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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구민중행동에서 발표할 내용입니다.
국가폐지와 국가사멸
−[국가와 혁명] 읽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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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설명을 따라가면 폭력이나 독재는 무조건 악이고 국가와 민주주의는 신성불가침한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없다. 폭력은 소수 지배자들이 다수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에 맞서 다수 민중이 소수 지배자들의 생산수단을 수탈하고 이들의 저항을 제압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지배계급의 지배수단이지만, 피지배 민중이 지배체제를 타도하고 지배자들과 전쟁을 치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지배적이지만, 사회주의 사회 역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면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내세운다. 이러한 구분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서 은폐되는 현실의 본질적 모순들을 명확히 밝히고 평가하여 변혁운동의 방향과 방법을 규정하는 점에서 실천적 의의를 지닌다.
이처럼 레닌의 글들은 통념 내지 지배적 사고 틀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우리의 생각을 한 걸음 더 밀고 가도록 촉구한다. 하지만 그것은 밑도 끝도 없는 사고의 심연에 빠져들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주요 현실문제들을 변혁적 관점에서 더욱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로써 실천 과정에 나타날 구체적인 문제들을 예상하고 합당한 대응책을 찾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취한다면, 즉 변증법적으로 사고한다면, 레닌의 탁월한 주장들 속에 국가와 혁명 관련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이미 모두 나와 있으므로 이를 적절히 적용하기만 하면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체제 건설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그의 글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것을 발판 삼아 당면 현실에 밀착해 들어가며, 자본주의 체제 너머의 풍요로운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구현할 효과적 방안을 놓고 씨름하는 것이 레닌의 취지에 어울릴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뿌리 깊은 분리 극복과 아울러 변혁운동 과정 속의 민주주의 구현에 본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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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어떤 문제에 대한 해명이나 해답은 또 다른 문제의 단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동일한 사회체제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로도,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도 규정할 수 있다는 외견상의 모순은 분석적 사고를 통해 원칙적으로 명료하게 해소될 수 있다. 즉 권력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있다는 전제하에, (1) 타도 및 제압 대상인 부르주아지를 상대로는 독재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만, (2) 권력 주체가 사회의 절대다수인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점에서, 또 선거제⋅소환제⋅특권배제 등을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의 모순은 원론만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불가피하게 초래한다. 우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제압하기 위한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부르주아지의 저항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외부에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노골적인 경제적 군사적 침략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온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적 세계관⋅사고방식⋅감수성⋅욕구 등의 주체적 요인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속에서도 일정 기간 일소되지 않고 작용한다. 이 주체적 요인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립하는 여론을 부추기고 조직적인 행동으로 표현될 수 있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 개개인의 의식⋅무의식⋅체질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자본주의적 지배요소들을 극복하는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 불가피한 전쟁에 수반되는 부정적 부분현상들을 근거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를 상대로 하는 독재였다’는 선동구호가 횡행하기도 한다. 이런 구호는 표면적으로 현실사회주의 운동을 겨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오늘과 내일의 사회주의 운동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들 자신까지 끌어들여 자본 권력이 벌이는 반-프롤레타리아, 반-사회주의 전쟁의 일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프티부르주아지도 동원된다.
프티부르주아지를 반-프롤레타리아 전쟁에 동원하는 방법과 관련해 레닌은 무엇보다 관료제를 비판한다. “특히 프티부르주아지는 바로 이 기구를 통해 대부르주아지 편으로 끌려가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복종하게 된다. 이 기구는 농민, 소규모 수공업자, 상인 중에서 상위에 있는 계층에게 비교적 편하고 안정되고 명예스러운 자리를 마련해주어 그 자리에 오른 자들이 인민 위에 서게 한다.”(국가63) 레닌은 맑스⋅엥겔스와 마찬가지로 관료제를 상비군과 함께 “부르주아사회의 몸뚱이에 붙어 있는 ‘기생충’, 이 사회를 분열시키는 내부 모순에서 생겨난 기생충, 그러나 그 사회의 숨구멍을 막고 있는 기생충”(국가62)이라고 규정하고 그 척결을 주요 과제로 삼는다.
