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거나 지역 공동체 작은 기여를 하는 것만으로 삶의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젊은이들이 유명해지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전에 없이 많은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 되어 주목받기를 갈망합니다. 페이스북에서 많은 ‘좋아요’를 받거나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팔로워를 얻거나 높은 유튜브 조회수를 얻기를 원합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겉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분명 “나를 주목해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욕구가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 6:1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시고는 :4에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셨습니다. 인정받으려는 갈망을 억누르라 하지 않고 갈망의 ‘방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곧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박수갈채를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주목하시는 주님이 믿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칭찬보다 사람의 칭찬을 더 갈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처럼 사람들의 인정을 위해서 살면 마음이 허전해질 뿐입니다. 점점 만족은 작아지고 갈망은 점점 더 커집니다.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보다 더 크고도 오랫동안 환호를 받는 사람에게 질투와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 사람들의 칭찬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전에 마귀로부터 사람들의 평판에 대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가 사람들의 평판에 연연하게 되는 심정을 누구 보다 잘 아십니다. 그리고 그 유혹을 이길 유일한 길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먼저 된 자가 다가올 세상에서는 나중 된 자가 되고 이 세상에서 나중 된 자가 다가올 세상에서는 먼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동행하는 사람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무덤에 묻힐 수 있습니다. 주님이 아시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얼마든지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면서 주님과 동행한다면 어디서든지 자유를 얻고 빛과 기쁨, 감사와 희생적인 사랑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복을 더해주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이처럼 놀라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