데 성경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왕국의 휴거를 말한 적이 없고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관한 예언과 부합되지 않는다.
(3) 이 사내아이는 어린양의 피를 믿지만(묵시12,11),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환난 때에 주님을 믿을 것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주 예수님의 발이 감람산 위에 설 때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구원의 샘을 여실 것이며 이제야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스가랴13,1; 14,4; 12,10-14).
또 어떤 사람은 사내아이가 교회 전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교회 전체가 다 부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이 말한다면 온 교회가 다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2) 교회 전체가 다 동시에 휴거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는 먼저 휴거 되고 어떤 이는 나중에 휴거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의 사내아이는 처음으로 휴거 되는 것이다.
(3) 철창으로 만국을 다스린다는 약속은 교회 전체에게 준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에게 준 것이며(2,26-27), 교회 전체는 다 이기는 자가 될 수는 없다.
(4) 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권을 얻는 것은 교회 전체가 아니며 오직 주님과 함께 고난을 당한 사람이라야 주님과 함께 왕이 될 수 있다(2티모2,12).
그렇다면 사내아이는 누구인가? 이기고 또한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묵시12,2절에서 무엇을 가리켜서 아이를 배었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어린 아기가 모태 안에 있다는 것이며, 그 의미가 바로 어린 아기와 그 어머니가 완전히 하나이고 한 몸이라는 뜻이다. 어머니와 그는 하나로 연합된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이 어린 아기는 어머니와 다르다. 그 아기의 장래는 어머니와는 장래에 관한 한 전적으로 다른 존재이다. 그는 태어난 후에 하느님의 보좌에 휴거될 것이고(묵시12,5,11; 필리3,10-11), 그의 어머니는 광야로 도피하게 될 것이다(필리12,6).
그런데 또 하나의 요점이 있다. 그 여인이 아기를 배었을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어머니뿐이다. 그 아기는 볼 수 없고 외면적으로 어머니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들은 명백히 존재를 가지고 있고 다만 어머니 안에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그는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어머니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3절에서 이 용의 형태는 어떠했는가? 용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었고, 머리에는 일곱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이것은 13,1절의 바다로부터 올라온 짐승과 같은 모습이었다. 13,1절은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고 말한다.
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도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또한 면류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사탄의 목적, 곧 그가 얻기 원하는 것이 바로 면류관이며 통치권을 차지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일곱 머리는 인류역사의 일곱제국을 말하며, 1. 에굽(바로), 2. 앗수르(나내렙), 3. 바밸론(너부갓네살), 4. 페르시라(고래스), 5. 헬라(알렉산더), 이 다섯 제국은 ‘이미 망했고’, 6. 로마(가이사), 이것은 현재 ‘하나는 있고’, 마지막으로 장차 올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제국이다.
열 뿔은 적그리스도를 돕는 마지막 10개의 나라들이며, 과거의 짐승들과는 달리 앞의 모든 제국을 다 합친다고 해도 이 짐승을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공학 IT의 발전으로 지난 코로나시대의 통제와 억압를 경험했듯이, 지구촌 80억을 한 사람이 권력을 쥔다. 이 적그리스도가 대환난 7년을 다스리며 완전히 파괴시킨다.
용과 짐승의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용의 면류관은 머리에 있으나, 짐승의 면류관은 뿔 위에 있다(묵시13,1). 머리는 결정권을 나타내고 뿔은 집행권을 나타낸다. 머리는 통제하고 뿔은 집행한다. 곧 뿔은 머리의 말을 들으며 머리가 움직이면 뿔도 움직인다. 짐승이 행한 모든 것은 모두 용의 통제에 의한 것이다.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목적 안에서 다 분깃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짊어져야 할 책임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중에서 한 무리의 사람을 택하시는 것이다. 이 한 무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일부분이고, 하느님이 선택해내신 무리이며, 사내아기 곧 이 여자가 해산한 사내아이인 것이다. 전체는 어머니이고 소수는 바로 사내아이인 것이다.
