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Equality 平等
평등(平等)은 차별과 편향이 없이 언제나 동등한 것이다. 그러나 평등은 초시간적 평등이나 초공간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은 어떤 범주와 조건 안에서 평등이다. 따라서 원론과 초월적 평등과 현실과 실제적 평등은 다르다. 대다수 종교의 기본 교리는 평등이다. 종교에서는 원래 평등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차이가 생기고 차별이 생기는 것으로 본다. 우주 역시 하나에서 생성되었고 인간도 공통조상에서 분화되었으므로 원래 같은 존재였다. 이처럼 초월적 의미의 평등과 실제적 의미의 평등은 다르다. 기독교는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한 것으로 보았고 예수 그리스도는 평등의 복음을 직접 실천했다. 한편 불교는 모든 존재는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고 본래 진면목(眞面目)은 공(空)이므로 평등하다고 말한다. 다른 종교 역시 원론적으로는 평등을 바탕으로 삼는다.
평등의 어원은 라틴어 ‘같은’인 aequālis와 추상명사형 어미 -tās가 결합한 aequalitas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법 앞에서 평등한 정치적 권리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이소노미아(Isonomia, ἰσονομία)에 닿는다. 그리스어 이소(ἴσος, isos)는 ‘같은’이고 현대 영어 이소노미(Isonomy)는 법적 권리의 평등이다. 그러니까 이퀄리티(Equality)는 일반적 의미의 평등이고 이소노미는 법적 평등이다. 한자어 평등은 평평할 평(平)과 ‘무리, 등급’인 등(等)이 결합한 것으로 관청에서 가지런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평등은 인간의 사회적 평등을 말한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평등하다. 하지만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어떤 일도 당할 수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다른 사람의 재화를 약탈할 자유도 있고 다른 사람을 죽일 자유도 있다. 이것은 위험하고 불안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인간은 사회와 국가를 이루면서 질서와 규범에 따라 살게 되었다. 이로부터 신분과 재화의 차이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작용하는 인간의 욕심이 불평등의 원인이다. 한편 노예, 시민, 귀족, 사제, 군인, 왕 등 신분이 나누어지면서 불평등과 차별이 제도화되었다. 원시사회, 고대, 중세에도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인용하여)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고 형식적 평등(formal equality)이 아닌 비례적 평등(proportional equality)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정자들은 항상 평등과 정의를 말하지만 실제로 평등, 자유, 정의가 실현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전후였다. 홉스(T. Hobbes), 로크(J. Locke), 루소(J.J. Rousseau)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평등과 자유의 사상을 전파했다.
인간본성(Human nature)은 같은 것이고 태어날 때부터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는 천부인권설은 평등과 자유의 토대가 되었다. 17세기 전후에 홉스, 로크, 루소 등은 사회와 국가를 평등한 개인의 계약으로 보는 사회계약설을 주장했다.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1754)에서 재산의 사적 소유로 인하여 불평등이 생기며, 국가는 신분과 재산을 체계화한 제도라고 분석했다. 이 체제는 거짓 계약이므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진정한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고 <미국독립선언>(1776)에서 지금은 ‘세계의 여러 나라 사이에서 자연법과 자연의 신이 부여한 독립, 평등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to assume among the powers of the earth, the separate and equal station to which the Laws of Nature and of Nature's God entitle them)’라고 천명하여 개인의 평등과 국가의 평등을 명기했다.
한편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과정에서 선포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과 1875년 프랑스 제3공화국 헌법에서는 평등, 자유, 박애의 정신을 강조했다. 이후 거의 모든 국가의 헌법에 평등의 이념이 주축이 되었고, 거의 모든 국가는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을 중요한 정신으로 삼았다.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바탕인 일반의지(general will)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토대다. 하지만 인간의 평등은 인간의 동일성이나 유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성을 존중하는 평등이다. 그리고 인간의 인격, 권리, 존엄, 자격이 평등하다는 것이고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고유성과 특이성은 인정하는 평등이다. 평등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목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 생존의 조건을 동등하게 하는 조건의 평등, 실제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결과적 평등이 있다. 평등은 자유와 상보적인 관계이며 정의의 조건이다.★(김승환)
*참고문헌 Jean-Jacques Rousseau, Discourse on the Origin of Inequality, translated by Donald A. Cress, (Indianapolis: Hackett Pub. Co, 1992).
*참조 <가족>, <계몽주의/계몽의 시대>, <공동체>, <국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민주주의>, <법>, <사회계약>, <시민>, <시민사회>, <시민사회[헤겔]>, <유기체론>, <자연법>, <자유>, <정의>, <프랑스대혁명>, <헌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