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언니야
이미산
너무 빨아서 해진 원피스
가장자리 흔적으로 남은 레이스
한가로운 척 늑대는
보일 듯 말듯 발톱을 다듬었지
유월 앵두가 소문으로 짓무를 때
방안을 걸어 다니는 빨간 구두
새들은 오늘도 순결의 무덤에서 짹짹거리지
등신등신등신처럼 악한 엔젤이라네
악마악마악마처럼 착한 알렉이라네
유혹하고 유혹당하며
머리칼 허옇게 세어가는
늑대의 후예들
낭만적 구름을 걷어내면
사랑은 호기심
이별은 심심풀이
주머니 속 잘 익은 앵두가 터졌다면
물로 쓱쓱 씻어내야지 옷은 다시 사면 되고
앵두는 내년에도 열릴 테니까
달콤한 향기가 어른거리면
지그시 눈을 감고 환송해야지
늑대의 꼬리로 부활하도록
여전히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아무렴 테스 언니야
목숨과 바꾼 그 순결
내 손등에 검버섯으로 피었으니
*영국의 작가 토머스 하디의 장편소설. 원제는〈더버빌가의 테스>이며 '순결한 여성'(A Pure Woman Faithfully Presented)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시터동인 제9집에서
이를테면 무리를 짓는 동물들, 즉, 늑대와 소와 양과 사슴들을 모아놓고 일부일처제의 삶과 순결을 강조하면 모두가 다같이 이 세상의 삶의 마침표를 찍게 될는지도 모른다. 또한, 벌과 나비들이 이 꽃, 저 꽃으로 옮겨다닐 수가 없게 되자 수많은 동식물들의 먹이사슬의 구조가 다 파괴되고, 궁극적으로는 자연이 자연이기를 그치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반 자연적인 동물들이고, 일부일처제와 순결을 강조하며 그 모든 패륜적인 일들을 다 연출해내게 된다. 성숙한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다가 그것이 싫으면 헤어지면 되는 것을 이 성교의 행위와 결혼과 아이들의 양육과 죽음과 죽음 이후까지도 강제하는 것은 너무나도 반 자연적이고 파렴치한 만행일는지도 모른다. 남녀가 만나 아이들을 낳고 공동체 사회가 양육하며 그 모든 재산을 공동체의 공동 소유로 하게 되면 오늘날의 자본주의 같은 이기주의와 패륜적인 범죄와 소송전은 없게 될는지도 모른다.
토마스 하디의 장편소설의 주인공인 테스는 순결한 여인도 아니고, 불결한 여인도 아니며, 오직 인간의 욕망에 따른 자연스러운 삶을 살다가 갔을 뿐인 것이다. 벼락부자 더버빌가의 하녀로서 알렉에게 유혹당하여 사생아를 낳게 된 것도 그렇고, 그 사생아가 죽어버리자 남몰래 타향으로 도망을 가 새 주인집의 아들 엔절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것도 그렇다. 목사의 아들인 엔젤이 테스의 과거를 알고 떠나가게 된 것도 그렇고, 또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알렉과 동거하며 가난한 부모형제들을 돌보는 것도 그렇다. 알렉과 동거 이후, 엔젤이 뜻하지 않게 돌아오게 되자 테스가 격정에 사무쳐 알렉을 살해하게 된 것도 그렇고, 엔젤과 도피를 했지만 곧 체포되어 이 세상의 벌을 받게 되는 것도 그렇다.
순결이란 “너무 빨아서 해진 원피스”와도 같은 것이고, 순결이란 언제, 어느 때나 “가장자리 흔적으로만 남은 레이스”와도 같은 것이다. “유월 앵두가 소문으로 짓무”르면, “빨간 구두”의 아가씨는 언제, 어느 때나 신사인 척하는 “늑대”를 기다린다. 엔젤은 “등신등신등신처럼 악한 엔젤”이기도 하고, 또한 엔젤은 “악마악마악마처럼 착한 알렉”이기도 하다. “유혹하고 유혹당하며/ 머리칼 허옇게 세어가는/ 늑대의 후예들”처럼 제때에 앵두를 따서 맛있게 먹어주면 천사가 되고, 덜익은 앵두를 따거나 짓무른 앵두를 따서 맛없게 먹으면 악마가 된다. “낭만적 구름을 걷어내면/ 사랑은 호기심”이 되고, 이 호기심은 언제, 어느 떼나 테스처럼, 또는 돈쥬앙처럼 다종다양한 모습으로 그 얼굴을 바꾼다. “이별은 심심풀이”가 되고, “새들은 오늘도 순결의 무덤에서 짹짹”거린다. “주머니 속 잘 익은 앵두가 터졌다면/ 물로 쓱쓱 씻어”내면 되고, 옷은 다시 사면 되고, 그리고 “앵두는 내년에도 열릴” 것이다.
여전히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아무렴 테스 언니야
목숨과 바꾼 그 순결
내 손등에 검버섯으로 피었으니
제아무리 많이 배우고 사랑의 노래를 부른들 자연의 순리에 따르지 않는 사랑은 유해할 뿐이며, 오늘날 우리 인간들의 ‘성의 타락’은 이 지구촌의 위기와 너무나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간의 모든 욕망이 사적인 탐욕을 위한 것이 되고,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일부일체제도와 순결에 대한 강조가 오늘날의 아이들을 낳지 않는 ‘성의 타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토마스 하아디의 테스는 자연의 여인이자 ‘순결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지만, 오늘날의 테스의 후예들은 모든 육체를 쾌락의 도구로 삼은 변태성욕의 화신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의 육체는 퇴폐적인 음주가무의 연회장소이며, 모든 변태성욕의 원산지이다. 오늘날의 테스의 후예들은 변태성욕의 자손들이며, 모든 이종교배와 잡종교배까지도 다 허용한다.
불가능은 없다. 모든 성욕은 변태성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