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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오대산(五臺山)
- 위 치 : 강원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 강릉시 연곡면
- 높 이 : 1,563m
Ⅰ. 개황(槪況)
1. 일 시 : 2013. 2. 7. 07:30 ~
2. 장 소 : 오대산
3. 참석인원 : 38명 (새내기 3명)
4. 등산코스 : 상원사 - 비로봉 - 상왕봉 - 두로령 - 북대사 - 상원사
(14km / 5시간20분)
5. 교통정보
- 빠른 길 찾기 정보
▶ 검 색 지 : 춘천KBS방송총국 - 상원사
▶ 거 리 : 138,8km
▶ 소요시간 : 2시간11분
- 다녀온길 : 중앙고속도로 횡성IC - 영동고속도로 새말.진부IC - 월정삼거리 -
오대산로 - 상원사주차장
- 동원차량 : 강원 70바 1734(이 훈 웅님)
6. 날씨예보상황
- 기 준 : 2013. 10. 31. 05:00 발표
- 지 역 : 오대산일원
- 개 황 : 오전, 오후 구름 많음
▶ 비 올 확 률 : 20%
▶ 기 온 : 9 ~ 17℃ 분포
<단체기념사진>
7. 활동상황
○ 08:00 --- 춘천KBS방송총국앞 출발(횡성휴게소 경유)
○ 10:15 --- 상원사주차장 도착
○ 10:25 --- 단체기념사진촬영 및 일정안내
○ 10:30 --- 들머리진입
○ 10:36 --- 상원사 경내진입
○ 10:50 --- 중대사자암 입구
○ 10:58 --- 중대사자암 경내
○ 11:15 --- 적멸보궁
○ 11:23 --- 적멸보궁 공원지킴터
○ 12:03 --- 비로봉 정상
○ 12:50 --- 점심식사
○ 13:22 --- 단체기념사진촬영 후 정상출발
○ 13:34 --- 헬기장
○ 13:38 --- 헬기장
○ 13:43 --- 주목군락지
○ 14:13 --- 상왕봉 정상
○ 14:38 --- 두로령, 북대미륵암 갈림길
○ 14:57 --- 두로령
○ 15:19 --- 북대미륵암
○ 16:15 --- 상원사주차장 도착
○ 16:27 --- 후미도착
○ 16:30 --- 상원사주차장 출발
○ 16:55 --- 월정사주차장 하산행사
○ 17:15 --- 월정사주차장 출발
○ 19:15 --- 춘천KBS방송총국 앞 도착(횡성휴게소 경유)
Ⅱ. 지역특성
<정상에서 바라본 오대산하>
1. 지역유래
- 오늘 나들목이 소재한 진부면의 유래를 살펴본다. 신라시대에는 청송현으로 불리다가 조선중엽에 이르러서 진부로 개칭, 고종 10년(1906) 동구리, 상리, 하리, 거문리, 속사리 지역이 강릉부에서 평창군으로 이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 5542호로 도암면 호명2,3리가 진부면으로, 장평리가 봉평면으로 편입,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 1127호로 용전리, 이목정리, 속사리, 노동리, 도사리 일원이 신설면인 용평면에 편입, 1989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145호로 도암면 호명리 일원이 진부면으로 편입, 2003년 10월 4일 평창군조례 제 1726호로 송정5리를 신설하여 오늘에 이른다.
- 진부면의 지형은 평창군의 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면으로서 동서가 20㎞ 남북 60㎞이며 북으로는 태백산맥의 준령인 오대산이 홍천군 내면, 강릉시 연곡면과 접하여 있고 남한강의 발원지인 우통수가 위치하고 있으며 오대천이 흐르고 있다. 면적은 331.03㎞로 군내에서 제일 넓으며 인구도 11,074명으로 군내에서 제일 많고 총 3,557세대 중 농가가 약 52%, 비농가가 약 48%로서 지역특산물로는 감자, 약초, 당근, 양파, 고냉지채소 등이 있다.
2. 오대산 살펴보기
-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1,563m), 호령봉(1,561m), 상왕봉(1,491m), 두로봉(1,422m), 동대산(1,434m)등이 원을 그리고 이어져 있다.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은 진고개를 지나는 국도를 사이에 두고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봉우리와 그 사이의 많은 사찰들로 구성된 평창의 오대산지구(월정사지구), 그리고 노인봉 (1,338m)을 중심으로 하는 강릉의 소금강지구로 나뉜다. 기암괴석의 소금강 지역을 제외한 오대산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사계절 언제나 오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하얀 설화가 환상적이다. 장엄한 산세에 어울리게 오대산의 단풍은 중후한 세련미까지 느끼게
한다.단풍 절정은 10월 중순경 일시에 불타오르는 듯 한 것이 일품이며 색상이 뚜렷하고 진한 점이 특징이다.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주계곡(9km)과 비로봉 산행은 오대산 최고의 단풍코스다. 상원사를 지나 왼쪽 계곡길로 들어서면 걷는 이의 가슴까지 붉게 물들이는 단풍 천지다. 오대산의 겨울 설경은 주봉인 비로봉에서 상왕봉을 잇는 능선의 싸리나무와 고사목 군락에 핀 눈꽃이 절경이다. 오대산은 유서 깊은 명찰 월정사를 위시해 상원사, 적멸보궁, 등 불교문화 유적이 즐비 하다.오대산국립공원의 제1관문격인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 (국보 제48호)이 있고 진입로 2㎞ 구간에 전개된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은 매우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오대산은 백두대간 중심축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간을 중심으로 오대산 지구와 소금강 지구로 대별하고 2011년도에 계방산이 오대산국립공원에 편입되면서 계방산지구로 나뉜다. 비로봉 정상에서 볼 때 동대 너머의 청학산 쪽 소금강 지구는 바위산으로 금강산에 견줄 만한 절경이며, 비로봉에서 평창 쪽으로 내려가는 오대산 지구는 부드러운 흙산으로서 산수가 아름답고 문화유적이 많다. 이들 산봉우리 대부분이 평평하고, 봉우리 사이를 잇는 능선 또한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한 편이다. 이렇듯 오대산은 설악산이 날카로운 기암으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장쾌하면서도 듬직한 토산(土山)이다. 오대산은 예로부터 삼신산(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국내 제일의 명산으로 꼽던 성산으로써, 일찌기 신라 선덕여왕 때의 자장율사 이래로 1,360여년 동안 문수보살이 1만의 권속을 거느리고 늘 설법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왔으며, 오대(동대,서대,남대,북대,중대)에는 각각 1만의 보살이 상주하고 있어 문수신앙의 본산으로, 오만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의 오대성지로 알려져 있다.
