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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5일 토요일 신로봉 국망봉 견치봉 민둥산
사니조은 님과 함께
기차이용 : 동서울 터미널 06:50 – 포천 이동 – 신로봉 – 국망봉 – 견치봉 – 민둥산 – 도성고개 – 강씨봉 휴양림 – 버스 - 가평역
산행거리 : 약 18 km 산행시간 : 약 10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2043618
거리 17.7 km
소요 시간 10h 14m 12s
이동 시간 6h 49m 5s
휴식 시간 3h 25m 7s
평균 속도 2.6 km/h
최고점 1,123 m
총 획득고도 515 m
난이도 보통
지구가 아무 생각없이 달리다가 언뜻 너무 빨리 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잠시 멈췄다가 몇 걸음 뒤로 돌아갔나보다. 봄이 예년에 비해 적어도 1주일쯤 일찍 찾아왔다 싶더니 다시 겨울모드로 전환했다. 수요일 목요일 기온이 급히 내려가고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것이 꽃샘바람 수준이 아니다. 소백산의 칼바람 맛이다. 그러던 것이 금요일에 조금 누그러졌지만 아직도 찬 기운이 남아 있다. 일찍 올라온 새싹과 일찍 핀 꽃들이 제 정신이 아니다. 과수농가에서는 올 해 농사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나는 좀 더 이른 계절을 염두에 두고 포천 신로봉의 멋드러진 암릉에서 바라보는 국망봉의 곱게물든 초록빛 산자락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평 강씨봉 휴양림 아래 피어 있을 애기송이풀도 궁금했다. 여러가지로 산행 코스를 궁리하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포천 이동에 가서 신로봉 암릉을 올라 국망봉을 거쳐 강씨봉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코스를 정했다.
사창리로 가는 버스에는 지난번보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으나 아직도 빈 자리가 많다.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이제 서서이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 하루 감염자가 열 명 안팍으로 줄어들면서 세계적으로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잘 이겨낸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은 감염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의료시설에서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국가들이 많고 아직 검사조차 할 수 없는 나라는 더 많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하루 열 명 안팍으로 확진자 수를 잡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도시 봉쇄나 외출금지령(lock down)조차 내리지 않았으니 대단히 모범적인 사례라고 칭찬받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포천 2동 - 어떻게 해서 막걸리와 갈비가 유명하게 된건지 궁금하다.
8시 조금 넘은 시간에 포천 이동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날이 꾸무리하다. 막걸리와 갈비로 유명한 포천 이동의 거리는 한산하다. 도로가에 늘어선 대형 갈비집들은 주말 손님맞을 준비를 하는지 조금 부산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손님이 많지 않을텐데 그래도 유명한 곳이니 찾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있는 모양이다.
국망봉 휴양림 앞에서 좌측으로 꺽어 무덤을 지나며 전에 보았던 할미꽃과 조개나물 그리고 조선현호색을 찾아본다. 최근 몰아닥친 꽃샘추위 때문인지 아직 꽃들이 활짝 피지 않았다. 요때쯤 피어나는 조개나물과 할미꽃이 왜 보송보송한 솜털을 뒤집어쓰고 나오는지 그 이유를 알 듯하다.
안전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비탈을 오르니 평탄한 산길이 나타나고 산 아래쪽에는 이미 지고 있는 각시붓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꽃은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꽃 피우는 시기를 조절한다.
진달래꽃이 핀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철쭉이 활짝 피었다. 낮은 지대에는 이미 꽃이 지고 잎이 무성하다. 자연의 수레바퀴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끊임없이 돌아간다. 하얀 매화말발도리 꽃도 주변에 많이 피어있다. 이제나 저제나 피어나길 기다리지 않아도 꽃은 제 때만 되면 어김없이 피고 또 우리가 모르는새 져버리고 만다.
저지대는 철쭉이 차지하고 있다.
바람이 무척 강하게 분다. 능선 뒤쪽으로 오를 때는 괜챦다가도 앞쪽이 트인 바위에 올라서면 세찬 바람이 몰아진다. 겨울에 입던 복장 그대로 왔는데도 약간 춥다는 느낌을 받는다. 약간 고도를 낮춘 한적한 곳에서 바람을 피해 간식을 먹는다. 동서울 터미널 앞 포장마차에서 사온 순대와 막걸리가 잘 어울린다.
