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ver.me/xZGYntuv
드라이아이스-결혼기념일/민소연<2023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감상 홍정식)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짙은 약속을 얼떨결에 움켜쥐었을 때
새끼손가락 끝에 검붉은 피가 모였을 때
치밀한 혀를 가지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어떤 밤엔 마침내 혀를 쓰지 않고도 사랑을 발음했다
맺혔던 울음소리가 몇 방울 떨어지고
태어나고
수도꼭지를 끝까지 잠갔다
한밤중엔 그런 소리들에 놀라서 문을 닫았다
너무 규칙적인 것은 무서웠다 치열하게
몸을 움직이는 초침 소리나
몸을 웅크린 채 맹목적으로 내쉬는 너의 숨소리가 그랬다
거듭 부풀어 오르는 뒷모습을 보면서 호흡을 뱉었다
어쩌면 함께 닳고 있는 것 같았다
박자에 맞춰 피어오르는 게 있었다 입김처럼
희뿌옇고 서늘했다
숨을 삼키다 체한 밤이면 너를 깨웠다
내기를 하자고 했다
누가 더 먼저 없어질 것 같은지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보자고 했다 너와 나는 모두
내가 먼저일 거라는 결론을 내려서
우리는 오래도록 같은 편이 되었다
내가 죽은 척을 하면 너는 나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등 뒤에서 각자의 깍지를 움켜쥐었다
영원한 타인에 대해 생각했다
손끝에 짙은 피가 뭉치면
동시에 숨을 전부 내쉬었다
품 안에서 녹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살갗이 들러붙었다.
출처: 세계일보(www.segye.com)
-------------------------------------------------------------
드라이아이스
-결혼기념일
드라이아이스, 참으로 희한한 말입니다. 드라이(dry)는 마른, 아이스(ice)는 얼음인데요. 양립할 수 없는 말인데 같이 함께 쓰입니다. 제목을 잘 읽고 나면 그다음부터 시가 술술 풀리는 경우가 있지요. 드라이아이스 밑에 부제로 –결혼기념일을 달았군요. 함께 할 수 없는 둘이 하나가 되어서 결혼 기념을 맞이했군요. 자, 살펴볼까요?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짙은 약속을 얼떨결에 움켜쥐었을 때
새끼손가락 끝에 검붉은 피가 모였을 때
치밀한 혀를 가지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어떤 밤엔 마침내 혀를 쓰지 않고도 사랑을 발음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 함께하겠습니까?라는 주례 선생님의 질문에 크게 '예'라고 대답한 기억이 있습니다. ‘짙은 약속’은 ‘검붉은 피’처럼 끈끈하기도 하지만 순환이 안 되는 경우가 있지요. 시인은 ‘속박’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치밀한 혀’는 흐트러짐 없는 결혼생활에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한다고 하는 거죠.
맺혔던 울음소리가 몇 방울 떨어지고
태어나고
‘맺혔던 울음소리가 몇 방울 떨어지고 태어나고’ 분명히 주어와 동사가 서술되어 있는데도 주어가 없는 문장 같습니다. ‘나의 결혼 생활이 힘들었으나 아이는 태어났다’일까요? 그냥 울음소리도 아니고 ‘맺혔던 울음소리’는 참고 참고 또 참았던 눈물입니다. 결혼 생활이 순탄할 리가 있나요? 그래도 아이는 태어나죠.
수도꼭지를 끝까지 잠갔다
한밤중엔 그런 소리들에 놀라서 문을 닫았다
너무 규칙적인 것은 무서웠다 치열하게
몸을 움직이는 초침 소리나
몸을 웅크린 채 맹목적으로 내쉬는 너의 숨소리가 그랬다
이젠 강박증이 생겼군요.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 재깍재깍 시계 소리, 지지직 형광등 소리 이런 소리가 거슬립니다. 결국 거슬리는 건 당신이었군요.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당신의 숨소리 말이죠.
거듭 부풀어 오르는 뒷모습을 보면서 호흡을 뱉었다
어쩌면 함께 닳고 있는 것 같았다
박자에 맞춰 피어오르는 게 있었다 입김처럼
희뿌옇고 서늘했다
이 시는 드라이아이스에 관한 시라는 걸 지금까지 까먹었네요. 드라이아이스는 입김처럼 희뿌옇고 서늘하게 닳고 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지금 닳아가고 있어요. 마주 보는 게 아니라 뒷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숨을 삼키다 체한 밤이면 너를 깨웠다
내기를 하자고 했다
누가 더 먼저 없어질 것 같은지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보자고 했다 너와 나는 모두
내가 먼저일 거라는 결론을 내려서
‘숨을 삼키는’ 행위는 ‘참는다’라는 의미죠. 참다가 참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당신을 깨웠어요. 누가 먼저 죽을까? 그런데 서로가 서로가 먼저라고 하는군요. 이 부부 오래도록 같이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래도록 같은 편이 되었다
내가 죽은 척을 하면 너는 나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등 뒤에서 각자의 깍지를 움켜쥐었다
영원한 타인에 대해 생각했다
손끝에 짙은 피가 뭉치면
동시에 숨을 전부 내쉬었다
두 사람은 오래도록 같이 살았습니다. 서로가 죽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 되면 돌아보며 끌어안기도 했지만 등 뒤에서 자신의 깍지만 움켜쥐었습니다. 같이 하고픈 마음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서로에게 말이죠. 영원한 타인처럼. 부부가 영원한 타인처럼 보이면, 아, 힘들 것 같아요.