여기서 사내아이는 바로 12,11절의 “형제들”이다. 이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고, 상당한 수가 합해져서 한 사내아이가 됨을 의미한다. 다만 어머니와 비교할 때 이 사내아이는 적은 수이다. 이 무리는 전체와 비교할 때 비록 숫자는 적지만, 하느님의 계획이 그들 위에 있고 하느님의 목적이 그들에게 있다.
5절은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기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사내아기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보좌로 이끌려 올라갔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요한묵시록에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는 말이 세 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첫 번째는 2,26-27절로서 “이기는 이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분명히 교회 중의 이기는 이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또한 19,15절은 “그의 입에서 날카로운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이것은 주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검(칼)은 반역자들을 심판하실 말씀이다(요한12,48). 그렇다면 12장에 언급된 부분은 누구를 가리켜 말한 것인가?
만일 교회의 이기는 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바로 주 예수님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주 예수님을 가리켜 말할 가능성이 있는가? 없다! 왜 그럴 가능성이 없는가? 첫째, 이 사내아이는 해산하자마자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려 올라갔는데, 태어나자마자 곧 보좌로 올라간 것은 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은 삼십 삼 년 반을 사시고 죽고 부활하신 후에야 비로소 승천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내아기가 교회 가운데의 이기는 이를 가리켜 말한 것임을 믿는다. 이 사내아기는 교회 중의 일부분이며, 이들이 바로 이기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사내아이는 그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내아이는 주 예수님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곧 주 예수님은 첫 번째 이기는 아이셨으므로 모든 이기는 이는 주 예수님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사내아이와 어머니는 서로 다르지만 또한 하나이다. 이기는 이들은 교회와 다르지만 또한 교회 안에 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기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보좌로 이끌려 올라갔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휴거되는 것을 말한다. 왜 사내아기가 하느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휴거되는가? 이는 한 사람, 곧 교회의 머리가 이 보좌에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목적은 한 사람만을 보좌에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보좌에 있게 하시는 것이다. 알렐루야!
하느님의 원래 목적은 수많은 사람들로 보좌에 올라오게 하시는 것이요, 수많은 사람들로 통치권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함께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를 원하시지만, 교회 중 많은 사람들이 이때에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려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영적 성숙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 곧 이기는 이들만이 하느님의 보좌 앞에 올라갈 수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목적에 도달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휴거된 것이다. 사내아기가 휴거 되자 곧 두 가지 일이 발생했다. 6-7절에서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여인이 천이백육십 일 동안 보살핌을 받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5절에서는 “사내아기가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휴거되었다”고 말하고, 6절에서는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갔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여인이 광야로 도망간 것은 사내아기의 휴거로 인한 것이고, 하늘의 전쟁도 역시 사내아기의 휴거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내아기가 휴거되자 곧 하늘에서는 전쟁이 발생했다.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바로 사내아기가 휴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볼 때, 휴거는 다만 개인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더욱 여러 시대에 걸쳐 내려온 전쟁, 곧 옛 뱀의 수천 년 동안 하느님과 원수가 되었던 것을 종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용은 하나의 뱀이 변화한 것으로서 그의 능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진 것이다. 그러나 사내아기가 들려 올라가자, 그 용은 더 이상 커질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는 하늘에서부터 쫓겨났다. 그러므로 휴거는 사탄으로 하여금 더 이상 하늘에 있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집행이다.
이 전쟁의 결과로 용은 패배하였고, 하늘에서 더 이상 있을 곳을 얻지 못하고 쫓겨났다. 본래 주 예수님의 죽으심은 사탄이 사람의 타락 가운데서 얻은 지위를 처리했다. 곧 구속이 사탄의 합법적인 지위를 이미 파괴한 것이다. 교회(또는 단위 교회인 믿는 이 개인)의 일은 바로 주님의 구속 안에서 이미 성취하신 것을 하느님의 나라(왕국) 안에서 집행하고, 사탄이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서 얻은 합법적인 지위를 끝내는 것이다.
구속은 사람의 타락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처리이며, 하느님의 나라는 타락에 대해서 교회가 한 처리이다. 심판의 일은 그리스도의 일이었지만, 심판의 집행은 교회의 일이다. 사탄은 구속 안에서 심판을 받았으며,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10절은 “그 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 곧 왕국이다.
