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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3차 산행] 백두대간 <소백산> 비로봉-국망봉 * (1)
▶ 2017년 2월 19일 (일요일)
* [산행 코스]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주차장>(10:00)→ 탐방안내소→ 어의계곡→ 계단길→ 작은 능선→ 계단길→ 능선 (전나무 군락지) [점심식사]→ 완만한 오름길(평원)→ 비로봉-국망봉 갈림길 → [백두대간] 소백산 비로봉 정상→ 다시 삼거리→ 국망봉→ 상월봉→ 늦은맥이(하산점)[백두대간 안부]→ 벌바위골→ 율전마을→ 어의곡 주차장(오후 5:00)→ 귀경(오후 8시)
* [프롤로그] — 봄이 오는 길목, 화해(和解)와 공생(共生)의 길로 나아가야!
☆… 오늘 서울의 기온은 영하 7도의 쌀쌀한 날씨, 2월 들어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어 왔다. 긴 겨울, 차갑고 건조한 날씨에 우리들 마음까지 팍팍하게 말라가는 것 같다. 어제 18일이 우수(雨水), 봄이 오는 길목인데, 마음은 불안하고 스산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얼어붙은 대한민국의 체온이 겨울의 쌀쌀한 날씨처럼 얼어붙어 있는 것이다. 서울 도심에서 주말마다 대대적인 군중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광화문에서는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군중이, 서울광장에서는 탄핵을 반대하는 군중이 운집(雲集)하여, 자기주장의 열변과 함성(喊聲)을 토해 내고 있다.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격렬한 적대감(敵對感)으로 증오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막장의 언어(言語)들이 헌재의 탄핵 심판에 압박을 가하는 형국이다.
탄핵(彈劾) 문제는 중요하다. 그러나 탄핵이든 아니든 5,000만 우리 국민은 살아가야 한다. 경기 침체(沈滯)와 안보 위기(危機)를 헤쳐나가야 한다. 정권욕에 아무리 눈이 멀었다고 해도 국민의 삶보다 앞설 수는 없다. 이미 좌우의 이념 대결, 세대 간의 긴장까지 겹쳐 갈등이 폭발 직전 상태다. 그런데 정치가나 정당들이 이를 진정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선동할 궁리만 한다.
☆… 문제는 정치지도자들이다. 요즘 나라 걱정하는 정치인은 없고 자기 걱정, 오직 대통령 될 생각만하는 사람들만 보인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주말마다 시위대 속에 서 있다는 것은 기막힌 일이다. 입만 열면 갈등을 부추기고 나라를 갈라놓는다. 시위대의 불길에 기름을 들어붓는다. "탄핵이 안 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호언까지 한다. 사실 ‘처음의 순수한 촛불민심’이 이렇게 정치적(政治的) 선동(煽動)과 이념(理念)의 굿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사건과 연루된 대통령에 대해, 좌절하고 분노한 순수한 민심을 ‘정치와 이념의 투쟁장’으로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불안을 느낀 ‘태극기의 물결’이 광장으로 몰려나와 ‘체제 수호’를 외치며 맞불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격렬하게 두 쪽으로 갈라져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나라 안팎이 이렇게 큰 불안(不安) 속에 휩싸여 있다. 북(北)은 새로운 차원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하여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 발사 준비 시간을 크게 단축하고 산악지대에서도 쏠 수 있게 성능을 높인 살상무기를 개발했다. 그리고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피살당했다.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대립·갈등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자숙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제야말로 여야(與野) 정치권과 시위대 모두 정말 자중(自重)해야 할 때다. 모든 대선(大選) 주자는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여 '헌재(憲裁) 판결에 승복(承服)한다'는 공개선언을 해야 한다. 승복하지 않는 주자는 반(反)법치, 반(反)민주로 국민이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 이제 헌재(憲裁)의 선고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예단(豫斷)해서도 안 되고 압력(壓力)을 행사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헌재(憲裁)는 그야말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대로 최순실 국정 농단사태에서 드러난 일들이 ‘대통령의 직무상 헌법과 법률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 헌법재판관들은 밖에서 뭐라 하든지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심판(審判), ‘대한민국 헌법’에 기초한 최고의 판관(判官)들의 결정이니, 존중해야 한다. ‘그 심판’ 아니면 나라의 아무 것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이제, ‘극단으로 가는 거리의 집회(集會)’는 자제해야 한다. 각 운동본부는 대국적인 견지에서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모두 '헌재(憲裁)의 심판(審判)'을 기다리고 수용해야 한다. 근 석 달 동안 이어진 열렬한 집회에서, 양측의 민심(民心)은 충분히 표출되었다고 본다. 더 이상 국가의 혼란(混亂)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 ‘자기 논리만 내세워 밀어붙이는 시위의 힘’이 법(法)을 뒤흔들거나 법을 무시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정도가 아니다. 증오가 아니라 따뜻한 이성(理性)을 되찾아야 한다.…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화합하면 세상이 온전해지고 모든 생명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고 했다. 적대(敵對)의 골짜기에서 벗어나 화해(和解)와 공생(共生)의 길을 모색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共滅)이다.
