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의 윤리학 입문
1장 요약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의 삶이 최고 좋음을 위한 것이며 또한 이 최고 좋음이 무엇인지 밝히려 했다. 우리는 경험의 다양성이 불러오는 개개인마다의 최고 좋음과 상황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최고 좋음의 가변성 속에 놓여있다. 이는 경험과 상황의 변화, 그리고 개인차가 수많은 최고 좋음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최고 좋음은 이런 경험과 상황과 개인들에게 수단적인 좋음, 목표를 제공하는 그 자체로서 자족하고 완전한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자족적이며 완전한 최고 좋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수단화되있고 가변적인 요소들 예를 들어, 즐거움, 명예, 관조, 돈벌기들을 제거해간다.
‘그 자체로 고유한 어떤 것’ - 에우다이모니아가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이자 행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고유한 어떤 것을 실현한다는 의미로 구체화된다. 각자의 사물이 인간에게 인식되는 고유한 기능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나름의 기능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생명 존속을 위한 기관의 기능과는 다르다. 우리는 인간 그 자체를 ‘실현’시키는 인간의 핵심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실현 ‘삶의 특정 방식’이 우리가 인식해야 할 ‘기능(ergon)의 의미이다. 이는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살펴볼 필요를 갖게 한다. 인간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연결점에 대해서 영혼은 연결체로서 또한 실현체로서 설명을 갖기 때문이다. 영혼의 이성을 가진 부분들의 활동을 통해 인간은 그 스스로를 실현하고 또한 이 영혼은 감각과 욕망을 나타내는 비이성적인 부분 또한 포함한다. 영혼의 이성은 인간에게만 고유하며 또한 이것은 신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의 실현은 이 영혼의 이성을 탁월하게 실현하는 데 달려있다. 다시 영혼은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이 있으며 이 비이성적인 부분은 이성에게 귀기울이며 복종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영혼의 사유 능력 곧 이성이 신과 공유되는 가장 훌륭한 활동임을 지적한다면 우리는 이성 안에서 이뤄지는 감정과 욕구의 질서의 정도를 탁월성의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곧 에우다이모니아의 성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수 있게 된다. 곧 우리가 배움과 습관의 단련을 통해 에우다이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다를 수 있는 목표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상황의 가변성 속에 늘 놓여있다. 그렇다면 에우다이몬이 누구인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수 있는가? 이 에우다이몬의 존재의의가 없다. 그래서 탁월성은 곧 이성의 질서, 인간 품성의 안정된 상태로 이해되지만 동시에 이 탁월성은 상황의 어려움 속에서 그 빛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로인해 비열하고 가증스러운 일을 행하는 비참한 상태에 놓이지 않으려 해야 한다. 영혼의 한 부분이 이성에 귀기울인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에게는 특정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판단할 수있는 능력, 곧 상황 인식을 할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가치를 평가하고 상황을 이 판단을 통해 질서정연하게 할 수 있는 탁월성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2장
그렇다면 우리는 이 탁월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 탁월성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칼이 탁월하다고 할 때 이는 칼이 매우 잘 들며 사람의 의도를 매우 성실히 수행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탁월하다고 할때는 인간의 인감됨을 잘 이루도록 하는 요소가 있을 때 우리는 이를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즉 환경이나 편견에 치우침 없이, 혹은 속마음의 불편함을 지닌채 억지로 선의를 행하는 일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인간의 본성을 이뤄가는 경향을 품성의 안정성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런 상태에서 탁월성이 안정적으로 구비된다고 말할 수 있다. 탁월성은 그러기에 확실하고 구체적인 실천력을 요구한다. 이 실천은 곧 경향성을 갖고 있어야하기에 습관의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무의식적인 습관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자각과 깊은 동기를 요구한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모순을 자각하고 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강한 동기로서의 습관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탁월성이 있다는 것은 곧 내면의 올바른 상태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또한 감정이나 능력에 치우치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경향성 안에서 감정이나 능력을 취급하기에 이는 품성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탁월성을 갖춘 행동들에 대한 원칙들을 살펴보면 이 행동들에 기대되는 요소들은 정확성임을 발견할 수 있다. 올바른 상황의 분별을 통한 올바른 행실,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 그리고 적절한 정도, 바로 중용이 의미하는 바다. 중용은 탁월성의 실현에서 중요한 가치이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의 중간 지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반되어 보이는 가치들 사이에서 자신의 치우침을 점검하고 조정하기 위한 가치개념이 될 뿐이다. 즉 어떤 것을 지나치게 의식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정당한 중요성을 무시하지도 않는 정당한 평가이다. 마지막으로 중용에 다다르기 위한 충고 중 눈에 띄는 부분만 다뤄보려 한다. 중요에 다다르려면 즐거움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아까 탁월성은 진정한 즐거움을 갖춰야 한다는 말과 모순되어 보이지만 서로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르다. 이는 탁월성을 실행함에 있어서 현실적 단상들의 단점들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고귀한 동기에 따라오는 즐거움, 기꺼움에 이 즐거움을 언급한 의도가 있다 말할 수 있다. 이런 순수한 품성으로서의 지향과 정신적 즐거움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 육체적인 쾌락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올바른 시야를 흐리고 정당한 중용의 정신을 잃게하는 것은 감정과 인지가 우리의 이성 위에 군림해서 삿된 이익관념을 우리 가운데 불어넣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