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고생의 발단 : 엄마의 생신이 다가온다
지난 일요일은 친정엄마의 생신이었답니다.
엄마 생신상을 제대로 차려드린 적 없는 못난 딸로 30년을 넘게 지냈는데
올해는 생일떡이라도 제대로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그 어렵다는... 석탄병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1. 석탄병은 어떤 떡인가?
석탄병(惜呑餠)은 한자로 "아껴 삼키는 떡", 즉 '삼키기 아까운 떡'이라는 뜻으로
정말이지 엄청 맛있어서 아껴 먹었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떡이랍니다.
옛날 임금님 생신상에도 올라갔다고도 하고,
만들기가 하도 힘들어서 이런 이름과 유래가 붙었나 싶기도 한 떡입니다.
심지어..파는 곳도 거의 없어서 맛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떡......석탄병....
석탄병을 만들 때는
말린 감을 가루내어 멥쌀가루와 섞어 떡을 하는 것이 주요 포인트이며,
고물은 녹두를 사용합니다.
하아.... 여기서부터 벌써 고생길이 보입니다.
껍질 벗기기 힘든 녹두와, 한참 말려도 끈적거리는 감을 가루내어 해야 하다니.
자, 그래도 마음먹었으니 일단 해봅시다.
재료
녹두 한 컵
멥쌀가루 다섯 컵
감가루 한 컵
설탕 반 컵
꿀 다섯숟가락
감귤잼 3분의 1컵 (원래는 유자청을 써야 함)
아몬드가루 3분의 1컵 (원래는 잣을 써야 함)
호박씨 한줌
만드는 시간 : 녹두 불리는 시간까지 5시간, 노동 시간 3시간
2. 고생길의 시작 : 녹두로 고물 만들기
녹두는 팥과 달리, 고물을 낼 때 껍질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녹두를 한 두시간은...물에 불려놨다가 껍질을 손으로 벗겨야 했습니다.
박피가 된 녹두를 샀는데도, 껍질이 나오고..또 나오고... 또 나오고...!!
녹두 껍질은, 물에 불린 녹두를 물에 담가서 손으로 문질러가며 벗깁니다.
그리고 물을 체에 받치며 껍질을 조금 버리고, 버리고 하는 식으로 해요.
이 과정에서 1시간을 소요했습니다.
물을 버리면서 하면 아까우니까, 물은 체 밑에 큰 샐러드볼에 받아가며
재활용해가면서 했답니다.
헉헉... 녹두껍질 벗기기가 1시간에 걸쳐서 끝났습니다.
진작부터 물을 끓여놓은 찜솥에, 면보를 깔고 녹두를 깔아놓습니다.
중간중간 구멍을 만들어 김이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줍니다.
이렇게, 20분은 푹~ 쪄줍니다.
3. 고생길 두번째 : 감 가루 내기
녹두가 쪄지는 동간 감가루를 내야 합니다.
다행히 시어머니가 주신 말린 감이 있어서 얘로 시도합니다.
상온에 두었더니 하얗게 설탕가루가 앉았습니다.
제법 바짝 말랐지만, 먹어보니 살짝 말랑해서 잘 갈릴지... 벌써부터 걱정이네요.
사실, 석탄병을 만들고자 마음먹었을 때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
바로 요 말린 감가루가 제대로 나오느냐 하는 거였답니다.
안에 씨앗은 모조리 빼주면서 말린 감을 손질합니다.
감가루 내기는 절대 믹서기로는 안되고, 푸드 프로세서 정도 되는
힘 좋은 도구가 있어야 가능하답니다.
따라하실 분은 웬만해서는.... 감 가루를 사서 하시길 바라요.
혹은, 감 가루 대신에 홍시를 넣어도 됩니다.
하지만, 만들어서 하면 더 맛있긴 하답니다.
감 알갱이가 씹히면서 달달한 맛이 나는데,
이건 정말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맛이더라구요!!
아무리 푸드프로세서라지만 대충 씨만 빼서
넣으면 가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것이기에
이렇게..다지듯이 썰어줍니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것이 아마 전체 말린 감 중
5분의 1 정도 작업했을 때 일거에요.