* [오늘의 산행지] — 백두대간의 장대한 산세를 이루는 소백산(小白山)
☆… 소백산(小白山)은 저 강원도 태백산(太白山)에서 남서쪽으로 뻗어온 백두대간(白頭大幹)이 ‘선달산’을 경유하여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와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로 넘어가는 <고치령>을 지나면서, 소백산(小白山)에 영역에 들어온다. 소백산은 동쪽의 <고치령>에서 서쪽의 <죽령>-도솔봉에 이르기 까지 장대하고 웅장한 산세를 이룬다. 이 소백산(小白山)의 거대한 산줄기는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순흥면의 경계를 이루는 도계능선(道界稜線)이며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分水嶺)을 이룬다.
백두대간 소백산(小白山)은 보통 정상 비로봉(1,439m)을 중심으로 북동쪽의 국망봉(1,421m)에서 서쪽의 제2연화봉(1,357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그외 도솔봉(1,314m)·신선봉(1,389m)·형제봉(1,177m)·묘적봉(1,148m) 등의 많은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대한 산군(山群)이다. 산의 북서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이른바 고원의 평탄한 지형을 이루며, 그 위를 국망천이 흘러 남한강에 유입된다. 동남쪽으로는 비교적 경사가 급하며 낙동강 상류의 지류인 죽계천이 발원한다. 죽령과 제2연화봉 사이의 산기슭에는 우리나라 제일의 우주관측소인 <국립천문대>가 있다.
☆… 소백산은 장엄하나 완만한 산등성이와 끝없이 펼쳐지는 운해(雲海) 그리고 울창한 산림과 수려한 계곡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조선 중종 때의 역술인인 남사고는 “산의 허리 위로는 돌이 없고, 멀리서 보면 웅대하면서도 살기가 없으며, 떠가는 구름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아서 아무런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형상이라서 많은 사람을 살릴 산이다.”라고 말했다.
☆… 소백산(小白山)의 ‘백산(白山)’은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하는 ‘(밝)’에서 유래한 것인데, 소백산은 여러 백산 가운데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다. 소백산 일대는 웅장한 산악 경관과 천연의 삼림, 폭포가 많으며 산의 주변에 희방사ㆍ부석사ㆍ보국사ㆍ초암사ㆍ구인사ㆍ비로사ㆍ성혈사 등 여러 사찰과 온달산성 등의 명승고적이 많아 1987년 12월에 <소백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신성시되어온 산으로 삼국시대에는 신라ㆍ백제ㆍ고구려 3국의 국경을 이루어 수많은 역사적 애환과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특히 소백산 남쪽의 순흥 죽계(竹溪)에는 조선시대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있다.
소수서원(紹修書院)은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 선생을 기리는 사당을 세우고 1543년(중종 38)에 학사(學舍)를 옮겨지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그후 1544년 여기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을 추배(追配)하였다. 1550년(명종 5)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와서 조정에 요청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賜額)과 《사서오경(四書五經)》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내사(內賜)를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산으로 가는 길] — 중앙고속도로 북단양I.C에서 내려 도담삼봉의 남한강 길을 따라
☆… 오늘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많은 대원들이 참석했다. 우리 대원들은 겨울 <소백산>으로 가는 금강버스에 동승했다. 남정균 회장, 김준섭·장태임 부회장, 호산아·장병국 고문, 김의락 자문위원을 비롯하여 실무 민창우 기획, 박은배 총무가 포진하고, 남위숙 전 부회장님, 향이 허향순 님, 늘 젊음을 구가하는 강재훈·안상규·전진국 님과 지기 한 분, 그리고 전평국 님, 안수경 님, 점잖은 민백기 님, 발랄한 조인규 님과 그 지기 고종길 님, 그리고 조용규·김행국·권순식 님과 김동순·윤태수·이종률 님, 조희우 님과 신상대 님, 그리고 ‘늘 다정한’ 김재철 님 내외분, 문승배 님, 김기봉 님과 이명자·나천옥 님, 강석 님과 그 지기 등이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함이 확인하지 못한 몇 분의 대원도 참석했다. 총 38명이었다. 특히 김정후 님은 아침간식으로 맛있는 떡을 준비해 오셔서 무척 고마웠다.
☆… 오전 7시 40분, 서울의 군자역을 출발했다. 오늘의 <소백산 산행의 들머리>는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이다. 날씨는 아주 쾌청했다. 남으로 달리는 우리의 금강버스는 중부선과 곤지암-원주 간의 신영동선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중앙고속도로 진입하여 남행, 북단양I.C에서 국도로 내려서, 단양 도담삼봉의 남한강의 다리를 건너 산행 들머리인 어의곡주차장에 도착했다. 중간에 잠시 쉬어간 중앙고속도로의 ‘치악휴게소’에서 바라보니, 멀리 남치악의 산 능선에 순백(純白)의 상고대가 눈길을 끌었다. 오늘 우리가 오르는 소백산 1,000고지 이상의 능선에서도 상고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았다.
