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율법을 두 가지의 큰 계명으로 요약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마 22:37~40). 물론 마태복음 22장에 나온 말씀은 시간적인 측면에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때보다 뒤에 말씀하신 것이긴 하지만, 예수님은 늘 이 두 가지의 큰 계명의 기초를 염두에 두셨습니다. 율법에서는 세세한 부분을 정하여 제시하고 있지만, 그 모든 율법의 정신은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의 기초, 율법 정신의 본질을 바탕으로 예수님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의 가르치심을 주시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에서는 누군가 죄를 짓거나 악을 행하면 그에 상응(相應)하는 방식으로 갚아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24:20에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이 내게 상해(傷害)를 입혔으면, 똑같은 형태로 갚아주도록 하였습니다. 상대방이 내게 뺨을 한 대 때렸다면 나도 상대방의 뺨을 한 대 때리는 것으로 갚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갚아줌에 초점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대로 되갚음을 당할 것이기에 애초부터 다른 사람에게 해(害)를 입히지 않도록 하는 데 있었고, 누군가 상해를 입었다면 그에 맞는 보상(補償)을 통해 그 억울함을 해소해 주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그 율법을 뛰어넘는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보면 원수에게 선대(善待)하며, 누군가 내게 상해를 입혔다면 그대로 갚아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낮아진 태도를 보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예를 들어 이 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도 돌려대라는 가르치심입니다. 내 것을 구하는 자에게 그것을 줄 뿐만 아니라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보다 고결하고 높은 수준의 태도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곧 사랑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수준을 하나님 아버지의 수준으로 격상(格上)하여 요구하십니다(36절). 내가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고, 내가 당하는 상처나 피해에 대하여 보상할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용납하고 더 돌보고 섬기는 태도를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율법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는 것의 정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율법 조항을 지켜 행하면서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그렇기에 율법의 조항을 잘 지키지 않고 어기는 자들에게는 엄격하게 그 잘못을 묻고 정죄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넓은 아량으로 감싸주고, 품어주고, 용납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 우리에게 선대하는 자들에게 선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우리에게 악하게 하는 자들을 선대하는 태도를 갖추라고 말씀하십니다(32절. 33절). 그 무엇인가 더 이득을 얻기 위해 사람들에게 꾸어주려고 하지 말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는 태도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34절, 35절).
이 모든 가르치심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의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그 자비와 같이 그러한 사랑과 자비의 태도를 갖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36절). 그러기 위해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31절).
사실 이러한 주님의 가르침은 실천하기 참 어렵습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내가 불이익을 당하고, 내가 상처를 받고, 내가 상해를 입었는데 오히려 상대방을 사랑하고, 감싸주고, 덮어주고, 더 선대(善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러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용납하고, 용서하는 태도를 갖습니다(37절). 그렇기에 비판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비판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태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는 태도로 바라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38절). 그런데 이렇게 손해를 보면서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용서해 주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든 주는 태도를 가지면 오히려 용서를 경험하게 되고, 더 풍성하게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7절, 38절). 사랑의 부메랑(Boomerang)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불이익을 얻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사랑의 태도는 내게 돌아와 내게도 사랑의 돌봄, 사랑의 채움이 일어날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손해를 보기 싫어합니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못 견뎌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태도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을 베풀고,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 안에서, 가정 안에서, 사회생활 속에서도 그러한 태도를 보여야 할 상황들과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태도로 믿음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채우시는 사랑의 부메랑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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