- 오대산에는 총 3788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중 식물종은 한국특산식물 30종을 포함, 1040종이며, 동물자원은 총 2748종등이 있어 건강한 자연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오대산의 깃대종으로는 긴점박이올빼미와 노랑무늬붓꽃이 선정되어 복원등 보전관리가 추진되고 있다. 월정사 입구에 있는 오대산 전나무 숲은 약 1km에 이르는 숲길로 346종의 동식물과 까막딱따구리를 비롯하여 보호가 필요한 멸종위기종이 다수 서식하고 있는 특별 보호지역이다. 향긋한 전나무 향기는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 중의 하나로 대표적인 삼림욕의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온전히 보전된 이탄습지인 소황병산늪, 이탄습지와 늪의 형태를 모두 가지고 있는 질매늪, 산지계곡을따라 형성된 조개동늪, 오대산 습지는 고산에 형성된 희귀한 습지로, 생물다양성이 높아,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다. 오대산국립공원은 고지대임에도 산새가 부드러워 산행이 수월한 월정사지와 바위산으로 금강산에 견줄만한 비경을 간직한 소금강지구로 이루어진 듬직한 산이다. 계방산지구 석촌리에 위치한 방아다리약수는 지형이 디딜방아 모양을 닮았다하여 방아다리라 불리는데 북한의 삼방약수와 더불어 한국의 2대약수로 꼽히고 있다.
Ⅲ. 산길여정
<오대산 등산지도>
- 오대산국립공원 내에는 아래와 같이 8개의 지정탐방로가 있다. 이중 소금강코스와 계방산1. 2코스는 이미 몇 차례 다녀온바 있고, 비로봉코스는 오늘 상원사코스와 연계돼 있다. 남은 코스 중 선재길코스는 월정사에서 동피골를 경유하여 상원사에 이르는 산책코스로서 정기산행일정으로 운영할 만큼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코스로 여겨졌었지만 계절을 잘 선택한다면 하루일정으로 소요하기 좋을 만큼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 구미를 당겼다. 이제 사실상 남은 코스는 두로봉코스와 동대산코스이다. 이 두 코스 중 동대산코스는 진고개에서 동피골로 이어지는 4,4km코스로서 하루일정으로 운영하기에는 다소 짧은 편이지만 선재길코스와 연계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었다. 또한 진고개에서 진입하여 동대산 - 두로봉 - 두로령을 연계하여 상원사로 빠져나오는 약16km코스를 하루일정으로 잡는다면 동대산과 두로봉 두 코스를 한 번에 끝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이 코스는 입산이 자유롭지 못한 구간이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 두로봉코스 : 진고개~동대산~두로봉~두로령 (10 km / 4시간 40분)
▶ 동대산코스 : 동피골~동대산~진고개 (4.4 km / 2시간10 분)
▶ 상왕봉코스 : 상원사~비로봉~상왕봉~두로령~북대사~상원사 (14 km / 5시간20분)
▶ 소금강코스 : 무릉계~십자소~연화담~식당암~구룡폭포~만물상~백운대~낙영폭포
~노인봉~진고개 (13.3 km / 7시간)
▶ 비로봉코스 : 상원사~중대사~적멸보궁~비로봉 (3.5 km / 1시간40분)
▶ 선재길코스 : 월정사~동피골~상원사 (9 km / 3시간3분)
▶ 계방산1코스 : 운두령~계방산정상~노동계곡 (9.8 km / 6시간)
▶ 계방산2코스 : 운두령~계방산정상~삼거리 (8.8 km / 6시간)
- 오대산은 2012. 11. 29 한겨울 초입에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그 당시 상왕봉 일부구간이 입산통제 되는 바람에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일정을 조정하여 주흘산을 다녀왔다. 또한 2013. 2. 7 한겨울 심설산행을 기획하였었지만 당시 현장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정기산행일정을 취소한바 있다. 소금강지구와 계방산지구는 여러 차례 다녀온바 있었지만 춘천에서 접근성이 비교적 수월한 월정지구는 왠지 모르게 탐방기회를 잡지 못했었다. 여러 해 전에 문화재관람료 징수와 관련한 불미스런 악연을 의식해서는 결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기산행일정에서 멀어져만 갔고 인연이 닫지를 않았다. 본인으로서는 오대산 상왕봉코스가 처녀산행이기에 더욱 마음이 끌렸고 거는 기대 또한 컸다. 오늘 상왕봉코스 탐방을 계기로 앞으로 계절을 잘 골라 동대산코스와 선재길코스를 연계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안내준비를 마쳤다.
- 오늘은 오랜만에 차고 넘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일상으로 문을 열었다. 신청을 해 놓고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취소하신 여섯 분만 아니었다면 버스 한 대 정원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 며칠 전 K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을 통하여 불타는 오대산하의 풍광을 눈여겨보면서 오늘도 그런 상황이 이어지기를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월정사 경내를 지나 동피골로 접어들면서 그 기대는 허황된 꿈이 되고 말았다. 불과 일주일 사이를 두고 단풍한계선이 월정사주차장 아래 지역까지 내려오고 말았기 때문이다.