신로봉에 오르려면 가파른 비탈을 여러 번 지나야 한다. 가끔씩 만나는 조망처에서 건너편 한북정맥 줄기 위에 서 있는 국망봉과 견치봉을 바라본다. 그리고 발 아래 펼쳐지는 까마득한 절벽과 그 아래 양탄자를 펼쳐놓은 듯한 나무숲이 아름답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지금보다 조금 늦은 시기여서 녹음이 훨씬 윗쪽까지 차지했었는데 오늘은 때가 일러서 그런지 휴양림 윗쪽으로 조금 올라왔을 뿐이다. 다시 한 번 계절의 시계가 얼마나 정확한지 놀라게 한다.
가리산 - 예전에 구리광산이 있어서 구리산이라 부르던 것이 가리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연두빛 양탄자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
왼쪽 높게 솟은 봉우리가 신로봉의 전위봉이다. 신로봉은 여기서 두 개의 봉우리를 더 지나야 한다. 오른쪽 뾰족한 게 국망봉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맑지 않아 눈을 부벼보지만 흐려진 조망은 나아지지 않고 아수움만 커진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산업화로 대변되고 산업화는 곧 에너지 소모와 직결된다. 그리고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공기와 수질오염이 발생하고 우리는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야 한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인도에서 공장가동이 중단되고 차량통행이 줄어들자 대기질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약 200 km 떨어진 펀잡지역에서 30년만에 처음으로 만년설이 덮이 히말라야 산을 볼 수 있었다 한다. 코로나는 앞으로만 치닫는 인류에게 한 번쯤 잠시 서서 뒤를 돌아보라고 말해주는 것같다.
코로나 덕분에 대기 상태가 좋아졌다. 인도 펀접지역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산군들
신선봉으로 오르는 왼쪽에는 가리산이 따라온다. 꼭데기 암봉이 뫼산(山)자 모양으로 홀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웅장하다. 산 아래에 구리광산이 있어서 구리산이라 부르다가 가리산으로 고쳐불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도처에 있는 가리봉이나 가리산의 이름과 색다른 유래를 갖고 있다. 가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두 군데 있는데 모두 철조망(barbed wire)으로 막아놓았다. 한 곳은 군에서 사격훈련을 하고 있어 위험하다는 경고문구를 세워놓았고 또 다른 곳은 장뇌삼을 심어놓아서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을 설치해 놓았다. 어디서든 왕복 두 시간쯤은 잡아야 하는만큼 그저 멀찍이 바라보기만 하고 지나간다.
신로봉으로 오르는 도중 가리산으로 연결되는 세 곳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막아놓았다. 군부대 훈련으로, 또는 장뇌삼 재배 목적으로
고도를 높이자 색이 진한 진달래가 만발했다. 사니조은 하대감은 늘 시기를 놓쳐 제대로 볼 수 없던 진달래 고운 자태를 여기에서 보게 되었다며 좋아한다. 산행을 자주 하더라도 늘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너무 이르거나 늦거나 또는 원하는 꽃이 피지 않는 곳일 수가 있다. 그러니 그처럼 자주 산에 다니면서도 원하는 꽃을 실컷 볼 수 있으니 감회가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아래쪽에는 철쭉이 피고 윗쪽에는 진달래가 핀다.
신로봉은 빼어난 암릉이 독보적이다. 발 아래는 천길 낭떨어지요 그 아래는 넓게 갖가지 나무들이 자라는 숲이다. 국망봉 휴양림을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계곡이 이어져 있고 그 능선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봉우리가 국망봉이다. 하대감은 그 능선의 모습이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모양 같다고 한다.
왼쪽 높은 봉우리가 돌풍봉 그리고 오른쪽 뾰족한 봉우리가 국망봉이다.
신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멋진 암릉길이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산 아래 장암저수지가 조금 보이고 더 멀리 포천 이동이다.
중간중간 멋진 조망처가 여러군데 있다.
윗쪽은 아직 겨울모드다. 초록빛 새 옷을 준비중이다.
신로봉에 서면 사방이 훤히 보인다. 우리가 지나온 방향으로 가리산이 멀리 낮으막히 앉아있고 북쪽으로는 광덕산에서 이어지는 한북정맥길이 펼쳐진다. 흐리고 미세먼지가 짙어 좀 멀리 있는 산들은 뚜렷하지 않아 어림으로 광덕산 백운산 도마치봉 등을 가늠해본다. 우리가 올라온 반대쪽에는 화악산과 석룡산이 흐릿하게 보이고 그 줄기 끝에 도마치고개와 이어진 포장도로가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돌풍봉과 국망봉이 이제 많이 가까워졌다.