하지만 레닌은 그것이 간단한 일이 아님을 충분히 알고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민주주의는 임금노예제와 대중의 궁핍과 모든 빈곤 상황에 의해 제한되고 속박당하고 축소되고 불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정치조직이나 노동조합조직에서 관리들이 자본주의의 상황에 의해 타락하고(보다 정확히 말하면, 타락하는 경향이 있고) 관료가 되는 경향, 즉 대중과 떨어져 대중 위에 선 특권을 지닌 자가 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관료주의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가 아직 수탈당하지 않고 부르주아지가 아직 타도되지 않은 한, 프롤레타리아적 공직자조차 어느 정도 ‘관료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국가191-192) 아울러 레닌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공화제든 군주제 하에서든 의회정권이 수립됨과 동시에 “부르주아적 질서의 토대를 그대로 둔 채 ‘노획물’인 관직을 분배하고 재분배한 여러 부르주아 당들과 프티부르주아 당들 간의 권력투쟁 과정”(국가66)은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우리의 노동운동과 정치권에서도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관료주의 문제는 자본주의 국가들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체제 차원에서 자본가가 ‘수탈’당하고 부르주아지가 ‘타도’된 이후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속에서도, 아직 범사회적으로 자본주의의 모반, 즉 자본주의적 욕구와 의식과 체질이 강력하게 살아 있는 한, 다양한 형태의 ‘노획물’의 분배와 재분배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관직을 차지한 자들이 ‘대중과 떨어져 대중 위에 선 특권을 지닌 자가 되는 경향’은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을 근거로 변혁운동은 무의미하고 부르주아지를 대신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노동자 민중에게는 별 차이 없다는 식의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과, 이 문제를 충분히 예상하고 그 해결 방안을 찾아내고 실행에 옮겨가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길이다. 이때 자본가의 수탈과 부르주아지의 타도,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건설은 문제해결의 충분조건은 못되지만, 적어도 필요조건은 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레닌이 다수에 대한 억압기구로서의 낡은 국가 및 관료기구의 파괴와 절멸을 혁명의 과제로 설정한 것은 당연하다.(국가64) 물론 현실주의자인 레닌은 관료제를 단번에 모든 것에서 남김없이 폐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는 ‘낡은 관료기구를 점차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고 폐지할 새로운 기구의 건설에 곧 착수하는 것’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직접적인 당면 과제임을 역설한다.(국가90)
이 새로운 기구 건설을 위해 레닌은 다시 파리코뮌의 주요 조치들을 끌어들인다. “노동자들은 정치권력을 쟁취한 후에는 낡은 관료기구를 파괴할 것이고, 그것을 철저히 분쇄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을 것이며, 이 낡은 기구를 노동자와 사무원들로 구성되는 새로운 기관으로 대체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관료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맑스와 엥겔스가 자세히 연구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즉시 취할 것이다. 즉 (1) 선거제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소환할 수 있는 제도, (2) 노동자 임금을 초과하지 않는 급료 지불, (3) 누구나 통제와 감독의 기능을 수행하고 누구나 일시적으로 ‘관료’가 되며 따라서 어느 누구도 ‘관료’가 될 수 없게 하는 데로 즉시 넘어가는 것이 그것이다.”(국가183) 레닌은 여기에 의회적 기관을 ‘행정과 입법을 함께 수행하는 활동 단체’로 대체할 필요성도 추가한다.(국가192) 이때 레닌은 어느 누구도 ‘관료’가 될 수 없게 하기 위한 조건이 자본주의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국가’의 행정기능을 단순화한다. 자본주의는 ‘나리 자리’를 없애는 것과 사회 전체의 이름으로 ‘노동자, 감독, 부기 계원’을 고용하는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가 모든 일을 맡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국가90)
현대의 첨단 과학기술이 국가 행정기능의 단순화 가능성을 확대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행정기능이 누가 담당해도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화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구체적인 사안에 들어가면 누구의 무엇을 위해 어떤 행정적 결정을 내릴 것인지 여러 선택지가 등장하며, 비슷한 직위를 누가 맡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즉 크고 작은 행정단위 속에서 끊임없이 결정을 내려야 하며, 이를 위한 정치적 윤리적 혹은 종합적 판단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이 체제변화 이후에는 얼마나 달라질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래도 선거제와 소환제, 그리고 특권의 폐지를 통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절대화하는 체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와 아울러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통해 누구라도 행정기능을 담당할 수 있도록 주체적 자질을 기르는 것도 국가관리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한 조건이 될 것이다. 레닌은 이 주체적 자질의 문제를 ‘습관’이라는 말로 다룬다. 그는 기존 관료기구의 파괴는 사회주의의 대량생산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모든 관료제의 점진적 ‘사멸’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점점 더 단순화되는 감독과 계산의 기능이 모든 사람에 의해 순번대로 수행되다 나중에는 습관이 되고 결국 더는 특수한 인간 계층의 특별한 기능이 아니게 되는 질서−임금노예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인용부호 없는 질서−의 점진적 형성으로 이어질 것이다.”