- 예정된 시간대에 무사히 상원사주차장에 도착하여 일상을 열었다. 단풍 절정을 넘긴 평일이라서 그런지 주차장은 의외로 한산하였다. 단체손님은 우리 모두산악회 일행 분들이 유일하였다. 오대산국립공원에서 제공하는 상왕봉코스 소요제원은 14km / 5시간20이었지만 오늘은 운영시간을 여유 있게 6시간으로 잡고 16:30 하산을 예고하고 들머리에 들었다.
<상원사 전경>
- 주차장에서 상원사까지는 0,3km이다.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 5~6분 남짓 오르면서 상원사 경내에 이르렀다. 곧바로 중대사자암 방향으로 진입할 수도 있었지만 상원사 경내를 눈 팅하기 위해 상원사 현판이 걸린 2층 부속건물로 통하는 급사면 계단길로 진로를 잡았다. 경내에서 잠시 머물면서 급수전에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다음 기념사진 몇 컷 남기고 중대사자암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원사에 대한 상세설명은 주요볼거리 편으로 넘긴다.
<중대사자암>
- 상원사에서 전나무 숲길을 따라 15분 남짓 오르면 중대사자암 입구에 이른다. 이 지점까지 올라오는 길은 돌을 바닥에 깔아 만든 길이지만 차량통행이 가능하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현지상황에 적응훈련을 마친 셈이다. 여기서부터 중대사자암 경내에 이르는 길은 급사면에 S자 형태의 계단길로 이어졌다.
- 중대사자암은 상원사와 적멸보궁 어간에 있는 월정사 부속 암자이다. 중대사자암은 계단식으로 건축한 암자로 지금까지 처음 접해보는 건축양식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아니하고 지형지세를 잘 이용하여 건축함으로서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뤄 눈길을 끌었다. 비로전 아래 사면에 한쪽 지붕으로만 연이어 건축한 부속건물에는 숙소, 공양소, 해후소 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 중대사사암은 신라 선덕여왕 때 왕가 불교의 최고 지도자이신 자장율사께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중국 오대산에서 수도하고 나올 때 문수보살이 기도 중에 나타나 그에게 석가여래의 치아와 정골 사리를 주며 해동 양산에 모시라는 몽수(夢授)가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니 문수보살은 사라지고 진신사리만이 있었다. 자장율사께서는 진신사리를 이곳에 모시고 월정사를 창건하셨다. 그는 월정사를 정하고 5만 보살이 상주하는 5대(臺)를 마련하였다. 오대산의 중대(中臺)에 1만의 문수보살, 동대에 1만의 지장보살, 북대에 1만의 미륵보살을 모시고 각대에는 보살을 모시는 암자가 있게 된다. 그래서 오대산에는 5만 보살과 자장스님이 더불어 있으면서 월정사를 개산한 것이다. 중대사자암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은 없다. 대신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이 있다. 비로전 내부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입체화가 법당 안에 그려져 있다. (자료출쳐 : 고은, 고은 문화기행집 절을 찾아서, 1999. 12. 15. 책세상)
<적멸보궁>
- 중대사자암에서 17분 걸렸다. 이 지점에서 상원사 1,5km, 비로봉 1,5km 이다. 상원사와 비로봉 중간지점에 적멸보궁이 위치해 있다. 올라오는 동안 중대사자암에서 적멸보궁 어간에 접근로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적멸보궁 직전 비로봉갈림길에서 0,1km 계단길을 오르면 적멸보궁에 이른다. 적멸보궁에서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내려와 비로봉으로 향해야 한다. 이곳 적명보궁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이다. 적멸보궁에 대한 상세설명은 주요볼거리 편으로 넘긴다.
<우통수(于筒水)>
- 우통수 맛을 보려면 오대산에 있는 관음암· 지장암· 미륵암· 사자암과 함께 다섯 암자 중한 곳인 서대 수정암을 가야한다. 그러나 서대 수정암 출입은 자유롭지 못하다. 오대산에서 우통수를 간과할 수 없기에 관련 자료를 소개한다.
- 평창군에서 세운 우통수 앞 표석에는 “이곳은 한수(漢水, 한강)의 발원지로 물빛과 맛이 특이하고 물의 무게 또한 무거워 우통수라 불리며 속리산 삼파수와 충주 달천과 함께 조선 3대 명수로 전해지고 있다. 오대신앙(五臺信仰)을 정착시킨 신라의 보천태자가 수정암에서 수도할 때 이 물을 매일 길어다가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고 한다.” 라고 새겨 놓았다.
- 오대산 줄기 장령봉 밑에 있는 샘물인 우통수는 우리나라 젖줄인 남한강의 발원지 중 한곳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때 신문왕의 태자 보천과 효명왕자가 국난에 처하여 이물을 길러 진여원(현재 상원사)문수보살에게 올려 공양하고 스스로 차를 다려 마시곤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 성종 때 편찬한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오대산의 우통수를 한강의 발원지로 기록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샘물로 기록하고 있다. 우통수는 다른 물과 쉽게 섞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이 물이 한강을 지날 때도 구별이 가능하였다고 하며 '한수'라는 이름도 여기서 명명되었다고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우통수를 한강의 시원점수라고 기록한 문헌은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 고산자의 여동여지도에도 명시되어 있다. 빛깔과 맛이 특이하며 무게도 보통 물보다 무겁다. 사람들은 빛과 맛이 변하지 않음이 마치 중국 양자강의 경우와 마찬가지라는 뜻에서 중냉(中冷)이라 부른다. 여러 줄기의 냇물이 모여서 강을 이루고 바다에 이르지만 중냉의 물만은 다른 물과 어울리지 않고 그 찬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흘러간다고 한다.