품 안에서 녹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살갗이 들러붙었다.
드라이아이스는 품 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손대면 화상을 입어요. 살갗이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드라이아이스 같은 존재일까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드라이아이스가 가진 물리적 속성과 사랑의 제도적 결실인 결혼의 상징적 속성을 연동하면서 펼쳐낸 희뿌옇고 서늘한 감각이 탁월하게 다가왔다."라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면 들러붙어서 서로에게 짐이 되고 상처가 되는, 그러나 같이 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므로 그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이 상충하는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혼기념일이 기뻐야 할 텐데요~ 시의 감상은 저만의 감상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에이, 저건 저런 의미가 아닌데~'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당연합니다. 시인의 손을 떠나면 시는 독자의 것이듯, 이 감상문도 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 되니까요.
https://brunch.co.kr/@withhamin/163
'치밀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1. 자세하고 꼼꼼하다. 치밀한 계획 2. 아주 곱고 촘촘하다. 무늬가 치밀하다
치밀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 단어가 참 매 력적인 속성을 가졌구나 생각하게 된다. 눈으로 감각할 수 있으면서도 추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시어로 쓰기에 굉장히 적합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본문 중에 쓰인 이 단어처럼 치밀하게 쓰인 시 한 편 을 감상한 느낌이었다. 시라는 세계를 알수록 시는 참 매력적인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이가 짧아서 쉽게 도전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잘 쓴 시 한 편을 쓴 다는 것은 산문보다 어려운 영역 같다. 불필요한 표 현을 제거하고 최대한 압축적인 표현으로 상황을, 장 면을 그려나가야 한다. 정교한 그림 속 숨겨진 서사 처럼.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상징들. 그것을 발 견하고 읽어 내려가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기쁨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일과 시를 감상하는 일은 그런 점에 서 서로 닿아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서로 다른 타인과 타인을 하나로 묶는 가장 극단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같다 "
그래서, 친구나 동료 관계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금기 들의 뚜껑이 자연스럽게 열린다. 그러나, 강한 구속력을 갖는 그러한 결혼제도 마저 결국 우리를 하나로 묶지는 못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각자가 타인인 존재들이다. 공감을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상대방의 깊이와 넓이를 가능하지 못한다. 그저 그렇구나 이해하려 노력할 뿐. 우리 속에 살지만,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혼자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근원 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그것은 나만의 몫이 아닌 것이 된다. 인간이라 는 동질성 만으로 나는 외롭지 않다
'영원한 타인처럼 서로의 등 뒤에서 각자의 깍지를 움켜쥐는' 존재 결혼식이 시작될 때 걸었던 새끼손가락에 뭉쳤던 검 붉은 피는 각자의 깍지에 뭉치는 검붉은 피로 나아 간다. 내기라는 형식을 통해 서로를 들여다 보고 그래서 같은 편이 되는 장면은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부여된 숙명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무리 꼭 껴안아도 상대방의 무엇도 녹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만 그러한 행위가 주는 위 로를 생각하게 된다. 살갖이 들러붙을 정도의 밀착 된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를 살아가게, 버티게 하는 것은 이런 친밀하고 따뜻한 손길, 말 한마디가 아닐까.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슬픔을 나누면 정말 반이 되 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당연하다고 바로 대답 했지만, 그 질문을 받고 나자 정말 그런지 확신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집에 와서 곰곰이 여러 날 그 질문을 생각해 보았다. 생각할수록 그 질문은 슬픈 질문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 을까? 아마도 그녀는 아무리 나눠도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저 골목의 끝, 방향을 바꾸면 기쁨이 침묵하며 서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골목을 벗어나봐야 알게 되는 일.
우리는 힘든 순간 힘들다고 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언제부터 쿨한 성격을 옹호하게 되었는지, 조금이라도 우울한 이야기를 꺼내면 큰일 나는 것처럼 길들여졌다.
얼마 전, 친구에게 큰 위안을 얻었다. 늘 힘든 일이 지나가고 나서야, 기자가 보도 자료를 쓰듯이 내 상황을 브리핑하곤 했는데, 그날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 지 그저 무심하게 힘든 나를 그대로 고백했다. 다행히, 친구는 나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해 주었다. 나를 비난하지도 않았고 섣부른 충고도 하지 않았다. 전화 를 끊고 나자 평안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요동치 던 심장이 쿵하고 깊은 심연으로 추락한 것처럼 급 작스러운 변화였지만 튀어 오르는 물방울 하나 없이 마음은 잔잔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마음속에 그렇게 깊고 고요한 높이가 있었는지. 내가 알고 있 던 가장 낮은 높이를 뚫고 더 낮은 세계에 이른 것은 낯선 감각이었다. 무조건적인 수용과 위로가 참 따 뜻했고, 한 번 경험하고 나자 다시 그 세계에 욕심이 나기도 했다.
혼자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지만, 우리는 옆 사람을 통해서 앞사람을 통해서 버티며 나아간다. 누가 더 힘든지 내기하면서 서로 위안을 받는 존재들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