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존재한 서산 부석사... "진실은 지하에 고스란히 묻혀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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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부석사가 고려시대부터 존재해 왔음이 최종 확인됐다. 사진은 부석사 발굴 중 드러난 사찰 흔적이다. |
ⓒ 원우 스님 SNS 갈무리 | |
서산 부석사가 고려시대부터 존재해 왔음이 최종 확인됐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지난 14일 서산시에서 열린 '서산 부석사의 고고학적 학술자료 확보 및 역사성 회복을 위한
문화재 조사' 최종보고회에서 이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서산시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서산 부석사 소유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의 소유권 관련 대법원판결을 앞두고
지난 4월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현재 부석사 주변 3만3480㎡에 대한 발굴 작업을 해왔다.
당시 지표조사에서 8개 부석사 건물지와 유물과 '卍' 자가 새겨진 고려시대 기와를 비롯해 고려시대 석탑 부재 등이 발견됐다.
일부 기왓장 등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추정할 수 있는 유물까지 발견돼 일찌감치 부석사의 역사성이 확인됐다.
(관련기사: 소유권 논란 부석사, 서산시 직접 조사 나섰다 https://omn.kr/24kk3 )
서산시에 따르면 이날 최종 보고회에서 이호경 책임연구원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31m 규모의 대형 석축과 2동의 건물지
발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이날 부석사에서 출토한 청자 참외형 주전자편(靑磁瓜形注子片)과 청자상감 모란무늬
병편(靑磁象嵌忍冬文甁片), 만(卍)자와 공(公)자가 새겨진 기와편 등 실제 유물을 전시했다.
이같은 유물발굴 통해 서산 부석사가 늦어도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것이 확인됐으며,
고려 말인 1330년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제작됐다고 충남역사연구원은 보고 있다.
당시 대규모 공사를 통해 부석사의 사세가 확장되고 사찰 형태가 이뤄져,
부석사의 역사가 고려시대 전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충남역사연구원은 추측했다.
충남역사연구원은 그 근거로 수덕사 근역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부석사 동종'(1669년)과
'부석사 극락전' 내의 불화(1924년)가 조선시대부터 사찰의 역사가 이어져 왔음을 들었다.
서산시에 따르면 이 자리에 참석한 김낙중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은
"대법원의 법률적 판단과 별개로 약탈이나 분실 등으로 해외로 나간 우리 유물들에 대한 조사나
환수 관련 문화 운동은 계속해서 이뤄져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이와 관련해 지속적인 조사 연구에 이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최종보고회에 참석한 부석사 주지 원우 스님은 자신의 SNS를 통해
"부석사 역사와 관련된 갖은 억측과 주장이 난무했지만 이로써 종결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했던 이들은 역사 속에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원우 스님은 이에 앞서 발굴 현장을 직접 지켜보면서도
"깨진 고려청자 중에 완전한 형태라면 국보급으로 판단되는 유물이 부석사 마당에서 나왔다"며
"금동관세음보살상이 만들어졌던 시대에는 현재보다 더 큰 사세를 갖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 발굴되었다"면서
"진실은 현 부석사 지하에 고스란히 묻혀 있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 10월 서산 부석사가 제기한 유체동산 인도 청구를 기각하고 일본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불상이 제작·봉안된 고려시대 사찰 '서주(瑞州) 부석사'와 현재의 부석사와 동일한 권리주체로 볼 수 있다"면서도
기각판결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서산 부석사를 비롯해 정당과 시민단체는 '국외 소재 문화유산에 대한 법률'의 신속한 제정을 국회에 촉구하는 등
환수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기사: "일본에 넘어간 고려 불상, 해외 약탈문화재 환수법 추진해야" https://omn.kr/267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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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에서 발굴한 유물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지난 14일 열린 최종보고회에서 공개했다. |
ⓒ 서산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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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지표조사에 이어 서산 부석사에서 유물 발굴작업을 진행했다. |
ⓒ 원우 스님 SNS 갈무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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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부석사 땅속에서 깨진 청자 등 유물이 발견됐다. |
ⓒ 원우 스님 SNS 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