<비로봉 정상석>
- 12:00이 넘어가면서 비로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들머리에든지 1시간30여분 만이다. 적멸보궁공원지킴터에서 시작된 급사면 계단길은 마치 설악산 오색 - 대청봉 구간을 연상케 하였다. 마지막 1km 구간에서 진땀을 빼야만 했다. 일정안내시간을 통하여 난이도 중급의 부담 없는 코스라고 소개한 바 있었는데 이점이 마음에 걸렸다. 오전, 오후 구름이 많을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무색할 정도로 화창한 날씨 덕분에 코앞의 상왕봉을 비롯하여 두로봉, 동대산, 호령봉, 황병산, 발왕산 등 평창, 홍천일원에 눈이 모자라게 펼쳐진 이름 모를 산과 길게 겹겹이 늘어선 지능선들이 눈을 즐겁게 하였다.
- 비로봉 정상에는 비로봉 1,563m를 알리는 정상석과 더불어 오대산국립공원안내도, 오대산탐방로안내도,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오대산, 북대사 4km, 상왕봉 2,3km, 상원사 3km를 안내하는 이정표, 호령봉방향 입산금지 안내문 등이 즐비하다.
- 이미 12:00를 넘긴 시간대이기 때문에 제법 넓은 정상 안부에 밥자리를 잡고 정상에 도착하는 대로 자유롭게 점심식사를 권고하였다. 12:50을 넘기면서 무두가 한자리에 모여 정상주를 나누며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점심식사 후 선재길 팀 3명을 제외한 모든 분들이 정상석 앞에 모여 단체기념을 남기고 상왕봉으로 향했다.
- 오대산은 비로봉을 주봉으로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이 원을 그리며 이루고 있다. 사계절 언제나 오를 수 있는 산으로 가을 단풍, 겨울 설화가 환상적이다. 오대산 비로봉-상왕봉 능선길은 평탄하고 수많은 고목과 주목 등이 어우러진 원시림의 하늘정원을 연상케 한다. 오대산은 백두대간에서 한강기맥(북한강과 남한강을 구분하는 긴 산줄기로 양수리 두물머리까지 이어진다)이 분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 비로봉이란 이름을 갖은 산은 금강산 毘盧봉(밝을 비, 밥그릇 로), 치악산 飛蘆봉(날 비, 갈대 로), 묘향산 毘盧봉, 오대산 비로봉, 소백산 비로봉 등이 대표적이다.“비로”는 불교에서 '“높다”는 뜻으로 쓰인다. 비로(毘盧)자는 모든 곳에 두루 비치는 부처의 몸의 빛을 뜻한다. 비로(毘盧)자나 불은 법신불을 뜻한다. 비로(毘盧)전은 비로자니불을 모신 법당으로 풀이하는 점으로 보아 위 산들은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지 싶었다. 비로봉은 그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즉 최고봉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어 아예 그 봉우리의 고유명사가 되었다고 본다.
<상왕봉>
- 상왕봉은 비로봉 정상에서 2,3km 지점에 위치한다. 비로봉 정상에서 40여분 걸렸다. 상왕봉 정상에는 해발1,491m를 알리는 정상석, 두로봉 3,5km, 북대사 1,5km, 비로봉 2,3km를 안내하는 이정표, 돌탑 1기가 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헬기장 두 곳을 지났다. 이 구간을 지나면서 적멸보궁공원지킴터에서 부터 비로봉 정상 구간에서 느꼈던 고난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착지가 편한 능선길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완만한 능선길은 이미 낙엽이 져 겨울채비를 마친 수목과 세월감을 느낄 수 있는 고사목을 비롯한 주목군락이 눈길을 끌었다.
- 상왕봉에서 내림구간을 지나면서 주목 군락지를 경유하였다. 오대산은 예로부터 삼신산(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국내제일의 명산으로 꼽던 성산이다. 일찍이 신라 선덕여왕 때의 자장율사 이래로 1,330 여 년 동안 문수보살이 1만의 권속을 거느리고 살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왔으며, 소위 오대신앙의 본산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동, 서, 남, 북 중대의 오대에는 각각 산 이름이 붙어있으며, 각대에는 관음 미타 지장 석가 문수 등의 불보살이 살고 있다는 신앙이 있고 동쪽에 만월봉, 서쪽에 장령봉, 남쪽에 기린봉, 북쪽에 상왕봉 중앙에 지로봉이 있어 산 이름이 오대산이라 부른다고 옛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백두대간 두로령>
- 상왕봉에서 두로령까지 약 40여분, 두로령 직전 두로봉 2,7km, 상원주차장 5,8km, 북대미륵사 1,3km, 상왕봉 0,8km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에서 20여분 걸렸다. 앞서 출발하신 3명을 포함한 10명이 두로령을 경유하였고 나머지 분들은 위 갈림길에서 북대미륵사 방향으로 진로를 잡고 하산길에 올랐다. 오늘 일정상 두로령을 기점으로 하산 예정이었기 때문에 모든 분들을 두로령으로 안내할 요량이었으나 당시 시간대로 봐서 무리하지 아니하고 각자 자유의사에 맡기는 것이 상책일 듯 싶었다. 지척에 두로령 정상을 두고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었지만 하산예정시간을 감안하여 강요할 없는 상황이었다.
- 두로령 정상에는 백두대간두로령표지석, 상원사주차장 6,4km, 내면분소 10,1km, 두로봉 1,6km, 상왕봉 1,9km, 비로봉 4,1km, 해발 1,300m를 알리는 이정표, 탐방로안내도, 낙뢰발생 때 행동요령, 긴급신고 및 구조요청안내문 등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여기서부터 하산길 6,4km는 임도구간이다. 하산예정시간 1시간30여분을 남긴 시간대였다. 시간대로 봐서 충분할 것으로 판단되었지만 일행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주의를 환기시킨 다음 위 북대미륵암갈림길에서 헤어진 후미 팀과 합류할 요량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 두로령은 우리 도내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선자령, 댓재, 만항재 등과 함께 백두대간 길목을 지키는 고개 중 한 곳이다. 백두대간은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 체계로 백두산을 기점으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써 총길이가 약 1,400km에 달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핵심구역인 두로령에 높이 3.4m, 너비1.5m 규모로 세워진 표지석은 인근 마루금과 응복산, 동대산 등을 찾는 산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 2011. 6. 21 북부지방산림청 홍천국유림관리소에서 세운 표지석에는 “백두대간의 頭老嶺은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를 잇는 고개로 높이는 1,310m이다. 이곳에서 1,6km 떨어진 두로령(1,422m)에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지나며, 북으로는 응복산(1,360m), 남으로는 동대산(1,434m) 등이 이어져있다. 이곳 백두대간은 한민족 생명의 원천이며 삶의 바탕을 이루는 중심축이기에 아끼고 보존하는 마음을 함께하고자 이곳에 표지석을 세운다“ 라는 글이 표지석 받침돌에 새겨져 있다.