사탄이 쫓겨날 때, 사탄의 사자들도 쫓겨나고, 따라서 하늘에 더 이상 그들의 장소가 없게 될 때, 이것이 하느님의 구원이요, 능력이요, 하느님의 나라요, 그리스도의 권세이다. 이것은 주제가 이미 실현된 것이고 이미 성취된 것이다. 이 성취의 열쇠는 사내아기의 휴거이다.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사탄이 쫓겨난 이유는 사내아기가 들림 받았기 때문이다.
사탄이 쫓겨난 결과는 우리 하느님과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이기는 이들의 휴거는 사탄을 쫓아내고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온다. 이기는 이들의 일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다. 주님의 일은 이미 완성되었으며, 따라서 그분은 이미 보좌에 앉아 계신다. 이제는 이기는 이들이 이것을 가져와야 한다.
<그렇다면 마리아 숭배사상은 마귀적인가? 그렇다! 마귀적이다>
루카복음 10장에는 여기와 일치되는 곳이 있다. 루카10,17절은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냈음을 말한다. 18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고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일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바로 묵시록 12장에서이다. 어떻게 해야 사탄을 하늘에서부터 떨어지게 할 수 있는가? 18절의 근거는 바로 17절이다. 사탄이 하늘 위에서 떨어지게 되는 것은 교회가 귀신을 쫓아냈기 때문이다. 17절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한 차례 귀신을 쫓아냄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교회가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귀신을 쫓아낼 때, 비로소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사탄의 권위는 단번에 파괴되었다. 그러나 사탄으로 하여금 그의 권세를 완전히 잃게 하고, 그의 하늘에서의 권세를 잃게 하며, 그의 모든 권세를 끝내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계속해서 사탄을 처리함에 달려 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정복당함으로써 사탄이 쫓겨나는 것이다.
묵시록 12장의 사내아기가 바로 교회의 위치에 서 있는 이기는 이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사내아기가 휴거되자마자 사탄이 하늘에서부터 떨어지고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여인은 마리아가 아니며, 사내아기는 예수가 아니다. 하느님 말씀에 근거할 때, 성모의 승천은 조작된 것이며, 마리아 숭배사상은 마귀적이라는 엄청난 음모의 비밀을 엿보게 된다.
하느님은 어머니를 갖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항상 존재하시는 분이며, 하느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있어서 아버지가 없는 것처럼 그의 신성에는 어머니가 없다. 성경은 명백히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은 그의 골격을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마리아로 둔갑시켜 놓았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사랑과 가난과 고난과 그리고 사모하고 존경하올 우리의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승천과 부활과 중보자로까지 격상시켜 다시는 교정하지 못하게 교리와 법으로 묶어놓은 그 음모와 조작과 변절의 무리는 누구였을까? 누가? 왜? 그렇다면, 이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꼬? 진리로 싸우거나, 탈출해야만 한다.
묵시2,18-26절은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특별히 로마가톨릭교회를 지칭한다. “18 두아디라에 있는l 교회의 천사에게 쓰라. 불꽃 같은 눈과 정제된 놋 같은 발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 이것들을 말하노라. 19 내가 네 행위와 사랑과 섬김과 믿음과 네 인내와 네 행위를 아노니 마지막것이 처음 것보다 더 많도다.
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으니 이는 네가 이세벨이라는 그 여자를 용납하기 때문이라. 그가 내 종들을 가르치고 꾀어 음행하게 하고 또 우상들에게 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는도다. 21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음행을 회개할 여지를 주었으나 그녀가 회개하지 아니하였도다.
22 보라,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져 넣을 것이요 그녀와 함께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자기 행실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속에 던져 넣을 것이며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들을 죽이리니 그리하면 모든 교회가 나는 곧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 또 내가 너희 행위에 따라 너희 각 사람에게 주리라.
24 그러나 내가 너희와 두아디라에 있는 남은 자들 곧 이 교리를 가지지 아니하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사탄의 깊은 곳을 알지 아니한 모든 자들에게 말하노니 내가 어떤다른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리라. 25 다만 너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붙잡으라. 26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
27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며 토기장이의 그릇같이 부수어 산산조각 내리라. 이것은 곧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과 같으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알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