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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컴퓨터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차이가 점차 없어지고 있다는 설명으로 마무리되었죠. 대표적으로 맥북 프로는 15인치 이하이지만 고사양 노트북입니다.
2. 제품이 잘 팔렸지만 파산한 회사 (a.k.a. 오스본 효과)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는 1975년 등장한 ‘IBM 5100’입니다. 휴대용에 걸맞는 무게 22kg! 하지만 무게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요. 내장배터리가 없어 코드를 꽂아야만 작동하는 ‘휴대용’ 컴퓨터였습니다. 그래도 IBM 5100은 혁신적인 제품이었기 때문에, 가격은 약 1,300만 원부터 시작했습니다.
IBM 5100의 가격과 무게를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휴대용 컴퓨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1982년에서야 대중을 위한 휴대용 컴퓨터 ‘오스본(Osborne) 1′이 등장합니다. 무게는 IBM 5100보다 절반이나 가벼워진 11kg이었고, 가격도 절반 넘게 저렴한 544만 원이었죠. 물론 코드를 꽂아야만 작동하는 노트북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제품은 출시 8개월 만에 1만 1천 대가 팔리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성공에 힘입어 오스본 회사는 차기 모델을 사전 공개했죠.
오스본 회사 : 우리 회사에서 곧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니까 딴 회사 제품 사지 마세요!
소비자 : 그럼 오스본 다음 제품 나올 때까지 존버해야지!
가 되어서 오스본1도 안 팔리게 되었고, 그 결과 오스본 회사는 파산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처럼 판매 준비가 덜 된 차기작을 미리 발표하여, 현재 판매 중인 제품의 구매가 중단되게 만드는 것을 오스본 효과라고 부릅니다.
3. 전완근을 살리느냐, 시각을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진짜로 휴대할 수 있는 노트북이 등장한 건 1982년이었습니다. 앱손의 ‘HX-20′이 그 주인공이죠. HX-20은 A4용지만 한 크기에 키보드와 내장 배터리가 있었고, 드디어 진짜로 들 수 있는 무게 1.6kg이었죠.
하지만 동시대 다른 제품에 비해서 성능이 안 좋았고, 자체 OS를 가지고 있어 소프트웨어나 주변기기 호환성이 최악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니터의 상태가…?! 가로로 20자 4줄, 그러니까 총 80자만 출력 가능한 모니터를 가지고 있었죠. 그래도, 지금과 비교해도 양호한 무게와 크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극찬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출시된 ‘컴팩 포터블(Compaq Portable)’은 HX-20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가진 노트북이었습니다. 9인치 CRT 모니터와 인텔 8088 CPU, CGA 그래픽카드도 탑재되어 있었죠. 무엇보다 당시 PC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어 부품 호환성이 좋았고, MS-DOS도 탑재했죠. 아, 물론 무게는 13kg이었습니다…
이처럼 당시 소비자들은 시각을 포기할지, 전완근을 포기할지 고민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1985년 이들의 고민을 한큐에 날려버린 제품이 출시되었으니, 바로 도시바의 ‘T1100′이었습니다.
이 제품은 드디어 노트북다운 노트북이었습니다. 화면을 접을 수 있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고, 전완근을 적당히 단련시켜줄 무게 4kg, 512kb 램을 가지고 있었죠. 덕분에 490만원이라는 다소 비싼 가격에도 반년 만에 6000대가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4. 대기업의 고군분투기
도시바의 성공을 보고 PC 시장의 강자 애플과 IBM도 노트북 시장을 눈독 들이기 시작하는데요. 1986년 IBM에서 ‘PC 컴버터블(Compatible)’을 출시하죠. 무엇보다 이 노트북에는 혁신적인 기능이 있었는데요, 노트북의 모니터를 분리해서 본체를 다른 모니터에 연결할 수 있는 기능이었죠. 오늘날 도킹 스테이션의 원조라고 볼 수 있겠죠.
1989년에는 애플의 첫 노트북인 ‘매킨토시 포터블’이 출시됩니다. 애플다운 가격 1,500만 원과 7kg이라는 무게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출시 1년 만에 단종됐습니다.
애플이 다시 정신 차리고 만든 게 ‘파워북 100’인데요. 250만 원이라는 가성비(?!), 트랙볼이 키보드 하단에 위치한 최초의 노트북이기도 하죠.
1992년에는 IBM에서 ‘씽크패드(ThinkPad) 700′를 출시합니다. 이 씽크패드 700에는 내장 카메라 탑재, 그리고 씽크패드의 상징인 ‘빨콩’ 트랙 포인트도 이때부터 들어있었죠.
씽크패드는 안정적인 시스템과 성능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고가였기 때문에 매출은 좋지 못했습니다. 결국 2005년 IBM은 씽크패드를 2005년 레노버에 매각하죠.
5. 크기를 줄이고, 성능도 줄이고
노트북은 점차 작아지고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1996년에는 A4용지 1/3 크기에 840g짜리의 컴퓨터가 등장합니다. 바로 도시바의 ‘리브레또 20’이었죠. 리브레또 20은 당시 PDA보다도 작았지만 윈도우 95가 돌아가는 기기였습니다. 게다가 PDA의 자판은 누르기도 힘들고 인식도 잘 안 되잖아요? 그런 걸 생각해 보면 확실히 혁신적인 제품이었습니다.
이 제품은 특히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철에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리브레또 20처럼 7인치 이하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x86 호환 PC를 UMPC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여러가지 UMPC 제품이 나왔지만, 2008년 넷북이 유행하면서 멸종하게 됩니다.
넷북은 인텔의 저전력 CPU인 아톰 프로세서를 사용한 노트북입니다. 싸고 가볍다는 특징이 있죠. 2007년 ASUS에서 출시된 Eee PC의 흥행을 시작으로 여러 제조사에서 넷북을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넷북은 단가를 낮추기 위해 성능이 대폭 낮춘 제품이었기 때문에 간단한 문서 작업이나 웹서핑밖에 할 수 없었죠. 물론 당시는 유튜브도 없던 시대이기 때문에 낮은 사양으로도 충분한 수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스티브 잡스가 서류 봉투에서 노트북을 꺼내 드는데.. 바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맥북 에어’ 의 등장이었죠. 이후로 넷북은 멸종하고, 저전력 CPU를 탑재해 얇은 울트라북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맥북 에어가 울트라북 시대를 열었지만 정작 울트라북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울트라북은 인텔에서 만든 구분인데, 애플 제품은 인텔의 인증을 굳이 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울트라북은 Windows가 돌아가는 맥북 에어다. 인텔 빼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얇으면서도 고성능인 노트북이 다수 등장하고 있습니다. 울트라북의 구분도 모호해지고 있죠. 특히 애플의 M1 칩의 등장하면서, 구분이 더 이상 의미 없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애플만세)
– 나의 Macbook Pro에서 보냄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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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