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간도 독립운동을 추동한 캐나다장로회교회들과 설립자들
(1906~1923)
프롤로그 (서문)
2020년 코로나는 참으로 위대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병고와 죽음, 굶주림과 공포로 몰아갔으며 대립하는 강대국들로 하여금 백신과 치료약 개발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며 공조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성과 문명의 한계, 과학의 오만을 숙고하게 만들었으며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집단적으로 대중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주었다.
코로나가 준 천재일우의 기회가 인류에게 진실로 거듭남의 기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인류가 맘몬이즘의 그럴듯한 속임수 무한 탐욕, 무한 소유, 무한 경쟁, 무한 소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서열 없는 사회, 초아적인 봉사와 조건 없는 나눔으로 새로운 생명의 질서가 수립하길 빈다.
연길에서 머물면서 말없이 사라진 것들과 잊히어진 것에 대한 아픔, 그리움과 감사함으로 많이 울었다. 해방 이후 정치가들의 이념과 이익대로 취사선택되어져 우리 시야 밖으로 쫓겨난 북간도독립운동의 진실과 팩트를 알고자 고서를 뒤지며 많은 밤들을 하얗게 지새웠다. 그런 과정에서 만난 1800년대 중후반에 조선양반과 관료들의 수탈에 못 이겨 생명을 걸고 두만강을 건넜던 조선의 천민들, 그 천민들이 세운 교회와 독립운동, 경신참변 시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수천의 성도들과 불탄 교회들 그리고 1941년 만주국 치하에서 <만주조선기독련맹>에 가입하였다가 끝내는 중국의 탄압으로 역사 밖으로 떠난 교회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의 역사 이해와 인식을 뒤집어 버렸다. 생명과 민, 진리가 주가 되는 역사의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는 역사적이며 동시에 초역사적인 교회에 대하여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들은 백년도 안 되는 짧은 사이에 봉건왕조 청나라, 러시아, 중화민국, 동북군벌, 제국주의 일본과 만주국 그리고 친일파 앞잡이들, 세력을 다투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가와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공산주의 중국을 온몸으로 겪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인 지주들의 횡포와 수탈, 토비와 마적단의 약탈과 위협, 중국 관리와 중국인들의 차별과 핍박, 가뭄과 홍수에 에워싸여 살았다. 그러 암담한 환경 속에서 자작농이나 소작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나라의 독립을 꿈꾸며 신앙으로 산 그들에게 신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1920년 경신년 대학살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가혹하다.
그들이 하나님께 독립을 간청하며 기도를 바쳤던, 안전이 보장된다고 믿었던 교회당 안에서 불에 타죽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인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그들의 당혹과 경악, 절망과 고통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교하지 않고 순교한 그들을 묵상하며 사라진 교회, 잊히어진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 본 글을 쓴다.
오늘 여기에 산산이 부서진 이름을 적어 본다.
지금 이 시간에 허공중에 사라진 이름을 불러 본다.
하나님의 우주적인 교회로 사라진 북간도 교회들의 이름을 적어 본다.
순교하였으나 어디에서도 추모되지 않는 성도들의 이름을 불러 본다.
독립운동사에 찬란한〈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자랑하면서도 그 전투가 가능하도록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친 캐나다장로회 교회와 성도들, 그 결과로 일본군에게 대학살의 고통을 당한 교회와 성도들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무지한 한국인들의 양극화된 역사의식을 애도하며 1906년에서 1923년 사이에 개척된 교회 이름을 연도별로 기록해보았다. 시대 구분과 교회 이름은〈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상하권〉에 근거하였다. 그러나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상하권〉나오지 않으나 다른 책에 나오는 교회와 설립자의 이름은 그 책에 적힌 원이름을 한국식문법에 맞추지 않고 그대로 적었다. 같은 교회의 이름이 서로 다르게 쓰이어진 것이 확실한 경우에는 주에서 설명하였지만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는 두 개의 이름을 다 적어서 한 개 교회가 두 개처럼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2020.1.1금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