신로봉에서 바라본 한북정맥 - 도마치봉, 백운봉, 광덕산으로 이어진다.
신로봉 정상
왼쪽에 가리산이 한참 내려다보인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단 한 명의 산객도 만나지 못했는데 신로봉에 오르니 발 아래 신로령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모여있다. 아침 8시에 광덕고개에서 출발했다며 강씨봉 휴양림으로 하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등산팀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강씨봉 휴양림까지 동행하였다.
신로봉에서 내려와 한북정맥길로 올라선다. 국망봉, 견치봉, 민둥산을 거쳐 도성고개에서 강씨봉 휴양림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한북정맥을 걷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신로령에서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 나무를 찾았다. 구슬댕댕이나무다. 열매 모양이 빨간 구슬을 꿰어놓은 듯 아름답다. 댕댕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것은 댕댕이덩굴이다. 덩굴이 질겨서 말린 덩굴로 바구니를 만들기도 한다. 설악산에서 처음 본 댕댕이나무(Honey Berry) 열매가 매우 신기했는데, 소백산에서 작년에 황록색 꽃이 핀 구슬댕댕이를 보았을 때는 더욱 신기했다. 모야모에 질문을 올려도 아는 사람이 없던 중에 몇 주전 다시 소백산을 찾았을 때 백두대간에 서식하는 식생 사진이 실린 팻말에 나와 있는 구슬댕댕이 열매를 보고서야 내가 보았던 그 꽃이 구슬댕댕이 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삼 년전 신로령에서 보았던 나무가 떠올랐다. 거친 널이 촘촘이 나 있는 나무를 보고 어떤이는 털괴물나무라고 했었다. 나는 그 때 본 나무가 다름아닌 구슬대댕이와 모양이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산행에서 다시 한 번 보고 확이해볼 참이었다.
‘
구슬댕댕이가 분명하다. 묵은 가지 끝에는 작년에 열매 껍질이 달려있다. 이제 가을에 찾아와 열매만 한 번 확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구슬댕댕이 나무가 많이 보인다.
지난해 열매 꼬투리
구슬댕댕이 열매 -
산 아래에는 벌써 다 져버린 얼레지가 이곳에는 이제 막 피어나고 있거나 아직 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도 많이 보인다. 또 길 한 편에는 복수초 꽃이 지고 열매가 맺어있고 또 다른 편에는 복수초가 막 피어나고 있다. 노랑제비꽃은 이제 흔한 꽃이 되었다.
얼레지가 아직도 피고 있다.
길 가에 복수초 군락지가 보인다. 이른 봄에나 피는 복수초가 아직도 피고 있다.
얼레지
노랑제비꽃
고깔제비꽃
태백제비꽃
예년에 비해 계절이 늦은건가? 아니면 내 마음이 조급한건가? 자연은 분명 그대로인데 간사한 사람 마음만이 변하는 것일게다. 국망봉 오르는 길이 이렇게 멀었던가 하고 새삼 느껴진다. 아마도 신로봉 능선을 타고 오면서 힘을 다 소진한 대문인지도 모르겠다. 국망봉 닿기 전 높은 봉우리는 헬기장이다. 지도에는 돌풍봉(1,113 m)라 표시되어 있다. 미세 먼지로 흐릿한 조망 너머로 화악산 줄기가 보인다. 헬기장에 앉아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
뒤쪽으로 돌아본 한북정맥
국망봉 가는 길에 만나는 물고기 바위 - 물고기 머리위에 나무가 나 있는 모습이 목어(木魚) 전설을 연상시킨다. 저 아래쪽은 신로봉 능선이다.
한북정맥을 걷다보면 우리가 아직도 전쟁중임을 실감한다.
국망봉에서 뒤돌아본 한북정맥길
앞으로 가야할 한북정맥 길 - 견치봉(犬齒峰)과 민둥산이다.
궁예의 전설이 서려있는 국망봉 정상이다.
