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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도움되는 글 스크랩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식사중 추천 0 조회 10 11.10.17 18: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아침기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저녁기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끝가도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 

 

베드로 사도에 이어 안티오키아의 제2대 주교가 되었다. 맹수에게 던져지는 형의 선고를 받았다. 로마로 압송되어 가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인 서기 107년 순교의 영광스러운 월계관을 얻었다. 로마에 압송되는 도중 여러 교회들에게 일곱 통의 편지를 써 보냈는데, 그리스도와 교회의 조직 그리고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해 슬기롭고 심오하게 기술했다. 4세기부터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이날에 그를 기념해 왔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Cap. 4,1-2; 6,1-8,3: Funk 1,217-223)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나는 모든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내가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으러 간다고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 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쾌락도 지상의 모든 왕국도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 극변까지를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와 일치하기 위해 죽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바로 그분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내 출생의 때가 가까웠습니다. 형제들이여, 나를 잊어버리십시오. 내가 이 생명을 얻는 데 방해하지 마십시오. 나를 죽음의 상태에 놔두려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 가고자 하는 사람을 세상에다 던지지 마십시오. 물질로써 유혹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깨끗한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내가 거기 닿아야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 하느님의 수난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아무라도 하느님을 자기 안에 간직한 사람이면 내가 원하는 바를 들을 것이며 나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동정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나를 잡아가서 하느님을 향한 이 내 마음을 돌려놓으려 합니다. 거기 있는 여러분들은 그 누구라도 이것을 거들지 마십시오. 그것보다는 나를 위해 아니 하느님을 위해 도움이 되도록 하십시오.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마음으로는 세속을 원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나쁜 마음이 여러분 안에 자리잡지 않도록 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도착했을 때는 나를 믿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부탁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쓰는 말을 믿으십시오. 지금은 내가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죽음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나의 지상적인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못박혔고 세상 물질을 사랑하기 위한 불은 내 안에 더 없습니다. 다만 내 안에 있는 것은 샘솟는 물이고, 이 샘물이 “성부께로 오라.”고 내 안에서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제 썩어 없어질 음식이나 인생의 쾌락이 내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인 하느님의 빵을 먹고 영원한 사랑이신 그분의 피를 마실 것만 나는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인생을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동의하면 내 원의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원의도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짤막한 편지로써 내가 여러분에게 그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으십시오. 내가 진실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거짓말을 모르시는 입이며, 이 입을 통해서 성부께서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원의가 채워지도록 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내가 육의 원의를 따라 이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쓰는 것입니다. 내가 수난을 당한다면 여러분이 나에게 호의를 보인 것이고 수난에서 제외된다면 여러분이 나를 미워한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ignatius) 
1. 생 애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세운 안티오키아 교회의 2대(혹은 3대) 주교로서 110년에 로마의 꼴로세움(원형극장)에서 맹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선고를 받고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중에 7개의 서간을 쓰게 되었다. 안티오키아 도시는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게 된 곳이며(사도 11,26),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출발하였던 선교의 중심지였다.
 
특히,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부터 안티오키아 교회와 로마 교회는 초대교회 안에 두 기둥 역할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간다는 소식은 전 교회의 슬픔이었다. 순교지를 향한 그의 여정이 스미르나에 도달하였을 때에 에페소, 마네시아, 뜨랄리아 교회 등에서 보내온 위문 사절단과 만나게 되었다. 이냐시오는 이곳에서 자기에게 사절단을 보낸 세 교회에게 감사의 마음이 담긴 권고의 편지를 각각 보내고, 순교를 당하게 될 로마 교회에도 편지를 보낸다. 다시 뜨로아스에 와서는 안티오키아에 박해가 멎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필라델피아 교회와 스미르나의 주교인 뽈리까르뽀에게 편지를 보낸다. 드디어 로마에 도착해서는 우리가 고전영화 쿼바디스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맹수형으로 순교하였으며, 후에 신자들이 그의 유해를 안티오키아로 옮겨 안장하였다. 교회는 그의 순교일에 따라 10월 17일에 축일을 지낸다.
 
