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가을 풍경은 뭐랄까... 독특한 매력이 있다.
여름의 화려함이 지나가고, 겨울의 황량함이 오기 직전...
가장 원숙한 느낌이라고 할까...
누렇게 변한 초원의 색상은 묵직한, 깊은 톤을 보여 준다.
여하튼... 가을의 초원이 나에겐 참 매력적이다.
초원엔 아직 유목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곧 날이 추워지면 마을로 돌아갈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야크 젖을 짜느라 분주하다.
갓 짠 우유는 따뜻한 게 신선하고 맛있다.
리탕초원 곳곳엔 수많은 유목장막들이 펼쳐져 있다.
해마다 여름 8월1일엔 이초원에서 대규모의 말축제가 열린다.
초원을 따라 이동하며 계속 이어지는 장막들.
낯선 이방인의 방문을 친절하게 맞아준다.
수많았던 유목장막들도 이젠 띄엄띄엄 그 수가 줄어든다.
이곳에서의 가을 하늘은 참 맑다.
이 하늘 아래에서 가슴 터지도록 달려보고 싶은데... 가만히 있어도 숨은 가프다.
마지막 장막일 듯 싶어 한 번 들려본다.
차가 서기 무섭게 아이들이 달려든다.
이들에겐 그냥 만나는 사람 자체가 반갑다.
이곳에 살며 만나게 되는 사람의 수는 손으로 꼽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반가운 건지... 우리가 가진 뭔가가 반가운 건지... 그건 모르겠는데...
여하튼 차가 멈춤과 동시에 그 황량해 보이는 초원 어딘가에서 사람은 모이게 된다.
이 지역의 남자들을 사람들은 캄빠한즈(康巴汉子) 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남자다운... 이란 말이다.
이 지역에서 만난 남자들을 보면 정말 그런 듯 하다.
일단 키가 크고 단단한 체구, 검붉은 얼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행동거지가 당당하다.
이들이 검은 썬글라스를 쓰고, 얼굴을 천으로 두르고 오토바이를 타며 질주하는 모습이 꽤 매력적이다.
물론 이전엔 말을 탔겠지...
이제는 저 칼의 용도가 무얼지...
이 아이들도 저렇게 느름한 모습으로 자랄 것이다.
이제 점점 해자산으로 오른다.
평탄한 고원길이 아름답다.
이곳 역시 고개마루의 거센 바람에 타르쵸가 펄럭인다.
황량하고 거친 여행길이라면 저 '사막의 왕자'가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믿음직하다.
고개를 넘자마자 아름다운 고산호수가 나타난다.
아... 이 호수 얼마나 찾았는데... 이곳에 있었구나... ㅠ.ㅠ
해자산을 넘으며 리탕초원의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다.
해자산 건너편 바탕 방향은 리탕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티벳골짜기 마을의 모습이다.
그 매서웠던 바람도 사라지고, 고도는 낮아지고, 날은 따뜻해지니....
슬슬 눈이 감긴다. 배도 고프고...
2009. 9. 리탕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