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색 치마저고리
신금철
청신한 유월의 제주 사려니 숲길이 아른거린다. 남편도 잠이 안 오는 지 뒤척인다. 불을 켜고 꼼꼼하게 작성한 여행 지도를 들여다보며 함께 설렌다.
아들 삼형제와 세 며느리들이 어미의 일흔 번째 생일을 맞아 특별히 준비한 여행이다. 제주도 여행을 할 때마다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L호텔과 고급 렌터카를 예약해 놓고 용돈까지 두둑하게 받았으니 설렐 수밖에….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설레지만 제주여행엔 즐거움뿐 아니라 아픈 추억까지 따라다닌다.
나는 중학교에서 대학까지 수학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스스로 수학여행을 포기했다. 여행의 설렘으로 들떠있던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내 것이 아니려니 외면했다. 어려서부터 철이 좀 들었나보다.
대학 때에는 제주여행을 위해 등록금과 함께 예치되었던 여행비를 환불받아 어머니의 치마저고리를 해드렸다. 친구네 포목점에서 감색 천을 떠다 바느질집에 맡겨 한복을 지어 어머니께 입혀드리던 날,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마도 평생 입어보지 못하셨던 구김 안가는 고급 한복을 입으시는 기쁨보다는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눈물이었을 게다.
나는 하얀 동정을 단 감색 한복을 입으신 어머니를 보며 수학여행의 즐거움보다 몇 배나 더 큰 기쁨을 맛보며 뿌듯했다. 어머니의 자태는 너무나 고우셨다. 긴 머리를 가지런히 올리고 좁은 어깨와 아담한 키에 한복이 너무나 잘 어울리셨다.
어머니는 감색 치마저고리를 입으실 때마다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셨다. 내 결혼식에도 새 한복을 맞춰 입으시지 않고 감색 치마저고리를 입으셨다. 어머니는 딸의 제주여행과 바꾼 한복을 아끼시느라 외출하실 때에만 입으시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옷장에 고이 간직하셨다. 제주여행을 갈 때마다 함께 떠오르는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이다.
한겻이 지난 제주공항엔 비꽃이 떨어지고 있었다. 익숙하게 운전하는 남편 곁에서 나는 행복에 젖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이 보내준 여행의 뿌듯함에 빠졌다. 믿음직한 가이드인 남편과 사려니 숲으로, 절물 휴양지로, 안덕 계곡으로 함께 손잡고 제주의 유명한 볼거리를 즐겼다. 편안한 잠자리, 맛있는 음식, 사진작가인 남편 덕분에 신혼여행 온 부부처럼 멋진 사진도 마음껏 찍었다.
카멜리아힐의 수국축제장이다. 수국은 꽃송이가 소담스러워 포근한 아름다움을 안겨준다. 색깔에 따라 꽃말도 다양하다. 보라색 수국 앞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휠체어에 앉은 꽃무늬 모자를 쓴 노인과 딸처럼 보이는 중년 여인이 꽃에 묻혀 대화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보라색 수국의 꽃말은 진심이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진심어린 딸의 모습이 수국보다 아름답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자주 모시고 다니지 못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직장생활로 바빠서, 퇴직 후에는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다는 이유로 함께 여행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제주여행을 보내드린 건 결혼 후였다. 시어머님과 어머니는 동갑이시다. 시어머니께서는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많이 생각해주셨다. 그래서 시어머니 친구 분들과 여행을 하실 때마다 두 어머니를 항상 함께 보내드렸다. 행여 의견이 맞지 않아 불편한 일이 생길까 염려했지만 두 분은 사이좋게 잘 다녀오셨다. 차멀미를 하시는 어머니를 잘 챙겨드리신 시어머님이 너무도 감사했다.
제주에 취해 행복하기만 했던 마음이 무너진다. 가족과 함께 조촐하게 치른 내 칠순 기념식장에서의 며느리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어머니는 아들을 셋이나 낳아 훌륭하게 기르셨으니 훈장을 받으셔도 돼요.”
며느리의 칭찬에 우쭐했던 마음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세 녀석을 낳기만 했지 그 녀석들을 정성껏 키우신 건 어머니다. 동네 어른들에게 아들도 아닌 딸을 대학까지 보내느라 고생하느냐고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나를 위해 고초만상苦楚萬狀을 겪으신 어머니는 손자 셋까지 키우시느라 평생 고생만 하셨다. 요즘처럼 아이 키우기 힘든 때에 개구쟁이 손주를 셋이나 키워내셨으니 진정 훈장을 받으시고도 남을 분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훈장은커녕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드린 적이 없으니 나는 자식으로서 영점이다.
나는 어머니의 전부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키운 손자들에게 대접을 받고 살고 있는 나는 너무도 염치없는 자식이다. 퇴직 후에 손자 손녀를 키우며 어머니가 얼마나 힘이 드셨는지를 알았다. 어머니는 나의 전부가 아니셨나 보다.
칠순 잔칫날 손자 손녀에게 귀한 상장을 받았다.
“예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손자 손녀가 상장을 읽을 때 나는 가슴이 찡했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에 그런 이벤트라도 해서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후회와 반성의 아픈 순간이었다.
휠체어를 미는 여자가 부럽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어머니, 흐드러진 화려한 보라색 수국 밑에 소곳소곳 고개 숙인 풀꽃 하나가 어머니처럼 숨어있다. 어머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숨은 꽃으로 조용히 살다 가신 분이다. 세상의 어머니가 다 그렇겠지만 나의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보다도 더 모성애가 대단한 분이시다.
파슬 거리던 해변 모래밭에 잔잔한 파도가 촉촉이 스며든다. 수평선 위로 아름다운 잔광殘光에 감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발걸음을 멈추었던 제주의 푸른 바다에 어머니의 조용한 미소를 남기고 나는 제주를 떠났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친정엄마를 떠올릴때마다 왜 이리 가슴이 먹먹하고 저려오는지...
아마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 표현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아닐까 합니다.
어머니에게 선생님이 해드린 감색 치마저고리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을 것 같습니다.
가슴찡한 작품 잘 읽었습니다.
김순옥 선생님
공감해주셔서 마음의 위로가 됩니다.
어머니는 늘 그리움입니다.
감사합니다.
변종호 회장님,
회원들 일일이 챙기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어머니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저미곤 합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회장님.
어머니를 생각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글 곳곳에 녹아있네요. 저도 얼마전 제주 카켈리아 언덕에서 동백꽃처럼 져버린 어머니를 생각했어요. 가슴 뭉쿨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임미옥 선생님
박종희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