 
2. 일곱 서간
 
이냐시오가 보낸 7개의 서간들 중에서 6개는 교회 공동체(에페소, 마네시아, 뜨랄리아, 로마, 스미르나, 필라델피아)에 보낸 것이고, 1개는 뽈리까르뽀 주교 개인에게 보낸 것이다. 뽈리까르뽀 주교에게 보낸 편지는 선배 주교로서 후배 젊은 주교에게 사목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와 덕을 가르쳐주는 내용이고, 로마 교회에 보낸 서간 외에 다른 5개 교회 공동체에 보낸 서간들은 서로 그리스도 안에 일치하고 교회의 장상들에게 순명하며, 그릇된 이단들에 조심하라는 권고를 담고 있다. 특기할 점은 이냐시오가 최초로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를 일컬어 "가톨릭 교회"(스미 8,2)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가톨릭"이란 단어는 '보편적'이란 뜻을 갖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공동체로서 그 안에는 반드시 주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로마 교회에 보낸 서간은 다른 여섯 서간과 성격을 달리한다. 이 서간에는 교회 장상들에 대한 순명의 권고나, 이단에 대한 경고가 없는 대신 이냐시오 자신의 신앙 자세와 주님께 대한 사랑, 그리고 승화된 인간의 신비적인 면을 감동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이 서간은 신학전망 24호(1974년 봄)에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 있다. 이냐시오의 서간들은 평상시에 보낸 편지가 아니라 순교지로 가는 여정에서 쓴 것들이기에 그 호소력이 강하며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 매우 크다. 사실 이냐시오가 순교한 후에 편지를 받은 각 교회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이 편지들을 서로 돌려가며 보거나 복사하여 보관하였기 때문에 교회 안에 널리 유포되었다.
 
 
3. 로마 교회에 대한 존경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는 다른 여섯 편지와 그 성격을 달리한다.
이냐시오는 원로주교로서 다른 교회들에게는 일치와 조화를 권고하고 있는 반면, 로마 교회에 대해서는 이런 권고를 감히 줄 수 없는 이유는, "나는 베드로와 바오로 같이 여러분에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었고, 나는 한 죄수에 불과합니다"(로마4,3)라고 설명한다. 특히 로마 서간의 인사말에 나오는, "여러분의 교회는 로마 사람들의 지역 안에서 선도(先導)하며 하느님께 합당하고 존경, 흠숭, 성공, 순결을 지닌 복된 교회입니다. 사랑을 선도하며 그리스도의 법과 성부의 이름을 보유하였습니다"라는 표현에 대해 가톨릭 학자들과 개신교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이 논란은 로마 교회가 타 교회들에 대해 수위권(首位權)을 갖느냐 하는 미묘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선도하다"(prokathetai)라는 동사가 연이어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첫째 경우에는 '로마 교회가 로마제국의 교회들에 대해 수위권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경우에는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 다른교회들 보다 앞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다른 편지들에서 이냐시오는 "사랑"이란 단어를 교회와 동의어, 즉 '사랑의 공동체'라는 뜻으로 여러번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로마 교회가 다른 교회들을 선도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미묘한 표현상의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이냐시오는 로마 교회에 대해, "여러분은 아무와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로마3,1)라고 칭찬하고, 끝으로 주교를 잃게 된 시리아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고 염려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로마9,1).
 
로마 교회에 대한 그의 이런한 존경심은 개인적인 겸손이나, 또는 로마가 로마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 교회 자체가 두 으뜸 사도들로부터 세워져 그 권위를 받은 교회라는 논리에서 나온다. 안티오키아 교회 역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가르침을 받아 세워진 교회이지만, 로마 교회는 이 두 사도의 가르침이 그들의 순교로써 증거된 교회라는 점에서 다른 어떤 교회보다 권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로마의 끌레멘스 주교가 고린토 교회에 대해 취했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4. 순교영성
 
우리는 안티오키아의 아냐시오 주교의 생애와 그가 맹수형의 선고를 받고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중에 쓴 7개 서간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가 지녔던 순교에 대한 열망은 여러 서간에 나타나 있다. 그는 순교를 그리스도께 대한 불붙는 사랑, 그분과의 완전한 일치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 왜 내가 목숨을 바치려는 것입니까? - 내가 맹수들 가까이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참아낼 수 있는데 완전한 인간이 되신 그분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스미 4,2). [나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자가 못됩니다. 그런데 지금에야 비로소 그분의 제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에페 3,1).
 
