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열 동기회 여의도 포럼은 매월 첫 주 금요일에 실시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철에는 공원이나 역사문화 유적지를 산책하면서 흠람하지만, 겨울철에는 주로 영화및 박물관을 관람을 한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종로 3가에 위치한 피카디리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미드웨이 해전'을 관람하였다. 육사 생도시절 전사시간에 미드웨이 전사를 이론적으로 배웠지만 이번 영화를 통하여 기억을 새록새록 더듬어 보고자 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일본군이 진주만 기습공격부터 전개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하다.
진주만 기습을 당한 미군은 급박한 상황으로 전개된다. 미군은 진주만 다음 일본군의 공격목표가 어디인지 암호해독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해 나간다. 두번째 타킷이 미드웨이라는 것을 알아낸 미 해군은 반격을 준비하지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일본 해군이 미드웨이 공략을 결심하게 된 배경은 미군의 둘리틀 폭격대의 일본 본토 공습 때문이었다. 일왕 히로히토가 거주하는 도쿄에 적의 폭격을 당한 것은 당시의 군민 모두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 해군 야마모토 제독은
미군의 최전방 기지이면서 태평양 전략 요충지인 미드웨이 섬을 점령하여 일본의 최전방기지로 삼아 예상되는 미군의 일본 본토 공략을 저지할 거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미 해군은 암호해독을 통해 일본군의 작전목표를 인지하였으나 미 해군의 전력이 열세라 포격전 없이 항공모함 함재기인 급강하 폭격기로만 기습하는 작전을 펼쳤다. 미 해군은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4척을 격침시켜 태평양의 재해권을 장악하고 반격으로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일본은 진주만을 공습한 이래 6개월 만에 괴멸이 시작되는 비극을 맛본 것이다.
그 이후로 전쟁의 주도권을 미군에게 완전히 넘겨주었다. 일본 해군에 결정적인 강타를 먹인 미 해군은 3개월 뒤에 과달카날에서 부터 반격을 가해 3년 뒤에 일본을 항복시켰다. 일본 해군이 패배한 원인은 첫째 정보전의 열세이다. 정보전이 탁월하면 열세한 병력으로도 우세한 적군을 물리칠 수 있다. 둘째는 일본 해군이 너무 자신만만하게 안이한 작전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정찰활동도 부족했고 긴급출동에 대한 준비가 소흘하였다. 셋째는 집중의 원칙을 외면하였다. 미드웨이 섬 점령과 적 함대의 격멸의 두 마리 토끼를 쫓았다는 것이다.
넷째는 정찰기를 동원한 해상 수색활동이 빈약하였다. 다섯째는 승운이 일본 함대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 해군의 운명을 결정한 전투로 정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영화였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무수한 젊은 군인들이 꽃다운 나이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 다시는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젊은이들의 굳은 신념과 가족애를 담은 전쟁 영화로 가슴 졸이는 감동적인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