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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2권 공생활 첫해 p10~p22
45.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시다
1944. 2. 3. 저녁.
나는 마을들도, 식물들도 없는 메마른 평지를 본다. 경작된 밭들은 없고, 토양이 깊고 덜 메마른 곳에 약간의 이상한 식물들이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이 메마르고 버려진 땅이 내 오른편에 있고, 내 등 뒤에 있는 북쪽에서부터 황량한 지역이 남쪽으로 뻗어나간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반면 나는 내 왼쪽에서 제방들이 아주 낮은 강을 보는데, 그것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천천히 흐르고 있다. 유속이 아주 느린 것으로 보아 나는 이 강의 하상에 낭떠러지들이 없고, 이 평지에서 이 강이 물길을 만들어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의 흐름은 겨우 늪지들이 형성되는 것을 피할 정도이다. 이 강은 아주 얕아 바닥이 보일 정도이다. 나는 그 수심이 1미터, 아니면 기껏해야 1.5미터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의 너비는 산 미니아또 엠뽈리 근처의 아르노 강 정도로서 약 20미터쯤 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눈대중이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것의 색깔은 강기슭 가까이에서는 연초록빛이며, 강기슭들의 축축한 땅에는 띠 모양의 무성한 초록빛 식물들이 있어 보기에 아주 유쾌하다. 반면 이곳의 앞에는 극히 단조로운 돌들과 모래로 덮인 황량한 광경이 있을 뿐이다.
내가 무엇에 주의해야 하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나에게 말해준다고 내가 당신에게 말했던, 내가 듣는다는 그 내적인 목소리는 지금 내가 요르단 강 계곡을 보고 있다고 나에게 말해준다. 나는 이것을 계곡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강이 흐르는 곳을 흔히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부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왜냐하면 계곡이라면 산들의 존재를 상정하는데, 나는 이 근처에서 어떤 산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요르단 강 가까이에 있고, 내 오른쪽의 황량한 벌판은 유다의 사막이다.
집들이나 인공물들이 없는 곳을 사막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다 해도, 그것은 사막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그리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이곳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막의 모래언덕들은 없고, 홍수 후의 충적토처럼 돌들과 돌무더기들이 널려 있는 메마른 땅이 있을 뿐이다. 먼 곳에는 산들이 있다.
그러나 요르단 강 근처에는 트라시메노 호숫가에서 우리가 자주 느끼듯이 큰 평화, 특별하고 예외적인 무언가가 있다. 이곳은 날아다니는 천사들이나 천상의 목소리들에 대한 기억들로 충만한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내가 내 영혼과 대화하는 곳에 있다고 느낀다.
내가 이것들을 관찰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요르단 강의 우안에(내편에서 보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을 본다. 다양한 복장의 많은 사람들이다. 그중 일부는 서민들이고, 일부는 부자들이며, 바리사이들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튜닉이 술들로 장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나는 그들이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 가운데에 한 남자가 바위 위에 서 있는데, 나는 그를 처음 보지만 그가 세례자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본다. 그는 군중에게 말하고 있는데, 나는 그의 설교가 결코 부드럽지 않다는 것을 당신에게 단언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을 ‘천둥의 아들들’이라고 부르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과격한 웅변가를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세례자 요한은 벼락, 눈사태, 지진이라는 이름들과 어울릴 것 같은데, 그만큼 그는 연설과 몸짓들에 있어 과격하고 준엄하다.
그는 메시아를 선포하고, 모든 장애물들을 뿌리 뽑고, 자기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그분의 오심을 위하여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라고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격렬하고 거친 화법이다. 선구자는 예수께서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하시는 데 사용하셨던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상처를 노출시키고, 그것을 철저히 조사하여 무자비하게 잘라내는 의사이다.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나는 그 말들을 되풀이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복음사가들에 의하여 말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들은 그 충동성에 있어 증폭되어 있다―나는 내 예수께서 요르단 강변의 풀이 나 있고 그늘진 사면에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오고 계시는 것을 본다. 이 시골길은―이것은 도로라기보다는 오솔길이다―물이 아주 얕아 쉽게 건널 수 있는 지점으로 가기 위하여 여러 해, 여러 세기들 동안에 다닌 대상들과 여행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 오솔길은 강 건너편으로 이어진 다음 건너편 기슭의 초록빛 띠 속으로 시야에서 사라진다.
