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D-1일째 오후. 일단 짐 보따리를 번개같이 싸고 기대 부풀어 차 시동을 걸면서 마누라한테 전화를 하니, 집에 아무도 살지를 않은지 오래 전이라 에어컨이 고장난지도 몰랐고 수리기사한테 전화를 하니 지금은 아는 체 하지 말고 반달쯤 지나서 아는 체를 해 달라는 전갈을 접수.
그런 줄 예전부터 알았지만, 잴 것도 따질 것도 없는 세상이다. 이런 경우 내 계산은 더욱 빨라진다. 내가 휴가면 위대하신 대도시 사람들은 반달 전부터 휴가기간이고, 그거 하나만으로도 8월 중순까지는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으로 가는 모든 도로, 해외로 나가는 하늘길도 다 밀려터진다는 사실은 안 봐도 비디오다.
한잔 먹고 세상 따위는 다 잊고 푹 잤다. 늦잠을 허리 뻣뻣할 때까지 잤으나, 여기가 지옥일까싶어 깨어보니 어제 그 자리의 아침 7시다. 간만에 아이들과 해수욕을 꿈꿨으나 머리 클 대로 다 커버린 아이들이라는 것은 기초적으로 지 애비랑 노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 어려운 국가기밀을 어떻게 잘 아느냐고?
그 썩을 국가기밀은 내가 내 아버지께 늘 애용하던 것이었으니, 그거 모른다면 인간도 아니지. 자식새끼는 내 품에 있을 때나 내 자식이지. 벗어나면 옆집 똥개도 아니다. 자식 뿐만이 아니라 다 그렇다. 영원한 내 것이란 것조차도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고 단지 현실의 배가 고프다.
그러나 이런 것도 걱정거리가 아니다. 다들 퇴직해서 하고픈 첫 번째 직업이 식당이니, 세상엔 발에 밟히는 게 식당이고, 굶어 죽고 싶어도 그러기 힘든 것이 요즘 세상이다. 잠깐 짧아터진 생각에 어디 콧바람을 쐬고 싶었으나, 한 생각 넘어가니 이런 극한의 더위 속에서 땡볕 아래 어디로 간다는 것은, 거기가 무릉도원이래도 그 자체가 지옥을 자진해서 싸 짊어지는 것 자체일 테니,
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듯 그 스스로 시답잖다. 다만 내가 취미가 크게 없고 그 나마 오랜 시간 조석으로 운동하는 취미는 있으니, 그거나 하며 세월 보낼 일이다. 노니 시간은 잘 간다. 벌써 사흘이 지나 나흘째다. 생각해 보니 언젠가부터 어디 가고 싶은 곳도 없어졌고, 머리는 일 아니면 항상 진즉에 하얗게 비워져있다.
그리고 일 없으면 세상에 대한 일체의 호응 없이 생존에 관한 몇 가지에만 반응하며, 나머지에는 일체의 대꾸도 하지 않는다. 조금 더운 것이 좋아 에어컨 온도를 30도에 맞춰놓고 어두워도 불 끄고 청소, 빨래하다가 지치면 자고,
자는 게 힘들면 깨어나서 유유자적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다. 휴가 D+4. 더운데 아이들은 잘 있을까? 가끔 글을 읽다가 도면 많이 본 눈이 통증을 호소하면, 눈 감고 누워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본다. 만져보니 안전화에 발가락 끝이 다 닳아 뭉툭해졌다.
애틋한 그 마음에서 너의 꿈을 깨라. 아무리 세상에 그랬어도, 그리하여 너 아무리 이 세상에 너의 마음에 둔 고향이 많아도, 그 피곤한 육신 누일 너의 고향은 저렇듯 저 스스로 소멸하는 것이니, 나는 없는 그 고향에 다시는 가지 못할 것이다. - 音 엔리코 라바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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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나이에 해수욕장에 가는것은 그렇더라도
마나님과 계곡에 가서 발이라도 담그고 올것이지
왜그리 재미없게 사슈~ㅎ
조금더 있으면 가고싶어도
못갈텐데. 더위에 건강도 잘 챙기길 바래요.
좀 더 있으면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지금이 바로 그 시기네.ㅎㅎ 인자 운전하기도 귀찮고 운전하면 잠 오거나 끼어드는 시키들 때문에 짜증 만발이고
그래도 부득부득 가 봐야 온 바다 온 계곡에 물 보다 사람이 많아 쉬는 게 아니라 피곤의 연속이라서 휴가 갔다오면 도로 몸살 안 나면 다행이지.
인자는 저 모든 게 다 귀찮고 부질없어. 그저 지금 내 능력에 가능한 몇 개의 최선, 나 혼자 열심히 일하고, 저녁엔 술이나 한 잔하고, 깨어나면 그 즉시 운동이나 한두 시간하면 그것이 현재 내 인생 최고의 모습이지.
공수레 공수거인것을.
정말 잼읍게 사네
오랜만에 집에 갔으면 마눌과 여행도 하고 맛난것도 먹고 던 벌어서 가지고 갈것도 아닌디. 아는 지인은 안먹고 안입고 안쓰고
던만 벌드니만.
몸이 아파 동네병원 다니다 안나아서 서울 큰병원에 갔더니 암 말기 수술도 안해주고
항암도 안 맞춰주고
집으로 그냥 가라고.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그 던은 누가 쓸고...
돈도 귀찮고 인간도 귀찮고 그저 일해서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는 자부심과 내가 이 세상에 항상 소중한 곳에 잘 쓰여 무엇을 보람있게 만드는 그것이 좋을 뿐,
이것은 내가 본 것이지만, 죽는 것은 병으로 죽으나 내 외할매처럼 그냥 자연사로 돌아가시나 하등의 차이 없이 다 똑같이 피할 수 없이 고통스러울 뿐이네.
그것이 당도하기 전에 이 세상 충분히 만끽하고 최선 다해 살고 틈틈히 운동해서 그것을 수행할 내 몸을 강하게 해 주는 그것이 오로지 중요할 뿐, 나머지 걱정해 봐야 해결될 사안 아닌 것은, 에라 만수~ 저절로 흐르게 버려두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