* [산행의 들머리] —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 ‘소백산탐방안내소’
☆… 오전 10시 30분, <어의곡> 소백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했다. 오늘 산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영하의 날씨, 겨울 특유의 파란 하늘은 높고 창공에서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모든 대원들은 방한복을 갖추어 입었다. 오늘은 민창우 대장이 선두에 서서 대원들을 인도하고 후미는 남정균 회장이 수습하기로 했다. 계곡은 아직도 한 겨울이었다. 겨우내 쌓인 눈이 그대로 있고 계곡은 꽝꽝 얼어 있었다. 주변 산록에는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조용히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의곡 계곡을 따라서 난 산길도 완전히 빙판이거나 적설(積雪)로 다져져 있었다. 대원들은 모두 스패츠와 아이젠을 장착했다. 공기는 차갑지만 다행이 바람기는 거의 없었다.
*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 완만하지만 쌓인 눈이 얼어붙은 빙판길
☆… 임도로 닦여진 너른 산길은 완만하게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대원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짓거나 앞뒤로 열을 지어 산행을 해 나갔다. 몸은 이내 더워지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솟아났다.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겨울 계곡, 차가운 공기의 질감이 아주 산뜻하게 느껴졌다.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앞서가던 대원들이 겉옷 한 겹을 벗었다. 길은 가파르지 않았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는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졌다. 눈 덮인 계곡의 나무테크 다리를 건너고 다시 또 치고 올라가는 길이 이어졌다. 어의곡주차장에 1.5km 올라온 지점의 다리를 건너서 대원들이 모여 휴식을 취했다. 발갛게 상기된 대원들의 얼굴이 홍안(紅顔)의 소년·소녀처럼 건강하게 보였다. 겨울산행 특유의 신선함이 풍기는 모습들이었다. 스스로 땀 흘리며 고행하는 산행의 아름다움이다. 정직하고 순수한 자연적인 반응이다.
* [산록을 치고 오르는 길] — 길고 긴 나무테크 계단(階段)을 오르다
☆… 이제 산길은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고도(高度)를 높이는 산길은 빙판(氷板)이었다. 대원들의 숨결은 거칠어지고 저절로 뜨거운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길목마다 걸음을 멈추고 쉬어가는 등산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계곡의 주변은 온통 하얀 눈이 그대로 덮인 한겨울이다. 눈에 묻힌 나무테크 다리를 건너고 나서 급한 경사의 산길이 굽이치더니 긴 나무테크 계단이 올려다 보였다. 이제 계곡 길을 벗어나 산록의 오름길에 접어든 것이다. 눈 쌓인 계단을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올라가기만 하는 가파르고 긴 계단은 아주 지루하고 하체 근육을 아프게 하므로 서두르지 말고 한 발 한 발 차분하게 오르는 것이 좋다. 선두와 후미, 대원들의 간격이 많이 벌어진 것 같았다. 오늘의 산길은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가파른 계단 주변은 적설이 그대로 남아있는 눈밭, 그 눈 속에 묻힌 파란 산죽이 날카로운 잎사귀를 세우고 있다. 산록에는 겨울 나목(裸木)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 [1차 능선의 이정표 쉼터] — 후속 대원을 기다리며 더운 가슴을 식히다
☆… 오전 11시 55분, 긴 계단을 오르고 나서 작은 능선의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주변에 두 개의 너른 ‘들마루’ 쉼터가 있다. 고되게 긴 계단 길을 오르고 난 지점, 산행의 들머리에서 3.0km, 비로봉까지는 2.1km를 남겨 두고 있다. 선두의 민창우 대장이 올라오는 대원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했다. 정상까지 거리의 반 이상을 올라온 지점이다. 후속 대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몇몇 대원들이 이정표 앞에서 포즈를 잡았다.
* [2차 능선에 올라] — 전나무 숲길을 지나고 나서 … 점심식사
☆… 다시 계단 길이 이어졌다. 팍팍한 다리가 아프게 긴장한다. 한참을 그렇게 나무계단을 오르고 나니, 능선 길이다. 능선의 오른쪽(서쪽) 산록에는 울창한 전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왼쪽의 산록은 두터운 눈이 그대로 덮여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소백산 특유의 세찬 바람의 조짐이 느껴진다. 이제 시간은 정오(正午)를 지났다. 앞서가는 민 대장이 점심식사 할 수 있는 자리를 물색했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적당한 산등성이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이 바람이 그리 많이 불지 않는 지점이었다. 어의곡에서 3.5km 올라온 지점이다. 후속 대원들이 도착하는 대로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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