순교에 대한 그의 열망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더욱 생생히 표현되 있다. [불도 좋고 십자가도 좋고 맹수의 무리도 좋으며 사지를 짓이기고 찢어도 좋고 배를 갈라도 좋으며 팔다리를 자르고 온몸을 난도질 해도 좋습니다. 가장 잔인한 형벌도 좋습니다. 다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갈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쾌락도 지상의 모든 왕국도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이 세상 극변까지를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와 일치하기 위해 죽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바로 그분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내 출산의 때가 가까왔습니다.](로마 5,3-6,1)
 
여기서 순교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출산]으로 표현되어 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을 얻듯이 이냐시오는 순교의 수난을 통해 하느님 안에 새로 태어나는 부활의 기쁨을 얻게된다는 확고한 믿음에서 자신의 순교일을 애타게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냐시오의 이러한 믿음에 따라 교회는 순교자들의 순교일을 [천상 탄일](dies natalis)이라고 부르고 순교일을 그들의 축일로 정하고 있다.
 
이냐시오 주교가 로마로 압송되어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로마교회는 휼륭한 지도자를 구해내기 위한 구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이냐시오 주교는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이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자기를 위한 어떠한 호의도 베풀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보이는 것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이거나 아무것도 내가 그리스도께 가는 길을 질투해서 방해하지 말 것입니다](로마 5,3). [나는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만일 침묵을 지켜준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나의 육신을 사랑하게 되면 나는 또 다시 달음질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지는 것 외에 아무것도 나를 위해 하지 마십시요. 제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로마 2,1-2).
 
그는 한시라도 빨리 순교하고 싶은 열망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 때문에 마련된 맹수떼를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그 맹수들이 나에게 성급히 달려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맹수들이 겁을 먹어 달려들지 못한 경우가 있지만 나는 그들과는 달리 나를 급히 잡아 먹도록 유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맹수가 나를 거절하면 나는 강요하겠습니다](로마 5,2). [나는 더 살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동의하면 내 원의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의하십시오-. 나의 원의가 채워지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로마 8,1-2).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다. 우리는 성 이냐시오의 생생한 글을 통해 우리 순교자들이 지녔던 열정과 기쁨을 보는 듯하다.
 
 
5. 순교와 성체 신비
 
이냐시오가 자신의 순교를 성체의 신비와 연결시킨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맹수들을 유인해서 그들이 나의 무덤이 되게 할 뿐 아니라 최후 잠듦에 있어 아무에게도 폐가 되지 않게 맹수들이 내몸의 어떤 부분도 남겨두지 말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세상이 내몸을 볼 수 없을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해주십시요](로마 4,1-2).
 
여기서 이냐시오는 자기가 하느님의 밀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마치 밀이 맷돌에 갈려 가루가 되고 그 가루로 빵이 만들어 지듯이 자신의 몸이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의 순교를 성체신비에 동참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맹수들이 자기 몸을 깡그리 먹어치워 장사지낼 수고까지 없애주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은 당신의 몸과 피를 인류 구원을 위해 내어 놓으셨고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온다.
 
자기 몸이 사자의 이빨에 짖이겨지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겠는데, 이냐시오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어떻게 이처럼 담담히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평소에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비를 너무나 잘 깨닫고 묵상하였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달리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그는 순교가 그리스도의 극진한 사랑에 대한 자신의 응답이라고 보고 있는것이다.
 
[이형우 신부님, 대구 대신학원 강의록,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교부들의 가르침 :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우스
주교 중심으로 한 교회 일치 갈망
  
광주가톨릭대 교수 노성기 신부
 
 
오늘은 멀리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여행을 떠나보자. 안티오키아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가리켜 이방인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도시이다. 우리가 만날 교부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로 약 1900년 전에 살았던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우스(35?~110?) 성인이다. 맹수형의 사형선고를 받고 로마로 압송되어 가면서, 성인은 일곱 교회에 편지를 써보냈다. 일곱 통의 편지를 읽다보면, 우리도 어느새 그가 걸었던 순교여정을 따라서 걷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냐시우스는 자신의 소망대로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맹수형으로 순교했으며(약 110년) 10월 17일이 성인의 축일이다.
 
하느님을 향한 불타는 신앙, 하느님과의 일치, 주교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일치를 간절히 갈망했던 교부, 피보다 더 뜨거운 순교의 열정을 지녔던 교부, 그가 남긴 7통의 편지로 약 2000년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교부, 우리 모두가 한번쯤 만나보고 싶었던 교부였다. 그의 편지들은 초대교회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보물이다.
 
’한 분 하느님, 한 분 그리스도, 한 가톨릭 교회’를 주장하면서 신앙과 사랑 안에서의 일치를 강조했던 그가 바로 최초로 ’가톨릭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교부였다. ’가톨릭 교회’라는 이 표현은 폴리카르푸스에 의해서 ’참된 교회’라는 뜻으로 더욱 발전된다.
 