(국가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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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관료기구를 파괴하는 것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과제이지만, 관료기구가 궁극적으로 사멸하기 위해서는 습관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제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기에 장구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정은 궁극적 평등사회의 건설을 의미하는 국가사멸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가가 사멸하여 어느 누구도 사회구성원 위에 군림할 수 없는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계급지배 도구로서의 국가를 파괴하고 생산수단을 자본가들로부터 수탈함으로써 계급관계를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국가가 궁극적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국가의 완전한 사멸의 경제적 기초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사라져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천 중 하나가 사라지게 될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이다. 하지만 단순히 생산수단을 공동소유로 이전하고 단순히 자본가를 수탈하는 것만으로는 이 원천을 결코 단번에 제거할 수 없다.”(국가160)
자본가들은 생산수단을 수탈당하더라도 새로운 사회질서에 순순히 동조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레닌은 파리코뮌의 예를 들어 이 반항을 억압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반항을 억압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코뮌에서 특히 필요한 일이었다. 코뮌이 패배한 원인 중 하나도 이를 단호하게 충분히 실행하지 못한 데 있었다.”(국가82) 부르주아지의 반항을 충분히 제압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일은 코뮌에 국한되지 않는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을 ‘낡은 사회의 힘과 전통에 맞선 집요한 투쟁으로서, 유혈 투쟁과 무혈 투쟁, 폭력 투쟁과 평화 투쟁, 군사 투쟁과 경제 투쟁, 교육 투쟁과 행정 투쟁’이라고 규정한다. 이 투쟁은 일국 내에서 벌어지는 감당할 만한 소동이 아니라, 국제적인 전쟁이며, 여기서 패배하면 코뮌과 아울러 현실사회주의의 운명이 보여준 바와 같이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는 이루어질 수 없고 국가사멸도 성립될 수 없다. 국가사멸은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완전히 제압한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자본가들의 저항이 완전히 분쇄되고 자본가들이 소멸하고 더는 어떠한 계급도 없는(즉 사회적 생산수단을 둘러싼 관계에서 사회성원들 사이에 전혀 차별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에 가서야 비로소, 그때에야 비로소 ‘국가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고 자유에 관해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국가151)
따라서 완전한 국가사멸을 위해서는 완전한 공산주의가 필요한데,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에 레닌은 말하지 않으며 단지 그것이 장구한 과정일 것임을 인정한다. “우리는 이 발전이 얼마나 빨리 진행될지, 그것이 얼마나 빨리 분업을 폐지하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을 제거하며 노동을 ‘생활의 제1차적 요구’로 전환시키는 데까지 이를지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다.”(국가160-161)
그렇다고 국가사멸을 공허한 관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사멸은 나름으로 논리성을 갖추고 있다. “인민 자체의 다수가 자기들의 억압자를 억압한다면 ‘특수한 억압권력’은 이미 더는 필요하지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는 사멸하기 시작한다. 특권을 가진 소수(특권적 관료와 상비군 장교단)의 특별한 기구들 대신에 다수 자신이 직접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전체 인민이 국가권력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많은 부분을 담당하면 할수록 이 권력에 대한 필요는 더욱 줄어든다.”(국가82) “사회의 전체 성원 또는 적어도 그 대다수가 스스로 국가를 관리할 줄 알게 되고 스스로 이 일을 자기의 수중에 틀어쥐고 보잘것없는 소수인 자본가와 자본주의적 악습을 보존하려고 하는 신사들 및 자본주의 때문에 몹시 타락한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를 ‘수립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모든 관리는 그 필요가 없어지기 시작한다.”(국가168)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특수한 억압권력으로서의 국가가 필요하지 않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전체 성원 또는 적어도 그 대다수’가 국가를 관리할 수 있고 실제로 관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만 아니라 국가관리의 선거제⋅소환제⋅특권배제 등의 근본적인 민주적 조치들과 아울러 이에 부합하는 범사회적 정치문화와 의식 및 욕구체계 형성을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국가사멸은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로 미뤄둘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현재의 정치형태를 규정하는 이념적 지표다. 이러한 지표를 포기하면서도 민주적인 조치들을 어느 정도 취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지향하여 실질적 조치를 취할 때와 같이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사멸은 미래보다 오히려 현재의 문제다.
