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입네” 자랑할일 못된다/ 인간본성 무시한 양반의 위선과 모순 적나라하게 고발/ 치열한 비판정신 오늘에 살려 새 철학 구축 필요
오늘날 누구나 개혁을 말할 수는 있지만 기꺼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개혁을 이루어 낼 수 있다.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력이 부당하므로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만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그렇지 못한 개혁이란 또다른 권력계층과 관료주의를 만들어낼 뿐이다.우리의 역사에 이런 진정한 개혁주의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박지원(朴趾源)은 자신이 지배계층이었음에도 양반의 위선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실천적 선각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뛰어난 실천적 선각자
배는 종놈들의 대답 소리에 저절로 불러진다.방에는 노리개로 기생이나 두고 마당의 곡식으로 학(鶴)을 먹인다.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아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으니 이웃집 소가 있으면 내 논밭을 먼저 갈게 하고,마을사람을 불러 내 밭 김을 먼저 매게 하는데 어느 놈이든지 말을 듣지 않으면 코로 잿물을 먹이고,상투를 붙들어매고 수염을 자르는 등 갖은 형벌을 해도 감히 원망을 할 수 없는 것이다.(‘양반전’ 중에서)
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패악인가.현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범죄행위다.인간의 삶의 목적이 ‘자유 추구’라고 하는데,수없이 많은 인간을 동물의 등급으로 떨어뜨려 놓고도 날만 새면 외워대던 그들의 철학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 많던 선비들조차 세습적 착취구조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으니,이들이 추구했던 학문과 철학은 인간의 본성과 진리 추구라기보다 대부분 왕권 강화나 귀족사회를 공고히 하기 위한 어용철학이라는 비난을 벗기 어렵다.
더 놀라운 일은 인간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제도를 정비해나가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조차 조상들의 일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신이 양반의 후손임을 알아주지 않을까봐 조상 가운데 벼슬한 이의 이름을 외우고 다니며,틈만 나면 떠벌린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자유는 어디서
오경이 되면 항상 일어나 불을 켜고,눈은 코끝을 내려다 보고 발 뒤축을 모아 볼기를 괴고,‘동래박의’(東萊博議책 이름)를 외우기를 얼음에 박 굴리듯 해야 한다.배고픔을 참고,찬 기운을 견디며,입으로는 가난함을 말하지 않는다.이를 부딪쳐서 뇌를 울리게 하고,가는 기침에 침을 삼키고 소매로 털감투를 문질러 털되 티끌 물결을 일으킨다.세수할 때 주먹을 문지르지 말며,양치질을 하되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긴 소리로 종을 부르고,느린 걸음으로 신을 끌어야 한다.‘고문진보’(古文眞寶)나 ‘당시품휘’(唐詩品彙)를 베끼되 깨알 같이 한 줄에 백자씩 써야 한다.손에는 돈을 만지지 말 것이며,쌀값을 묻지도 말아야 한다.(‘양반전’ 중에서)
오늘날의 기득권자들이 동경하는 이러한 절제된 행동과 절제된 생활의 추구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가능하였는가.
유교주의 사회는 경제적 성장을 통해 생산의 확장을 추구하기보다 가지고 있는 식량과 재화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그러다보니 생산물을 공동체의 모든 사람에게 공평히 나누게 되면 각자의 몫이 너무 적어지게 되므로 아예 분배의 몫이 다르도록 세습적으로 계층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또 왕권 유지를 위해 지배계층도 물질적 욕망을 갖지 못하도록 내핍을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하게 된 것이며,물질보다는 철저히 정신세계만을 추구하도록 신념화되었다.그러나 정작 그러한 정신적 추구가 가능했던 것도 복종만을 강요당하며 살아가는 피착취계층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유교의 덕목 가운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에 해당하는 ‘자유 추구’에 관한 언급이 없는 이유는 이러한 점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오늘날과 같이 정치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는 이러한 양반적 행동방식이란 어불성설이며,이것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인간이란 증거가 된다.인간은 다른 누구를 희생시켜 무엇인가를 성취할 권리가 없다.그것이 역사상 아무리 위대한 업적이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옳지 않다.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희생하면 그만이지 그 누구도 그것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그래서 양반사회는 부당하며,수많은 사람을 죽여가며 구축한 만리장성이나 남아공의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모든 이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틀 속에서 살고 있다.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우리에게 기형적인 모럴을 강요한다.
우리는 일찍이 시대 변화에 적절한 철학적 기반을 구축했어야 했다.우리 사회가 뭔가 뒤틀린 듯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폐쇄적인 과거지향적 가치질서를 고집하면서 시대 변화에 맞는 철학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기형적 모럴
비판이 선행되지 않은 전통의 계승이란 현실을 더 어렵게 만든다.양반문화 속에 보편적 선(善)이 있어 그것을 받아들이려 한다면 먼저 양반문화에 대한 냉정한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양반들이 거의 1천년 이상 우리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사람이며,우리가 그 터전 위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그 터전의 흙더미 속에 묻혀 있는 핍박받은 영혼들의 피와 눈물과 분노는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