<북대미륵암>
- 두로령에서 20여분 걸렸다. 두로령에서 북대미륵암으로 하산하는 길은 상원사에서 두로령을 경유하여 상원사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임도 내리막 구간 오른쪽에 위치한다. 미륵암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곳은 오대산의 다섯 대(臺)중 하나로 북쪽에 있어 북대(北臺)라 부른다. 오대산은 5개의 대가 있어 오대산이라 불린다. 이들 오대(五臺)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이다. 북대는 나한도량과 나옹대로도 불린다. 이곳이 나한도량으로 불리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연유가 있다고 한다.
- 통일신라시대 보천(寶川)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가 오대산에서 수행할 때 북대 상왕산(象王山)에 석가여래와 함께 오백나한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한다. 임종에 이르러 그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북대 남쪽에 나한당(羅漢堂)을 짓고 석가여래와 오백나한을 그려 봉안하고 예불에 전념할 것을 부탁했다. 낮에는 <불보은경(佛報恩經)>과 <열반경(涅槃經)>을 읽고, 밤에는 열반예참(涅槃禮懺)을 행하도록 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오대산 북대 미륵암이 나한신앙의 성지가 되었다. 이곳은 또한 고려시대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1376) 혜근(慧勤)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나옹화상은 경상도 영해부(寧海府) 사람으로 20세 되던 해 친구의 죽음에 의문을 느껴 공덕산 묘적암으로 출가한다. 1344년 양주 회암사로 가 4년 동안 공부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1347년 중국으로 떠난다. 1348년 나옹화상은 대도(大都)의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指空)대화상을 만나 1350년 3월까지 공부한다. 그리고 제방의 절을 순례하며 선지식과 게송을 주고받으며 법거량을 한다. 10년 공부를 마친 나옹화상은 1358년 3월 지공화상과 이별하고 요양(遼陽)을 거쳐 고려로 다시 돌아온다. 그는 평양과 동해 등을 지나며 설법하였다. 1360년 가을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象頭菴)에 주석하였다. 이 상두암이 바로 오대산 북대 미륵암이다. 이때 나옹화상은 용문산에 있던 태고화상 보우와 서신왕래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지은 게송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臨濟一宗當落地(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
空中突出古潭翁(공중에서 고담 노옹이 불쑥 튀어 나오더니)
把將三尺吹毛劍(세 척의 취모검을 번쩍 치켜들고)
斬盡精靈永沒蹤(정령들 모두 베어 자취를 완전히 없애버렸네)
- 여기서 임제는 중국 남종선의 한 분파인 임제종을 개창한 스님이고, 고담 노옹은 당대 고려의 최고 선지식이었던 태고화상을 말한다. 취모검은 솜털까지 잘라내는 예리한 칼로,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또는 큰 결단을 내리기 위해 선지식들이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 게송은 태고화상에 대한 상찬이다.
- 북대미륵암 경내를 잠시 들리기는 하였지만 두루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위 사진 한 컷 담아 가지고 꽁지가 빠져라 하고 줄행랑을 쳤다. 두로령 출발 30여분 만에 휴식중인 후미 팀 일행 분들과 합류하였다. 휴식 중 단독 하산중인 본인을 발견하고 마라톤선수 골인지점이라도 되는 듯 한 뼘도 안 되는 로프로 라인을 설치하고 난리 법석을 떠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면서 오대산하에 메아리를 남겼다.
- 하산예정시간 15분 전에 여유 있게 상원사주차장에 홈인하였다. 이미 먼저 하산하신 분들은 쉼터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느긋하게 쉬고 계셨지만 후미 팀들도 지친 모습 없이 여유로운 모습들이었다. 아마도 지체하지 아니하고 일상을 마무리한데 대한 자부심이 작용한 듯싶었다. 하산예정시간 16:30이 임박하면서 두로령을 경유하신 마지막 3분이 도착하면서 오대산 상왕봉코스 14km / 6시간 기록으로 일상을 갈무리하였다. 공원에서 제공한 소요제원보다 무려 40여분 연장하여 운영한 것이 주효한 셈이다. 총무님! 톰 보이님! 저 이제 뻥 안칩니다. 라는 후렴을 남긴 채 상원사주차장을 출발하였다.
- 상원사주차장 한편에서는 하산행사를 치룰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월정사 경내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오늘 준비한 막걸리파티를 열 요량이었다. 그런데 월정사주차장을 지나면서 버스가 갑자기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기사님 왈! 여기서는 하산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시도해 볼 요량이었다. 주차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하산행사를 준비하는 도중 국립공원 마크가 붙은 점퍼를 입으신 한 분께서 접근하셨다. 머리를 조아리고 막걸리 한 잔만 마시고 가겠노라고 아량을 떨어본 즉 쓰레기나 버리지 말고 마시고 가라는 의외의 답변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분의 너그러움이 너무 고마워 막걸리 한 통을 들고 그분께서 근무하는 사무실을 찾아가 고맙습니다. 란 인사말과 함께 소양강막걸리 맛 좀 보시고 자주 애용해 주십시오. 란 인사말을 남기고 발길을 돌리고 나니 해묵은 빚을 갚은 듯 홀가분한 기분으로 소양강막걸리 향을 음미할 수 있었다.