레닌은 국가사멸과 함께 민주주의의 사멸도 예상한다. 즉 “민주주의가 완전해지면 완전해질수록 그것이 필요 없게 되는 순간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다.(국가168) 이때 그는 민주주의를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인정하는 국가, 즉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주민의 일부가 다른 일부에 대해 체계적 폭력을 사용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규정한다.(국가139) 이런 의미의 민주주의가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은 폭력이나 복종 없이도 인류가 사회적 공동생활의 기본 조건들을 준수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노예제로부터, 자본주의적 착취의 무수한 참상, 야만성, 불합리, 추악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옛날부터 알려져 왔고 수천 년에 걸쳐 모든 교훈서에서 반복된 사회적 공동생활의 기본 규칙들을 폭력 없이, 강제 없이, 복종 없이, 국가라는 특별한 강제 기관 없이 준수하는 데 점차 습관이 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민주주의는 사멸하기 시작한다.”(국가151)
‘옛날부터 알려져왔’다는 ‘기본 규칙들’도 실은 자명한 진리가 아니다. 따라서 그것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그것들이 실제로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근거한 사회적 공동생활의 규칙으로서 여전히 합당한지 또는 특정한 지배관계의 산물로서 불필요한 억압을 내포하는 것이므로 이제는 근본적으로 변경하거나 폐기해야 하는 것인지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새로운 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유물변증법적 관점에 부합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전히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의견 충돌은 있을 수 있겠지만, 계급사회에서처럼 적대적이지는 않을 것이며 합리적 논의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룰 가능성은 획기적으로 커질 것이다.
레닌은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엥겔스를 끌어들여, 새롭고 자유로운 사회조건에서 자라나 국가라는 ‘쓰레기 전체를 일소해버릴 수 있는’ 새로운 세대를 거론하기도 한다.(국가140) 또 그는 국가사멸이 습관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제시한다. “왜냐하면 만일 착취가 없다면, 그리고 사람들을 격분시키고 항의와 폭동을 유발하며 억압을 필요하게 만드는 그러한 것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사회적 공동생활에 필요한 규칙들을 준수하는 데 얼마나 쉽사리 익숙해지는가를 우리 주위에서 수도 없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국가151-152)
그렇다고 레닌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별 인간들의 위법행위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 개별 위법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특수한 억압 장치는 필요하지 않을 만큼 인민 자신이 쉽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본다. 그는 무엇보다 위법행위의 근본적인 사회적 원인은 대중에 대한 착취와 궁핍인데, 이 주된 원인을 제거하면 위법행위도 사멸하기 시작할 것이며 위법행위의 사멸과 함께 국가도 사멸하리라고 본다.(국가153-154) 이런 사회에서는 ‘부르주아적 권리의 협소한 한계’, “즉 다른 사람보다 반시간이라도 덜 일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받으려고 샤일록처럼 냉혹하게 계산하게 만드는 저 협소한 한계가 극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각자가 받을 생산물의 양에 대한 사회의 생산물 분배 기준이 필요 없어져 누구나 ‘필요에 따라’ 자유로이 갖게 될 것이다.”(국가161)
이처럼 위법행위의 근본적인 사회적 원인인 대중에 대한 착취와 궁핍을 제거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사멸케 하고, ‘사람들을 격분시키고 항의와 폭동을 유발하며 억압을 필요하게 만드는 것’을 없앰으로써 공동생활에 필요한 규칙을 준수하는 습관, 곧 공산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형성한다는 유물변증법적 운동원리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이는 조건이 주체를 규정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조건을 주체들이 만들어간다는 원리이기도 하다. 이때 레닌이 습관이라고 칭하는 주체적 요인은 사회주의적 의식⋅욕구⋅체질을 갖춘 자발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습관의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곧 공산사회의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의 총체적 과제, 즉 경제적 정치적 체제변화와 아울러 주체들이 새롭게 탄생하도록 의식과 감성과 욕구를 형성하는 교육⋅문화운동의 지난한 과제도 함께 제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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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지배 도구인 낡은 국가기구의 파괴를 당면과제로 삼고 궁극적으로 국가사멸을 추구하는 레닌의 논의는 무정부주의와도 상통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우리는 목표로서의 국가 폐지의 문제에서는 결코 무정부주의자들과 의견이 다르지 않다.”