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얼굴 바꿔 이승만 미화하고 '건국전쟁' 홍보
당시 사설 "이승만은 3.15부정선거 자유당 상징"
"3·15부정선거는 이승만 위한 것" 외신도 인용
이승만 4·19 수습책·공산당 연루 담화도 비판
하야 발표에 '환호''축하''감격'이라며 지면 도배
조선일보가 전위부대 노릇을 하고 있는 극우·보수 세력은 오래전부터 이승만 미화·영웅화를 통해 친일과 독재라는 썩은 뿌리에 분칠을 해왔다. 이는 지지 세력을 결집시켜 기득권을 영구히 누리려는 이념적·정치적 목적이지 민족주의나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승만 미화·영웅화는 친일과 독재의 미화, 나아가 역사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승만 미화와 영웅화는 눈물겹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내세워 나라를 이념전쟁으로 몰아넣더니 윤석열 정권 들어서는 ‘홍범도 장군 흉상제거 파문’과 최근 영화 ‘건국전쟁’ 개봉 이후 더욱 극렬해졌다. 올해 1월1일부터 2월27일까지 ‘이승만’ 키워드로 검색된 조선일보 기사는 무려 90여건이니 이승만 관련 기사를 매일 두 건씩 보도한 꼴이다.
이 신문은 이승만 기념관 건립 모금에도 열심이다. 우파성향 인사나 단체, 교회가 모금에 참여했다는 기사는 크게 보도된다. 지난달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승만 재조명’ 기사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런 기사 작성에 정치면, 사회면, 문화면, 인물면, 칼럼, 사설을 총동원해 전사적(全社的)으로 뛰고 있다. ‘건국전쟁’을 만든 영화감독 인터뷰 기사는 이 신문에 한달 여 동안 무려 세 번이나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영화 관객이 00명 돌파했다’ ‘미국에서도 상영된다’ ‘속편이 나온다’ 등등 영화 홍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승만 관련 기사의 제목을 보면 이승만에 대한 찬양이 낯뜨거울 정도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승만 미화·영웅화에 역사학계의 반론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조선일보는 이 반론을 반박하느라 다시 역사를 왜곡한다. 유튜브에서 유명한 한국사 일타강사 황현필 씨가 “희대의 민간인 학살자를 찬양하는 영화”라고 비판하자 이 주장을 검증하겠다며 연재기사를 쓰고 있다. ‘건국전쟁’ 이후 개봉된 영화 ‘파묘’가 흥행에 성공하자 이를 ‘좌파들의 분풀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조선일보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미디같은 일이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이승만 미화와 영웅화에는 좀 이상한 점이 있다. 과연 조선일보는 이승만 대통령 집권 당시에도 (최근 열을 올리며 ‘재조명’하는 것처럼) 그를 ‘영웅’으로 취급했을까?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60년 3.15 부정선거 사실이 들통나 전국이 요동치고 4.19혁명이 벌어졌을 당시의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그렇지 않다!
당시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3.15 선거를 ‘부정선거’ ‘협잡선거’라고 쓰고, 이를 자행한 자유당을 ‘불의’로 규정해 맹렬히 비난했다. 또 4.19혁명이 ‘부패한 강권 독재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학생들이 일으킨 시위·데모라고 하고, ‘독재부패한 자유당 정권’을 대신해 ‘청렴하고 혁신적인 정권을 수립해야 한다’고도 했다.
