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서역으로 가는 비단길(장건)
흉노 공략을 발단으로 한나라와 서방 제국과의 교섭이 시작되었다. 이 때
서방의 길을 개척한 것이 장건이다.
한나라의 하급 관리에 불과했던 장건은 흉노족에게 사로잡혀 있던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귀중한 자료를 모아 후에 본국으로 들고 왔다. 이 보고 자료에 의해서
무제의 세계를 향한 꿈은 피어났고, 그 꿈은 차례차례로 장건의 후계자를 낳았다.
그러나 이 후계자들의 실태는 어떠했는가?
13년 만에 귀국한 장건
서방에 관한 지식은 장건에 의해 처음으로 전해졌다.
장건은 한중 지방 출신으로 낭(하급 관리)이 된 인물이다.
당시 무제는 흉노의 투항자들에게서 여러 가지 정보를 캐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흉노는 월지의 왕을 쳐부수고 그 왕의 두 개골로
술잔을 삼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월지는 서쪽으로 도주했으며, 흉노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적개심과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으나, 협력해서 흉노를 공격할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때마침 흉노를 격멸하고자 기도하고 있던 한나라 조정에서도 이 정보를
바탕으로 월지와 손을 잡기 위해서 사자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한나라와 월지 중간에는 흉노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의 사자는
흉노의 세력권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그 중임을
완수할 인물을 모집하기로 했다. 이때 스스로 응모해 월지로 가는 사자로
발탁되었던 사람이 바로 장건이었다.
사자가 된 장건은 흉노인 감보라는 사람을 데리고 출발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행은 영내를 통과하다 잡혀서, 선우에게 압송되게 되었다.
선우는 장건을 구속하고 이렇게 문책했다.
"월지국이라면 우리 나라보다도 북쪽에 있지 않은가. 네가 월지에 도착할 길은
없다. 가령 내가 월나라로 사자를 보냈다면 한나라에서 잠자코 보내 주겠는가."
이리하여 장건은 흉노에 의해 10여 년간 갇혀 살면서, 거기에서 아내도 얻고
아이도 키우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한나라 사자임을 나타내는 황제는 부절을 언제나 몸에 지니고
있었다.
흉노에서 오래 살게 됨에 따라 장건은 서서히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 드디어는 야음을 틈타서 일행을 데리고 월지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일행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길을 걸어서 수십 일 후에 대원 지역(중앙 아시아)에
도착했다.
그런데 대원은 한나라의 강력한 힘과 풍부한 물자 소식을 전해 듣고 전부터
한나라와의 통상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대원에서는 장건 일동의
도착을 환영했다. 그리고는 대원의 왕이 장건에게 물었다.
"우리 나라에 잘 와 주셨소. 그래, 일행은 대체 어디까지 가실 예정이오."
이에 장건은 말했다.
"우리들은 한나라를 받들고 월지로 가는 길입니다. 불행히도 흉노에게 잡히어
뜻하지 않게 세월을 허송하다가 겨우 도망쳐 오는 길입니다.
왕이시여, 저를 월지까지 보내 주실 분이 계시다면 오로지 당신뿐입니다. 제가
월지로 갔다가 무사히 귀환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나라는 대왕에게 엄청난
예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이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장건 일행에게 안내와 통역을 붙여서 보내 주었다.
일행은 우선 강거(키르키즈 지방)에 도착했고, 이어서 강거 지방 주민의
도움으로 대월지 (우즈베크 지방)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들에게 있어 한나라는 너무도 멀었다. 그러므로 협력해서 흉노를
보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일행은 이 나라에서 1년 남짓 머문 끝에 귀로에 올라 강족의 영토를 통과할
무렵 또다시 흉노에게 잡혔다.
그런데 이 땅에서 거의 1년 동안 머무는 중에 선우가 죽고 좌곡려 왕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왕이 되었다.
이 혼란을 틈타서 장건과 흉노인 아내는 한나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드디어 조국을 떠난 지 십 년이 넘어 장건은 귀국할 수 있었다.
한나라 왕은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장건 일행을 환영하고 장건은 태중대부로
승진하였다.
장건은 체력이 좋고 관대하여 신의가 두터운 인물이었다. 그 인품의 덕으로
그는 이국 사람에게도 호감을 샀다. 또한 감보는 흉노 출신으로 궁술에 능하여
식량이 떨어졌을 때에는 짐승을 잡아서 굶주림을 면했다.
한나라를 출발할 때, 장건 일행은 백 명 이상이나 되는 부대였으나 13년이
지나서 귀환한 자는 이 두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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