그에 의하면, 주교는 교회의 수장이고, 일치의 상징이며, 교의와 성사와 전례의 중심이다. 주교를 중심으로 일치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이며, 주교를 중심으로 일치하는 것은 이단과 오류에 빠지지 않았다는 표시이며 진리 안에 머물러 있다는 보증이다. 그리스도가 성부께 순종하셨듯이 공동체는 주교에게 순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교는 하느님의 대리자"(막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1)이고 "성령께서 친히 주교의 권위를 보장해주시기 때문이다"(필라델피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서두인사’).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거짓 없이 주교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는 눈에 보이는 주교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기만하는 것이 됩니다"(’막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3, 2).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 교회가 존재하듯이,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 공동체가 존재합니다"(’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편지’ 8, 2).
 
이처럼 이냐시우스는 끊임없이 주교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일치를 강조한 ’일치의 박사’였다. 당시 가현설(假顯說)을 주장하는 자들은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단체이므로 주교나 사제가 필요 없다는 주장과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거짓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화와 수난, 죽음과 부활을 부인하고 성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현존성까지도 부인했다.
 
이 같은 가현설을 반박하면서, 이냐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육화와 수난, 죽음과 부활의 역사적인 사실성을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수난이 가짜라면,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과 수난도 거짓이고 가짜이냐고 이냐시우스는 반문한다.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그를 위해 로마 교회가 구명운동을 벌이자, 이냐시우스는 어떤 호의도 베풀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여러분의 사랑이 오히려 저를 해칠까봐 두렵습니다. 저로 하여금 나의 하느님의 수난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2 ; 6,3). 그는 한시라도 빨리 순교하고 싶은 열망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저는 그 맹수들을 빨리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맹수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겁을 먹어 달려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맹수들이 저를 재빨리 삼켜버리도록 제가 유인하겠습니다"(’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5,2).
 
순교를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을 위한 ’출산’이라고 말한 그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을 누리듯이, 순교의 수난을 통해서 부활의 기쁨을 얻게 된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순교일을 애타게 기다렸다. "이제 출산의 (고통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6,1). 교회는 이 같은 믿음에 따라 순교자들의 순교일을 ’천상탄일’이라고 부르고, 그들의 축일로 지낸다.
 
"오히려 맹수들을 유인하여 그들이 저의 무덤이 되게 하십시오. 또한 제가 죽었을 때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도록 맹수들이 제 몸의 어떤 부분도 남기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이 저의 몸을 볼 수 없게 될 때 저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제물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그리스도께 간구해 주십시오"(’로마인들에게보낸 편지’ 4,2).
 
순교로써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본받아 참 생명, 즉 구원에 참여한다는 그의 믿음과 맹수들이 자기 몸을 깡그리 먹어치워 장사지낼 수고조차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은,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되겠다는 맹세와 열망에서 나온 고백이었다.
 
이냐시우스는 자신의 순교를 성체의 신비와 연결시켜 자신을 하느님의 밀이라고 말한다. 밀이 맷돌에 갈려 가루가 되고 그 가루로 빵이 만들어지듯이, 자신의 몸이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되겠다는 그의 다짐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심금을 울린 가장 아름다운 신앙고백이며 우리들의 가슴속에 메아리 되어 영원히 울려 퍼지는 사랑고백이었다.
 
"저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놔두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제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밀이니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4,1).
 
끝으로 이냐시우스의 다음 말을 기억하면서, 성탄절을 잘 준비하는 대림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앙은 시작이고, 사랑은 마지막 목적이며, 빵(성체)을 나누는 것은 불멸의 약을 나누는 것이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14,1; 20,2).
 
[가톨릭신문, 2002년 12월 8일]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21. 교부편 (2)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이냐시오는 순교를 그리스도께 대한 불붙는 사랑 그분과의 완전한 일치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순교를 성체 신비와 연결시킨다.

 

‘가톨릭’이란 말을 처음 사용

이단에 빠지지 말 것 권고
‘순교는 주님과의 일치’강조

 

 

『불도 좋고 십자가도 좋고 맹수의 무리도 좋으며, 뼈를 비틀고 사지를 찢어도 좋으며, 팔다리를 자르고 온몸을 난도질해도 좋습니다. 이 세상의 목표도 지상의 모든 왕국도 저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는 것이 저에게는 더 낫습니다. 제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이며, 제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이제 출산의 고통이 저에게 가까이 왔습니다』(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서간중).