1960년 4월26일 조선일보 1면 갈무리. 조선일보는 이날 이승만 대통령 하야(사임)소식을 1면에 싣고 "만세! 민권은 이겼다!"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말한 ‘보수부패의 강권 독재세력’ 혹은 ‘독재부패한 자유당 정권’과 이승만 대통령은 별개의 것인가? 조선일보는 지면에 “이승만 대통령이 창당했고, 이승만 대통령의 적극적 비호 아래 성장했으며, 이승만 대통령의 이름 석자로 상징되던 것이 자유당”이라고도 썼다. ‘보수부패’ ‘강권’ ‘독재세력’의 자유당 정권은 바로 ‘이승만 정권’이라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자 ‘환호’ '감격'하는 사설도 썼다. ‘4.19혁명의 학생데모가 공산주의자가 개입한 것’이라는 이승만 대통령 담화를 적극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 지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자유당의 3.15부정선거 직후 ‘해외에 비친 3.15 선거’라는 기사에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를 가져와 이렇게 소개했다.
“워싱톤 포스트: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 세력은 또 한 번의 선거승리를 ‘부르도자’(불도저)로 밀고 들어가서 타고 앉듯이 차지하였다. 외국인 옵서버들에 의해서 입증되지 않았더라면 강제 억압 탄압의 도가 얼마나 혹심했던지 그 실정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뻔했을 것이다. 살인을 불사하는 구타 경찰의 소위 ‘설득’ 공작, 투명용지투표, 사전투표의 계획극단한 차별적인 법의 적용 등등 갖은 불법부정행위가 이(승만) 박사의 재선과 그의 자유당 런닝메이트 이기붕씨의 당선을 위해서 연출되었다.”(3월24일 기사)
3.15부정선거 이후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4월15일 특별담화문을 발표한다. 이 대통령 담화문의 요지는 ‘공산당이 데모를 조종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공산당과 결부시켜 마치 공산오열분자의 조정에 의해 야기된 사태처럼 선전하기에 바쁜 듯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우리 정부에서는 마산사건을 공산당과 결부시켜 마치 공산오열분자의 조종에서 의하여 야기된 사태처럼 선전하기에 바쁜 듯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것도 수사의 진전에 따라 실지로 공산오열분자가 적발되었다거나 또는 공산당이 개입한 확실한 증거가 포착되어서 그와 같은 혐의 사실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파고행동의 수법이라든가 시위의 규모나 방법이 수상하다는 막연한 추상론을 가지고 뒤에서 공산당이 조종한 것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4월16일 사설)
1960년 4월16일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학생들의 데모를 '공산주의자 조종에 의한 것'이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를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4월19일 전후로 사설에서 여러 차례 3.15부정선거를 격렬히 비난하고 이는 ‘자유당 정부의 부정부패와 독재’에서 비롯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자유당 정부=이승만 정부’라며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그에 따른 자유당 해체가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 담화문에 ‘3.15부정선거의 불법·무효화’ ‘책임자 처벌’ ‘대통령 당선 부인’ 등의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자유당 정권의 위장연명책을 배격한다”고 강도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정부는 아직도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4월13일 사설)
“학생들의 궐기가 3.15부정선거에서 유래하고 자유당 정부 12년의 누적된 비정에서 연유한 것임을 안다면 3.14선거를 무효로 돌려 재선거를 실시할 만한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격앙된 민심이 날이 갈수록 험해지고 3.15 선거의 불법무효를 부르짖는 국민 앞에 무슨 면목으로 군림할 수 있겠는가”(4월19일 사설)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서 창당되고 이 대통령의 적극적인 비호 아래 성장한 자유당이며, 이 대통령의 성명 3자로 상징되던 자유당인 것이니 그 자유당에서 이 대통령이 손을 뗀다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자유당의 와해를 초래할 수 있을 만치 중대한 일이라 하겠다.”(4월24일 기사)
“자유당정권의 위장연명책을 배격한다: 표면상 국민의 수습요망에 응하는 것 같이 말하였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과연 무엇을 기도하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추상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이 담화를 중시하려는 것은 이러한 문면에 나타난 이(승만) 대통령의 의도보다 문자로 나타나지 않은 점이 우리를 실망시키는 까닭이다. 하나는 삼일오선거의 불법무효에는 일언반구도 언급된 바가 없고 마치 사일구 데모에서 오늘의 위기가 출발된 것 같이 보고 있는 듯한 점이고 둘째는 이에 따라서 당이나 행정부에서 삼일오부정폭력선거를 기획감행한 정부 및 자유당의 책임자들을 엄벌할 하등의 의도를 표시하지 않은 점, 그리고 3.15선거가 무효이니 대통령 당선을 부인하고 재선거를 단행하겠다는 것은 말끝에도 비치지 않고 있는 것은 거의 절망적인 느낌을 준다.”(4월25일 기사)
이승만 대통령이 결국 사임하겠다고 발표하자 조선일보는 환호성을 질렀다. “축하와 감격의 도가니” “우렁찬 만세소리” 등 기쁨에 들떠 지면을 도배했다. 지금 조선일보가 그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보도를 한 것이다. ‘독립운동가’ ‘건국의 아버지’ ‘독재가 아닌 장기집권’ ‘4.19는 이승만 아닌 자유당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이승만을 감싸고 미화하고 영웅화하고 있는 조선일보가 왜 그의 하야에 이렇게 환호, 축하, 감격한 것인가?