Ⅳ. 주요볼거리
<상원사 대웅전>
- 인터넷 검색창에 상원사를 치고 들어가면 오대산 상원사 외에 춘천 삼악산 상원사, 원주 치악산 상원사, 양평 연수리 상원사, 구미시 상원사 등이 검색된다. 오대산 상원사는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에 소재한다. 이 절은 705년(성덕왕4)에 성덕왕이 창건했다. 효소왕(692~701 재위) 때 신문왕의 아들인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가 오대산에 입산하여 동쪽에 있는 만월산(滿月山)에는 일만관음보살을, 서쪽에 있는 장령산(長嶺山)에는 일만대세지보살을, 남쪽에 있는 기린산(麒麟山)에는 일만지장보살을, 북쪽에 있는 상왕산(象王山)에는 일만미륵보살을, 중앙에 있는 지로산(地盧山)에는 일만문수보살을 첨례(瞻禮)했다. 그뒤 성덕왕이 된 효명이 다시 이 산을 방문하여 진여원(眞如院)을 창건하고, 문수보살상을 조성하여 봉안함으로써 이 절이 창건된 것이다. 그 뒤 1376년(우왕 2)에 영암이 중창했다. 1464년(세조 10) 왕이 이곳에 행차했다가 문수보살을 배알한 후 고양이 덕분에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건졌다고 하는 일화가 전하는데 이로 인해 다음해에 중창하고 전답을 하사했으며, 이것을 영산부원군 김수온(金守溫)에게 기록하도록 했다.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平昌上院寺重創勸善文〉(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월정사 소재)이 남아 있다. 1469년(예종 1)에 세조의 원찰(願刹)이 되었다. 1904년에 선원(禪院)을 개설하고 1907년에 수월화상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떨치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선원인 청량선원(淸凉禪院), 승당인 소림초당(小林草堂), 종각인 동정각(動靜閣), 영산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23점(보물 제793호),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 등이 있고, 〈상원사중창권선문〉은 한문과 한글이 병기되어 있어 한글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상원사 중창권선문은 세조 10년(1464) 세조의 왕사인 혜각존자 신미(慧覺尊者 信眉) 등이 학열(學悅), 학조(學祖) 등과 함께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자 상원사를 새롭게 단장한다는 말을 듣고, 세조가 쌀ㆍ무명ㆍ베와 철 등을 보내면서 그 취지를 쓴 글과, 왕의 하사품을 받고 신미 등이 쓴 글로 구성된 2책으로, 각각 한문 원문과 번역으로 되어 있다. 한 책은 한문의 원문만으로 되어 있는데 신미 등이 쓴 글에는 신미ㆍ학열ㆍ학조 등의 수결, 세조가 쓴 글에는 세조와 왕세자의 수결과 인기(印記), 이어 효녕대군(孝寧大君) 이하 여러 종실(宗室)과 신하들의 이름과 수결이 있으며,다른 한 책은 권선문을 한문으로 쓴 다음에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것을 붙이고 뒤에 「불제자승천체도열문영무조선국왕이기(佛弟子承天體道烈文英武朝鮮國王李玘)」라고 쓰고 수결을 한 뒤에「체천지보(體天之寶)」라고 새긴 옥새를 찍었으며, 다음 줄에 「자성왕비윤씨(慈聖王妃尹氏)」라고 쓴 아래 「자성왕비지보(慈聖王妃之寶)」라고 새긴 왕비인을 찍고 다음에 왕세자, 세자빈 한씨 이하 관인들의 인기를 찍었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는 신미 등의 권선문(勸善文) 끝에 「천순팔년랍월십팔일(天順八年臘月十八日)」이라 있으므로 세조 10년(1464) 12월이다. 표장(表裝)은 붉은 색깔로 당초문(唐草文)이 들어있는 비단으로 쌌다. 한글로 번역된 것은 가장 오래된 필사본으로도 유명하다. 세조와 상원사 및 신미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며, 당시의 국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훈민정음을 제정한 이후에 판각이나 활자로 발행된 한글문헌은 많이 있으나 직접 묵서(墨書)한 것으로는 이것이 가장 오래된 진적(眞蹟)이므로 초기의 한글 서체를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밖에 세조와 세자(世子), 당시의 유명한 학승과 수많은 문신(文臣)들의 수결이 있으므로 우리나라 수결(手決)의 연구자료로 크게 이용될 수 있다. 이것은 세조와 세자 및 문신, 그리고 학승들의 수결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된 한글 서적이고 보존상태도 완벽하다. 1996년 11월 28일 일제지정문화재 재평가에 의해 보물 제140호에서 국보 제292호로 등급이 조정되었으며, 세로 45.5㎝이고 가로는 29.5㎝로 접혀있는데 펼친 총 너비는 810.5㎝이다. 상원사 중창권선문은 세조 10년(1464) 세조의 왕사인 혜각존자 신미(慧覺尊者 信眉) 등이 학열(學悅), 학조(學祖) 등과 함께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자 상원사를 새롭게 단장한다는 말을 듣고, 세조가 쌀, 무 명, 베와 철 등을 보내면서 그 취지를 쓴 글과, 왕의 하사품을 받고 신미 등이 쓴 글로 구성된 2책으로, 각각 한문 원문과 번역으로 되어 있다. 훈민정음을 제정한 이후에 판각이나 활자로 발행된 한글문헌은 많이 있으나 직접 묵서(墨書)한 것으로는 이것이 가장 오래된 진적(眞蹟)이므로 초기의 한글 서체를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96년 11월 28일 일제지정문화재 재평가에 의해 보물 제140호에서 국보 제292호로 등급이 조정되었으며, 세로 45.5㎝이고 가로는 29.5㎝로 접혀있는데 펼친 총 너비는 810.5㎝이다.