예수께서는 혼자시다. 그분께서는 천천히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 요한의 뒤에 이르신다. 그분께서는 소리 없이 다가가시며 마치 그분 자신도 세례를 받고 메시아의 오심을 위하여 정화되려고 요한에게로 오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신 것처럼 광야의 속죄자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를 들으신다.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분의 옷차림은 서민층의 그것과 같지만, 그분의 몸가짐과 잘 생긴 외모는 귀족처럼 보이신다. 그러나 그분을 군중과 구별하게 해주는 모종의 신성한 표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그분으로부터 발산되는 특별한 영성(spirituality)을 느끼는 것 같다. 그는 뒤돌아서고, 즉시 그 발산의 근원을 알아본다. 그는 강단처럼 쓰던 바위에서 충동적으로 내려와 군중에게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한 나무의 줄기에 기대어 서 계시는 예수를 향하여 빨리 간다.
예수와 요한은 잠시 서로를 응시한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몹시 다정한 파란 눈으로 바라보시고, 요한은 대단히 엄격한 검고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본다. 가까이서 보니 두 분의 모습은 완전히 정반대이다. 두 분 모두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큰데, 그것이 그분들의 유일한 같은 점이고, 나머지 모든 점에 있어 그분들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예수께서는 금발이시고, 머리카락은 길고 단정하며, 얼굴빛은 흰 상아색이고, 눈은 푸르고, 옷은 수수하지만 위엄이 있다.
요한은 털북숭이고, 검은 직모는 들쭉날쭉하게 그이 양어깨에까지 내려와 있고, 성긴 검은 수염은 그의 얼굴 전체를 거의 덮고 있고, 두 뺨은 단식으로 인하여 움푹 들어가 있으며, 열띤 눈은 검고, 얼굴은 햇볕과 비바람으로 인하여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고, 몸은 털로 덮여 있다. 그는 가죽 끈으로 허리에 졸라매진 채 그의 야윈 옆구리들까지 내려오지만 그의 오른쪽은 덮지 않아 완전히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의 맨살을 드러나게 하는 낙타털 가죽 옷을 걸치고 있는 반라의 몸이다.
두 분이 가까이 서 있으니 그들은 마치 야만인과 천사 같다.
요한은 그의 찌르는 듯한 눈으로 예수를 찬찬히 살피고 나서 부르짖는다.
“여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예수께서는 조용히 대답하신다.
“회개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요.”
“나의 주님, 결코 안 됩니다. 제가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당신께로 가야 하는데, 당신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분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요한의 머리에 한 손을 얹으신 채 대답하신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시오. 그렇게 하여 모든 정의가 실현되고, 당신의 의식(儀式)이 더 높은 신비의 시작이 되게 하고, 희생자(Victim)가 세상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하시오.”
요한은 눈물로 인하여 부드러워진 눈으로 그분을 응시하고 나서 앞장서서 강둑을 향하여 간다. 예수께서는 겉옷과 무릎까지 내려오는 튜닉을 벗으시고 일종의 반바지만을 입고 요한이 앞서 들어가 있는 물로 내려가신다. 그는 자기의 허리띠에 매달려 있는 잔으로 강물을 떠서 예수의 머리에 부어 세례를 준다. 그것은 조개껍데기나 반으로 쪼개 속을 파내고 말린 호박 같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어린양이시다. 그분의 몸의 하얀 피부색으로도, 겸손한 몸가짐들로도, 눈빛의 온유함으로도 그분께서는 어린양이시다.
예수께서 강둑으로 올라와 옷을 입으신 다음에 기도에 집중해 계시는 동안에 요한은 군중에게 그분을 가리키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에게 구속자(Redeemer)라고 지목하는 틀릴 수 없는 표로 자기에게 알려주셔서 자기가 그분을 알아보았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나는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데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강둑의 초록빛을 배경으로 한 그분의 빛나는 얼굴만을 볼 뿐이다.
1944. 2. 4.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요한은 그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표징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자기 어머니의 태중에서 미리 성화된 그의 영혼은 만일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들이 가졌을 초자연적인 지성의 관통(penetration of supernatural intelligence)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사람이 은총, 무죄성, 자기의 창조주에 대한 충성을 보존하였다면, 그는 외적인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을 보았을 것이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는 죄 없는 사람과 허물없이 말씀하셨고, 사람은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기절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목소리를 혼동 없이 식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들이 자기의 아버지를 보고 이해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이 하느님을 뵙고 이해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었다. 그러다가 사람이 죄를 지었고, 그래서 그는 더 이상 감히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뵙고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지금 점점 더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요한은, 내 종형제 요한은 은총이 가득하신 분(the Full of Grace)께서 불임이었다가 임신하게 된 엘리자벳을 다정하게 포옹했을 때 정화되었다. 작은 아기는 그녀의 태중에서 기뻐 뛰었다. 왜냐하면 그는 마치 상처가 나을 때 그 상처에서 딱지가 떨어지듯이 죄의 딱지들이 자기의 영혼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만드셨던 성령께서 육화하신 구원의 살아 있는 성막(the Living Tabernacle of Incarnate Salvation)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태어나려는 그 아기에 대한 그분의 구원사업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그 아기는 그의 핏줄보다는 더 사명으로 나와 결합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 사명에 의하여 우리는 말을 표현하는 입술들과 같았다. 그는 복음과 순교 둘 다에 있어 선구자였고, 나는 나의 하느님으로서의 완전성으로 요한이 시작한 복음과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당한 그의 순교를 완전하게 해주었다.
