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소박하고 아름다운 성지 - 대안리 공소
<대안리공소-우측면>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승안동길 216 (대안리 664)에 있는 대안리(大安里) 공소는 아담하고 정겨운 자그마한 한옥이다. 22평(73.92㎡) 여섯 칸의 이 건물은 외관도 주변 경치와 어울려 아름답지만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성전의 마루바닥에서 제단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느낌이 확연해진다. 이 집을 지은 뮈텔(Mutel 閔德孝 1854~1933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이 건물을 ‘진짜 성당’이라고 했다는데, 천국에 가서 하느님으로부터 ‘내 집을 참 잘 지었다, 수고했다.’고 칭찬 받았을 것이다. 이 건물은 원 공소 건물이 멸실된 뒤 1900~1906년 사이에 새로 세워진 것이다. <원주교구 홈페이지>
<대안리공소- 좌측면>
대안리공소는 1892년께 설립되었다. 이 시골 마을에 그토록 일찍 공소가 설립된 까닭은 대안리 일대가 그 이전부터 교우촌이었는데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근처 덕가산에 숨어들어 살다가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이 마을로 내려와 교우촌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1887년 5월 한불조약(韓佛條約)으로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당시 서울교구장 뮈텔 주교는, 안변(安邊)에서 전교하던 파리 외방전교회원 르 메르(Le Merre, 이유사 李類斯) 신부를 풍수원에 파견, 본당을 창설하고 초대(1886∼1896년) 본당신부로 임명하였다. 당시 관할지역은 12개 군(郡) 29개 공소로 신자 수는 약 2,000명에 달하였다. 르 메르 신부가 1892년 대안리공소를 지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로서는 그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공소 정면과 성모동산>
뮈텔 주교가 지은 현존 건물도 당초에는 지금의 절반 정도의 초가집이었다. 이후 1950년대에 지붕을 기와로 개조하였다가 나무 기둥에 흙으로 만든 벽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여 다시 초가로 삼았고, 1970년대에 슬레이트로 바꾸었다. <원동 100년사, 1999)
<드러난 서까래와 마루바닥이 정겨운 성전>
성전 내부는 회중석과 제단으로 구성된 강당, 제의실, 주 출입구의 전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의실 출입문 앞쪽에 고해를 위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제대 뒤편에는 제대와 연결된 사제 방이 따로 있다. 과거 일 년에 두 번 판공성사를 주러 오는 사제가 묵는 곳이었다.
<제단과, 대들보에 쓰여진 경천애인 -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대들보에는 전서체(篆書體)로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예수께서 율법 전체를 ‘경천애인’으로 환원시켰다(가톨릭사전)라는 해석을 따른 것이리라.
<성모동산의 마리아와 아기 예수 상 :
한복을 입은 모습이 공소 건물과 제대로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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