(국가108)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존의 국가기구를 폐지하고 자본가들로부터 생산수단을 수탈한 다음에도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들의 반격에 맞서 사활을 건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이때 국가라는 무기를 버릴 것이냐 아니면 전쟁을 끝낼 때까지 ‘일시적으로’ 국가권력을,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띠게 된 국가권력을, 활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 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엄연히 갈라선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계급을 폐지하는 데 피억압계급의 일시적 독재가 필요한 것과 같이 국가 폐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착취자들에 반대해서 국가권력의 도구와 수단 및 방법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국가108) 이런 관점에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임무를 이해하지 않고 국가의 즉각적 폐지를 추구하는 ‘무정부주의적 몽상’은 현실적으로 ‘사회주의혁명을 지연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라고 비판하고(국가90), 무정부주의와 맑스주의를 구분한다. “맑스가 무정부주의자들은 논박할 때 전적으로 반대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국가 ‘폐지’였던 것이다. 그는 결코 계급 소멸과 더불어 국가도 소멸될 것이라든가 혹은 계급 폐지와 더불어 국가도 폐지될 것이라는 데 반대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무기 사용을 포기해야 한다는 데 그리고 조직적 폭력 즉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한다는’ 목적에 봉사해야 할 국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데 반대한 것이다.”(국가108)
레닌은 엥겔스 역시 동일한 입장이었음을 지적한다. “맑스주의는 항상 계급 폐지와 더불어 국가도 폐지된다고 가르쳐왔다. 엥겔스가 [반듀링론]에 있는 ‘국가 사멸’에 관한 유명한 구절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국가 폐지를 옹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룻밤 사이에’ 국가를 폐지할 수 있다고 외쳐댔기 때문이다.”(국가106) 레닌은 권위를 거부하는 프루동주의자들의 사상 혼란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반 권위주의자들은 정치적 국가를, 그것을 낳은 사회관계가 폐지되기 전에 일격에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권위의 폐지가 사회혁명의 첫 번째 행위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신사분들께서는 혁명을 본 적이 있는가? 의심할 나위 없이 혁명이란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권위적인 것이다. 혁명이란 주민의 일부분이 소총과 총검과 대포 등 대단히 권위적인 수단을 가지고 주민 일부에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승리한 당은 무기를 가지고 반혁명 분자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써서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파리코뮌이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무장한 인민의 권위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과연 단 하루라도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국가110-111)
국가권력 문제와 관련해 레닌은 극좌파 판네쾨크와 중앙파 카우츠키 사이의 논쟁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그에 따르면 판네쾨크는 카우츠키가 혁명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프롤레타이아트의 투쟁은 “단순히 국가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투쟁이 아니라 국가권력에 반대하는 투쟁”이라고 주장한다.(국가186) 이에 대해 카우츠키는 이렇게 응수한다. “지금까지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 사이의 대립은 전자는 국가권력을 쟁취하려고 한 반면 후자는 그것을 파괴하려고 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판네쾨크는 이 두 가지를 다 하려고 한다.”(국가187)
레닌은 판네쾨크가 낡은 국가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맑스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보지만, 프롤레타리아독재 기간의 국가권력 사용 문제를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다.(국가188) 한편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단지 국가권력을 쟁취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카우츠키는 맑스주의를 왜곡하는 셈이다. 이들을 비판하면서 레닌은 맑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전자는 국가의 완전한 폐지를 목표로 하며 이는 국가를 사멸로 이끄는 사회주의 수립의 결과로 사회주의혁명에 의해 계급이 폐지된 후에야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후자는 국가의 폐지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국가를 즉각적으로 완전히 폐지하고자 한다. 