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물 고인 눈으로 순아 보질 말라
미움이 사랑을 앞선 이 각박한 거리에서
꽃같이 살아보자고 아아 살아보자고.
욕(辱)이 조상에 이르러도 깨달을 줄 모르는 무리
차라리 남이었다면, 피를 이은 겨레여
오히려 돌아앉지 않은 강산(江山)이 눈물겹다.
벗아 너 마자 미치고 외로 선 바람 벌에
찢어진 꿈의 기폭(旗幅)인 양 날리는 옷자락
더불어 미쳐보지 못함이 내 도리어 설구나.
단 하나인 목숨과 목숨 바쳤음도 남았음도
오직 조국(祖國)의 밝음을 기약함이 아니던가.
일찍이 믿음 아래 가신 이는 복(福)되기도 했어라.
▶이호우 :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1940년 '문장' 추천. 시조집 '휴화산' 등.
이호우 시인의 또 다른 작품인 '묘비명'이란 시조를 읽으면 비장미가 흐른다.
여기 한 사람이 이제야 잠들었도다.
뼈에 저리도록 인생을 울었나니
누구도 이러니저러니 아예 말하지 말라.
시인으로서 그의 삶은 이렇듯 평탄하지 못했다. 일제 암흑기에 등단해 해방이 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격변하는 시대를 올곧은 정신과 양심으로 현실과 응전하는 시를 썼다. '바람벌'은 이 시기의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화자는 말한다. 애국지사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도 조국의 밝음을 기약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던가. 광복 후 동족상잔의 비참한 모습을 눈으로 보지 않고 일찍 가신 이들은 오히려 복되다고 탄식했다. 바람 찬 벌에 선 시인의 상한 마음이 찢어진 기폭처럼 나부끼던 날들의 통분을 삭이며 세월은 약(藥)처럼 흘러갔다. '바람 벌' 이후에 쓴 '개화(開花)'는 우주적 내면세계를 천착한 작품이다. 대구 앞산공원에 시비로 섰다. <정해송·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