 

클레멘스와 마찬가지로 베드로와 바울로의 제자였고 안티오키아의 두번째 또는 세번째 주교였던 이냐시우스(Ignatius Antiochenus 35?∼107)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 시대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안티오키아에서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도중에 일곱편의 편지를 썼다.

 

스미르나에서는 에페소, 마녜시아, 트랄리아, 로마 등에 편지를 썼고, 스미르나에서 로마로 가다가 트로아스에 체류하면서는 필라델피아와 스미르나 교회, 폴리카르푸스 주교에게 스미르나에서 보여준 친절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순교를 향해가는 길에서 그가 남긴 서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 싶은 사랑의 애절한 호소」였고 「하느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고 이 본받음은 수난과 죽음에까지 가야 한다」는 절절한 신앙의 표현이었다.

 

이후 그는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간절히 바라고 각오했던 죽음을 당했다.

 

에우제비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등 후대 교부들의 증언에 따를 때 로마서간 4, 1의 『나는 밀알, 맹수의 이빨에 갈려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하느님의 밀알이다』는 말씀에 근거 확실히 맹수들에 의해 순교했다는 사실이 반복 강조되고 있어 맹수형으로 순교했다는 것이 전승으로 내려오고 있다. 순교록들에 의하면 그의 뼈가 신자들에 의해 안티오키아로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학자들은 그의 서간과 관련, 「치명을 위한 열망으로 재촉받는 마음의 고동」을 그만큼 절실히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교 문학에 있어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또한 2세기 초엽의 교회 면모를 소개하는 것과 함께 유다인이 아닌 소위 이교도의 세계에 심겨진 그리스도 교회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런 면에서 특히 초대 그리스도교에 있어 안티오키아의 위치를 고려한다 해도 이냐시오는 후대 교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증인」으로 기록된다.

 

그의 서간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10명 군인들에 의해 끌려가면서도 묵게되는 도시마다 몰래 찾아온 그곳 교회의 신자들에게 설교하면서 이단에 빠지지 말고 사도적 전통에 충실할 것을 권고했다.

폴리카르푸스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선배 주교로서 후배 주교에게 사목자로서 지녀야할 자세와 덕을 가르쳐 주는 내용으로 꾸몄고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 및 다른 다섯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들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고 교회 장상들에게 순명하라는 당부를 담았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느님의 구속 사업이었다. 내 안에, 또 신자들 안에, 교회 공동체 안에 나타나고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현존이었다. 즉 하느님은 세상과 인류를 죄의 상태에서 구원하시고 구원 역사에서 예언자들은 메시아를 위한 준비 과정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완성시킨 분으로 설명했다.

 

순교를 그리스도께 대한 불붙는 사랑 그분과의 완전한 일치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순교를 성체 신비와 연결시키는 면도 눈길을 끈다. 이냐시오는 자신이 「하느님의 밀」 「깨끗한 빵」이 되는 것으로 밝혔는데 밀이 맷돌에 갈려 가루가 되고 빵으로 만들어 지듯 순교로써 성체신비에 동참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영성에 대해서는 『평소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에 나타나는 그리스도 사랑의 신비를 너무나 잘 깨닫고 묵상하였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따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냐시오는 「가톨릭」 교회란 말을 첫 번째로 사용한 교부이다. 그는 주교의 권위를 논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가톨릭 교회가 존재하듯 주교가 있는 그곳에 교회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여기서의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앙과 사랑의 일치를 가르치며 그것은 곧 지역 교회간 유대를 지칭하는 「하나인 교회」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이라는 표현은 폴리카르푸스에 와서 더 풍부한 뜻을 지니며 「참된 교회」로 이해되어졌다.

 

학자들은 이냐시오가 들려준 가르침의 핵심을 「일치」로 정리한다. 즉 하나요 동시에 세 위격이신 하느님의 일치,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 위격의 일치, 그리스도인과 영성생활의 근본이신 그리스도와의 일치, 교회 안에서 신자들의 일치 등이다.