둘째, 전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쟁취한 후 낡은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고 그것을 코뮌을 본뜬 무장한 노동자들의 조직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데 반해, 후자는 국가기구의 파괴를 주장하긴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가 그것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지 또 혁명적 권력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주 불명확한 생각밖에 갖고 있지 않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심지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권력 이용과 그들의 혁명적 독재까지도 거부한다. 셋째, 전자는 오늘날의 국가를 이용해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을 준비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무정부주의자들은 이것을 거부한다.”(국가187-188) 이런 차이들을 근거로 레닌은 무정부주의자들에게서는 “무자비할 정도로 용감하면서도, 대중운동의 실제적 조건을 고려하는 구체적 과제를 위한 혁명적 사업의 전술이 아니라 절망의 전술”이 나온다고 비판한다.(국가194)
무정부주의에 대한 레닌의 비판은 현실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기존의 국가기구를 폐지하고 국가사멸이라는 궁극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착취자들에 반대해서 국가권력의 도구와 수단 및 방법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필요’마저 부인하는 것은 국제 자본권력과의 전쟁에서 스스로를 무장해제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그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프롤레타리아독재와 자본권력의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서 ‘일시적’이라는 단서가 ‘무한정’으로 바뀔 가능성, 국가사멸 개념이 체제유지를 절대화하는 안보의식의 뒤편에 숨고 다시 관료기구가 사회구성원들의 통제를 벗어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의 망령을 불러낼 가능성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커질 때에는 무정부주의가 구사하는 ‘절망의 전술’도 일정한 호소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국가사멸의 이념, 즉 누구도 사회구성원 위에 군림할 수 없는 평등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념은 여전히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5
관료기구와 상비군 중심의 낡은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그것을 무장한 노동자들의 조직으로 대체할 경우 중앙집권제에 기초하는 통일성이 파괴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파리코뮌에 대한 맑스의 다음 주장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민의 통일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오리려 그 반대로 코뮌 헌법에 의해 조직되게끔 되어 있었다. 국민의 통일은 이 통일의 구현체임을 자임하지만 사실은 국민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 국민이라는 육체에 붙은 기생적인 혹에 불과한 저 국가권력을 폐지함으로써 실현되도록 되어 있었다. 구정부권력의 한갓 억압기관들은 잘라내야 했지만 그 정당한 기능은 사회 위에 군림하기를 요구하는 권력에서 떼어내 사회의 책임 있는 공복들에게 넘겨주도록 되어 있었다.”(국가93, 내전345)
레닌은 베른슈타인이 맑스의 이러한 주장을 본질적으로 프루동의 연방주의와 유사하다고 보는 점을 비판한다. 즉 여기서 맑스는 중앙집권제에 반대하여 연방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르주아국가에 존재하는 낡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파괴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국가94) 레닌에 따르면 맑스는 베른슈타인의 생각과 달리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파괴를 주장하는 점에서 푸르동과 일치하며, 연방주의 문제에서는 오히려 프루동 갈라진다. “연방주의는 원칙적으로 무정부주의의 프티부르주아적 견해에서 발생한다. 맑스는 중앙집권주의자이다. 앞서 인용한 그의 서술에서는 중앙집권제로부터의 이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국가에 대한 프티부르주아적 ‘미신’에 가득 찬 사람들만이 부르주아 국가기구 폐지를 중앙집권제 폐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국가96) 레닌은 엥겔스 역시 맑스와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와 사회주의혁명의 관점에서 민주적 중앙집권제, 통일적이고 불가분적인 공화제를 주장한다’고 밝힌다.(국가125)
이때 레닌은 중앙집권제가 낡은 국가기구로도 새로운 국가기구로도 다 가능하다고 본다. 즉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무장력을 하나로 집중하면 그것이 곧 중앙집권제라는 것이다.(국가189) 그는 맑스가 ‘국민의 통일은 조직되도록 되어 있었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부르주아적⋅ 군사적⋅관료적 중앙집권제를 의식적⋅민주주의적⋅프롤레타리아적 중앙집권제로 대치시키기 위해서였다”(국가97)고 주장한다. “만일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이 국가권력을 자기 수중에 장악하여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을 코뮌으로 조직하고 모든 코뮌의 행동을 통일하여 자본에 타격을 주고 자본가들의 반항을 분쇄하고 철도, 공장, 토지 등등의 사유재산을 전 국민, 전 사회에 넘겨준다면 이것은 중앙집권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가장 철저한 민주적 중앙집권제, 그것도 프롤레타리아트적 중앙집권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국가96)
