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주 예수 내가 알기전 - 예수 더 알기 원함은 -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말씀 : 사사기 2장 6-11절
신앙생활을 하면서 체험이 있고 없고는 굉장한 차이를 가져온다. 체험은 기노스코를 의미한다. 진정한 신앙생활은 에데인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에데인에서 출발한 지식은 반드시 기노스코로 다시 이어져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의 믿음이 굳건하게 세워진다.
신학생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하나님이 쓰시는 큰 목회자가 되려면 폣병이나 암 같은 병 한번은 앓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용기, 옥한흠, 하용조 등...그동안 우리 나라에서 귀하게 쓰임받은 목사님들 중에 큰 질병을 겪은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비단 목회자들만이 아니다. 성도들 중에도 인생에 큰 어려움을 당하였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모든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고 마침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경험한 사람들은 평생 그 기억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하다못해 꿈 하나 확실하게 꿔도 그 꿈 하나 붙들고 평생 신앙생활 하는 사람도 봤다. 그만큼 신앙생활에서 체험이란 아주 강력한 것이다.
오늘 본문은 사사기 저자가 여호수아 이전과 이후의 상황을 회고하며 기록한 내용이다. 이 내용은 여호수아 24장 29-31절과 거의 동일하다. 그 내용은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과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살아있던 날 동안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 10절이다.
그렇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다 죽고 나니까 그 후대 세대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험한 세대들이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의 영적 분위기가 확 달라졌음을 고발한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11절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여기서 '목전'이라는 말은 '눈 앞에서'라는 뜻이다. 이 말과 똑같은 말이 한글 성경에서는 다르게 번역됐다. 바로 '소견'이라는 단어다.
사사기가 고발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것이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소견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 이런 영적 타락이 일어났는가? 오늘 본문은 그 원인을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서 찾는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7절은 이렇게 표현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인가? 400년 동안 속박되었던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셨다. 광야 40년 동안 그들을 인도하셨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승리를 통해 그 땅을 정복하고 정착하도록 인도하셨다. 이런 하나님과의 실제적이며 관계적인 체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 즉 하나님의 목전에서 사는 삶(코람데오)을 가졌고, 모든 삶의 기준과 목적이 하나님께로 맞춰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저지른 '악'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본문에서는 그것이 우상숭배로 표현되어 있지만, 우상숭배의 근본적인 이유와 동기는 결국 하나님을 잃어버린 삶이다. 하나님의 목전에서 사는 법을 잃어버린 삶 말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
첫째,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인가?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했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 하나님에 대해 기노스코가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호세아 4:6절은 이렇게 말한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들의 결과는 멸망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신앙인들의 절대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아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앞세대 이스라엘인들과 같이 관계적이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함에서 오는 지식을 의미한다. 어떤 분들은 이것을 "하나님에 관하여는 잘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는 못한다"고 표현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을 쓴 제임스 패커는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사람들의 증거에 대해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한다.
1)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떠한 위험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행동할 줄 안다.
2)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생각을 품고 있다. 그래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기 위해 그분께 겸손하게 순종하고 의지한다.
3)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담대한 결정을 보인다.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에 담대하게 결정한다.
4)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는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자신을 아신다는 사실이 가장 큰 만족이요 보상이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자들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큰 일을 보았는가? 그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있느냐와 없느냐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다. 그 차이가 곧 여호수아와 사사기의 차이다. 호세아 6:3절을 다같이 읽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할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호세아 6:6절이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거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원하시고,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씀이다. 외형적인 신앙 행위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지 고민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제임스 패커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위해 열정을 가지라. 하나님께 순종하라. 하나님께 충성하라. 하나님으로 만족하라.
둘째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신앙교육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자녀들, 다음 세대들의 신앙교육, 신앙의 전수는 절대로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앙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다. 아버지의 신앙을 아들이 그대로 물려받는 게 아니라, 아들도 자기가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그때부터 제대로 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앙이 바른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부분을 강조했다. "너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목사 아들, 딸이라는 게 아무 소용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공예배에 반드시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한다. 미국에서 있을 때에도 수요예배에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하는 부모는 우리하고 다른 부목사님 가정을 제외하면 한 두 가정 뿐이었다.
내가 자랄 때만 하더라도 수요예배 때 부모님 따라서 교회 오는 게 당연했다. 그런에 요즘은 자녀들을 잘 데리고 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심심해 한다는 이유다. 당연하다. 예배는 재미로 드리는 게 아니다. 심심해도 와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한데,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데려오지 않는다. 그러니 자기 입맛에 안맞으면 교회에 안가도 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형성되고, 대학에 들어가면 교회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일들이 세상에 많으니까 교회에 안가는 게 당연한 거다.
그러면서 지금 미국에 있는 한인 이민교회들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이 어렵다고 말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너무 선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게 안될까? 누구 책임일까? 아이들 책임인가? 아니다.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신명기 6:6-7절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또 시편 78편 5-8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자녀의 신앙교육은 부모의 책임이다. 자녀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제대로 자녀를 교육해야 한다는 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메시지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로 전락하기 쉽다.
이미 한국의 경우, 대학생의 기독교인 비율이 2% 수준으로 전락했다. 선교학적으로 어느 집단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이 5% 미만인 경우를 가리켜 '미전도종족'이라고 부른다. 옛날에 이 미전도종족 하면 모슬렘권에 있는 나라나 중국, 북한, 베트남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을 가리켰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대학생 그룹이 미전도종족이다.
1000만 기독교인을 자랑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없는 세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 교회라고 안전하지가 않다. 우리 교회 부모님들 중에 자식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분들이 제법 있다. 그걸로 얼마나 가슴아파하고 고민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누구 탓을 하겠는가? 미국에서도 그런 부모님들을 너무 많이 봤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그걸로 끝이라고 봐야 한다. 그 다음에는 부모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니 어릴 때 잡아야 한다. 어릴 때 아이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도와줘야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적용하자. 첫째,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자. 둘째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도록 도와주자.
<찬양과 기도> : 온맘다해
1.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자. 내 안에 이런 열정을 달라고 기도하자. 믿음의 문제는 우선순위와 열정의 문제다.
2. 공동체를 위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기도하자.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아는 자녀들로 자라나도록 기도하자. 4월 22-25일에 있을 중고등부 연합수련회를 위해 기도하자.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이자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칠 때, 성령께서 아이들의 마음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자.
3. 지체들을 위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체들이 그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고통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 지체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관계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체험함으로써 날마다 승리하는 인생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