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골의 풍수지리(風水地理)
순천박씨의 집성촌인 안동 하빈면의 묘골 집성촌은 풍수지리(風水地理學)으로 명당 중에 명당이라 한다.
명당(明堂)이란 조상의 묘를 쓰면 장차 좋은 일이 자주 생긴다는 묏자리나 집터로 길지(吉地)를 말한다.
묘골 땅모양은 '팔공산을 머리로 하는 거대한 용이 자신의 꼬리를 돌아보는 듯한 땅 모양을 한 회룡고미(回龍顧尾) 형국의 지형'이라는 것이다. 回(돌아볼 회), 龍(용 용), 顧(돌아볼 고), 尾(꼬리 미)
묘골 너머에 '파회(巴回)'라는 마을이 있는데, 산 줄기가 '巴'자 모양으로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巴' 글자의 윗부분의 네모 둘은 왼쪽이 파회(巴回) 마을이요, 오른 쪽 네모는 묘골 마을로 이 두 마을의 출입구는 글자의 동남쪽으로 트인 부분으로 나머지는 삼면이 산으로 둘려 싸여 있어서 밖에서도 안에서도 이 마을을 들여다 보거나 내다 볼 수 없어서 난(難)을 피하여 은거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소위 십승지지(十勝之地)에 해당하는 명당 자리라는 것이다.
그래 그런가. 이 고장 출신에는 인물이 많다니 그 훌륭한 인물들이 누구 누구인가 옥신사(六臣祀)로 어서어서 가보자.
*. '육신사(六臣祠)' 이야기

사육신 기념관에서 이상의 여러 가지를 익히고 육신사로 오르다 보니 길 좌우에 기와집들이 즐비한 것이 아산(牙山) 외암마을 민속촌(民俗村)을 거니는 분위기다.
육신사기념관(六臣祠記念館)에서 사진과 영상을 카메라에 담다 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부랴부랴 갈길을 제촉하다 보니 가는 길 좌측에 이정표가 서 있다.
'←삼가헌 0.5m ↑육신사 0.3m'
거기로 가야만 하는데 이 또한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육신사 종가댁으로 사육신 신위를 모시기 이전에 있었다는 '절의묘(節義廟)'와 '하빈사(河賓祠)' 그리고 사액서원이라는 낙빈서원(洛賓書院)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충정공의 11대손 삼가현(三可軒) 성수(聖洙)가 지은 초가(草家)를 그의 아들 광석(光石)과 손자가 허물고 지었다는 사랑방과 별당체인 '하엽정'과 '연당'을 못보고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이번 육신사 답사 여행의 진수(眞髓)의 일부를 생략하는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래도 여행에서 일행과 떨어지는 것은 낙오자가 되는 법이라서 그냥 직진할 수밖에 없었다.
가다보니 좌측에 공의 7대손 금산군수 박승고(朴崇古)가 지었다는 충효당(忠孝堂)이 발길을 잡는다. 그냥 단순한 집이 아니라 청년들에게 충효와 예악, 궁도 등을 가르찬다는 그곳도 지나쳐야 했다.
왼쪽에 '바람의 家' 라는' 동강초당(東江草堂)'은 굳게 잠겨 궁금증을 더하는데 거기서 조금 더 가니 '박두을 여사 생가' 이정표가 있다.
'박두을 여사'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남편 뒤에서 조용히 그 뒷바라지만 하던 동양적인 한국의 전형적인 이 부인은 갑질로 국내외 손까락질을 받으며 전국민의 지탄 받고 있는 저간의 모 항공사 재벌의 아낙내들이 배워야 할 모범이 되는 부인이다.
한국의 제일의 재벌이 누구였나? 순천 박씨 박두을 여사는 호암 이병철의 부인이요, 그의 3째 아들 삼성전자 창설자 이건희 어머니시다.
드디어 이 마을에서는 제일 유명하다는 六臣祠(육신사)의 외삼문(外三門)이 문 하나를 활짝 열고 멀리서 온 우리를 반기고 있다.