오후 3시 국망봉(國望峰 1,167m) 정상에 도착했다. 포천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7시간 걸렸다. 나는 이런 느린 산행을 좋아한다. 어짜피 하루 산행을 나왔는데 바쁜 일에 쫒기듯이 후다닥 뛰다시피 걷는 산행은 되도록이면 자제하고 싶다. 멋진 풍광을 감상하고 꽃과 풀 나무를 살피면서 걷다보면 그리 힘도 들지 않고 나중에 하산할 때는 가슴속에 뭔가 가득 담아가는 느낌이다. 국망봉 정상에는 우리와 같이 느린 산행을 하는 세 명의 산객이 있었다. 한 분은 의정부에 산다는데 오늘 처음 국망봉에 오른다는 70대 노인이고 두 명은 부부 산객들이다. 여성분이 힘에 부치는지 뒤에 쳐져서 오르고 남자는 조금 앞서 가면서 뒤를 자주 돌아본다.
앞으로 나갈 방향을 살펴본다. 중간에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고 그 다음 불쑥 튀어나온 봉우리가 견치봉일게다. 개 이빨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한자로 견치봉(犬齒峰 1,102 m)라 부른다. 우리는 저 견치봉과 민둥산을 넘어 도성고개에서 강씨봉 휴양림으로 하산할 것이다.
경기도에서 제일 높다는 화악산(華岳山 1,468.3 m) 정상이 안개로 덮여 있고 그 아랫쪽으로 석룡산 (石龍山 1,165 m) 그리고 뾰족하게 솟은 수덕고개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흐릿하게 보인다.
지나온 돌풍봉과 신로봉이 보이고 그 뒤로 한북정맥 산줄기에 들어 있는 도마봉 백운산이 흐릿하다.
이제 제일 높은 고지에 올라섰으니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강씨봉 휴양림이 있는 논남기에서 7시 20분경에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 운 좋으면 계곡에 피어 있을 애기송이풀도 보고 갈 수 있을 것이다.
지대가 높으니 아직 풀들이 땅 속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모양이다. 저 아래 계곡에 비해 한 달정도 늦은 것 같다. 이제 얼레지꽃이 피고 올 여름에 필 금강초롱꽃과 동자꽃 새 싹이 이제 뾰족히 올라올 뿐이다. 능선 낮은 곳에는 노랑제비꽃이 피어 있다.
견치봉에 3시 30분 그리고 민둥산에 4시 20분 도착했다. 신로령에서 만났던 단체 팀이 쉬고 있다가 막 일어서는 참이다. 그들은 아침 8시 광덕고개에 차를 세워두고 왔기에 강씨봉 휴양림으로 내려가서 택시로 다시 광독고개로 이동할 참이라 한다.
견치봉 - 봉우리 모양이 개의 이빨처럼 생겼다 하여 개이빨산이라 부른다.
민둥산에서 바라본 화악지맥 - 모마치령에서 석룡산을 거쳐 화악산으로 이어진다.
민둥산 - 산의 모양이 밋밋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민둥산에서 도성고개까지 2.5 km 남았다.
민둥산은 산세가 펑퍼짐하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몇 해전 여름날 강씨봉 휴양림에서 이 민둥산을 거쳐 국망봉을 넘어 포천 2동으로 하산한 적이 있다. 그 때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왔는데 우거진 수풀에 긁히면서 어렵게 이 봉우리를 올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산길을 잘 정비해 놓은 덕에 산행이 편안하다. 오늘은 험한 직선코스를 버리고 길이 잘 나 있는 도성고개를 통해서 내려갈 참이다.
도성고개까지 2.5Km 남았다.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들어서 그런지 중간에 있는 작은 봉우리 두 개를 오르는 것도 조금 부담스럽다. 이제까지 큰 봉우리를 여럿 넘어왔으면서 이런 작은 봉우리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순전히 심리적인 것이다. 산행을 하려면 그 마지막 봉우리를 처음에 넘는 봉우리처럼 대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도성고개 넘어 이어지는 한북정맥 강씨봉과 멀리 청계산 그리고 흐릿하지만 웅장한 운악산이 보인다. 가평군과 포천군을 가르는 산줄기다. 가평과 포천 모두 아름다운 산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
이제 산길에 꽃들이 피어 있다. 진달래가 이제 막 피었고 금붓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뻐꾹채 새싹이 앙증맞게 돋아난다.
뒤돌아본 민둥산
오른쪽 가까이에 강씨봉 그리고 멀리 능선 위에 뾰족 튀어나온 봉우리는 청계산이고 멀리 희미하게 운악산이 보인다.