맑스⋅엥겔스⋅레닌이 이처럼 연방제가 아닌 국민적 통일과 중앙집권제를 강조하는 것은 특히 독일의 봉건적 군소군주국 분리체제의 폐해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은 엥겔스를 끌어들여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 공화국이 연방제 공화국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지방과 주 등등에 보장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한다.(국가128) 또 그는 이때 엥겔스가 말하는 중앙집권제란 ‘코뮌들’과 지방들이 국가의 통일을 자발적으로 보전하면서 모든 관료주의와 위로부터의 온갖 ‘명령’을 완전히 배제하는 광범한 지방자치를 배척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도 명시한다.(국가126) 따라서 여기서 레닌이 옹호하는 민주적 중앙집권제는 예컨대 당 중앙위원회 혹은 서기국이 모든 주요사안을 결정하고 그것이 일사분란하게 전국적으로 하달되는 식의 관료적 지배구조 따위와 무관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레닌이 민주적 중앙집권제를 옹호하는 데에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레닌에 따르면 베른슈타인은 중앙집권제가 오직 위로부터만, 즉 관료제와 군벌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국가96-97) 그가 맑스를 프루동과 같은 연방제 지지자로 왜곡하고 이들에 맞서 중앙집권제를 옹호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이며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레닌은 ‘자발적 중앙집권제, 코뮌들의 자발적인 국민적 통일, 부르주아지의 지배와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파괴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적 코뮌들의 자발적 융합’을 내세움으로써, 베른슈타인류의 기회주의와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 동시에 프루동과 같이 연방제를 옹호하는 무정부주의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6
레닌은 베른슈타인의 기회주의만 아니라 베른슈타인을 비판하는 카우츠키와 플레하노프 등 맑스주의자들의 기회주의적 요소들도 낱낱이 폭로한다. 국가와 혁명을 쓰는 시기에는 이미 카우츠키를 비롯한 제2인터내셔널의 주역들 상당수가 제국주의 전쟁에 휘말려 들어가며 이른바 사회배외주의자로 타락한 상태여서, 그들의 기회주의적 본색을 분명히 밝히고 그들과 손을 끊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레닌이 열거하는 기회주의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기회주의자들은 무엇보다 “맑스주의의 혁명적 측면과 혁명적 정신을 누락시키고 밀어내리며 왜곡하고 있다. 그들은 부르주아지가 받아들일 만한 부분이나 그렇게 보이는 부분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찬양한다.”(국가27) 예컨대 맑스를 ‘애국적인 독일인’이라고 칭송한다. 맑스를 무정부주의의 창시자인 프루동과 혼동하여 연방주의를 맑스에게 떠넘기는 것도 왜곡의 한 가지 사례다.(국가95)
2) “때로는 폭력혁명이 때로는 사멸이 아무런 원칙 없이 혹은 궤변적으로 제멋대로(또는 권력자의 마음에 들게끔) 선택되는 식으로 결합된다. 이때 적어도 100번에 99번은 ‘사멸’을 전면에 내세운다. 변증법이 절충주의로 대체되는 것이다.”(국가48) “맑스주의를 기회주의로 변조할 때 변증법을 절충주의로 바꿔치는 것은 대중을 기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것은 그럴듯한 만족을 주며, 마치 과정의 모든 측면, 모든 발전경향, 모든 모순적 영향 등등을 고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은 사회의 발전 과정에 대한 통일적이고 혁명적인 이해를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국가49)
3) 민주주의의 평화적 발전에 대한 환상에 빠져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 또는 프롤레타리아 국가 개념이 사라진다. 이로 인해 대중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수행할 주도적 역할을 포기하고, “자본주의하에서 상당히 ‘잘 지낼’ 줄 알며 콩 요리 한 접시에 자신의 장자상속권을 팔아먹는 자들, 즉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인민의 혁명적 지도자 역할을 포기하는 고급 노동자들의 대변자들을 길러낸다.”(국가58)
4) 객관적 현실을 왜곡하여 혁명의 필요성을 은폐한다. 예컨대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 또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화하는 당대 현실과 관련해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이미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가사회주의’ 등으로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도 의심할 여지 없이 자본주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들은 이러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가깝다’는 것을 ‘사회주의혁명이 임박했다는 것, 용이하다는 것, 실현될 수 있다는 것,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할 논거’로 삼는 데에 반해, 기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혁명 부정과 자본주의 미화의 논거로 써먹는다.(국가119) 카우츠키는 사회주의혁명 및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과제와 관련된 모든 근본적 문제를 ‘아주 안심하고 미래로’ 넘긴다.(국가179) “혁명은 실종되고 만다!”(국가190)