- 목조문수동자좌상(上院寺 木彫文殊童磁坐象)은 현재 국보 제22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이 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조상(彫像)이 된 동자상(童子像)으로는 국내 유일의 유물이며, 동자상 조상의 유래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개는 약간 숙인 상태이며 신체는 균형이 잘 잡혀있다. 우견편단(右肩偏袒)에 영락(瓔珞)을 늘여뜨린 보살형(菩薩型) 양식인데, 보살상과 다른 것은 보관(寶冠) 대신 머리를 양쪽으로 묶어 동자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는 점이다. 얼굴의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며, 볼과 입가에서 동자의 천진성이 잘 나타나 있다. 대좌(臺座)는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동자상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하여 광배(光背)도 마련하지 않았다. 넓은 어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가로질러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가슴에는 구슬장식이 늘어져 있다. 옷주름은 신체의 윤곽에 따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왼손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거의 맞닿을 듯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왼쪽 다리를 안으로 접고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최근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腹藏遺物 : 寶物 제793호)에 의하면, 세조의 둘째딸인 의숙공주(懿淑公主) 부부가 세조 12년(1466년)에 이 문수동자상을 문수사에 봉안한다고 적혀져 있어 왕실발원의 뛰어난 목조동자상임을 알 수 있다. 동자상임을 알려주는 양쪽으로 묶은 동자머리를 제외한다면 자세라든가 착의법(着衣法) 등에서 보살상 형식을 따르고 있는 독특한 동자상이다. 또한 동자와 같이 앳된 미소를 띤 양감 있는 얼굴이라든가 부드럽게 굴곡진 허리, 균형 잡힌 안정된 신체,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비스듬히 묶은 천의(天衣), 신체의 윤곽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부드러운 옷주름선 등에서 앞 시대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러나 얼굴을 약간 숙인 모습이나 가슴 아래에까지 올라오는 상의(裳衣)의 윗부분을 수평으로 처리한 점, 불룩한 가슴의 젖꼭지 표현 등에서 같은 시기에 조성된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출토 금동석가좌상(1459~1493)과의 친연성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 왼쪽 어깨에 N자형으로 드리워진 천의자락이 한번 둥그렇게 말린 점이나 목걸이 이외에는 장식이 거의 없는 점은 성종 7년(1476년)경에 제작된 강진 무위사(無爲寺)의 목조아미타삼존상, 특히 협시보살상들과 비슷하다. 이 문수동자좌상은 조각수법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연대와 발원자가 뚜렷하고 단독으로 봉안된 희귀한 예로서, 이 동자상은 고려불상의 양식에서 조선 전기 양식으로 전개되는 불상구성의 양식적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조선 전기 조각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세조 때의 흥불정책(興佛政策)에 힘입어 왕실에서 조성한 수준높은 목조상으로 조선적인 불상미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국보 제22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이 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조상(彫像)이 된 동자상(童子像)으로는 국내 유일의 유물이며, 동자상 조상의 유래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문수동자좌상은 조각수법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연대와 발원자가 뚜렷하고 단독으로 봉안된 희귀한 예로서, 고려불상의 양식에서 조선 전기 양식으로 전개되는 불상구성의 양식적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조선 전기 조각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세조 때의 흥불정책(興佛政策)에 힘입어 왕실에서 조성한 수준높은 목조상으로 조선적인 불상미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상원사 동종은 현존(現存)하는 한국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제일 아름다운 종으로 신라 성덕왕(聖德王) 24년(725)에 조성되어 조선 예종(睿宗) 원년(1469)에 상원사에 옮겨졌으며,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범종(梵鐘)이다. 그 높이는 167㎝이며, 입지름은 91㎝가 된다. 이 종은 한국산 종의 모범일 뿐 아니라 음향이 청량하기 비길 데 없다. 상, 하대와 구유의 유곽, 크고 넓은 동체에는 대칭적으로 둥근 동좌와 주악하는 비천을 각기 1쌍씩 새긴 것이 특이하며, 정상부에 용뉴 이외에 음통이 달려있는 것이 중국, 일본 종에 비해 다른 특징이다. 상원사 동종은 현존(現存)하는 한국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제일 아름다운 종으로 신라 성덕왕(聖德王) 24년(725)에 조성되어 조선 예종(睿宗) 원년(元年, 1469)에 상원사에 옮겨졌으며,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범종(梵鐘)이다. 그 높이는 167㎝이며, 입지름은 91㎝가 된다. 이 종은 한국산 종의 모범일 뿐 아니라 음향이 청량하기 비길 데 없다. 상·하대와 구유의 유곽, 크고 넓은 동체에는 대칭적으로 둥근 당좌와 주악하는 비천을 각기 1쌍씩 새긴 것이 특이하며, 정상부에 용뉴 이외에 음통이 달려있는 것이 중국·일본종에 비해 다른 특징이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음통이 있는 종뉴(鐘紐) 아래에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鐘身)이 연결된 형태인데, 이상적인 비례와 안정감 있는 구조, 풍부한 양감과 함께 세부적인 묘사수법도 매우 사실적이다. 종 몸체의 아래·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4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원사 종에 보이는 음통, 안으로 오므라든 종신형, 상대·하대, 4유곽의 구조적인 특징은 한국 종의 전형(典型)이 되어, 양식적인 변천과정을 거치면서 이후의 모든 종에 계승된다. 용뉴 좌우에는 명문(銘文)이 음각되어 이 종의 제작 연유(緣由)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開元十三年乙牙正月 八日鐘成記文部合鍮 三千三白餘兩重普衆 都唯乃孝□歲道直
衆僧忠七沖安貞應 旦越有休大舍宅夫人 休道里德香舍上安舍 照南毛匠舍□大舍