물론 떡에는 이정도만 넣어도 되지만,
미리 감을 가루내어 놨다가 다음에도 해먹겠다는
용감한(?)생각으로 작업을 한번에 다 했습니다.
이제 푸드 프로세서에 넣고 갈아줍니다.
너만...믿는다...!!!
푸드 프로세서로 아무리 갈아도 이정도가 한계였습니다.
일단은, 체에 걸러서 최대한 부드러운 부분만 먼저 씁니다.
하지만, 사실 그냥 먹어도 되기 때문에
굵은 부분이 들어가도 그 나름의 맛이 있답니다.
4. 이제 힘든 건 거의 끝!! : 떡가루 만들기
이제 반죽할 시간입니다.
귤잼과 감가루, 꿀, 그리고 설탕과 아몬드가루를 넣어 설설 저어 반죽합니다.
덩어리가 많이 지기 때문에, 찌기 전에 한 번 체에 걸러 곱게 해줘야 해요.
물을 주면서, 어느정도 뭉쳐지면... 찔 준비가 끝난거랍니다.
원래는 아몬드 가루 대신 잣을 가루내어 기름을 빼고,
밤도 저며 넣어야 하지만... 그것까지 할 힘과 용기(?)는 없었기에
있는 재료로 타협했답니다...
그리고 귤잼도 유자청 대신 넣었는데, 유자청을
다져서(!)넣어야 하지만... 유기농 귤잼으로도
훌륭한 맛을 낼 수 있었습니다...!!
5. 시간이 없다! 찜솥만 믿는다!!!
바로 완성 사진으로 넘어갑니다.
이때쯤, 시간이 부족해서 사진을 많이 못 찍었기 때문이에요.
와중에 물이 부족해서 찜솥이 조금 탔지만..
다행히 떡은 잘 쪄졌답니다.
바닥이 뚫리는 틀이 있어서 면보 위에 틀을 놓고, 녹두-떡가루-녹두-떡가루-녹두 순으로 쌓아
사진처럼 완성해주었습니다.
녹두 고물도 원래는 체에 내려야 했지만...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에
중간중간 덩어리진걸 썼습니다 ㅠㅠ
녹두고물은 다 쪄졌을 때 한김 식히고, 소금으로 가볍게 간을 해서
주걱이나 손으로 꾹꾹 눌러주면 쉽게 소가 만들어진답니다.
호박씨와 감가루로 하트모양을 만들어, 떡을 완성했어요.
6. 믿을 수 없는 완성 : 생각보다 괜찮다!
멥쌀가루와 감가루로 만든 석탄병은 마치 케이크와 떡
중간 맛이 난답니다.
덜익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게 다 익은거랍니다.
먹어보면 이게 떡이야? 케이크야?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입안에 감도는 감의 향과 달달함, 그리고 부드러움에
자꾸만 먹게 될거에요.
태어나서 떡을... 아마 세 번째로 만들어본 것 같은데
이번에는 떡다운 떡을 만든 것 같아요.
참고로 재료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떡가루와 녹두고물이 많이 남아버려
떡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또 한번 만들었어요.
친구를 위해 용기에 담은 석탄병의 모습!
이번에 만들 때는 찹쌀가루를 섞어 조금 쫀득한 맛을 더했어요.
네모난 틀이 없어서 이번에도 네모모양 틀에 쪄서
잘라서 용기에 넣었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친구를 위해
꽃길만을 걸으라는 마음으로 호박씨로 장식했어요.
잘라낸 부분은 저와 신랑이 맛나게 먹고 있답니다.
대접하기 참 좋은 정성담긴 떡이지만
만드는게 정말이지 엄청난 고행인....
하지만, 저는 이 떡을 또 만들어서 먹어야 합니다.
냉동실에...감가루가 너무 많이 남았기 때문이죠.
이제 녹두고물만 만들면 되니까, 뭐 그렇게 힘들지 않겠죠..?
가장 다행인 점은, 엄마랑 아빠 모두 떡케이크를 좋아해주었다는 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부족한 면이 있지만
제가 3시간 걸려서 만들었다니 기특하셨나봐요.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철없는 딸내미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마음을 전할 수 있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