왼쪽 높은 봉우리는 귀목봉으로 한북정맥에서 벗어나 있다. 귀목봉에서 귀목고개를 거쳐 명지3봉, 연인산으로 이어진다.
금붓꽃 군락지를 만났다.
도성고개 바로 전에 있는 산길에 진달래가 만발했다.
뻐꾹채 - 국화과 뻐국채속 다년생 풀이다. 뻐꾹이가 우는 시기에 피는 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18년 6월 6일 삼도봉에서 만났던 뻐꾹채 꽃
도성고개
민둥산에서 1시간 걸려서 5시 20분 도성고개에 도착했다. 잣나무 숲 옆에 있는 널찍한 공터에 앞서 간 산행팀이 쉬고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3.5 km 만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임도 옆으로는 잣나무 숲과 물푸레나무 그리고 자작나무 숲을 조성해 놓았다. 강씨봉과 오뚜기고개로 올라가는 길과 만나는 갈림길에 오니 비로소 봄 냄새가 풍긴다. 산벚꽃이 만발해 있고 길 가에는 산괴불주머니, 홀아비꽃대 등 야생화가 피어 있다. 여기부터는 여러 번 다녀간 길이기에 눈 감고도 다닐 수 있는 곳이다.
6시 15분 강씨봉 휴양림에 도착했다. 마지막 버스시간까지 여유가 있다. 전에 보아두었던 계곡으로 들어가 애기송이풀을 찾아보았다. 아직 조금 이른 탓인지 몇 송이 밖에 피지 않았지만 내 생애 처음으로 만나는 애기송이풀 꽃을 감상하기에는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송이 버섯이 나는 8월이나 되어야 피는 송이풀과는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우선 땅에서 돋아난 잎부터 다르게 생겼다. 요즘 막 싹이 트는 양치식물인 뱀고사리와 흡사하다. 만일 산길에서 우연히 마주친다면 뱀고사리로 여기고 지나쳤을법하다. 그러나 이렇게 꽃이 피는 식물이니 양치식물은 분명 아니다. 땅에서 돋는 잎과 함께 꽃봉오락 올라와 벌어지는데 자줏빛이 도는 분홍색이다. 꽃 모양은 송이풀 꽃과 닮았다. 아랫부분에 꽃의 혀가 두 갈래로 갈라져 넓직하게 펼쳐져 있고 윗에 꽃의 뚜껑은 독수리 부리처럼 생겼다. 애기송이라 부르는 이유는 분명 키가 작아서일테지만 꽃 모양을 보면 오히려 어른스럽다.
애기송이 꽃 - 내가 처음으로 만나본 꽃
6월 중순에 설악산에서 피는 만주송이풀과 비슷하다. 잎모양이 닮았고 꽃 모양도 비슷하다. 다만 만주송이풀은 쑥 올라온 꽃대 위에 노란색으로 핀다는 점이 다르다.
지난 번에 왔을 때 많이 피어있던 깽깽이풀 꽃은 다 지고 까만 열매가 맺혔다. 늦게 나온 꽃 한 송이가 작은 바람에 바들거린다. 친구가 없어 외로운 모양이다.
깽깽이풀 - 꽃이 다 지고 늦둥이 한송이만 바람에 흔들거린다.
금붓꽃
금붓꽃도 많이 보인다. 오늘은 각시붓꽃과 금붓꽃을 실컷 보는 날이다. 이 흔한 붓꽃도 때를 못만나면 볼 수 없는 꽃이다. 뭐든지 때가 있는 법이다.
7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차 한 대가 지나가기에 손을 들었더니 젊은 청년 두 명이 타고 있다. 마스크로 일단 단단히 무장하고 목동으로 가는 길이면 태워달라 하니 선뜻 타라 한다. 친구들과 여기 팬션에 놀러왔다가 뭔가 사려고 나왔다는데 낯선 사람을 태우고 가는 것이 불편한지 큰길 만나는 곳에서 내려주고 간다. 결국 우리는 거기서 버스를 기다렸다가 논남기를 들렀다가 나오는 버스를 타고 용수동까지 올라갔다가 목동 터미널에서 환승하여 가평역으로 갔다. 별러서 한 히치가 무색하게 되었다.
가평역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저녁 삼고 9시 조금 넘어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