- 상원사에 얽힌 한암선사에 관한 자료를 소개한다. 한암선사(重遠禪師) (1876∼1951)는 근대의 고승이다. 성은 온양 방(方)씨. 호는 한암(漢巖). 강원도 화천출신. 아버지는 기순(箕淳)이며, 어머니는 선산 길(吉)씨이다. 천성이 영특하고 총기가 빼어났으며, 한 번 의심이 나면 풀릴 때까지 캐묻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1897년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기암절벽의 하나하나가 부처의 얼굴이 아니면 보살상을 닮은 것으로 느끼고 깊이 감격하여 입산수도를 결심하였다. 금강산 장안사(長安寺)의 행름선사(行 禪師)를 모시고 수도를 시작하였는데, 그때 진정한 나를 찾고, 부모의 은혜를 갚으며, 극락에 가겠다는 3가지 원(願)을 세웠다. 이어서 금강산 신계사(新溪寺)의 보운강회(普雲講會)에서 수업하다가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수심결(修心訣)>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 도반인 함해(涵海)와 함께 전국의 고승을 찾아 구도(求道)의 길에 올랐다. 1899년 가을 김천 청암사(靑巖寺) 수도암(修道庵)에서 경허(鏡虛)를 만나 가르침을 청하였다. 경허가 <금강경> 사구게(四句偈)를 일러 주는데 갑자기 안광(眼光)이 열리면서 오도(悟道)하였고, 9세 때부터 가졌던 '반고씨 이전의 인물'에 대한 회의가 풀렸다. 이어 대중들 앞에서 경허로부터 도를 깨달았음을 인정받았다. 그 뒤 오도 후의 수행인 보림(保任)의 공부를 하였다. 1905년 봄에 양산 통도사의 내원선원(內院禪院) 조실(祖室)로 추대되어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910년 봄에 선승들을 해산시키고 평안도 맹산 우두암(牛頭庵)으로 들어가 보림공부를 계속하였다. 같은해 겨울 부엌에서 불을 지피다가 홀연히 대오(大悟)하여 마음의 자재를 얻고 오도송을 남겼다. 그뒤부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풍(禪風)을 떨쳐 교화하였다. 1925년 서울 봉은사(奉恩寺)의 조실로 있다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의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 오대산으로 들어가서 27년 동안 동구 밖을 나오지 않았다. 한때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승려 사토(佐藤泰舞)는 우리 불교계를 돌아본 뒤 마지막으로 오대산 상원사를 찾아 그와 함께 선문답(禪問答)을 나눈 뒤 크게 감명을 받고, 어느 강연회에서 "한암스님은 일본 천제에서도 볼 수 없는 도인임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둘도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1941년 조계종이 출범되었을 때 초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어 4년 동안 조계종을 이끌었다. 1951년 1·4후퇴직전, 인민군들이 사찰을 근거지로 하여 국군에게 많은 타격을 입히는 판단 아래, 오대산 안의 모든 사찰을 소각시켰으나, 상원사만은 불에 타지 않았다. 야밤에 대원들을 이끌고 상원사로 와서 절을 불태울 것을 알리는 장교에게 그는 잠깐 기다리도록 이르고 가사와 장삼을 갈아입은 뒤 법당으로 들어가 좌정하고 불을 질러도 좋다고 하였다. 장교가 나올 것을 강요하자, "나는 부처님의 제자다. 부처님은 이런 경우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장군의 부하다. 그러니 당신은 장군의 명령대로 어서 불을 질러라."고 하였다. 장교는 그의 인격에 압도되어 결단을 내리고, 부하들에게 법당의 문짝만을 떼어 불사르게 한 뒤 돌아갔다. 1·4후퇴 때에도 오대산의 모든 승려가 피난하였으나, 그는 남아 상원사를 지켰다고 한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전경>
-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은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通度寺)의 적멸보궁,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중대(中臺) 상원사(上院寺)의 적멸보궁, 강원도 인제의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의 적멸보궁,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의 적멸보궁, 강원도 정선의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이 있다. 우리나라의 사찰 중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대표적인 다섯 군데의 당우(堂宇) 적멸보궁은 석가모니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으로 석가모니불이 미혹(迷惑)의 세계를 벗어나 항상 적멸의 낙을 누리는 곳이다.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예불을 올릴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설치해 두었다. 부처의 존상이나 후불탱화도 없고 다만 법당 바깥에 사리를 모신 탑이나 계단(戒壇)을 설치하였다.
- 상원사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다. 적멸보궁은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이라는 뜻이다.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이 없으니 괴로울 것이 없는 부처님의 경지를 나타낸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법당 안에는 따로 부처님상을 조성하지 않고 불단만 설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적멸보궁은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맥들이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바, 나는 용(龍)이 여의주(如意珠)를 희롱하는 형국(形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명당으로 많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Ⅴ. 특기사항
- 상왕봉코스와 선제길코스 병행 운영
Ⅵ. 산행을 마치고
- 본인은 오늘 오대산 상원사코스를 처녀 산행함으로서 산림청선정 100대 명산과 한국의 산하 선정 인기명산 100 중 19위에 올라 있는 명산 또 하나를 섭렵한 날로 기억하고자 한다. 그 감개무량함은 이루 말이나 글로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인기명산과 아울러 100대 명산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오대산을 지척에 두고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비켜 다니다가 오늘에 와서야 탐방기회를 잡았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아무튼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오겠지 하고 무작정 때를 기다린 것이 주효한 셈이다. 좀 때늦은 감은 있어도 매우 만족한 일상이었다. 이제 오대산국립공원 내 8개 지정탐방로 중 유일하게 남은 코스가 두로봉코스와 동대산코스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두 코스를 연계하여 상원사로 하산할 경우 일조시간이 긴 계절을 감안하여 장거리코스로 운영한다면 단 한 번에 종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오늘 코스에서 2km 정도만 연장 운영한다고 보면 소요제원이 유사하기 때문에 무난히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소요거리 16km 정도 코스는 이미 덕유산 향적봉코스, 조령산종주코스, 설악산 등 몇 몇 코스를 통하여 수차례 체험한 바 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아니하고 다음을 염두에 두었다. 또한 진고개에서 동대산을 경유하여 동피골로 하산하는 4,4km 동대산코스와 선제골코스를 연계하는 방안도 구미를 자극하였다. 계절을 잘 선택하여 안내하고자 하오니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일정운영에 도움주시고 협조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오대산 상왕봉 14km코스 완등하심을 다시 한 번 축하해 마지않는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