“만세! 민권은 이겼다! 이대통령 드디어 사임, 부정선거 무효화도 지시 특별담화 발표”(4월26일 기사)
“이 소식에 접한 국민들은 홀연 천지를 진통케하는 환호성을 폭발시켜 온거리는 축하와 감격의 도가니로 화하여 누구의 입에서 선창된 것도 모르게 애국가를 드높이 합창했고 우렁찬 대한민국 만세소리는 이 강산을 요동하였다. 삼일오선거를 절정으로 하는 독재부패정권의 강압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거의 절망적인 단계로 몰아넣었었다.”(4월26일 사설)
하야 발표 이후에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칠어지기도 했다. 이승만 정권을 ‘독재부패한 정권’ ‘보수부패의 독재세력’으로 부르며 퇴장하라고 요구했다.
“정권담당자들을 그 임기여하에 불구하고 교체하자는 것이니 그 투쟁의 목표와 정신에 있어서는 독재부패한 자유당정권을 대신해 청렴하고 혁신적인 정권을 수립하는 데 있는 것”(4월27일 사설)
“썩은 선배, 썩은 정치는 물러가라. 드디어 보수부패의 강권 독재세력의 아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삼일정신을 호흡하면서 교실에서 폴리비어를 배운 학도들은 부패한 강권독재정부가 강제한 가두 데모의 조직과 선동방법을 체득하고 있었다. 삼일정신, 폴리비어, 질주가두 데모기술, 이 세가지 요소는 반독재민주항쟁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3.15부정협잡선거의 규탄과 재선거의 요구, 피끓는 젊은 학도들이 선배일반에게 고함친 진정한 소리는 어떤 것이었나”(4월28일 사설)
요컨대 조선일보는 1960년 3.15부정선거와 4.19혁명이 발발할 당시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협잡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을 유지하려하고 자유당과 함께 부패정치를 이끌어온 ‘보수부패 독재정권’의 대통령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당시 기사와 사설을 보면 숨길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갑자기 그를 미화하고 영웅으로 띄우고 있는 것이다. 6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이승만의 공개되지 않은 일기장이라도 나왔는가? 그 때의 조선일보는 지금의 조선일보와 다른 신문인가?
사실 조선일보의 말바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두번의 실수도 아니다. 박정희 시절엔 박정희의 ‘말씀’을 받들어 ‘서울 천도설’을 주장하다가 노무현 시절엔 수도 이전을 극렬 반대했다. 노태우 시절엔 우리 군의 전시작전권 반환을 주장하다 노무현 시절엔 또 반대했다. 조선일보가 언론이라면, 왜 말과 입장을 바꾸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 설명하지 않고 다시 사실을 왜곡해 보도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것이 정치적 이득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젠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언론이 발행부수 1위라는 게 우리 언론의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