요한에게는 아무런 표징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표징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의 어둠을 위하여 필요했다. 요한이 퇴영적이고 둔한 청취자들의 눈과 귀에 분명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아닌 무엇에 자기의 주장의 근거를 둘 수 있었겠느냐?
나는 세례 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주님의 지혜는 우리의 만남의 순간과 방식을 선택하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요한을 그의 동굴에서 광야로 나오게 하시고 나를 내 집에서 나오게 하시어 그 시간에 우리를 결합시키신 다음, 내 위에서 하늘을 여시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어야 할 그 위에 신성한 비둘기이신 그분 자신께서 내려오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선언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들리게 하셨다.
그 선언은 천사의 목소리보다 더 강력했는데, 그것은 내 아버지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나를 따르거나 따르지 않는 데 있어 변명하거나 의심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공현들(the manifestations of Christ)은 무수히 많았다. 그의 탄생 후 첫 번째 표징은 동방박사들의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성전에서였으며, 세 번째는 요르단 강변에서였다. 그 다음에는 무수한 다른 표시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너에게 알려주겠다. 왜냐하면 내 기적들은 내 부활과 승천 같은 마지막 기적들에 이르기까지 내 신성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내 조국은 내 공현들로 가득했다. 마치 사방에 뿌려진 씨앗들처럼 그것들은 모든 계층과 모든 장소에서 일어났다. 목자들, 권력자들, 학자들, 회의적인 사람들, 죄인들, 사제들, 통치자들, 어린이들, 군인들, 유다인들과 이교도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상은 현재의 공현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의 것들을 잊어버린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구원하기 위하여,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도록 너희를 설득하기 위하여 같은 일들을 되풀이할 것이다.
마리아야, 너는 네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꾸어 말하면, 너에게 복음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너는 아느냐? 이것은 사람들을 나에게로 데려오려는 더 강력한 시도이다. 너는 네 열렬한 기도들로 그것을 갈망했다.
나는 더 이상 말들만으로 나 자신을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말들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멀어지게 한다. 그것은 잘못이지만, 사실이니 어쩌겠느냐? 그래서 나는 내 복음서의 환시들을 포함하여 환시들을 사용할 것이고,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더 매력 있게 하고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설명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는 그것들을 보는 위안을 주고, 모든 사람에게는 나를 알기를 원할 가능성을 준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소용없고, 그래서 그들이 무정한 어린이들처럼 그 선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던져버린다면, 너는 내 선물을 가진 채로 남아 있을 것이고, 그들은 내 의분을 가진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오래 전의 질책을 반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피리를 불었는데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가들을 불렀는데 너희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상관없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머리 위에 뜨거운 숯불을 모아놓도록 내버려두고, 그들의 목자를 알려고 애쓰는 어린양들 쪽으로 돌아서자. 목자는 나이고, 너는 그들을 나에게로 데려오는 지팡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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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수님, 당신께서 홀로 걸어가실 때에는 걸음마다 “사랑합니다. 흠숭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따라가면서 당신의 거룩하신 뜻의 나라가 땅에도 오시기를 빌겠습니다.
저는 또 당신의 모든 숨을 원합니다. 숨쉴 때마다 “사랑합니다.”하기 위해서이고, 이 안에 당신의 모든 말씀과 눈길을 하나하나 다 집어넣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당신께서 요르단강에 도착하셨으니 저의 “사랑합니다.”를 강물 속에 넣어, 성 요한이 세례를 베풀려고 당신 머리 위에 이 물을 부을 때에 저의 사랑도 가득히 흘러내리고 있음을 당신께서 단박 느끼시게 하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거룩하신 뜻의 세례수를 간청하기 위함입니다.
제 사랑이시여, 저는 당신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 장엄한 순간에, 틀림없이 들어주실 한 가지 은총을 간청합니다.
당신의 거룩하신 뜻의 이 생기 있고 창조적인 물로 당신께서 친히 저의 하찮은 영혼을 깨끗이 씻어 주시어, 당신 피앗의 생명 외에는 아무 것도 듣거나 보거나 아는 것이 없게 해 주십시오.
- 예수님의 세례 영적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