그 현판을 자세히 보라. 낯 익은 글씨체가 아닌가. 전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라서 구테타로 나라를 찾이한 세조와 묘하게 일치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육신사 이 7만여 평의 부지는 순천 박씨 충정공의 17대 손 박노익(朴魯益)의 생가 터로 그의 아들인 9선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3선을 역임한 박준규(朴浚圭)의원이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1994년에 종중에기증한 곳에 마련한 것이 이 고장의 명소 육신사(六臣祠)였다.
경내에 들어서니 우리를 반겨 주는 것은 홍살문이다.
홍살문이란 붉은 화살문이라는 뜻으로 홍전문(紅箭門) 또는 홍문(紅門)이라고도 핟다. 능(陵), 원(圓), 묘(墓), 궁전, 관아 등의 정면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門)으로 유적지에 세우는 문이다.
육신사 경내에서 가장 볼거리는 홍살문에서부터다.
(17) 한석당(閑碩堂)은 박팽년 아버지의 유허비, (14)번 우물 박준규 전 국희의장의 생가터 흔적. (3) 숭절당(崇節堂): 숭정사 앞 제사 준비로 소요되는 건물, (10) 육선생 사적 6각비: 사육신의 생애와 사적을 6각에 각각 음각한 비 (22)박정희 전대통령 휘호(揮毫) (21)최규하 전대통령 휘호(揮毫) (20)박준규 전국회의장 휘호(揮毫) (2) 태고정(太古亭) (1)숭정사(崇正祠 ) (23) 송덕사(頌德辭): 순천 박씨 16대손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부친 박노익옹 송덕비
육신사 입구에는 외삼문(8)과 내삼문( 있다. 바깥과 안의 담에 있는 세칸으로 세운 대문이란 뜻으로 외삼문(8)은 '육신사'를 들어 가는 정문이요, 내삼문(內三門)(7)은 삼정사를 들어 가는 문이다.
육선생 사적비는 사육신의 생애와 사적을 음각한 비로 거북 6 마리가 받치고 있는 육각의 비로 1979년 '육선생서적비 건립위원회'가 세운비다. 물론 가장 앞 면에 세워 눈에 띄게 한 것은 박팽년의 비다.
좌측에 태고정(太古亭)은 일시루(一是樓)라고 도 하는데 그 현판 '太古亭'은 한석봉 글씨체고, '一是樓'는 안평대군 글체인데 '옳은 것은 오직 하나뿐'이란 뜻이다.
이 태고정은 육신사에서는 제일 역사가 깊은 오래 된 건물이다. 앞서 이 필자가 '
박팽년의 유복손 박일산(朴一珊)은 후손이 없던 외가의 재산을 물려 받아 달성군 하빈면 묘골에 99간의 종택(宗
宅)을 짓고 정착하여 순천 박씨의 집성촌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쓰지 않았던가. 그래서 유복손인 박일산(朴一珊)이 지은 태고정(太古亭) 정자는 육신사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된 건물로 보물 554호로 지정 되었다.
숭정사를 드나드는 내삼문(內三門)은 평상시에는 꼭꼭 대문을 닫아 놓은 문이지만 천리길을 달려온 방문객 우리들도 창녕성씨 성삼문(成三問) 자손이라 숭정문을 활작 열고 우리들을 맞아 주고 있는 것이다.
나도 매죽헌 성삼문(梅竹軒 成三問) 신위에 참배 절을 올렸다. 박비(朴婢)처럼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창녕성씨 후손으로서 창녕 성씨를 빛내주신 우리 할아버라서였다.
육신사(六臣祠) 이름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도 있다. 이 육신사에 모신 분은 사육신 외에 박팽년의 부친 한석당(閑碩堂) 박중림(朴仲林) 한 분이 더 있지 않은가 해서다. 그렇다고 칠신사(七臣祠)라 하기도 그렇고, 육신사(六臣祠)라 고집하기도 순천박씨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참배객들도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 같다.
매죽헌 할아버님께
-창녕 성씨 성철용
慶會樓의 연못에 뛰어들던 朴彭年을
挽留하던 그 손길로 만드신 訓民正音
그 한글
가르치는 일로
한 平生을 살았네요.
順天 朴씨 祭主시라 촛불 하나 못 밝히고
忠節을 기린 마음 깊이 깊이 새겨 가요
千里 길
멀다고 않고
달려 오길 잘했네요,
-2018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