 

「그리스도교 문헌학의 진주」로 남겨져 있고 고대 교회사에서 이루어진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꼽혀지는 그의 편지들은 죽음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와 하나되고 하느님을 누리고 싶은 열망을 드러냄으로써 세속화 되어가는 오늘날 교회에 또 십자가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현대 사회 안에서 「하느님을 잃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또 「그리스도교가 십자가와 죽음을 통해 하느님을 얻을 수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임을 외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6월 20일, 이주연 기자]

 

 

[이달의 성인]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107)
 
윤 클레멘트 신부
 
 
그는 시리아에서 태어났는데, 로마의 한 시민권자로 추정된다. 그는 69년에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임명을 받는데, 그때까지 그의 생활은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는 또한 복음사가 성 요한의 제자로 알려지는데, 예수님 제자들과 그 다음 세대를 연결하는 중간으로 말해진다. 그는 자신을 ‘테오포로스’, 즉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그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로마로 잡혀가는 여행 중에 썼다. 그가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길은 그다지 심하게 통제를 받지 않았기에, 그는 도중에 편지도 쓰고 교회들도 방문했으며, 또한 성 폴리까르뽀(축일: 2월 23일; 약69-155년)도 만난다. 그가 쓴 일곱 편지 중에서 두 통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다섯 통은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 - 즉, 에페소, 마그네시아, 트랄리스, 필리델피아, 스미르나 - 으로 보내는 편지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편지에서, 주교들에게 순명을 통한 일치를 강조하고, 분열과 이설(異說)에 대해 경고하며, 평화의 연대인 성체성사에 대하여 말하기도 한다. 그는 또한 예언자들의 완성자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간성에 대하여 언급하기도 한다.
 
그의 편지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에 대한 신학과 사상을 알려주기도 하는데, 즉 ‘순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전승에 의하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만나서 순교의 죽음으로부터 구출할 뜻을 말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하느님을 얻고 만날 수 있는 이 길에서 나를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천국에로의 생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가 순교한 해에 대하여 여러 설이 있는데, 107년이나 110년 혹은 115년으로 말해진다. 아무튼 서방교회에는 그가 로마로 압송되어 도착한 날인 10월 17일에 그의 축일을 지내고, 동방교회에서는 12월 20일에 지낸다. 그는 교회의 예술, 즉 이콘 등에서 가끔씩은 자신의 심장을 왼쪽 손에 든 채,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봉헌한 채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옮기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는 로마의 콜로세움(원형경기장)으로 이동되고, 자신이 그렇게 설교하고 썼으며 말하던 대로 그리스도의 순결한 빵이 되기 위하여, 며칠째 굶고 있던 사자들의 이빨에 그의 육신은 빵을 위한 밀가루처럼 부수어져서 순교의 화관을 쓴다. 그리고 그의 육신 중에서 남은 일부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모셔진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었다.
 
“내가 하느님을 얻고 만날 수 있도록 나를 짐승들에게로 가게 하십시오. 짐승들은 나를 하느님께로 가게 하는 길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입니다. 나는 짐승들의 이빨로 부수어져서 그리스도의 순결한 빵이 되고 싶습니다.”
 
[2008년 10월 19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금주의 성인]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St. Ignatius Antichenus, 10월 17일)
 
순교 영성과 신앙고백 편지로 남겨
로마로 압송 중 쓴 편지, '그리스도교 문헌학의 진주'로 평가
 
 
' 성 이냐시오'라고 하면 16세기 예수회 설립자이자 영성가인 로욜라의 이냐시오(1491~1556)를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분 못지않게 유명하고, 특히 교부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시리아 안티오키아에서 주교로 지내다 로마로 압송돼 순교한 초대교회 이냐시오(35?~107)입니다.
 
시리아 안티오키아는 당시 그리스도교 중심지였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른 전도여행의 출발지가 바로 안티오키아입니다.
 
이같은 안티오키아 교회를 이끌던 이냐시오 주교가 그리스도교를 전파한다는 죄목으로 로마 병사들에게 끌려가자 인근 교회는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가 묵게 되는 도시마다 주교들과 신자들이 몰려와 눈물을 쏟으며 위로했습니다. 그는 그때마다 오히려 위문자들을 위로하고, 에페소ㆍ스미르나 등 인근 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가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쓴 일곱 개 편지는 '그리스도교 문헌학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내용이 풍부하고 가치가 높습니다. 교부학자들은 지금도 이 편지에서 그의 영성을 캐내고 있습니다. 진본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 편지에는 절절한 신앙고백과 순교영성,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형벌 방법이) 불도 좋고 십자가도 좋고 맹수의 무리도 좋으며 뼈를 비틀고 사지를 찢어도 좋습니다. 다만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 갈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목표도 지상의 모든 왕국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 끝까지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로마교회에 보낸 편지)
 
순교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라고 정의한 그는 "맹수들이 빨리 달려들어 줬으면 좋겠습니다"며 뜨거운 순교 열망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또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고, 교회 장상들에게 순명하고, 그릇된 이단들(그리스도 가현설, 유다교 안식일)을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그는 107년 로마 원형극장에서 맹수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성화에는 사자들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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