5) 사회혁명에 대한 국가의 관계 문제에 정면으로 직면하게 됐을 때조차 기회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회피하려 하거나 간과한다.(국가173)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국가와 사회주의혁명의 관계 문제에 대한 회피−기회주의에 유리하고 또 기회주의를 길러낸 그 회피−에서 맑스주의에 대한 왜곡과 완전한 속류화가 생겨났다는 것이다.”(국가173) 카우츠키는 “1852년 이후에 맑스가 국가기구의 ‘파괴’를 사회주의혁명의 과제로 내세웠다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국가178) 권력쟁취는 단지 ‘다수의 획득으로만’(국가188), 기회주의에 수천 개의 탈출구를 남겨두는 방향으로 해석되었다.(국가197)
6) 공허하고 과장된 문구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극히 중요한 문제, 예컨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과거 혁명의 근본적 차이, 파리코뮌의 구체적 교훈 등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카우츠키는 말로는 기회주의에 대하여 단호한 투쟁을 선포하며 ‘혁명 사상’의 의의를 강조하고(만일 노동자들에게 혁명의 구체적 교훈을 선전하기를 두려워한다면 이 ‘사상’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혁명적 이상주의’라고 말하거나, 오늘날의 영국 노동자들은 ‘프티부르주아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이 문제를 회피함으로써 가장 본질적인 점에서 기회주의에 양보하고 있는 것이다.”(국가181)
7) 카우츠키는 정부부처들에 대한 미신적 숭배를 드러낸다. 그러나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관리 장치’와 모든 국가장치를 파괴하고 그것을 무장한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장치로 대체하는 데서 성립한다.”(국가190-191) “속속들이 속물근성에 젖어 있고 본래 혁명과 혁명의 창조력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혁명을 죽음보다도 더 두려워하는(러시아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원들처럼) 기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낡은 국가기구의 파괴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된다. 정부 기관들과 관리들 없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나갈 수 있겠는가.’”(국가194) “카우츠키 사상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호의적인 정부’ 이상으로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국가196)
기회주의⋅무정부주의를 비판하면서 레닌은 파리코뮌과 관련한 맑스의 교훈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그는 모든 낡은 국가기구를 파괴하는 데 한없는 용감성을 발휘하라고 가르치면서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라고 가르친다.”(국가194) 이 교훈에 의한 혁명적 실천을 통해 레닌은 관료제가 완전히 폐지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궁극적 귀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이 같은 폐지 가능성은 사회주의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대중을 새로운 생활로 끌어들이고 주민의 다수가 하나도 빠짐없이 누구나 다 ‘국가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듦으로써 확보된다. 이리하여 마침내 국가 일반이 완전한 사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국가195)
7
억압장치로서의 기존 국가기구를 폐지하고 ‘사멸해가는’ 새로운 (준)국가를 건설해야 할 필요성은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로 남아 있는 한 해결할 수 없는 대량실업⋅전쟁 환경위기 등 범지구적 재앙에 근거한다. 미래 평등사회의 권력구조와 그 물적 조건의 구체적 모습을 대중적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것은 노동운동의 화급한 당면과제다. 새로운 사회 건설의 첫 관문은 우리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 민중이 실질적인 민주국가, 즉 노동자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소련과 동구 현실사회주의체제의 몰락이나 남아 있는 사회주의국가들의 자본주의화 경향과 무관하게, 노동자 민중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재앙의 최대 피해자이자 그 극복의 잠재력을 가진 중심 당사자라는 진리는 변함없기 때문이다.
허나 이번 총선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현실적으로 진보 노동진영은 어떤 독자적 정치세력으로서 존재감을 대중들에게 각인하지 못해왔다. 레닌이 던지는 기회주의 비판 앞에서, 진보적 노동진영은 ‘프롤레타리아트에 호의적인’, ‘친노동 정부’라는 환각에 빠져, 자본권력과의 정면대결을 회피하면서 ‘콩요리 한 접시에 자신의 장자상속권을 포기’하려 애쓰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심기일전하여 노동자국가 건설의 전략을 맹렬히, 또 치밀히 구상할 때다. (2020.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